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연재> Jalan-Jalan Jakarta / 모나스로 잘 알려진 국립기념 탑 <사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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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an-jalan Jakarta
사공 경(한*인니문화연구원장)
모나스 (MONAS)로 잘 알려진 국립기념탑
(MONUMEN NASIONAL)
132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며 하늘로 힘차게 솟은 국립기념탑(MONUMEN NASIONAL)은 독립 광장 정중앙에 위치한다. 젊은 자카르
타와 독립의 존엄함이 느껴지며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품위를 더한다. 기념비를 지탱하는 잔 모양의 사각 받침부분은 지상 17미터
(독립기념일 17일)에 위치해 있으며 가로 세로 모두 45미터(45년)이다.
모나스(MONAS)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탑의 정상에서 타오르고 있는 금으로 덮인 ‘꺼지지 않는 불 (Api Nan Tak Kunjung
Padam)’이다.
이 횃불은 국가의 권위와 독립을 쟁취하고자하는 인도네시아인 들의 불타는 열정과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350년 동안 네덜란드 식민지배에 투쟁한 결과 1945년 8월 17일 독립을 선포했다. 독립정부가 수립되자 이를 기념하
고 국민의 존엄 성과 문화의 동질성을 지키고, 다음세대에게 독립 투쟁의 위대함과 애국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국가기념지를 만들어
관광대상으로 정하여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였다.
역사
혁명투쟁 당시 족자(1946년 임시정부)에 있던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중앙정부를 자카르타로 다시 옮긴 후 수카르노 초대대통령은 에
펠 탑만큼 높은 탑을 건립할 생각을 하였다. 1954년 위원회가 창립되어 1955년 모나스 디자인을 공모하였다. 인도네시아의 특성을
잘 묘사하는 Frederich Silaban(실라반)의 디자인을 뽑았으나 수카르노는 디자인이 너무 우아하여 비용문제로 반대하였다. 더구나
당시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작은 규모의 평범한 디자인을 싫어하는 실라반은 디자인을 바꾸지 않고 경제가 좋아
질 때 다시 도전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반대하는 수카르노가 R. M. Soedarsono (수다르소노) 건축가를 불러 실라반의 디자인을 바
탕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일 1945년 8월 17일 (17, 8, 45) 숫자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제안하였고, 실라반과 수다르 소노의 지도 아래
넓이 80헥타르인 모나스 건립이 16번째 독립 기념일인 1961년8월 17일 시작되었다. 국민들이 협동, 단결했다는 의미로 많은 시민들
이 낸 기부금으로 건립되었으며. 방첨탑 (obelisk)은 1963년8월 건립되었고, 1969년부터 1976까지 지하 역사박물관에 디오라마를
만들 었다. 마침내 1975년 7월 12일 모나스 기념탑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인니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으며. 수하르또 대통령이
준공식을 올렸다.
모나스가 독립광장(Taman Merdeka)에 세워진 이유는 이곳이 자카르타의 중심이며, 일본의 무력위협에 직면했을 때 자유를 지키
고 국민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국민회의 라빵안 므르데까 (Lapangan Merdeka)가 1945년 9월 19일에 바로 이곳에서 열렸기 때
문이다. 모나스가 세워지기 이전에도 이곳은 역사의 중심지였다. 네덜란드 식민지 당시에는 ‘코닝스플레인 (Koningsplein)’이라 불
렸으며, 매년 8월 31일 네덜란드 여왕의생일 축하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하였다. 일본 식민지 당시에는 ’키코 히코바(Kiko
Hikoba)’라 불렸으며 인도네시아인 들에게는 ‘감비르 공원’이라고 불린다. 이 광장은 워싱턴 광장을 모
델로 하였다. 부근에 정부 청사가 있으며, 국경일 이나 국가행사의 출발지이며 특히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시민의 휴식처이다.
모나스가 서 있는이 지역은 메단 므르데까(Medan Merdeka)라고 불리는데, 역사를 보면 현재Taman Monas라고 불리는 이 광장
은 명칭이 5번이나 바뀌었다. 즉 Lapangan Gambir, Lapangan Ikada, Lapangan Merdeka, Lapangan Monas이다.
모나스 탑의 건축
모나스의 수직의 탑과 수평의 받침대의 대비는 음양 곧 선과 악, 밤과 낮, 남자와 여자를 뜻한다. 즉링가 (Lingga)와 요니(Yoni)란
영원한 남녀의 관계를 상징한다. 높이 치솟아 있는 방첨탑이 남자를 상징하는 링가이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남성 요소와 낮을 상
징한다. 한편, 방첨탑을 받친 술잔 모양의 받침부분이 여자를 상징하는 요니이며, 수동적이고 조용한 여성적 요소와 밤을 상징한다.
