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연재 -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글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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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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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글로독
글로독(Glodok)은 자카르타의 고도(古都)에 속한다. 약 400백 년 전 바타비아 (Batavia)의 발전과 함께 많은 중국인들은 지금 의 글로독 지역에 정착하였다. 대부분 중국계 인 도네시아 인들이 살고 있어서 식민지 시절 글로 독은 중국인 마을이라는 뜻의 쁘찌난(Pecinan) 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곳은 대부분 화교로 이루어진 상업사회로 중국 문화는 풍습, 건축, 한 약재상 등의 여러 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글로 독’이란 말이 순다어로‘집의 출입구’를 뜻하 는‘골로독 (Golodog)’에서 유래되었다.
순다 끌라빠 항구가 순다 왕국의 관문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순다 어를 못 하는 자바사람과 믈라 유 (Melayu)사람들이 ‘g’를‘k’로 발음해서 ‘글로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외에 바타 비아 시청(현 역사감옥박물관) 광장 즉, 파따힐 라 광장에 있는 분수 소리로부터‘글로독’이름 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팔각형인 이 분수대는 1743년에 만들었으나 허물어졌다가 1972년에 재건축되었다. 이 분수에서 맑은 물이‘그로족그 로족 (grojok grojok)’소리를 내면서 쏟아져 흘 러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따라서 이 지역 은‘글로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 분수대는 인도네시아어로‘Pancuran’이라고 하는데 글로독 사람들이‘빤쪼란 (pancoran)’ 이라고 불렀다.
바타비아 시절, 글로독은 경제와 무역의 중심지 가 되었다.‘글로독’이란 지명은 중국에서 온 이 민자의 투쟁, 차별과 억압에 반대, 침체, 영광을 상 징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1740년에 네덜란드 정 부가 바타비아에 살고 있는 10.000여명의 중국인 남녀노소를 잔인하게 학살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 기 때문이다. 80.000여명의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바타비아로 왔다. 그들은 대부분 설탕 공 장 노동자였으나 설탕 값이 국제적으로 하락하여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실업자, 부랑자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바타비아에 범죄율을 증가시 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인도회사(VOC)가 중국인 입국 제한 규칙 을 만들었다. VOC 공무원들은 이 규칙을 이용해 서 중국인에게서 세금을 징수했다. 뿐만 아니라 실업자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허가증이 없는 중국 인들은 두려움으로 집과 상점 문을 닫아버릴 수밖 에 없었다. VOC는 이민 허가증이 없는 중국인들 을 네덜란드 식민지인 스리랑카로 보냈다. 가는 도중 중국인들을 바다 속에 던진다는 소문이 났으 므로 바타비아에 남은 중국인들은 격분했다. 그 들은 땅그랑(Tangerang)의 벤뗑(Benteng)으로 갈 VOC 군인들을 공격하고, 또 다른 중국인들은 1740년 10월 8일, 꼬따(Kota)를 공격했다. 마침 내 1740년 10월 10일 Adrian Volckanier 총독 이 중국인 학살 지시를 내렸다. 네덜란드 인들은 중국인을 학살. 도둑질 .강간하였다. 당시 중국 마 을인 깔리 브사르(Kali besar)에서 일어난 반란 이 끝나고 나서 VOC가 성벽(시청) 밖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그 마을은 현재까지 글로독으 로 알려진다. 또 1998년 5월에 일어난 폭동과 시 위로 시간을 1740년으로 되돌린 듯 꼬따에서 중 국계 인도네시아인 학살과 강간 사건이 다시 일 어났다. 자카르타를 통해 흐르는 깔리 앙께(Kali Angke) 강은 1740년과 1998년에 일어난 어두 운 역사를 품고 침묵의 증인이 되어 흐르고 있다. 혼란이 일어났을 때 중국인들의 피가 강물처럼 흘 렀다. 그래서 그 강을 중국어로‘빨갛다’를 뜻하 는‘앙께’라고 부른다.
글로독의 끄므낭안 거리에 위치한 승리시장 (Pasar Kemenangan)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 다. 이곳에서 아시아 전통시장의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둥지, 상어 지느러미, 생선, 뱀장어, 뱀, 개구리 등의 지방 특산품과 중국 특산 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동물들은 살아있으며 그 자리에서 죽여서 판매도 한다. 또한 과일, 천, 한약과 자무, 향료, 중국 요리 재료 등도 구입할 수 있다. 거리 곳곳의 노점 상인들은 매우 친절하며 손님들과 관광객들을 환영한다. 자카르타에서 보 기드믄 풍경을 이루고 있어 한번쯤은 그 혼잡 속 을 헤집고 걸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1998년 5월 사태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으 로 한때는 이 시장의 미래는 불확실해 보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글로독의 하르꼬 전자상가도 유명 하다. 우리나라 용산전자상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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