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 박물관 산책[인도네시아 고대 왕국의 황금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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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 동안 인도네시아 고대 및 이슬람 왕국들이 풍부하게 보유해 온 금과 보석, 각종 금속 공예품들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국립박물관은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약 3500점에 이르는 황금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황금 유물은 보석으로 장식된 금과 은 장신구들과 나라의 표상이나 훈장과 같이 왕족이 소유한 유물들이다. 금은 미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다산(fertility), 번영(prosperity), 행복을 가져다 주는 매개체로서 과거에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왕족이나 귀족만이 황금 유물을 소유하고 일상 생활에서 사용했다. 황금 유물은 재료가 매우 가치가 높은 금이라는 것외에도 그 형태나 기능면에서도 뛰어나 고대 왕조의 일상 생활과 예식 등 당대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고대 왕국에서 사용했던 일반 물품들은 대부분 부식하여 당시 발달했던 문명을 보여 줄 근거가 되는 유물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반면에 금공 예품은 썩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물질적 가치와 화려한 외관 외에도 소중한 역사적 자료로 쓰인다.
박물관에 있는 대부분의 금제 유물들은 고대 왕국 뿐만 아니라 이슬람 왕국에서도 사용했던 것이다. 이슬람이 도입된 16세기 이후에도 금의 사용은 매우 중요했고 의복의 장식용품을 넘어서 왕을 상징하는 표상(regalia)이 금으로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크리스와 창과 같은 무기들이 금으로 제작되었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의 금은 다양한 공식적 행사나 의식에서 사용된다.
금, 은 공예품의 제작 방법은 다양하며 주조, 납땜 방식 뿐만 아니라 구부려 고정시키고 금사를 엮어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금알갱이를 조각해 내어 붙이는 방식 등을 사용한다. 이외에도 끌로 조각하거나 안 쪽으로 망치질하여 디자인이 밖으로 도드라지게 하는 타출기법(Repousse Technic)을 사용한 후 섬세하게 세공한 장식을 덧붙여 만들었다. 세선세공 기법이라 하는 필리그란(Filigran) 기법은 오래 전부터 인도네시아 고대 왕국에서도 자주 사용되었고 이는 얇은 금실을 이용하여 큰 면을 가득 채우는 기법으로 주로 크리스의 칼집 장식에 많이 사용되었다.
근세기 두차례에 걸친 대규모 발굴이 1881년에 동부 자바 무띠란 (Muteran)과 1990년 중부 자바 워노보요(Wonoboyo)에서 있었다. 두 차례 발굴로 출토된 황금 유물은 2000여점이 넘는데 대부분 14~22 캐럿의 금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석으로 장식한 것이다.
무뜨란과 워노보요 발굴 유물
고대 유물들은 아직도 발견되고 있다. 그중 동부 자바 무뜨란과 중부 자바 워노보요에서 출토된 고대 황금 유물들은 지난 몇 세기를 통틀어 가장 기록적이고 놀랄만하다.
동부 자바 무뜨란(Muteran) 유적은 1881년 네델란드 식민 통치시기에 발견되었다. 동부 자바 13세기 마자파힛 왕국의 수도 모조끄르또 근처 무뜨란에서 들에서 일하던 농부가 우연히 황금 유물을 발견하였다.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유물들은 15 m 땅 속에 거대한 청동함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유물들은 9-14C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상 등 조각상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네덜란드 강점기에 심오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황금 유물들이 무뜨란에서 출토되어 학계의 시선을 모았다.
무뜨란 유물에 비해 워노보요 출토 유물은 당시 뛰어난 금속 장인들의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훨씬 많았다. 1990년 10월 워노보요에서 어느 농부가 사탕 수수 밭을 파다가 2.7m 깊이의 흙 속에서 우연히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발견했다. 6400여개의 금화와 600개의 은화를 비롯하여 100여점의 보물이 큰 항아리 4개와 청동함 속에서 발견되었다. 여기서 출토된 금은 35kg이 넘었고 기원 후 10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유물들은 머라피산의 화산 폭발로 10세기 경 용암 속에 파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워노보요 유적지에서 발견된 보물들은 힌두 불교 시대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금제 장신구이다. 오직 귀족과 왕족들만이 이런 장신구를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당시 팔찌, 귀걸이, 반지, 머 리장식, 가슴장식, 허리벨트 등의 금제 장신구는 소유자의 사회적 신분을 반영해 주었다. 이와 더 불어 중국 당나라 시대 연한 녹색의 도자기들과 크고 둥근 은제 함도 발견되었다. 금제 의식용품들은 힌두 불교시대 동안 다양한 예식이나 종교의 식에서 사용되었다. 어떤 예식에서는 왕이 다른 마을에 조공을 바치는 것을 면제해 주기도 하고, 종교 학자들이 모여 가르침을 하는 예식을 치르기 위해 마을에 돈을 남겨주었다. 이런 예식에서 왕은 충성을 다하는 백성들에게 금화와 은화로 보상을 해 주었다. 금화와 은화 뿐만 아니라 금으로 된 물주전자, 금제 용기, 금제 국자, 금제 숟가락 등이 있다. 금제 장식품이나 예식용 유물외에도 장검 끄리스(Keris)도 워노보요에서 발견되었다. 기능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수 많은 유물들도 발견되었는데 긴 사각형의 금판들과 꼬여진 금들로 된 것들, 나선형 모양의 장식품이 있었다. 끄리스는 싱아사리 왕국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힌두 불교시대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끄리스들은 고대 자바 스타일에서부터 현재까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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