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씨, 인니 현대사 강의 하비비, 구스두르, 메가와띠 대통령
짧은주소
본문
한인뉴스 논설위원 김문환씨의 인도네시아 현대사 강의 그 네번째 이야기가 지난 10월 30일 한인회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현대사 강의는 수하르또 정권 이후 정국의 불안으로 6년 동안 세 번이나 바뀐 대통령들-바하루딘 유숩 하비비,압둘라흐만 와힛,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이 주제가 되었다.
수하르토 하야 후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에 오른 하비비 대통령은 남부 술라웨시 출신으로 반둥공대와 독일의 라이니시베스트펠라시 공과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로서 수하르토 시절 과학기술연구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자체 항공기생산의 공이 큰 인물이지만 수하르토 처벌이나 개혁에 적극적인 가담이 어려운 상황었기 때문에 차기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중간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국민경제(Economi Rakyat)’라 불리는 강력한 분배정책 추진으로 화교 소유기업들의 공기업화 정책 추진으로 화교자본이 대규모 해외 이탈을 야기 시켰으며, 소극적인 수하르토 유산 청산 및 동티모르 사태 방치등의 비판으로 1999년 10월 국민협의회(MPR)가 그의 신임안을 부결시킴으로써 하야하게 된다.
구스두르로 불리는 압둘라흐만 와힛 대통령은 1999년 6월 총선에서 메가와띠의 투쟁민주당이 최다 득표를 했으나 아민 라이스가 앞장 선 뽀로스 뜽아(중심축이라는 의미로 중도세력)의 결과로 그해 10월 국민협의회 총회에서 소수정당인 국민각성당(PKB)의 총재였던 구스두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그는 관료주의와 격식을 타파하고 화교와 성적소수자 등의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화합을 강조했으며, 음력설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것을비롯해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허용하고 중국인의 국적 취득을 허용하는 등 다원주의를 실천했다.
하지만 그는 조달청(Bulog) 공금 400만 달러 전용 사건인 블록게이트와 브루나이 볼키아 국왕이 아쩨 구호금으로 기부한 200만 달러를 횡령한 브루나이게이트 등으로 국회의 탄핵을 받고 하야한다.
메가와티 수까르노뿌뜨리 대통령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이슬람국가 사상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다.
메가와티는 1986년 수카르토의 국가영웅 추대 행사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해 1999년 6월 총선에서 더 많은 득표를 하고도 구스두르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가 구스두르가 쫓겨난 후 대통령에 오른다.
그는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의 딸이라는 후광과 깨끗한 지도자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망에 힘입어 높은 인기를 얻었으나 정치능력이나 민주화 의지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메가와티도 기독교, 불교, 힌두교 및 중국계 인물의 등용으로 다원주의를 추구했으나 오히려 집권기간 동안 종족과 종교 및 사회계층간 갈등이 고조되고 2002년 발리를 시작으로 폭탄테러가 잇따라 발생했고 불법도박, 도벌, 도광이 횡행하는 등 취약한 통치력으로 인한 문제점이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