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지상겔러리 - 요하네스 베르메르 [ 저울을 든 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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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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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 [ 저울을 든 여인 ]
높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
성(聖)과 속(俗), 빛과 그림자.
그리고 정확히 중앙에 저울을 든 여인의 손이 있 다. 한낮의 햇빛은 여인의 섬세한 손끝에서 정점 을 이룬다. 이제 막 평형을 이룬 저울. 탁자 위 엔 진주와 금화가 흐트러져 있다. 구겨진 채 벗 어놓은 푸른 옷 위엔 거울이 보인다. 반면 대각 선 위로는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키는 잉태한 여 인이 푸른 옷을 입고 있다. 초연해 보이는 여인 의 배경엔‘최후의 심판’그림이 크게 자리 잡 고 있다. 여인의 머리 위로 두 손을 들어올린 그 리스도의 모습이 보인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 저울을 든 여인 > 이다. 윤리적, 종교 적 알레고리가 충만한 그림은 묻는다.
“너는 지금 잘 살고 있느냐?”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기였고 바로크 미술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빛의 극적인 효과와 인간 의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바로크 시대. 베르메르는 바로크의 거장 렘브란트보다 26년 뒤 에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 태어났다.‘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불릴 만큼 그의 삶은 베일에 싸여 있고 자화상도 없다. 37점의 작품만이 남아 있고, 작품 대비 참으로 많은 걸작을 남겼다. 인기에 걸 맞게 세기적인 위작 스캔들도 있었다.
그래도 남아있는 자료들로 추측을 한다면......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여관을 하면서 늘 집 안에서 그림을 그렸다. 두 개 정도의 방에 셋트장 을 만들고 감독처럼 인물과 소품들을 배치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화폭에서의 공간표현 과 구성의 거장이라 할 만큼 정밀한 묘사와 색과 빛을 사용했다. 쪼들리는 살림 탓에 직업모델을 쓰 긴 힘들었을 것이고 11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집 안의 일하는 사람들을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정감있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인물들은 늘 움직이며 뭔가를 하고 있다. 편지를 쓰거나 읽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웃고, 우유를 따 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너무나 사소한 움직 임들이어서 모델들이 그러한 포즈를 취했을 것 같 지 않다.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시간이 어느 순간 정지한다. 베르메르가 즐기는 조명, 왼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럽게 방의 소품들과 인물에 닿 으면서 공간의 깊이가 살아난다. 실내정경은 기념 비적인 순간에 멈춘다. 그가 만들어낸 스토리는 흐르고 있는데 여전히‘고요’하다.
정(靜)중(中)동(動).
그림에 머물다보면 어느덧 타임머신을 타고 17C 네덜란드의 어느 집에 가게 된다. 열려있는 문틈 으로 방안을 보고 있거나, 방 한 구석 의자에 내가 앉아있는 느낌이다. 낯설지 않다. 그 정경은 너무 나 사실적이어서 약간 노곤해질 만큼 평화롭고 따 스하다. 그 속에 머물고 싶은 달콤함도 있다.
이 일상의 달콤함.
첨(甛)밀(蜜)밀(蜜).
이처럼 베르메르의 작품은 고요하고 감미롭게 우 리를 끌어들인다. 따스한 햇살도 함께 누리고 있 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남겨진 자료는 별로 없지 만, 베르메르의 삶의 행보는 그의 작품과 같지 않 았을까? 아주 조용하게 몰입하는 삶. 사소한 것에 도 너무나 정밀하고 따스한 시선. 그러나 결국은 정점에 이른 기념비적인 작품들.
아마도 높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이었으리라.
글:김선옥(인니 미협회원/땅그랑문화원회화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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