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6 이선진 전 대사의 일기 제6화 “경제에 매달리다” (주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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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0 억불 Package Project
“대사님, 대사관이나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어느 대기업의 임원도 이런 대규모, 장기 투자 사업에 관하여 오너에게 건의는 물론, 보고조차 못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 규모에서 볼 때, 정부와 기업들이 힘을 합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일개 일본 기업이 하려고 했던 사업을 가지고 정부까지 움츠려들면 우리는 영원히 이런 사업을 못 합니다.” (2007.9 중부 칼리만탄 방문에 동행했던 어느 한국 기업인) 내가 처음부터 오르지 못할 산인 줄 알면서도 대사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까지 포기하지 않도록만든 한마디이다. 내가 중부 칼리만탄 주지사와 협의한 석탄광 개발, 철도 건설, 철도변 조림 사업, 소규모 산업단지 및 항만 건설 등 여러 분야가 포함된 패키지 프로젝트(종합개발 사업)를 두고 한 말이다. 어림잡아도 100 억불이상이 소요되는 종합개발 사업이며, 핵심 사업은 석탄광 개발과 조림지 개발이다. 이 프로젝트는 나의 귀국과 함께 없어진 사업이다. (이 package project 이야기를 삭제할까 하였으나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의 자원 개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음을 바꾸었다 - 후술)내가 패키지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세계가 당시 “자원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이다. 한국은 전력용 석탄 수급문제로 고전하던때이기도 하다. 석유 가격이 배럴당 2-30 불 수준에서 2005년 이후 급상승하여 100불을 돌파하고도 그 상승세를 멈추지 않았다. 석유뿐만 아니라 다른 자원 분야의 공급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은 중국, 호주, 인도네시아 3개국으로부터 전력용 석탄의 90% 이상을 수입하여 왔으나 중국이 자체 에너지 부족 때문에 한국에 대한 석탄 공급을 줄여 나갔다. 이에 따라, 부족분을 인도네시아로부터 수입하려는 한국 기업들로 인도네시아 석탄 산지는 북새통이었다.
이 시기에 자원 부국 인도네시아 대사로 부임하였으니 나의 할 일들이 눈에 보인다. 이 나라는 석탄 자원이 많으나 수마트라 지역과 칼리만탄 지역에 밀집해 있다. 양적으로는 수마트라 지역에 많으나, 전력 발전이나 제철용으로 쓰이는 高 품질, 高 열량 석탄은 칼리만탄지역에 더 많이 있다. 그러나 호주 등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접근이용이한 탄광 지역을 선점하고 있었다.
중부 칼리만탄 나는 석탄 개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먼저 東部 칼리만탄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자원개발에 대한 주정부의 열의가 전혀 없다. 그래서 中部 칼리만탄으로 방향을 돌렸다. 중부 칼리만탄의 기초 조사부터 시작하였다. 반둥 공대에 있는 중부 칼리만탄 지역의 석탄 부존자원에 관한 탐사자료를 모았고, 그 지역에 석탄광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기업인을 만나 지역 분위기도 들었다. 일본 기업 이토추가 고산지대(우리의 관심지역)에 대규모 탄광개발권을 가지고 있으며, 몇 년 전 기초적인 경제성 조사까지 한바 있다는 정보도 들었다. 내가 보다 큰 관심을 두고 알아 본 것은 주지사를포함 지방 정부 지도층의 성장에 대한 열기와 능력이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중부 칼리만탄 주지사에 대한 평가를 물었더니 모든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주지사 중의 하나였다.
인도네시아 지방정부의 능력부족은 정평이 나 있다. 주지사들이 정치적으로 임명되어 지방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중앙 정계와의 연줄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방에 대한 외국인의 자원 개발 투자는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민주화 과정에서 자원개발에 대한인허가 권을 지방정부(州 및 그 이하 郡정부에 까지)에 대폭 이양되었음에도 불구, 자원개발에 관한 법과 제도는 1950년대, 60년대에 제정되어 현실성을 잃은 지 오래다. 법,제도가 미흡한 상태에서, 행정능력이 떨어지는 지방 정부에 권한만 넘어왔으니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자원개발 법은 그 후 개정).
2007.9 중부 칼리만탄 주를 기업인 몇 사람과함께 찾았다. 주정부로부터 고산 산악지대의 석탄개발 계획에 관하여 브리핑을 들었다. 이 고산 지역에 우수한 품질의 석탄 부존이 확인되고 있으나운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아직 개발이 안 되고 있다. 일본 기업 이토추가 철도 건설 구상까지 검토하였다. 즉, 캐낸 석탄을 바지선이 다닐 수 있는 지점(“뿌루짜우”지역)까지 185 Km 철도를 놓고, 동 지점에서 ”바리토“ 강을 이용하여 석탄 전용 부두로 뺀다는 계획이다. 사전 타당성 조사 (pre-feasibility study) 결과 철도 건설에만 60억불 소요된다.
