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왕(王)의 나무,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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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1차 오일쇼크 직후의 자원무기화 추세에 편승하여 국제 원목 가격도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남부깔리만딴 지역에 산림개발업종으로 진출한 K사는 인근지역에 제2의 임지를 확보하여 국영산림공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이 지역은 양질의 원목이 생산되어 열대림 서식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100년 이상 썩지 않는다 하여 철목(Kayu Besi)이라고 별칭되는 울린목(Kayu Ulin)의 주산지로도 알려져 있었다. 울린목은 인도네시아 전통가옥의 기둥, 대들보 및 바닥재, 또 는 전신주, 선박 등 다용도로 쓰이는 긴요한 재목이었으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토착민들의 생계수단이기도 했다. 산림개발 사업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 도로건설을 비롯한 인프 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에 생산활동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공백기간이 생기게 된 다. 자카르타 지사장 L 씨는 어느 날 사장 앞에서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브리핑에 열중하 고 있었다. 첫 수출 선적까지는 아직 1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의 자금압박을 해 소하는 방안으로 임지 내에 분포되어 있는 울린목을 생산하여 국내시장에 판매하자는 제 안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자금이 조성된다 하니 사장도 반대할 리 없었다. 대관청 인허 가를 급행으로 수속하고 곧 생산에 착수하게 되었다.
토착민들이 나무 한 그루 도끼로 벌도 하는데 몇 시간 걸릴 것을 기계톱을 들이대면 몇 분이면 나 가 떨어진다. 이렇게 해서 며칠 만에 곧 내다 팔 수 있는 울린목이 야적장에 높게 쌓이기 시작했 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 고 나면 눈에 띄게 재고품의 높이가 줄어드는 것 이다. 경비원을 보강하여도 밤새 재고감소는 계속 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 인 직원들이 꼬박 밤을 세우며 교대로 야간경비를 서기 시작했다. 수입원이 막혀버린 주민들이 험악 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시간, 현지 직원 한 사람이 한국인 총무과장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한다.“미스 터 김, 긴급 제보하러 왔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위 험에 처해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이 총기를 입수하 여 한국사람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겠다는 계 획이 잡혀 있습니다.”그러면서 내놓는 종이 한 장, 거기엔 한국인 숙소 약도가 그려져 있었고 그 중 울린사업을 담당하는 한국인들의 이름이 명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 일요일, 경장비 정비사 인 S씨는 인근 대도시인 반자르마신 나들이를 준 비하고 있었다. 그는 왕년에 청계천 바닥에서 주 먹을 좀 썼고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었다. 중간지 점인 군청소재지까지는 부하직원의 오토바이에 편승하여 무사히 달려왔다. 그리고 반자르마신행 마이크로 버스로 옮겨 타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것이었다. 권 총이었다. 그를 한적한 숲 속으로 몰아 부쳤다. 조 상대대 생계를 이어온 그들 토착민들의 밥그릇을 뺏어간 한국인들은 강탈자들이라고 언성을 높이 며 육체적인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S씨는 일 체 대응을 하지 않고 인내한 덕분에 저녁 땅거미 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풀려 나오게 되었다. 후유 증에 시달리던 그는 몇 달 지나지 않아 자진 귀국 하고 말았다. 일련의 사건보고를 접한 자카르타 지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게 되자 이젠 결단 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업 한번 해보려다 본 업까지 망칠 판이었다. 사장한테 자신 있게 브리핑 한 일이 엊그제였지만 이젠 온갖 질책을 감수하며 ‘울린사업 포기’에 관한 사장재가를 또 받아내 야 했다. 그리고는 즉각 산림부와 주정부에 공한 을 보내“당사는 금일 부로 울린 벌채사업을 중단 할 것이며 더 이상 지역주민의 권익에 반하는 일 을 하지 않을 것과 향후 지역주민과의 유대관계에 특별히 신경을 쓸 것”을 약속하게 되니 외국기업 으로서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의 교훈을 얻게 된다.
47년 만에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한 사우디 아 라비아 살만왕은 방문 첫날에 보고르 대통령궁 경 내에서 기념식수 행사를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갑 자기 몰려온 폭우로 인해 일정을 연기하여 다음날 오후 자카르타 대통령궁 앞 정원에서 거행하였다. 이때 식수한 수종이 바로 깔리만딴의 상징적인 수 종이며 한국기업이 40년 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연을 맺은 바 있던 울린목이었다. 대통령궁 관 계자에 의하면 수분과 열기를 많이 먹을수록 강인 해지는 울린목을 식수함으로서 연륜이 쌓일수록 양국관계가 더욱 강하게 다져지기를 기원하는 뜻 에서 상기 수종을 선택하였다 한다. 금년 82세인 살만왕이 백년 이상 썩지 않는다는 울린목처럼 백 년 이상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은유적인 의미도 담 겨 있을 법 하다.
2013년 10월 박대통령의 인도네시아 국빈방문 당시 대통령궁 앞뜰에서 기념식수 행사를 거행하 기 위해 선택된 수종은 고가품으로 알려진 아가티 스(Agathis)라는 열대침엽수였다. 뉴질랜드가 원 산지이나 지금은 동남아 지역에 넓게 분포되어 전 자기타 등 음향기기 재료로 쓰이며, 산림개발회사 에 적을 두었던 한국인 직원들은 통나무 바둑판을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을 그런 수종이다.
폭우 속에서 우왕좌왕 할 때 의전관을 제쳐 놓 고 대통령이 직접 우산을 받쳐들고 왕을 안내하는 과잉행보는 그가 메카의 지배자요, 관리자로서 성 지순례 쿼타를 주무르는 왕이기 때문이든, 아니면 왕이 풀어 놓을 투자 보따리에 대한 기대감이었 든 간에 무언가 특별대우를 내보이려는 의도임에 는 틀림없어 보인다. 살만왕의 배다른 형인 화이 잘 국왕이 인도네시아 공산쿠데타 전후의 혼란스 런 정국과 중동전쟁 패배 직후 시오니즘의 위협을 받던 1970년, 자카르타를 방문하여 행한 국회연 설에서 동병상련의 어조로“사우디와 인도네시아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은 낮에 떠 있는 태양을 훼 손하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할 정도로 양국관 계의 돈독함을 과시하여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해외방문지로 미 국을 선택했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살만왕의 기념식수;조꼬 위도도 대통령이 거들고 있다.
회담을 갖기 전인 6월 28일, 인근 버지니아주 콴 티코에 소재하는 국립해병대박물관을 찾아 장진 호전투기념관에 헌화한 직후 기념식수 행사를 가 졌다. 이때 선택한 수종은 북미, 북아시아 등 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는 산사나무였다.‘겨울의 왕 (Winter King)’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 나무를 심으며 혹한을 이겨낸 장진호전투 참전용 사들의 용기와 투혼을 상기시키는 의미를 표현하 였다고, 대통령은 직접 설명하였다.
이와 같이 한 그루의 나무를 놓고 양국관계의 우 의는 물론, 국왕의 장수를 기원하기도 하며, 더 나 아가 견고한 한미동맹으로 발전시켜 통일된 한반 도로 향하는 의지를 표출하듯, 국가 간에 주고받 는 외교적 메시지가 그렇게 심오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김문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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