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 이선진 전 대사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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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대사의 일기를 마치면서
3. 북한(핵) 문제
제3화에서 언급한 북한 관련 부분을 보충한다. 또한, 최근 한반도 사태가 전쟁 위기 사태로 까지 발전되고 CNN 포함 세계 언론의 톱뉴스로 다루어지고 있는 만큼 혹시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까하여 기술한다. 외교 모임이든, 교민들과의 모임에 가면 한국 대사로부터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정확한 정보와 자신 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정부 정책에 반하는 소신을 가졌거나, 아니면 경제 전문가 출신이더라도 대사는 정부의 북한 정책에 충실해야 할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평소 공부를 계속하여 어떠한 질문 (돌출 질문 포함)에 대하여 답변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남북한 관계에 대한 과거의 역사뿐 아니라 매일의 사태 진전도 놓쳐서는 안 된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국 CNN과 영국의 BBC 방송부터 틀었다.
다행히, 나는 인도네시아 부임 전 외교부의 정책 국장 및 외교정책 실장을 지냈다. 이들 보직의 담당 업무 중 북한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부임 직전 1년 반, 즉 노무현 정부 초창기에는 매주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실무회의에 참석하여 북한 문제를 포함 주요 외교 정책을 다루었다. 이 회의에는 통일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및 청와대의 국장급 이상의 간부가 참석하였다.
이 회의를 통하여,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남. 북한의 평화공존 정책의 진행을 지켜 볼 수 있었다. 북한 핵문제를 두고 한. 미 사이 견해의 차이가 매우 컸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서 북한 스스로, 아니면 6 자회담이라는 협상의 틀에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유도하자는 구상이었다. 반면, 부시 미국 행정부와 극우세력 (neo-conservative) 들은 북한을 “악의축”으로 규정하여 이 지구상에서 멸망시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에 적극 나설 능력이 없었고 일본은 북한 핵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6자 회담이 언제든지 중단되고, 남북한 공존. 협력 체제가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부임하여 인도네시아와 같이 세계 패권의 야심이 없는 선의의 중재자 (innocent broker)를 투입하여 남북한 문제에 상황 전환을 꾀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개인적 과제에서, 인도네시아 부임하여 정부(외교부, 대통령 궁, 정보기관), 학자 및 언론을 만나 그들의 관심을 남북한 문제로 돌리려고 노력하였다. 당시 막 출범한 인도네시아 SBY 정부는 경제 난, 높은 실업률, 민주화, 국제테러, 아체 쓰나미 등 산적한 국내 문제로 난관에 봉착하였지만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어 정부 신뢰 만회에 큰 보탬이 되고 있었다. 이락 내분, 중동문제, 9.11 테러 이후 국제적 이슈가 된 기독교-이슬람 종교 대화(inter-faith dialogue) 추진에 앞장서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또한,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아체 내전”을 2004.12 아체 쓰나미 사태를 계기로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국제적으로 칭송을 받았다.
1998년 수하르트 정권 붕괴이후 쇠락의 길을 걷던 인도네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되살아나고 “평화의 사도”이미지를 구축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가 한반도 안정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이 이 나라 정부나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외교부에는 1970년대부터 북한 문제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Nana Sutresna 전직 유엔 대사가 있었고, 대통령 안보수석 보좌관 Dino Djalal (외교부 출신, 후에 주미대사 역임)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 두 사람과 수시로 만났고 이들은 실제 두 차례나 평양과 서울에 특사로 갔으며 SBY 대통령의 남북한 방문 추진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SBY의 남북한 방문 계획은 북한이 2006.7.5 스커드, 노동, 대포동 등 다양한 미사일을 다량 발사함으로써 무위로 끝났다 (제3화). 자연 나는 개인적 과제의 하나를 접어야 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 내에서도 나의 시도를 못 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부 고위 인사는 나에게 대놓고 한국도 대 북한 접촉 채널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인도네시아의 간여는 오히려 혼선만을 빚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더 이상 북한 문제를 인도네시아 측에 제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를 경험하면서 나의 일기장에는, 대 북한 대화론(진보) 자들의 “북한 채널독점”욕심과, 대 북한 압박론 (보수) 자들의 “북한 고립화”욕심 모두가 남북한 관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적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북한과 같이 예측이 어려운 상대는 다양한 채널을 개발하는 한편, 압박과 대화 전략을 병행해야 압박이 실질적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한 직접 채널, 6자 회담, 아니면 북한의 고립화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단일화” 방식에 안주하였다. 그 결과는 성공하지 못하였고, 국내적으로 고립(보수)이냐, 대화(진보) 논쟁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아가 한국 외교에서 창의성, 유연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Once an Ambassador, Always an Ambassador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한번 대사는 영원한 대사”라는 말이다. 국제 관례적으로도 퇴직한 대사에 대해서도 현직과 같이 Ambassador라는 호칭을 그대로 붙여준다.