비옥과 조화로운 통일을 상징하는 링가와 요니는 인도네시아 선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이다. 이 외에, 모나스 탑
이 인도네시아 전통 농부의 가정에서 많이 보는 방아(alu)와 절구통(lesung)으로 보인다. 따라서 모나스 탑은 인도네시아 문화가 지
니는 특성으로 가득하다. 상단부와 하단부의 각각의 모서리는 8개(8월)이며, 에워싼 철재 대나무 모양의 담장은 식민체제에 대항한
민중들이 게릴라전 때 사용했던 죽창을 상징 하며, 처음에는 독립한 해(1945년)를 상징하여 1945개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담장이
앞으로 밀려나면서 그 수가 변하기도 했다.
모나스의 북쪽 방향에 25m x 25m 넓이로 된 연못이 모나스 정원 (taman monas)을 꾸미기 위해 만들어졌다. 분수 가까이에 말을
타는 달리는 디뽀느고로(Diponegoro) 왕자의 동상도 있다. 동상 가까이에 바로 모나스 탑으로 가는 입구가 있다. 3미터의 지하터널
끝에 매표창구가 있다. 모나스 북쪽에는 인도네시아 투쟁 역사를 그리는 양각을 볼 수 있고, 동북 입구를 통해서 국립 역사 박물관으
로 들어가거나 중앙에 있는 ‘독립 방 (ruang kemerdekaan) 에 가거나, 아니면 바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모나스 탑의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다.
국립 역사박물관 (Museum Sejarah Nasional) 모나스 기념탑의 3미터 지하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 역사박물관에는 사방 벽면
에 48개의 투시화(디오라마:diorama)와 중앙에 3개의 디오라마(총 51개)가 전시되어 있다. 긴장감 넘치는 거대한 역사 이야기가 파
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지하박물관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면적은 가로 세로 80미터이며 높이는 8미터 (8월)이다. 인도 네시아의
선사시대와 부터 항해시대, 인도네시아 고대 불교왕국 스리위자야(Sriwijaya) 시대, 마자빠힛(Majapahit) 왕국을 포함한 힌두왕국
시대, 약소민족의 비애를 생각하게 하는 유럽(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식민지 시대, 일본의 점령, 처절한 독립혁명시대, 아시아 아
프리카 반둥 회의, 수하르또(Suharto) 대통령이 다스린 새 시대, 1975년 인도네시아에 합병된 동티모르, 1995년 동남아시아에서 가
장 큰 비행기 제작 회사인 IPTN에서 순수 인도네시아 기술로 N250을 만드는 것까지의 역사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2층 독립 방(Ruang Kemerdekaan)
지상에서 2층으로 향하는 17개의 회전계단 올라가면 원형 극장(amphitheater) 스타일로 중앙 벽이 짙은 초록색 이태리 대리석으로
꾸며진 중앙홀(모나스 탑의 받침부분의 내부)이 나온다. ‘독립 방’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대리석 특유의 매력으로 심오하기 까지 하다.
독립 홀 <동쪽 벽>에는 945년8월 17일 독립선언 때 게양했던 국기상 사까 메라 뿌띠(Sang Saka Merah Putih;붉은 색은 정열 . 투
쟁, 흰색은 순결)가 전시되어 있었으나, 그 국기가 낡았기 때문에 지금은 청동으로 된 독립선언 원고로 교체되었다. <북쪽 벽>에는
금으로 덮인 수많은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공화국 지도, 누산따라 군도가 넓게 펼쳐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독립된
동티모르에 해당하는 금박을 누군가가 가져가 한 동안 지도에 없었으나, 지금은 복원해 놓았다.
<서쪽 벽> 바로 중앙에는 ‘독립 정문 (gerbang kemerdekaan)’으로 알려진 엘리베이터 모양의 독특한 문이 있다. ‘국가를 위해서
(Padamu Negeri)’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면서 국화 melati(쟈스민) 문양이 있는 문이 서서히 열리고 젊은 수카르노의 독립선언과 유
리 장에 보관된 독립선언문의 원본이 드러나면 숙연한 기분이 든다.
맞은편의 계단식 관람석에 앉아서 이 장면을 감상하는 것도 독립할 당시의 비장한 결의를 느낄수 있는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이다.
