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 기념관 하나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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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떤 삶이 기념관을 남길 수 있을까?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사람일까?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권력 자일까? 본인이 원하면 되는 것일까? 후인들이 일방적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일까?
기념관! 모범적이고 치열한 삶을 산 사람의 몫일 것이다. 업적을 산처럼 남긴 사람의 유산일 것이다. 마침내 그가 쌓은 덕이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을 마르지 않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고 서만수 목사의 40년 인도네시아 선교활동을 기념하고 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탄생되었다.
그가 시봉하던 연합교회 안에 소담하게 꾸며졌지만 실로 의미가 큰 한국인의 상징 하나가 자카르타에 생겨난 셈이다. 그가 생전에 성직자로서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는지는 인도네시아 한인 동포사회는 물론 국내의 교단까지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가와 교단에서 수차에 걸쳐 그의 공로를 기린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생생한 선교 기록으로서 1994년 출간된 수필집『남방에 심는 노래』가 있고, 시집『둥개야』, 『남방에 피는 꽃』, 『가르치며 증거하며 섬기며』등이 연이어 발간되었으며, 이번 기념관 개관에 즈음해서도『일어나서 함께 가자』가 출간되었으니 고인에 대한 설명이나 업적에 대한 어설픈 찬사는 그저 췌언이 될 뿐이다.
생전의 그는 그냥 한 사람의 목회자, 선교사로서 인도네시아 한인동포들의 이웃이었다. 더없이 따뜻했고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준엄한 분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성직자로서 한결 같았던 그는 묵묵함으로 몸소 가르침을 행한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이제 그가 생을 다하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며 타국 땅, 그가 꿈을 펼친 인도네시아에 뼈를 묻은 지 일 년여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은 많고 그를 기리는 사람들도 많다.
자카르타연합교회가 그렇고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신학대학과 인도네시아 각지의 교회들이 그렇다. 이제 기념관이 더해졌으니 우리는 좀 더 다른 방법으로, 그리고 좀 더구체적으로 그를 음미하고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곧 그가 베풀고 쌓은 덕으로 인해 앞으로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생을 훈훈하게 하고 빛나게 할지 예측할수 없는 것이다.
서만수 목사의 기념관을 돌아보면 그가 생전에 얼마나 치밀하고 일관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가 있다. 그가 얼마나 감성적인 사람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폭넓은 공부를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치밀하게 기록하고 계획했는지 잘 드러난다. 또한 역사를 중요시 여긴 성직자요 선교사로서 한결같은 실천의 성과가 어땠는지 생생하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라면, 생전의 그와 가까운 사이였다면, 생전의 그와 가까이 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다면, 바로 그런 이유로 꼭 한 번 그의 기념관을 조용히 체감해볼 일이다.
< 인재 손인식 /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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