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KS 소식-그리운 조국, 그리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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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KS 8학년 이진환
한국, 내 조국을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유치원 때 한국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래서 조국이 항상 그리웠다. 그런데 기적처럼 그 꿈이 이루어졌다. 이번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주최하는 ‘재외동포학생 모국방문 연수’팀으로 나의 조국, 한국을 가게 되었다.
조국으로 가는 밤 비행기 속에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 으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37명의 재외동포 학생들 속에서 나 혼자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외국에서 오래 살아 잘 적응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한국은 얼마나 변했을까?’ 10년 만에 우리 나라 땅을 밟는 순간 너무 설레고 낯설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경희대 기숙사로 가게 되었다. 경희대 기숙사에 도착하니 방 키를 나누어주었다. ‘과연 나는 누구와 잘까?’ 궁금해하며 긴장했지만 그곳에 있는 연수생 37명이 모두 잘해주었다. 모두 나처럼 외국에서 살아서 그런지 같은 아픔, 같은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빨리 친해졌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는 내가 인도네시아의 대표로 온 것 같아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이 느껴졌다. 경희여고에 갔을 때 모든 교사, 직원들이 한국사람이어서 오히려 생소했다. ‘아, 그렇지. 내가 정말 외국에서 오래 살았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참 많이 누리고 살아가는구나’하는 생각이들었다.
이 학교는 해외에 있는 한국국제학교 중에서 가장 크다는 우리학교보다 더 크고 세련된 분위기였다. 위탁 연수를 받은 경희대학교는 웅장하고 아름답고 학구적으로 보였다. 나도 이렇게 좋은 대학교에 오고 싶었다. 어떤 구체적인 꿈과 목표가 생기는 것 같았다.
시내 탐방을 했을 때는 사람이 많고 복잡하고 볼거리가 많아 깜작 놀랐다. 우선 넓게 쭉쭉 뻗은 도로와 아주 많은 빌딩을 보면서 한국은 정말 많이 발전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청계천에 갔을 때는 인공과 자연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이순신장군 앞에서 단체 사진 찍었을 때는 우리 재외동포학생들도 장군의 정신을 본받아 아무리 해외에 산다고 해도 조국애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난타 공연은 주방 도구로 악기처럼 연주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물놀이 가락과 서양의 록이 어우러진 연주는 동포학생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경주는 오래된 도시여서인지 편안하고 고향에 온 것 같았다. 많은 유적지 중, 특히 첨성대와 경주코모도조선호텔에 간 것이 기억에 남았다. 인도네시아 유적지는 규모 면에서 대단하지만 첨성대는 섬세 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라 문화 체험을 할 때 나는 한지에 첨성대와에밀레종 모형을 찍었다. 한지에서 자연을 느꼈다. 에밀레종을 찍을때는 족자에서 에밀레종을 봤을 때의 감격을 생각하며 찍었다.
예전에는 자동차 만드는 과정을 몰랐는데, 울산 현대 자동차 공장을 견학하고 나서 자동차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 독립기념관(서대문 형무소)에서 유관순 관과 안중근 관을 탐방하였다. 유관순 누나가 순국한 감옥을 보며 일본은 진정한 사과를 하여야 하고, 그 다음에 화해가 이루어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가이고 거사를 하기 전 손마디까지 잘랐다는 것은 알았지만 교육계몽 활동에 앞장서고 동양평화 인류평화를 외친, 그렇게 큰 사람인지는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아, 당신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의 조국, 한국이 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어떤 특강은 어려웠다. 하지만 좋은 교수님들 덕분에 한국에 대한 문화를 더 자세하고 깊게 배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임진각! 임진각에서는 북한이 보이고 거기에는 북한과 남한의 경계선이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정말 안타까웠다. 제3땅굴에 갔을 때는 천안함이 생각났다. 굴이 아주 길었는데 그 끝에 철 조망 같은 것이 있었다. 꼭 우리 나라 지도 경계선 같이 보였다. 북한 정부는 왜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일까, 정말 가슴 답답한 일이다. 이 상태로 언제 어떻게 통일이 이루어지려나? 빨리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과 통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곳이다. 많은 친구들이 이곳에서 체험을 통해 통일에 대한 다짐과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번 느꼈으면 좋겠다.
연수 기간은 1주일이었다. 처음에는 1주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고 낯설게 느껴졌는데 한국에 대한 역사, 문화를 알고 배우는 과정이 새롭고 신선했다. 너무 짧은 연수 기간이었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지만, 홈스테이를 통해 나는 ‘한국 사람들은 인심이 좋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처럼 반겨주신 홈스테이 아주머니와 형 덕분에 편안하게 연수에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수 동료들. 수료식과 환송 오찬 때 나는 눈물이 나왔다. 이런게 ‘정’인가보다.이번 연수를 통해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특히 난 “정”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가슴에 오래 남고, 연수가감동적이었다. 난 아직도 37명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살고 있다.
1주일 동안 이토록 친해질 수 있는지 지금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도 37명 연수생들이 보고 싶고, 더 가까이 하고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모국방문 연수를 생각하면 잠깐 동화 속에서 놀다가 깨어난 것 같다. 또한 연수를 통해 내가 많이 커버린 것 같아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이와같은 모국방문 연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전 세계의 친구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한국에 보내주신 선생님들과 이 행사를 주최한 국립국제 교육원과 교육을 맡아준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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