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8월 [철학, 욕망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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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욕망을 마주하다]
가상공간을 통해 확장되는 욕망
2011년에는 인공지능 왓슨이 퀴즈쇼에 나가 인간을 꺾고 우승했다.
<출처: (cc) iChris at Flickr.com>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의 등장으로 즉시성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그 들은 뒤죽박죽된 시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시청하고 문자나 사진, 동영상 등의 자료를 편집,전송할 수 있다. 그리고 증강현실1), 위치기반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활정보와 교통, 날씨 정보를 받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재와 가상이 결합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앞으로는 앱을 통하지 않고도 음성이나 메신저만으로 전자기기를 제어하거나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즉시성에 대한 욕망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기록 욕망의 극대화와 공유를 향한 욕망
문자는 2천여 년 동안 인간의 기억을 보충하여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도구였다. 그리하여 문자로 기록된 문서나 책이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역할을 해왔고 소통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문서나 책은 곧 인간의 기록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미디어였다.
20세기 말부터 디지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 하면서 문서와 책은 뒤로 밀려나고 디지털 미디어가 그 역할을 떠맡았다. 문서나 책과 같은 미디어는 인간의 지적인 논리에 따라 데이터를 분류하고 장하는 반면 디지털 미디어는 기계 시스템 자체의 논리에 따라 데이터를 분류하고 저장한다.
디지털 미디어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신속하게 저장하고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는 문서나 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신속하게 저장하고 전송할 수 있도록 한다. 결국 디지털 기술은 기록 욕망 또한 극대화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저장기술은 플로피 디스크에서 하드 디스크를 거쳐 클라우드에 이르렀다. 디지털 기술이 클라우드 단계에 들어선 지금은, 서버나 데이터 센터를 통해 소비자들의 인터넷 방문기록, 검색기록, 구매기록, SNS 활동 기록, 통화기록 등이 몽땅 빅데이터로 저장된다. 이 데이터 센터와 빅데이터야말로 오늘날의 기록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빅데이터의 분석은 소비자의 은밀한 취향까지도 파악할 수 있으므로 통제의 욕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제레미 리프킨은 재생 에너지 기술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이 성공하여 상품의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정보와 서비스, 재화를 공유하려는 욕망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사례로서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어 투 피어 네트워크, 프리 소프트웨어,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크라우드 펀딩 (Crowd Funding)2) 등을 들었다. 공유경제를 이루려는 욕망은 앞으로 우리가 키워나가야 할바람직한 욕망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블루는 1997년에 체스 세계 챔피언인 카스파로프를 꺾었고, 2011년에는 인공지능 왓슨이 미국의 유명 퀴즈쇼에 나가 인간을 꺾고 우승했다. 마침내 2016년에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초일류기사인 이세돌 9단을 이기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세기의 바둑 시합이 한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둑을 ‘동양의 지혜’로 간주해왔던 한국인들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알파고가 이긴 뒤에, 미래학자이자 구글의 기술이사인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이제 매우 복잡한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선언했다.3) 그는 자신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2005)>에서 이미 인공지능에 관한 몇 가지 예측을 했었다.
2029년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게 되며, 2045년에는 인간의 지능(패턴 인식능력, 문제해결 능력, 감정 및 도덕적 지능을 포함한 지능)을 뛰어넘고 인간과 기계 사이의 융합이 이루어져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도 인공지능이 신문기사를 작성하고 소설을 쓰거나 그림도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사나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하는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한 년도가 신빙성이 없다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아주 터무니없는 예측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은 공유에 대한 욕망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cc) Heinrich Böll Stiftungat Wikimedia.org>
욕망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만일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커즈와일의 예측대로 발전한다면 인간의 욕망은 어떤 방향으로 튈까? 그가 낙관한 대로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 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갈까? 아니면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서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까?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어 마음과 욕망이 아예 황폐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들과 기업 경영자들처럼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기술의 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구적 자본주의의 폐해를 정확히 인식하고 기술의 위험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디지털 기술이 우리가 추구하는 자아를 인공지능에 심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인공지능은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단계에 들어서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보다 훨씬 똑똑한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거나 파멸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인공지능에 자아를 심을 수 있다면 맹자의 사단(四端)도 심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인공지능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을 심는다면 인류는 기계와 공존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자본가와 과학자의 욕망에 주로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욕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실험실이 결코 아니다.
[조홍길/부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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