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2 [에피소드] 잊을 수 없는 첫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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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 부임해 오기 몇 해 전 딱 한 번 인도 네시아에 출장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990년대 초의 일입니다.
그때만 해도 난 인도네시아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발리의 낭만적인 백 사장을 사진으로만 몇 번 보았는데 상상 속에서 는 그런 평화로운 낙원이 뜬금없이 자바섬 남부 해안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고 늘씬한 서양 미녀 들이 손바닥만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듯 안입은 듯 해변에서 선탠하는 장면을 머리 속에 그리다가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입가의 침까지 훔치며 출장 출발을 손꼽아 기다렸더랬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오래된 영화에서처럼 행상들과 거지들이 활주로 까지 몰려나와 트랩에서 내리는 여행객들을 에워 싸는 자카르타 공항을 상상하기도 했고 자카르타 주민들은 아침마다 타잔처럼 치타와 함께 줄타고 출근하고 나는 인디아나존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 한 우거진 열대우림에서 정글도로 수풀을 내려치 며 공장에 검품하러 가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당연한 일이지만 그 상상들은 도착 당일 모두 깨 져 버렸습니다. 손바닥만 그로테스크하게 커 보이 는 차창 밖 도심곳곳의 동상들과 나름 세련된 디
자인의 고층빌딩들 모습에 급기야 압도당하다가 다음날 아침 공장에 도착했을 때 인천 간석동, 오 창 공단 등지에서 20명, 60명 짜리 소규모 봉제 공장들만 보아 왔던 내 눈에 자카르타 북부 짜꿍 (Cakung) 보세공단의 종업원 800명 규모의 우리 봉제공장은 실로 거대해 보였습니다. 잘 찾아보면 그 당시에도 인도네시아엔 수천 명, 수만 명짜리 공장들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 공장을 내가 받은 오더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에 치기 어 린 자부심마저 북받쳐 올랐습니다.
호텔에서 나를 픽업한 공장장이 자기 사무실에 서 밤새 들어온 팩스서류 정리하는 것을 기다리며 혼자 앉아 있던 상담실에 암본 출신 대머리 인사 부장 아리스가 싱글거리며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 습니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수까르노 정권 과 대립하다가 급기야 남말루꾸 공화국을 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던 암본 사람들은 훗날 수하르토 정 권의 이주정책에 적극 부응해 인도네시아 전역에 뿌리 내렸는데 거리에서는 대체로 머리보다 몸 쓰 는 일을 많이 했고 때로는 그들 특유의 결집력으 로 과격한 실력행사마저 서슴지 않아 실제로 마피 아 같은 단체활동이나 채무해결사 같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리스(Aris)는 그의 원래 이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줄임말이었습니 다. 그의 외관은 전혀 철학적이지 않았으므로 사 람과 이름이 따로 노는 모습에 웃어야 할지 당혹 해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 그의 아들 이름이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며칠 동안 아리스의 얼굴만 봐도 터 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처음 보았던 그 날, 파푸아 식인종을 연상케 하는 그의 얼굴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놀랐고 싱 글거리는 미소는 살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감 히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상담실 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던 순간 내 마음은 반사적으 로 이렇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저리 갓!! 가까이 오지 말란 말얏!!
당시 내가 배워온 인도네시아말은 달랑 세 마디 였습니다.
(1) 이니 살라 (Ini Salah - 이거 틀렸어)
(2) 뻐르바이끼 이니 (Perbaiki ini
- 이거 고쳐 줘)
(3) 바구스! (Bagus! - 조~아요).
제품 검사하러 왔으니 잘된 건 특별히 지적할 필 요도 없겠지만 잘못된 게 발견되면 (1)번 이니 살 라와 (2)번 뻐르바이끼 이니를 연이어 말하고 제 대로 고쳐졌으면 (3)번 바구스로, 아니면 (1)번 부터 다시 반복할 요량이었죠. 어휘력이 고작 그 정도였으니 하물며 아리스의 얼굴을 보고 경기를 일으키기 직전인데 그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동작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잔을 들고 홀짝홀짝 마시는 시늉을 하며 “꼬삐? 꼬삐?” 하고 묻는 저 말이 ‘너 코피 한 번 터져 볼래?’ 하며 시비 거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누 가 봐도 커피 마시겠냐는 뜻이죠. 난 아까의 당황 함을 황망히 갈무리하고 아리스에게 우아하게 고 개를 끄덕여 주면서 네 번 째 인도네시아어 단어 를 급히 암기했어요. 꼬삐…
잠시 후 커피를 들고 들어온 사람은 또 아리스 입니다.
물론 난 그의 선의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모처럼 본사에서 온 출장자에게 손수 최선을 다해 커피를 타주려는 성의를 말입니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아 리따운 아가씨들도 많고 소위 오피스걸이라고 부 르는 야들야들한 여자 사환도 있는데 왜 정상적 크기의 찻잔이 아이들 소꿉장난감처럼 작아 보이 게 만드는 그 크고 우락부락한 손으로 내 커피를 받침접시도 없이 들고 와야 하는 것이며 차력시범 을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아구까지 따른 뜨거운 커피물에 왜 엄지손톱을 반쯤 담그고 오는 것이냐 말입니다. 출렁거리다가 테이블에 약간 쏟아지면 서 알갱이 가득한 잔해를 남기는 새까만 커피는 이제 단백질마저 풍부해 보였습니다.
