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이선진 전대사의 일기/2005년 SYB 부산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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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인도네시아주재 대사로 3년 근무하는 동안 우리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은 한 차례, SBY의 한국 방문은 두 차례 있었다. 다시 말하 여, 2005.11 SBY가 부산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 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였고, 2006.12 노무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2007.7 SBY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국가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주 상대방 국가를 방 문하느냐는 두 나라 관계를 측정하는 척도의 하나 이다. 나의 임기 3년 동안 매년 정상 방문이 있었 을 정도로 양국 관계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나의 부임 전해 2004년도 한국의 대 인도네시아 투자 는 3,000 만 불 수준이었다. 두 나라 사이 무역, 투 자 등 경제교류가 1997/8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 와 수하르트 정권의 붕괴 때 바닥을 쳤고 내가 부 임하던 즈음에도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이 러한 양국 관계가 SBY 이후 회복 추세를 보였으며 이의 시작은 2005년 SBY 부산 방문부터이었다.
SBY, 30여년만의 한국 방문
제 13 차 APEC 정상회의가2005.11.18-19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SBY도 이 회의 참석하나 회의 개최지인 부산만 방문하기로 하였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SBY는1974년 미국 출장 가는 길에 자신의 약혼자(현재 부인)와 장인이었던 당시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를 보기 위하여 서울을 방문하였다. 그 후 한국에 오지 않았다.
지금의 한. 인니 관계라면 부산 방문 前, 아니 면 後라도 한국 공식 방문을 추진하여 서울 방 문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2005년 당시 인도네시아에 대한 우리 국내의 이 미지는 최악이었다. 쓰나미 (2004년), 국제 테러(2002년 발리 테러 이후 매년 발생), 수하르트 정부의 독재 및 부정부패, 그리고 1998년 수하르 트 대통령의 퇴진 후 6년 간 3 명의 대통령이 교 체될 정도로 불안한 정국 및 거리 데모 등 모두 부 정적인 보도뿐이었다. SBY가 비록 최초의 민선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취임 1년 밖에 되지 않아 장 래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 이번 부산 방문이 SBY 내외에게 추억꺼리를 만들고,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새롭게 각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SBY는 외국투자 유치를 위하여 동분서주하 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대기업들과의 모임을 주선 해 주면 아주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러나 대기업들은 다른 나라 정상들과의 만남에 바 쁠 터인데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초청에 과연 응할 까, 또한 기업인 모임을 누가 주최하며 그 비싼 경 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가 등등 모든 것이 답답할 뿐이었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불 면증이었다. 이런저런 해답 없는 고민으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한국의 의전관례를 간단히 소개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에 대한 예우는 양 자 방문이냐, 아니면 다자회의 참석이냐에 따라 크게 다르다. 양자 방문의 경우, 한국 정부가 정 상회담, 국빈 만찬, 경제4 단체장 주최 오찬 연설 회 등 대부분의 일정을 주선하고 소요 경비도 대 부분 부담한다. 반면, 다자회의 참석의 경우, 회의 참석 일정 이외 다른 일정은 각자가 주선한다. 한 국은 최소한의 의전, 경호와 차량, 및 제한적 경비 만 부담한다. 나라에 따라 차별대우한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큰 나라 정상들은 한 국 기업인 초청 행사를 포함하여 별도 일정 마련 에 불편이 없다.
그런 돈을 아껴야 되겠습니까
2005.10.9 일요일. 당시 한인 회장이자 한인 상공인회 회장인 승은호 코린도 그룹회장과 골 프를 마치고 음료수를 마시는 자리에서 승 회장이 먼저 SBY 방문 준비 상황을 물었다. 그러면서 SBY 방문 관련 한인회가 할 일이 없겠는가, 우리 정부가 별도 일정을 마련해 주기 어려우면 한인회가 숙소 호텔 앞에서 환영 꽃다발이라도 걸어줄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한인 간부 몇 명도 같이 있었다.
