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연재 <행복 에세이>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맥시코 여류화가“프리다 칼로”
5,177
2015.09.09 12:35
짧은주소
본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맥시코 여류화가“프리다 칼로”
1년 내내 열대성기후인 인도네시아에 오래 살 아왔지만 한국에서 보내는 여름의 찜통더위 도 만만치가 않다. 사계절의 특성상 한순간 머물 다가는 계절이라 그런지 한여름의 열기는 더 뜨 겁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8월의 달력을 바라보며 9월초에 인니로 돌아갈 티켓을 예약해 놓다가 아차! 갑자기 마음이 급 해져 온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시되는 맥시 코 비운의 천재여류화가 프리다 칼로展(Frida Kahio,1907-1954)을 꼭 보고 가야한다는 조바 심에서다. 초현실적 요소를 담아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화상을 통해 그녀만의 강한 색채의 화 법으로 올해 한국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 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은 당시 미술계의 거장 인 파블로 피카소도 극찬했다고 한다. 각 나라의 지폐는 자국을 대표하는 위인들이 있는데 우리나 라 5만 원 권에는 신사임당이 새겨져 있듯이 프리 다 칼로는 맥시코의 500페소 지폐에 등장할 만큼 맥시코를 대표하는 유명한 여류화가이기도 하다.
드디어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프리다 칼로 전 이 열리고 있는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소 마미술관으로 향했다. 내가 맥시코의 여류화가 프 리다 칼로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아마도 25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갓 두 돌이 지난 큰아이를 데 리고 주재원이던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에서 해외 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약 간의 우울증을 경험하던 시절이다. 낯선 환경에서 고국을 떠나온 외로움에 지쳐있던 내게 최초로 해 외에서 만난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는 힘들고 지친 자아에 벅찬 감동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강한 색채가 인상적인 자기 고백적 현실성 있는 작품은 내 심장을 떨리게 했고 왠지 위로를 주는 것만 같았다. 절망과 고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자 화상과 그녀가 살았던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 시절 의 나에게 어떤 격려보다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프리다 칼로는 6세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 에 장애가 생겼고 18세 때에는 전차사고로 또다 시 다리와 자궁을 크게 다쳐 평생 30여 차례나 수 술을 받았다.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내성적이고 관념적인 성격 이 되었던 그녀는 22세 때 스물한 살이나 많았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다. 디에고는 여성편력 이 심하고 잦은 외도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안겨주 었다. 그녀 앞에 놓인 어둠이 짙은 현실은 오히려 내면깊이 숨 쉬고 있던 예술적 자질과 열망에 강 렬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녀의 화폭에서 만난 내던져지듯 버려 진 어두운 자아 적 슬픔은 묘한 카타르시스로 나 의 예술적 관심사를 자극했다. 아마도 같은 여자 로서 절망과 고통으로 얼룩진 그녀의 인생사에 대 한 안타까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강하고 입체적이고 색감이 짙은 작품 속 표정과 강렬한 눈빛은 그때의 나를 응시하며 바라보는 듯 했다. 절망 속에서도 예술과 사랑에 혼신을 다했 던 그녀의 삶은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이 기에 열심히 살아볼 가치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 는 것만 같았다.
젊었던 그 시절,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 녀의 작품들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30대 초반에 본 그녀의 그림 은 슬픈 자화상처럼 격정적이고 애처로웠지만 강 산도 두 번 변하고 남는다는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바라보니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온다. 그때는 미처 볼 수 없었던 그녀만의 당당함 과 그녀가 겪었던 현실의 고통이 너무도 진실 되 게 표현되어서 작품전체가 슬프고도 위태롭게 느 껴졌다. 너무 적나라하고 짙은 칼라도 인상적이었 지만 어쩌면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기위해 그토록 강한 색감을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 었다. 신체적인 여성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 기에 어찌 보면 끔찍한 그림인데도 그 안에 숨겨 져 있는 프리다의 내면세계가 전달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슬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자신은 물론 남편 디에고를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당당하고 아름답 게 꾸미길 소망했던 그녀만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 가 스며져 있음을 느낀다. 그 시절엔 보이지 않던 강인한 에너지가 전류처럼 전해져왔다.