누군가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쇠사슬의 벽속에서 뛰쳐나와 우리 함께 이 길을 가자’고. 연도가 일본 황기(皇紀)로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독립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국장Garuda Pancasila>
남쪽 벽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져 금으로 덮인 3.5톤의 인도네시아 공화국 문장인 가루다 빤짜실라 (Garuda Pancasila) 상이 위풍당
당하게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가루다가 가슴으로 방패를 안고두 다리로 국가의 염원을 옹위하고 있다. 가루다는 창조의 신 위스누
(Wisnu)가 타고 다녔던 시공을 초월한 새다. 방패는 국가를 방어한다는 뜻이며 가운데 검은 가로줄이 지나가는 것은 수마트라, 깔리
만탄, 술라웨시, 말루꾸에 적도가 지나가는 것을, 동시에 적도상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 인도네시아를 나타낸다. 가루다 목 부분의 삼
각 깃털은 45개, 몸통의 끝 부분의 삼각 깃털은19개. 양쪽 날개는 각각 17개씩의 깃털이 있고, 가루다 발이 꽉 잡고 있는 Bhinneka
Tunggal Ika는 다양성 속의 통일을 뜻하며 그 밑의 깃털 수는8개다.
(1945년 8월 17일을 상징)
중앙의 문양은 5대 건국이념(Pancasila)을 나타낸다. 중앙의 별은 신앙의 존엄성, 사각과 원모양의 고리(남성과 여성 상징)는 인간
의 존엄성. 신성한 나무인 브링인 (beringin)은 통일 인도네시아, 물소 머리 형상은 대의제도를 통한 민주주의 정치, 쌀과 목화는 국
민을 위한 사회정의를 의미한다.
탑의 정상 및 독립 불 (Api Kemerdekaan)
엘리베이터(50명 수용)를 타고 3, 4초만 지나면 115미터 높이에 위치하고 있는, 가로 세로11미터의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전망대는
상당히 대중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모나스를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열려있는 독립광장이 선명하게 보이고, 아무리 방향 감각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 오면 동서남북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광장의 북쪽에 대통령궁(Istana Negara)이 보이고 서쪽에는 국립 박물관도 보
인다. 남쪽에는 정부청사와 국립항공사인 가루다 건물이 보이고, 북동쪽에 Istiqlal Mosque, Catholic Cathedral, 석유회사
Pertamina 건물도 보인다. 동쪽에는 임마누엘 교회, 보이 스카우트 건물, 국영 방송국 RRI(Radio Republik Indonesia) 건물도 보인
다. 맑은 날씨 에는 남쪽으로 보고르(Bogor)에 있는 살락 산(Gunung Salak)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작은 섬으로 꾸며있는 Pulau
Seribu 바다를 볼 수도 있다. 바람 부는 날은 기념비를 지탱하는 2층 받침 부분에서 자카르타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다. 이곳
에서 보는 자카르타는 여느 곳과는 다른느낌으로 젊은이들을 드넓은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들뜨게 하리라.
원뿔 모양의 횃불은 35킬로그램의 금을 14.5톤의 청동접시 위에 도금한 것인데, 1995년 독립 50주년을 맞아15킬로그램을 더하여
50킬로그 램이 되었으며 높이가14m이며 지름이 6미터이다. 금중에서 30킬로그램은 인도네시아에서 최고부자였던 아체 (Aceh)인
뜨꾸 마르깜 (Teuku Markam)이 기부한 것이다. 횃불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132미터이며, 바로 탑의 정상이 된 꺼지지 않는 불은 시
간이 흘러도 그들의 투쟁 정신은저 횃불처럼 우뚝 서서 계속해서 타는 것을 뜻한다. 인도네시아 인들은 지금도 부활을 꿈꾸며 가슴
속의 불꽃도 함께 타고 있으리라.
1945년 9월 19일 기념물
1945년 9월 19일 기념물은IKADA (자카르타체육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대식으
로 건립된 이 기념물의 받침은 19x19미터, 받침높이 4미터, 사람 조각상 5미터이다. 숫자를 다 포함해서 1945년 9월 19일을 상징한
다.(4+5=9,받침너비19)
이 동상은 관련되는 투쟁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군중을 상징하는 다섯명의 사람이 메라뿌띠 국기를 흔들며 “Merdeka”라고 함성
을 지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기념물의 받침은 다시 7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민족주의, 애국심, 영웅적 자질, 투쟁의 정신, 협동, 성실함, 자긍심 같은 투
쟁의 기본 가치를 표현한다.
1945년 8월 17일, 독립선언을 한 뒤에도 일본은 인도네시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연합군 명목으로 현재 상황을 유지하며 지배
하려고 하였다. 모든 것이 확실치 않는 상황에서 국민들과 젊은이들은 멘뗑 31번지에서 코미터 반 악시라는 이름으로 투쟁의 대열
을 갖추었다.
