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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2 기억의 숲에서...

4,758 2016.12.0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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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지나온 기억의 에서 그리움과 추억을 되새기는 일인 같다.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은 현재의 삶에 무한한 동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유년 시절의 슬픈 기억 한편의 삽화가 되어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 .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가 사온 운동 생각에 잠을 설치다 겨우 새벽녘에야 깜빡 들었다. 뒷마당 우물가에 햇살이 조각조각 어들고 잠결에 귓불을 스치는 손길을 느끼며 퍼뜩 잠이 깬다. 손끝에서 묻어나는 익숙한 냄새, “ 어나야지, 오늘 입학식 날이잖아!” 정이 잔뜩 있는 아버지의 나지막한 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는다.

 

  햇살이 마루 끝에 잠시 놀다간 오후에 엄마는 목에 보자길 하나 두르고 분무기로 폭폭 머리 카락을 적셨다. 손으론 앞머리를 꼭꼭 누르며 반듯하게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다. 세수를 하고 번이나 물을 발라 공들여 빗질을 해봐도 음에 들지 않는다. 입학을 앞두고 어려운 살림 엄마가 사주신 토끼 무늬가 새겨진 노란 스웨 터를 입고 박이 동생과 함께 동네 사진관에 사진도 찍었다. 생각이 떠오르자 기분이 아져 의젓한 학생처럼 어깨를 펴며 싱긋 웃어 본다. 아버지는 나를 덥석 안아 자전거 군용 요를 깔아놓은 짐칸에 앉힌다.

집과 병원만 거의 오가던 아버지와 나의 번째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마루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 동생은 큰방에서, 잦은 기침소리가 떠나지 아버지는 작은방에서 혼자 지냈다. 언제부턴 서쪽 창으로 붉은 노을이 지는 작은 방에 계셨다. 그런 아버지가 어린마음에도 하염없이 슬퍼 보였다. 아버지의 잦은 기침 소리는 옹색한 살림 구석구석 슬픔으로 젖어 있었다. 가끔 부름을 시켰고 때론 잔돈푼을 건네주면 군것질로 허기진 정을 채웠다. 그러던 어느 , 병원 가는 말고는 거의 외출이 없으신 아버지가 나의 입학식에 따라 나선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등에 얼굴을 깊게 묻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둘만의 나들이가 제발 깨지지 않기를 눈을 감고 빌었다. 희뿌연 흙먼지가 날리는 학교 운동 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아이들은 천방 지축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닌다.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겨우 줄을 맞추 선다. 추운 날씨 탓인지 코를 훌쩍이며 부모를 찾아 울어대는 아이도 있었다. 모래 바람이 너울 처럼 번지는 삼월, 입학식이 진행되는 운동장 디에도 봄은 아직 없었다. 식이 시작되고 행여 버지를 돌아보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까봐 려움에 마음속으로 주문을 건다.

 

  열을 돌아보면 나를 보고 계실 거라는 믿음 가지고 천천히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아버진 자전거 짐칸에 올라 타셨는지 미루나무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줄곧 나만 바라보고 있었던 눈이 마주치자 얼굴 반을 덮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 풍차처럼 팔을 휘휘 저으신다. 여기 있으니 아무 염려 말라는 입가에 환한 웃음을 매달고 계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바늘에 콕콕 찔린 아프다. 햇살을 받으며 무심 신발코로 땅을 흙먼지를 일으키며 톡톡 발장 난을 친다. 일찍 슬픔을 배우는 중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윈 아버지 등에 얼굴을 으며 비릿하고 시큼한 냄새가 홍시 삭는 냄새 같다고 생각한다.“아버지 달고나 사주 ”“그래, 알았다, 주고말고”. 하며 자전거 페달에 힘을 준다. 너무 기뻐서 지나가는 또래들 에게 자랑 삼아 말한다.‘우리 아버지다! 우리 버지가 달고나 준다’. 아무도 묻지 않는 말을 큰소리로 외쳐본다. 연탄불에 국자를 올리고 달고 나에 소다를 조금 넣어 부풀어 오르면 입이 같이 뜨겁다. 먼저 숟가락을 떠서 작은 입으 호호 불어 아버지 앞에 내민다. 어린 마음에 고나 라도 많이 먹으면 왠지 아버지 기침이 줄어 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채는 탓에 숟가락 받아먹는 아버지 앞에서 나는 활짝 웃으며 스스로 대견한 묻는다.“맛있지? 아버지! 진짜 맛있지?”그날 저녁 작은 방에서 들리던 기침소 리는 평소완 다르게 더욱 심해졌고 집안의 분위 기는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우울해지고 있었다.

 

  내일도 아버지하고 학교 갈건 , 마음은 아랑 않고 엄마의 걱정 섞인 잔소리는 문지방을 가족들의 귀를 긁는다. 이불 속에서 숨을 막고 소리죽여 운다.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작은 방에서 울리는 기침소리는 목구멍을 삼키는 울림이 되어 문지방을 넘지 못한다. 다음 아침 작은방 앞에서 눈치부터 살피는데학교 가자 준비해라문틈을 새어 나오는 소리에 듯이 기뻤지만 짐짓 엄마의 기분까지 생각하느라 제법 태연한 속내를 감춘다. 아버지는 가끔 손님이 오시면 꺼내 입는 자주 잠바를 입으니 얼굴에 생기가 도는 같아 보기 좋다. 목도리까지 하니, 우리 아버지 미남이구나 싶어 어깨가 으쓱해진 . 며칠간 아버지와의 나들이에 때론 구멍가게에 호떡을 사먹기도 하고 뽑기도 하며 달달한 복에 젖어 들었다.

  

  엄마 몰래 아버지와의 비밀들이 하나, 쌓여가 기쁨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는 아버지의 기침은 점점 거세져 밤새 엄마의 호를 받아야 했다.

닷새째 되는 아침, 첫날부터 느꼈던 조마조마 느낌이 현실이 것이다.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몰라 아픈 몸을 억지로 디며 입학식에 따라 나선 것을, 그것으로 아빠와, 나만의 나들이가 마지막이 되었다. 내일이 무슨 의미인지 다시는 그렇게 원하는 날이 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 얼마나 아픈지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하고 왠지 물어보면 갑자기 눈물 같아 시리 자전거를 발로 한번 본다. 문간에서 처진 누렁이 귀에 대고엄마 미워 아버지도 미워”. 눈물이 뚝뚝 떨어져 누렁 귓가를 적신다.

 

  잠시 기억의 저편을 떠돌고 있는데, 갑자기 딸아 이가 나를 크게 부른다.

  사진첩에 있는 낡은 흑백사진 장에서 애달픈 그리움과 회한으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세월의 강을 건너 여덟 아이로 돌아갔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년 시절의 사진 장은 그렇게 생겼다. 사진 속의 나는 우울하고 어수룩 보이는 눈가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슬픈 모습이다. 딸아이는 엄마는 어릴 때도 꼬리가 내려가 순해 보인다는 , 머리모양은 이런가 , 놀리며 웃는다. 나는 아버지를 무척 랑했다. 오랜 병고로 자식을 욕심껏 사랑하고 안아줄 없었던 고통의 무게를 어찌 견디셨을? 우리 곁을 떠날 엄마와 나의 손을 잡고 남긴 한마디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날 지막으로 잡은 아버지 손은 더없이 따뜻했다. 어린 얼굴 위로 아버지 얼굴이 겹쳐지나 가고 유년시절의 슬픈 삽화와 함께 그리운 절인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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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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