나의 구상은 이 철도 연변을 따라 우리 기업들이 관심이 많은 조림(상업 조림이든, 고무나무 조림 이든) 사업을 실시하는 등 단기간 이득 창출이 가능한 사업을 추가하면 대충 어림짐작해도 100 억 불이 넘는 사업이다. 순간적으로 감당이 어렵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 때 같이 갔던 기업인한 사람이 서두에서 말한 대로“일본 기업이 검토했던 사업을 한국정부까지 움츠려들면 우리는 영원히 이런 사업을 못 합니다.”
100 억불이라는 소리에 지레 움츠리지 말라는 뜻이다. 나의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뜨끔하다.
중부 칼리만탄 주지사가 자카르타 방문할 때 몇 차례 식사도 같이 하고, 골프도 같이 하였다. 그는 영어가 유창하고, 권위적인 다른 지사와 다르게 열정과 철학이 있다. 그는 자기의 최대 관심은 인프라건설, 특히 철도 건설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철도, 도로 건설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나 money-making (profitable) 프로젝트가 아니다, 따라서 양국 정부가 주도하여 석탄광 개발, 조림사업, 철도/도로 건설, 산업단지 개발 및 항구 건설을 한꺼번에 묶는 package project를 추진하되 ppp(public-private partnership)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주지사는 나의 설명을 매우 진지하게 경청한다.
그 후 중부 칼리만탄은 실무대책반을 구성하여 대사관과 실무 회의를 몇 차례 협의를 갖기도 하였다. 또한, 2007.12 한. 인 T/F 점검회의(제 3화) 참석차 70여 명의 한국 정부. 기업 대표단이 자카르타를 방문하였을 때, 주지사 자신이 주 정부의 개발 계획을 직접 브리핑하였고, 2008년 20여명의 지방 관료와 기업인들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우리 정부에 공식 건의하여사업 타당성에 관한 실무 검토를 요청하기도 하는 한편, 대사관 실무진의 현지 방문 시 한국 광업진흥공사 직원들을 참여시키기도 하였다. 나로서는 광업진흥공사가 중부 칼리만탄 고산지역에 있는 석탄 지대를 현장 방문하고, 시험용 시추공을 몇 개라도 뚫었으면 하는 욕심이었다. 그러나 2007.12 우리 대통령 선거이후 산자부의 내부 인 사이동,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거취문제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나도 2008.5 귀국하였다. 나는 패키지 프로젝트 전체가 진행되지 못하더라도 대사관과 주정부와의 협의체가 계속 운영되어 소규모 탄광 및 조림개발, 농업, KOICA 인력지원 등 협력사업을 계속 개발해 나가기를 바랐다. 일부 우리 기업으로부터 그러한 요청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떠나면서 이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남은 대사관 직원들이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자카르타를 떠나면서 중단된 사업을 여기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자원 개발 사업에 대한 우리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한국 대통령, 정부 내 실력자, 아니면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資源富國을 방문하여 자원개발 사업에 합의 한 예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 중 어느 한건도 이행된 예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자원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였을까. 인도네시아 경험을 토대로, 인도네시아에 국한하여 그 문제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원개발은 몇 년에 걸쳐 조사, 관찰 및 협의 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를 몇 개월 만에 졸속으로 추진되어서는 성공사례를 만들 수 없다.
둘째, 인도네시아와 같이 지방분권과 민주화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의 자원개발은 지방정부와의 협의. 협력 체제도 중요하다. 허가권을 가진 지방 정부를 제치고 중앙정부 (또는 중앙정부 고위층)의영향력만 믿고 사업추진하면 성공할 수 없다. 셋째, 대기업을 포함 우리 기업들이 자원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규모가 크고, 위험성도 큰 사업인 만큼 단독으로 나서기를 꺼려한다.
오너가 아닌 사람은 건의조차 하기 힘든 기업 문화이다. 공동 참여하면 위험성을 분산할 수 있으나 공동 참여를 주도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위하여 대사관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대사관이 중심이 되어 우리 기업과 협력하여 평소 사업 발굴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앞에서 든 중부 칼리만탄 예와 같이, 대상이 되는 지역의 지방정부와 협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서 작은 사업부터 시작하여 신뢰를 쌓아간다. 그리고 대사관이 관심 있는 우리 기업들과 대상 지역을 방문하여 현장 중심의 협의를 하면서 기업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대통령 방문 등의 계기에 구체적 자원 개발 방안을 건의하여 추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필요하면 한시적으로 대사 임기를 늘리거나, 그 분야 전문가를 후임 대사로 임명하여 업무의 계속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와 함께, 대사관에 대한 인적,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예로, 내가 석탄 자원 개발문제로 분주하게 다닐때 한시적(6개월)으로 대사관에 광업진흥공사 직원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2년여 경제에 매달리면서 많은 착오, 반성, 회한이 있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해외자원 개발 문제점과 대책을 적어보았다. 인도네시아 자원에 대한 우리의 필요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제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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