나갈 줄 알았던 아리스는 미팅 테이블 건너편에 털썩 앉아 예의 그 식인종 같은 미소를 띤 채 날 계속 쳐다보는 중이고 난 잡아 먹히지 않아야겠다 는 일념으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주는데 억지 로 잡아 늘린 얼굴근육에 자꾸 경련이 일어납니 다. 아리스가 뭔가 또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하나 도 이해되지 않는 그 얘기가 순식간에 내 머리 속 에서 동시통역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말이 지, 미스터르를 위해 특별히 직접 타서 만든 커핀 데 크림이 좀 모자라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내 손 톱에 낀 기름이라도 짜내서…. 나 갑자기 초능력 이 생긴 모양입니다.
“실라깐 미눔, 실라깐.”
뭐 동시통역까지 되는데 이게 마시라는 얘기라는 건 동작만 봐도 알겠습니다.
군시절 회식 때 재떨이, 전투화에 소주 부어 마신 전력도 있고 그때도 아무 탈 나지 않았으니 이 커 피도 못마실 건 없다고 결심은 서는데
왜 하필 이 대목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화장 실에서 휴지 대신 맨손을 수동식 비데의 일부로
사용한다는 얘기가 불현듯 떠오를까요? 그게 오 른손이라던가 아니면 왼손…? 실라깐을 연신 열 정적으로 되풀이하는 아리스의 부릅뜬 두 눈에 핏 발이 섭니다. 빨리 안마시면 생명이 위태로울 판 입니다.
첫 모금…!
갑자기 머리끝까지 열이 확 오릅니다. 이런 혁명 적인 맛의 커피는 난생 처음입니다. 첫 모금이 목 구멍을 채 흘러 내리기도 전, 혀가 얼얼하게 마비 될 만큼 강렬한 단맛은 물엿보다 최소한 열 배는 더 달고 당시 우리 서울본사 앞 학다방 커피보다 체감당도가 백배는 더 단 것 같았습니다. 본사 출 장자를 위해 탕비실의 설탕을 아낌없이 몽땅 투하 한 것이 분명했어요. 삼키는 순간 곧바로 당뇨가 생길 것 같은 예감마저 스치는데 이 커피엔 뭔가 먹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모종의 분말들이 내 치 아와 혀 위에 무수히 내려 앉았던 것입니다. 하나 님, 인간적으로 이게 아리스 손톱에서 나온 건 아 니겠죠? 커피 한 잔 마시는데 부흥회 일주일쯤 다 녀온 것마냥 신앙심마저 두터워집니다.
살려면 뱉어야 한다는 갈등이 후두부를 연타하 고 있었지만 코앞에서 싱글거리며 내 표정을 들여 다 보는 아리스의 커다란 얼굴은 무엇보다도 강한 무언의 압력입니다. 간신히 커피를 목구멍에 넘기 고 억지로 눌러 내리자 식도까지 얼얼해 지면서 등에선 식은 땀이 솟아납니다. 커피잔을 내려다 보니 내 입이 닿았던 자리에 짙은 갈색 분말들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황당합니다. 저 분말의 정 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 순간 테이블 너머에서 고개를 갸우뚱 45도 로 눕히고 나를 들여다 보는 아리스의 표정은 별 식을 만들어온 주방장처럼 내 시식소감을 기대하 는 겁니다. 텔레파시까지 막 되는데 하나도 이상 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사히 이 시련에서 벗어나 려면 뭐라도 말하긴 해야 합니다. 물론 진심을 들 켜서는 절대 안되죠. 그 절체절명의 순간, 내가 아 는 몇 안되는 인도네시아어 어휘 중 마침 딱 들어 맞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난 뺨 힘줄에 경련이 일어나도록 다시 억지웃음을 웃어 보이며 엄지손 가락 치켜 들었습니다.
(3) 바구~스!.
이니 살라 했으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살인적인 단맛의 커피는 인도네시아 교 민들이라면 이제 누구나 알고 있을 꼬삐 스르북 (Kopi Serbuk)이라는 분말커피입니다. 그 커피 는 몇 년 후 내가 정식 발령받아 자카르타 공장에 부임했을 때에도 여전히 제공되었지만 이번엔 상 시 경계경보를 발령, 사환들에게 탕비실을 철통 사수하도록 한 것은 물론입니다. 아리스의 손톱을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번 설탕을 좀 덜 넣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커피 를 다 마시고 나면 입술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늘 엄청나게 달았습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들 어오기 훨씬 오래 전, 인도네시아는 커피에 관한 한 정말 일관성 있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내가 다니는 회사도, 커피를 타주는 사람도 무수 히 바뀌었지만 정도의 차이만 조금 있을 뿐 커피 의 강렬한 당도는 여전히 변함없었고 그러는 사이 에 나 역시 이젠 커피가 충분히 달지 않으면 마실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 은 인도네시아의 현실에서 매일 고단한 삶을 살 아가는 나와, 또 이곳 사람들에겐 그런 강한 단맛 이 어쩌면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잔에 남은 꼬삐 스르북의 알갱이를 볼 때 마다 그때 아리스가 타주었던 첫 커피를 기억하곤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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