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향기 심은 김명지 선생 한국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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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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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요 문화였던 김명지 선생(월화차문화원 원장)이 한국으로 ‘뿔랑’ 했다. 지난 8월 21일 밤 자카르타의 한 레스토랑, 김명지 선생 송별에 의미를두어 그간 사적 공적으로 관계를 맺어오던 몇몇 사람이 조촐하게 함께 둘러앉았다. 선생의 한국 행을 알게 된지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이었기에 어떤 형식을 갖출 수도 없었고, 지인들에게 충분히 연락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석별을 아쉬워하는 참석자들의 마음 외에, 지난 92년부터 그가 쌓은 공로에 대해 대사관과 한인회의 감사의 뜻 전달이 있어 조촐하지만 그런대로 그 의미를 새기는 자리였다.
정기적으로 차회를 열고 전통무용을 지도한 김명지 선생. 시간을 늘려 시를 쓰고, 전통음식에 관한 것들을 전수하고 싶어 했고, 또 틈을 이용해 한국예절을 심고 전통 복식이며 천연염색, 혼례의 풍속이나 제례에 담긴의미 등 선현들이 남긴 귀중한 전통문화들을 다지면서 누구에겐가 전달하고 싶어 했다.
<월화차문화원>, 지난 17여 년 동안 450여명이 몸과 마음을 다진 선한멋이 넘쳐나는 이름이다. 남편의 직장 주재지 또는 비즈니스 현장인 타국 이곳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통해 마음과 몸을 다지고 또 다졌던 향기의 생산 처로서의 그 이름이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그 <월화차문화원>을 이끌었던 김명지 선생이 떠났음에도 선생의 뜻을 받들어 남아있는 『월화차문화원』회원들이 차회와 전통무용 반을 이끌어나가고 있음이다. 차회는 정연규씨가 맡아 매월 같은 방식으로 차회를 열고, 전통무용 반은 조은숙씨가 담당하여 실력을 다지고 키우며, 필요한 경우 변함없이 교민행사나 대사관 행사 등에 봉사
를 해 나갈 것이라 한다. 선생은 평소 “21세기가 엄마들의 힘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시대”임을 강조했다. “해외에서 키우는 아이들이기에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데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세계를 넓게 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2세들이 세계인들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한국인이 한국을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남편들이 타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면서 겪는 고통과 땀을 절대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고.
일관되기 쉽지 않은 곳이 해외다. 뒤섞이기 어렵고 마음 붙이기도 쉽잖은 후덥지근한 이국이 이곳이다. 오고 감이 잦은 어쩌면 객주(客酒) 같은 곳이다. 그런데 김명지 선생은 이곳에서 살았던 17년여를 초지일관했다. 내적인 것 보다는 자칫 외적인 것으로만 평가되기 쉬운 곳이기에, 오직 한결같이 문화의 향기를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고 간 선생이 벌써 그리운 것이다.
정기적으로 차회를 열고 전통무용을 지도한 김명지 선생. 시간을 늘려 시를 쓰고, 전통음식에 관한 것들을 전수하고 싶어 했고, 또 틈을 이용해 한국예절을 심고 전통 복식이며 천연염색, 혼례의 풍속이나 제례에 담긴의미 등 선현들이 남긴 귀중한 전통문화들을 다지면서 누구에겐가 전달하고 싶어 했다.
<월화차문화원>, 지난 17여 년 동안 450여명이 몸과 마음을 다진 선한멋이 넘쳐나는 이름이다. 남편의 직장 주재지 또는 비즈니스 현장인 타국 이곳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통해 마음과 몸을 다지고 또 다졌던 향기의 생산 처로서의 그 이름이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그 <월화차문화원>을 이끌었던 김명지 선생이 떠났음에도 선생의 뜻을 받들어 남아있는 『월화차문화원』회원들이 차회와 전통무용 반을 이끌어나가고 있음이다. 차회는 정연규씨가 맡아 매월 같은 방식으로 차회를 열고, 전통무용 반은 조은숙씨가 담당하여 실력을 다지고 키우며, 필요한 경우 변함없이 교민행사나 대사관 행사 등에 봉사
를 해 나갈 것이라 한다. 선생은 평소 “21세기가 엄마들의 힘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시대”임을 강조했다. “해외에서 키우는 아이들이기에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데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세계를 넓게 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2세들이 세계인들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한국인이 한국을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남편들이 타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면서 겪는 고통과 땀을 절대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고.
일관되기 쉽지 않은 곳이 해외다. 뒤섞이기 어렵고 마음 붙이기도 쉽잖은 후덥지근한 이국이 이곳이다. 오고 감이 잦은 어쩌면 객주(客酒) 같은 곳이다. 그런데 김명지 선생은 이곳에서 살았던 17년여를 초지일관했다. 내적인 것 보다는 자칫 외적인 것으로만 평가되기 쉬운 곳이기에, 오직 한결같이 문화의 향기를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고 간 선생이 벌써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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