사람마다 그 용어를 쓰는 의도가 다르겠지만 나는 외교부 퇴직 후에도 한국 외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대학 강단에서 보내고 싶으며, 주제는 동남아라고 선언하였다. 나의 소망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밝힌 것이다.
나의 외교부 경력 33년 중 20 여년은 동북아 전문가의 길을 가고자 하였다. 해외 근무는 미국, 중국(홍콩, 상하이, 북경), 일본에서 하였고, 본부 근무도 미국, 중국, 북한 문제를 다루었다. 현역 시절 동북아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자랑하던 사람이 인도네시아 3년 근무 후 인기 없는 동남아 전문가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하니 모두 의아해 하였다. 나의 외교부 경력에서 동남아와의 인연은 인도네시아 3년이 전부이다.
나는 2009년 이후 현재까지 대학에서 강의하고있다. 현재 서강 대학교 동아연구소 특임 교수로 있으면서 가을 학기에는 서강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봄 학기에는 서울 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교민 자녀 중에서 나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도 있다.
대학 강의를 시작하면서부터 동남아 배낭여행을 시작하였다. 어차피 학자로 훈련받은 교수가 아닌만큼 내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외교관 현직 때의 경험에 추가하여, 내가 여행에서 직접 보고들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나의 여행 지역은 주로 중국과 아세안 접경 지역이다. 동남아 지역 통합 진행 상황을 관찰하였다. 아세안 국가들이 세계 대국으로 커가는 중국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하는 문제도 관심 사항의 하나이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 사람들에게 동남아가 어떻게 통합하고, 발전하고 있는가를 알리고 싶었다.
외교부 퇴직 후 지난 9년 동안 40 여 차례의 배낭 여행을 통하여 같은 경로를 매 2-3년 마다 국제 노선 버스, 철도, 또는 배로 여행하면서 변화를 관찰해 왔다. 금년 1월에는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하여 10박 11일 간 라오스, 태국, 중국(쿤밍),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비엔티안-쿤밍 구간만 항공편을 이용하고 나머지 구간은 버스와 기차로 이동하였다. 금년 8월에는 하노이를 출발하여 중국 (난닝, 쿤밍 및 중국/라오스 국경지역), 라오스를 거쳐 태국 치앙마이에서 귀국하였다. 전 구간 기차, 버스를 이용하였다.
이러한 여행 결과는 여행 도중 수시로 동남아/중국 전문가, 언론인 및 정부 인사 등 150 여명의 국내인사들에게 보내어 동남아의 발전과 변화상을 알렸다. 대학 강단이나 국내 언론, 전문지에 기고하고 있다. 동남아 여행은 늘 혼자 다녔고, 용역을 받거나 재정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이 원칙은 앞으로 계속 지킬 것이다.
Ambassador 로서 우리 외교의 모자란 점을 보완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외교가 북한 핵, 4강 관계, 동북아 지역등 한정된 주제에 너무 함몰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방치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동남아를 보라고 계속 외칠 것이다.
지난 2년 간 나의 일기를“한인뉴스”에 실어주신 양영연 한인회장님, 홍석영 편집장 및 강희중 편집인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끝)
Indonesian Rup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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