2016년 01월 논설위원 칼럼/ 국비유학생 <김문환>
짧은주소
본문
논설위원 칼럼 [국비유학생]
김문환/논설위원
자카르타-반둥간 고속철 입찰 후유증의 상처가 깊다. 입찰에 실패한 일본측은 틈만 나면‘충격적이며 실
망스럽다’는 표현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입찰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가 양국의 제안서를 놓고
저울질하는 과정에 정부 실세 중 누가 일본을 밀고, 누가 중국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윤곽도 드러났다.
소위 친일, 친중인사 간의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대통령의 최종결정에 의해 중국쪽으로
돌아갔다.
일본자민당 총무회장이며 일.인도네시아 의원친선연맹 회장인 니카이 도시히로 중의원 의원을 단장으로
기업인, 정치인, 고위공무원으로 구성된 1,100명의 사절단이 지난 11월 넷째주 일주일 내내 인도네시아
거리를 활보하였다. 이렇게 대규모 방문단이 자카르타를 찾아나선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며, 그들의
행보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첫날인 11월 23일 오후에는 니카이 단장을 필두로 수십명의 일본 중의원
의원들이 대통령 궁에 초대되어 빽빽이 집무실을 메운 가운데 조꼬위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
서 다방면에 걸친 양국협력방안이 논의되었지만, 지난 고속철 입찰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의 모호한 태도
와 비신사적인 행보에 대한 섭섭함이 표출되었으며, 재발방지 차원의 예방적 주문이 함축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조꼬위 정부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인프라투자의 큰 손인 일본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는 듯, 양국관계증진에 기여한 공로 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날 도시히로 단장에게 일등수교훈장을 수여
하였다. 인도네시아출신 간호사 파송, 인도네시아 관광객에 대한 입국비자면제 등의 공적 사항이 나열되
었다. 이어 이들 의원단은 파트너격인 국회(DPR), 지역대의원회(DPD)에 운집하였으며 물리아호텔에서
열린 대규모 심포지엄에도 참석하였다. 그 중 일부 의원들은 인도네시아 영토의 첨단인 아쩨(Aceh)
지역까지 날아가 지방관리들과 문화, 관광, 경제협력을 논의하였다.
마치 1942년 3월 기습 상륙하여 일주일 만에 자바섬을 점령하였던 제국일본군이 연상되듯 이번 일본
사절단의 방문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감행하는 총 공세적 성격이 짙었다. 이는 바로 며칠 전 쿠알라
룸푸르 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담에서 조꼬위 대통령과 마주한 아베 총리가 인도네시아에서의 인프라,
공업, 제조, 해양분야 투자의지를 천명할 때부터 예견되고 있었다.
이날 개최된 만찬행사에는 1961년 대일청구권자금 제1기 국비유학생으로 도교농공대학(東京農
工大學) 화공과를 나와 친일 인사의 상징적 인물로 인식되어온 기난자르 까르따사스미따(Ginandjar
Kartasasmita) 전 에너지광업부장관이 조꼬위 대통령을 중심으로 도시히로 단장과 함께 좌우에 정좌
하였다.
필자는 수차례 본지의 지면을 통해 인도네시아가 중국, 일본, 미국등과 인연을 맺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1950년대부터 미국은 보병학교, 참모대학에 인도네시아 위관급장교들을 수
용하여 군사교육을 통해 공산화를 저지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뒤이어 1960년대에는 버클리대가 유학생
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경제 테크노 크랏을 양성하였으며, 1958년 대일청구권 협상이 타결되자 그 자금
으로 1961년부터 5년간 385명의 국비유학생을 일본 및 유럽 등지로 내보낸 전력이 있었다. 그 유학생
들이 귀국하여 소위‘버클리 마피아’가 되거나, ‘기난자르 보이즈’라는 인맥으로 연결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미디어 상에‘Habibie’s Boys’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1978년부터 1998년까지 과학 기술부장
관 한 직책만을 20년간 역임한 하비비 전 대통령이 장관 재임 시 유럽, 미국 등지로 유학 보낸 두뇌들이
최근 속속 귀국하고 있다. 그 스스로 수재 소리를 들으며 유럽의 MIT라는 독일 아헨 공과대학을 1965년
우등으로 졸업한 이력 탓도 있겠지만,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해외 두뇌를 양성한 점은 선견지명
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는 1990년대에 학사과정 1,500명, 석,박사 과정 2,500명 등 총 4,000여명의 이
공계 국비유학생들을 MIT, Stanford, Princeton, Caltech, Aachen, Delft 로 보냈으나, 졸업 후 이들은
대우가 월등한 Boeing, Airbus, Rolls Royce, GE 등 대기업에 눌러앉아 귀국을 꺼렸다. 그러나 최근 글로
벌 경제불황으로 인해 이들이 귀국 러시를 이루자, 2013년 하비비 전 대통령을 고문으로 추대하여 동창
회까지 발족되었다. 당국은 이들이 국내산업 발전에 기여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대표적 한국진출기업인 K그룹은 지난 28년간 연인원 652명의 인도네시아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
해오고 있으며, 2003년부터 시작한 교환학생 지원사업의 수혜자는 32명에 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대학의 ‘해외유학생유치’라는 기조에 힘입어 한국 쪽으로 향하는 인도네시아 유학생의 숫자도 늘고
있다. 2001년 89명이던 유학생은 2013년 916명으로 늘어 7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조꼬위 대통령
취임직후 부산방문 당시 연설회가 열렸던 K대학을 비롯하여 B대학이 수적으로 앞서고 있다. K대학은
최대 인원이 113명에 달했으며 매년 20~30명씩 입학하고 있다. 이들이 후일 친한 성향의 그룹으로 등장
하여 ‘지한파 인사’의 산실이 되며 양국 우호 증진의 가교역할을 담당하여 줄 것을 고대해 본다. 그때쯤
이면 인도네시아 언론에‘ K 보이즈’또는‘부산 마피아’가 회자되도록 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