무더운 여름임에도 프리다 칼로 전이 끊임없이 관객을 불러 모았던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 다.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던 그녀는 외도만을 일 삼는 남편 디에고를 향하여 그녀만의 강렬하고 독 특한 화법으로 생명력을 지닌 복수를 했는지도 모 른다. 소마미술관 제1전시실부터 제3전시실까지 는<절망에서 피어난 천재화가>라는 주제로 프리 다의 인생을 분류한 작품으로 전시해 놓았다. 제 3전시실에 들어서자 자신과 남편 디에고를 빗대 어 해와 달로 은유해놓고 서로 끌리지만 결코 하 나가 될 수 없는 운명을 표현했던 프리다의 유명
작품 <우주,대지(맥시코),디에고,나,세뇨르 솔로 틀의 사랑과 포옹>이라는 작품이 한눈에 들어온 다. 오랫동안 관람객들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나 또한 이 작품을 감상하며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 지 않을 것만 같다. 한 여자로서 머물지 않고 자유 로운 예술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구 했던 그녀였기에...
제 4전시실에서는 프리다 칼로가 생전에 입었던 화려한 맥시코 전통의상과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장신구를 전시하고 있었다.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남편 디에고의 간청으로 맥시코 의상만 즐겨 입었 던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세계 패션가에 이슈가 되었던 프리다 칼로가 착 용했던 목걸이와 그 시대의 의상 등, 유명 사진작 가들이 카메라 렌즈에 담으려고 열심히 셔터를 누 르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진한 눈썹의 자화상들 은 그림 곳곳에 묻어있는 장애의 아픔과 계속되는 남편의 외도로 고통 받는 그녀의 삶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위로 받았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 다.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난 프리다 칼로의 작 품을 보며 이렇듯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은 나도 어느덧 나이를 먹고 삶을 대하는 연륜이 깊어진 까닭이리라. 어떠한 예술이든 예술가가 맞닥뜨리 는 삶은 곧 그 예술가의 작품에 투영된다. 자화상 에 집착하던 프리다가 그녀의 말년에 보이는 정물 화에 눈을 돌린 것은 아마도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관조 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땐 길을 헤매듯 방황 하기도 하지만 다시 삶의 여유를 찾게 되면 그때 를 돌아보며 현실을 직시하는 에너지를 얻는 것처 럼... 오래 기억되는 예술이란 결국 진실이 담긴 예 술일 것이다. 그녀의 전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 예 술혼을 불태운 열정이 고스란히 그녀의 작품을 통 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과 3개월이라 는 시간에 3천이 넘는 한국의 관람객이 뜨거운 여 름을 불태우며 프리다 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아니 었을까? 어느새 무더운 여름도 끝자락에 와있다.
바야흐로 힐링의 계절인 9월이 눈앞에 다가온다. 너나 할 것 없이 지나간 시대의 가요를 흥얼거리 고 추억 속 동심의 시절을 회상하며 치유를 부르 짖는다. 우리가 이토록 힐링에 목말라 하는 것도 어쩌면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순환하는 세상살이도 한 몫 한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몸과 마음의 피로 감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럴 때는 자연을 찾아 떠 나거나 잠시 고요한 전시회를 찾는 것도 하나의 해답이 될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꾸밈 없이 배설한 흔적을 느낄 수 있어 시원하고 통쾌 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예술가의 사명이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내면 의 거울을 선사하는 것이리라.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I hope the exit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프리다 칼로>
이 문구는 프리다 칼로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으로 남긴 말이라고 한다. 열정으로 꽃피웠던 천 재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는 맥시코 예술계에 이름 을 남기고 1954년,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먼 세월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된 프리다 칼로의 작 품은 내 마음 안에 깊은 울림이 되어 나를 지탱하 는 마법사가 되어준 느낌이다.
전시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소마미술관 2층에 서 바라본 올림픽 공원의 푸르른 잔디가 더욱 진 하고 초록 초록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