나의 귀가 번쩍 뜨인다. 이에 나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SBY를 초청하여 소규모 조찬 모임을 갖고 한국 본사 기업을 부르고 수행 인도네시아 기업인 및 인니 교민 상공인을 초청하면 의 미 있는 행사가 되겠으나 적지 않은 경비가 소요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그러자 승 회 장이 그런 돈을 아껴야 되겠습니까하면서 비용이 얼마나 들든 걱정 말고 추진하자고 흔쾌히 대답하 였다. 십년 먹은 체증이 풀리면서 천군마마를 얻 은 기분이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당초 3-40명 수준의 소규모 모임 계획에는 두 배가 넘는 인원이 참석하였 다. 승 회장은 약속대로 APEC이 개최되는 최고급 호텔에서 열린90 여명의 조찬 경비를 부담하였다.
다음은, 인도네시아 정부를 설득하는 문제이었다. 월요일 출근하는 길로 인도네시아 경영자총회 (APINDO) 당시 회장 소피안 와난디에게 SBY 방한 문제와 관련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넣었더니 만나자는 회신이 바로 왔다.
SBY는 그 해 (2005년) 부산 방문에 앞서 호주, 일본, 미국,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 방문 사례를 조사한 결과 두 가지가 주목되었다. SBY 방문 준비 과정에서 와난디 회장을 사전 파견한다는 사실과, 다른 한 가지는 방문 기간 중 현지 기업인들과의 오/조찬 연설회 등을 가진 후 3-4 개 기업 총수들과 개별 면담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추어 와난디 회장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와난디를 만나서, 한국의 의전관례를 설명하면서 한국 정부나 경제 단체들이 모임을 주선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이해를 구하였다. 이를 감안하여 주인 도네시아 한인 상공인회 회장 (겸 한인회장) 주최 조찬 모임을 갖고, 이 자리에 인도네시아 진출 한 국 기업의 본사 CEO와 임원들을 초청하겠다는 의 견을 제시하였다.
와난디는 나의 설명을 듣고 한참을 생각한 후 추진해보자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승 회장 명의의 초청 서한을 만들어서 외교부에 원본을 보내 공식 채널로 추진하되 자신에게는 사본을 보내주면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코린도 그룹은 70년 대 부터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여 목재, 조림 사업을 주종으로 하여 20 여개의 기업을 거느린 재벌 기업으로 인도 네시아에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소피안은 내심 삼성, LG 등 대기업이 아닌, 한인상공인회 회장이 주최하는 모임에 SBY가 참석 하는 문제를 두고 저울질하였을 것이다.
나는 SBY 앞으로 보내는 한인상공인회 회장 명의의 초청장(별첨, 영문)을 만들어서 외교부 의전 장을 직접 만나 전달하였다. 이어 대통령 비서실장, 무역부장관, 대통령 수행비서, 대통령 외교보 좌관, 외교부 실무선 등 관련인사들을 차례로 만나서 설명하였다. 그들은 대체로 호의적이었고 점 차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하산 외교부 장관 면담
최종 관문은 역시 대통령 해외 방문을 맡고 있 는 하산 외교부장관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인도네 시아와 같이 관료주의 뿌리가 깊은 나라는 관료 의 입김에 따라 될 일도 안 되게 할 수 있다. 더욱 이 외교부는 대통령 해외여행의 키를 쥐고 있다.
하산 장관과의 면담이 잘 잡히지 않았다. 장관의 해외 출장 등 바쁜 일정 때문에 쉽지 않기도 하 지만 장관 비서실도 협조적이지 않았다. 장관비서 실은 대사들의 외교부 장관 면담 신청을 장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아예 차단하거나 묵살해 버릴 정도로 파워가 있었다. 비서실 입장에서 보면, 자기 장관을 면담하려는 신참 한국 대사가 겁도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행이 이슬람 종교 일정이 나를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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