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현대사회의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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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설
근대국가에 들어 우리나라에는 음력설(구정)과 양력설(신정)로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이른바 이 중과세(二重過歲)라는 것이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을 의미하며 양력 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명절은 설날이며 구정( 舊正)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요즘 설날 은 추석과 함께 전후하여 3일간 연휴이다. 그러나 구정으로 일컬어졌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나란히 할 만큼 진통을 겪었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 일, 이 기준으로는 고종 32년)에 태양력(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 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 다. 일본은 우리나라의‘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다. 그 들은 우리 명절 무렵이면 떡방아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반면에 일본의 명절과 그 행사의 의식(儀式)을 한국에 이식하여 강요하기도 하였다. 가령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명치절(明治節)·기원절(紀元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켰다. 그런가 하면 신정에는 시메나와(표승=標繩)라 하여 새끼에 귤을 꿰어 대문에 달게 하고 단오절에는 고이노보리 (리치=鯉幟)라 하여 헝겊으로 잉어를 만들어 풍 선처럼 띄우게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는 일인들의 방식대로 양력 과세를 강요했는데, 이는 광복 후 공화국에 들어 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설날’과 양력 1월1일인 신정(新正)을 명절로 여기는 이중과세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국가에서는 이중과세의 낭비성을 들어 금했으며 산업화시대에 와서는 낭비성과 아울러 외국과의 무역통상 관계를 들어 신정을 권장 하기도 하였다. 국제적으로 신정이 통용되기 때문에 우리도 그 때에 맞추어서 쉬고‘구정’때 에는 외국에서는 모두 일을 하므로 우리 역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 무역 수지에 차질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 음력 기준의 추석은 휴일로 삼았다는 것은 모순되는 논리였다.
오랫동안 공휴일 또는 비 공휴일 문제로 몇 차례 오락가락하던 우리의 설날은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1일간 국가적인 공휴일이 되기 에 이르렀다. 사실상 한국인의 생활 자체가 민속 인데,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은 붙이는 것은 실로 어색하고 궁색했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설날’을 찾게 되자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만에 설날을 되찾았다며 떠들썩했었다.
한때 신정도 3일간 연휴로 하다가 다시 2일로 했으나 1999년 1월 1일부터 하루의 휴일로 축소되어3일 연휴인 설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 작했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 되고 있다. 그러나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다행히 근래 에는 민속박물관과 민속촌 등 민속과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 민속놀이판을 벌이고 이를 찾는 가족들이 날로 늘고 있다. 떡국을 끓일 가래떡을 기계로 빼거나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직 떡국을 명절식으로 하는 세시풍속도 전승되고 있다. 떡을 먹지 않아서 밥으로 차례를 지낸다는 가정도 있지만 설날과 떡국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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