그 후 그들은 민중의 힘을 보일 수 있는 정치 운동을 계획했으며, 이 운동은 체육대회 날 이까다(모나스) 광장에서 행하였으며, 일본
군인의 감시 하에 수카르노가 연설을 했다.
이와 관련되는 사건으로는 같은 날 (1945년 9월19일), 수라바야에서 인도네시아 민중들이 네덜 란드를 공격해 네덜란드 국기인 홍백
청 깃발의 청색 천을 찢어 버리고 홍백 깃발로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1주일 전RAPWI (연합군)이 인도네 시아에 착륙했다. 그들
은 수라바야에 있는 야마또 호텔(Hotel Yamato)에 주둔지를 세웠다. 네덜란 드가 연합군의 이름으로 인도네시아를 다스리겠다는 표
시로 이 호텔에 국기를 게양하였다.
이에 수라바야 민중들은 야마또 호텔을 공격하여 인도네시아 국기, Merah Putih를 게양한 것이다. 그들은 “Merdeka, Merdeka(해
방하다. 독립하다.)” 라고 외치며 절규하였다. 이 위대한 투쟁은 누산따라로 넓게 퍼져나갔다.
디뽀느고로 (Pangeran Diponegoro)왕자 동상
광장의 북쪽에 자바 독립 전쟁의 영웅, 디뽀느고로 왕자가 힘차게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의 동상이 있다. 청동 8톤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1965년 이태리 조각가 Cobertaldo가 만들었다.
인도네시아를 아주 사랑한 이태리 영사이며 재벌인 마리오 피토 (Mario Pitto)는 인도네시아인 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로 이
동상을 기증하였다.
디뽀느고로 왕자는 족자의 인구를 반으로 줄게 한자바전쟁 (1825년~1830년) 때 네덜란드에 맞서용감히 싸웠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바따비아 감옥에 갇혔다가 추방당해 술라웨시 마나도(Manado)에서 세상을 떠난다. 혁명전쟁을 지휘할 때는 마술의 칼이 하늘에서
부터 내려와 그의 발밑에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전설의 용사 디뽀느고로의 투쟁정신은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며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준다.
차이릴 안와르 (Chairil Anwar)의 흉상
인도네시아의 민초 시인 차이릴 안와르 (Chairil Anwar)의 흉상은 디뽀느고로 왕자 동상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차이릴은 45년
세대의 문학 개척자 중 한사람으로 투쟁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시들을 쓴 독립영웅이다. 1922년 메단에서 태어나 1929년 나투랄레
HIS(네덜란드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그의 시는 인도네시아 문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젊은 세대를 위한 대
표적인 시‘나’가 있다. 또한 이 흉상에쓰여 있는 시,‘Karawang-Bekasi’는 이곳에 잠든 영웅들이 뒤따라오는 세대에게 독립투쟁정 신
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내용이다. 1946년 11월19일 차이릴은‘글랑강’이란 시문학 단체를 조직하여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지도하였다.
누구보 다도 자기 시대를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운 그는 1949년4월 28일 27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흉상 옆에 있는 물보라
를 일으키는 분수는 그의‘고매한 정신처럼’하얗게 부서진다.
모나스는 인도네시아 독립의 상징이며 자카르타의 심장이 기도 하다. 자카르타에서 가장 유명한 네 개의 동상-젊은이의
동상, 항공우주 동상, 슬라맛 다땅 (환영합니다)동상, 농부 동상 등이 모두 이 탑을 향하고 있는 것은 모나 스의 그러한
상징적인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도시가 그늘질 무렵 노을을 진하게 마시며 독립 광장을 달려보라. 젊은 도시 자카르타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진정
한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곳에서 현실과 이상에서 고뇌하며 새로운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
다. 그들은 말한다.
‘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누구보다도 자기시대를 정열적으로 사랑한 디뽀느고로 왕자. 한 시대와 더불어 사라
지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그의 힘찬 말발굽 소리를 듣고 싶다’고. ‘디뽀느고로, 당신이 내일의 힘입니다’라고.
시민의 에너지가 가득 찬 독립 광장에 새 시대의 바람
이 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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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Jl. Pelataran Merdeka, |
Lapangan Merdeka |
개관: 매일 오전 9시 ~ 오후 5시 |
모나스 입장료: Rp 5.000 (성인), Rp 3.000 |
(학생), Rp 2.000 (어린이) |
전망대 입장료: Rp 10.000 (성인), Rp 5.000 |
(학생), Rp 2.000 (어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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