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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행복에세이 <서미숙>

5,343 2013.12.0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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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며...[ 감동을 선물 받다 ]

꿈을 이룬‘빠르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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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2.1.jpg서 미 숙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감사)

gaeunsuh@hanmail.net

 

“어머, 빠르띠가 고향인 솔로에서 슈퍼마켓 사장이 되었대요.”“그렇대요, 억척스럽기로 유명한 여사장이래요.”빠르띠의 성공신화 이야기는 자카르타 한국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그들의 우상이 되었고 그 이야기는 내 귀에도 전해져 왔다. ‘빠르띠’는 내가 인도네시아에 살게 된 초창기 시절부터 10여년을 훨씬 넘게 우리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지내던 가사도우미 이름이다. 이미 그녀가 우리 집을 떠난 지도 어언 7년여의 세월이 흐르고있을 무렵, 나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층 아파트에서 올려다본 자카르타의 하늘이 황홀할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다워 카메라의 셔터를눌러대고 있던 어느 날의 오후였다. 비가 개인 청명한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의 모습이 어찌나 맑고 선명한지 하늘을 바라보고 서있는 내 몸이마치 구름에 빨려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컷의그림 같은 정경을 담고 있을 무렵, 정적을 깨듯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오래전 우리 집에있었던 빠르띠의 전화였다. 너무나 놀랍고 반갑기도 한 마음을 인도네시아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쉬울 정도로 호들갑스럽게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빠르띠는 옛날에 비해 차분하고 격조 있는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뇨냐인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전하고 싶어서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고향 친구며동생들에게 이사한 우리 집 전화번호를 수소문 했단다. 그녀의 고향은 족자에서 남쪽으로 좀 더 떨어진 솔로라는 곳으로 기억된다. 내가 인도네시아

 

에 처음 도착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그녀는 우리 집의 가사도우미로 들어왔다. 유난히 누렇고큼지막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던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한참 개구쟁이인 남자아이 둘이나 있어 번잡했던우리 집에 나에게는 친정피붙이 만큼이나 도움이 되는 소중한 존재였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몸이 불편한 부모님과 3명의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자카르타로 일자리를구해서 올라왔다. 대부분 자카르타의 한국 집에서일하는 다른 집 가사도우미들에 비해 그녀는 사뭇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기억력이 좋아 한번 가르쳐준 한국말의 용어들을 잊는 법이 없었다.아이들에게 자상한 누나처럼 인도네시아의 자연

이나 식물, 동물들의 이야기를 진지한 표정으로들려 줄때면 넋을 놓고 듣고 있던 아이들의 흥미로운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 성실하고 따뜻했던그녀의 성격은 다른 뛰어난 점에 비해 빼놓을 수없는 큰 장점이었다. 이웃들도 부러워 할 정도로빠르띠는 나의 인도네시아생활에 한 획을 긋는 비중 있는 한사람으로 자리하고 있었다.그 시절 재외학생들 수학을 지도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나였기에 둘째아이는 바쁜 엄마보다는 빠르띠 누나를 더 잘 따르고 좋아했다.신기할 정도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던빠르띠는 상황을 묘사하듯 재미있게 들려주었는데 그 덕에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유난히 벌레를 무서워했던 나는 도마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면 내 앞에서 덥석 잡아 장난기섞인 미소로 나를 안심 시키고 은근히 담력을 자랑하기도 하였다.때로는 천진스럽기도 하고,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구석도 많았다.행여나 아이들이나 내가 아플 때면 밤을 꼬박 새우며 간호하는 것은 물론 아픈 사람보다 더 걱정스럽게 눈물을 뚝뚝 흘렸기에 우리 식구 모두는든든한 그녀에게 많은 의지가 되었다. 그렇게 빠르띠의 덕을 많이 보며 초창기 인도네시아 생활을 보냈다. 그 무렵 나는 성실하고 착하고 부지런했던 그녀를 위해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열대의 나라인 인도네시아에 살아오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면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젊음의 절정 기인 이들에게는‘꿈’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다.고향인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순박하게만 살아온 탓일까? 스스로의 꿈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했다. 그랬기에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작은 실천의 하나로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틈틈이 연필로 무언가를 끼적이며 간혹 책도 들여 다보는 학구적인 모습이 몇 번이나 내 눈에 들어 왔다. 빠르띠가 원한다면 공부를 더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안히 얘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빠르띠에게 물었다. “빠르띠는 이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느냐”고. 그녀는 다부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동생들이 학교를 다녀야하기에 본인은 공부하는 것은 그만 되었고, 돈을 부지런히 모아 고향에 조그마한가게라도 하나 내는 것이 꿈입니다.” “ 꿈이란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는 거야, 그렇지만 현재의 삶에서 그 꿈을 실천하기위해 어 떠한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반드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란다.” 그날, 나는 빠르띠에게 꿈에 대한 굳은 의지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심어 주었다. 영민한 그녀의 큰 눈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다음날, 나는 그녀의 꿈을 실현하기위한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무조건 빠르띠 월급의 50퍼센트를 통장을 만들어 저축을 하자고 했다. 그녀도 흔쾌히 수락을 했고 나머지 월급으로 시골에 돈을보내며 자신에게는 거의 쓰지 않고 절약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대견하고 기특했다.

당연히 나는 최대한의 월급을 주었음은 물론이다.그렇게 성실하게 우리 집에서 13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저축을 했고, 해마다 보너스는 물론 성실 수당까지 합해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그렇게 13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빠르띠는 한눈팔지 않고 착하고 성실하게 우리 집에서 식구처럼 함께 살았다. 드디어 그녀가 우리 집을

 

떠나기로 한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10대 후반에 우리 집에 온 빠르띠는 이미 결혼할 나이를 한참 지나 있었다. 이제 그 정도면 시골에서 집이라도 한 채 사고도 남을만한 큰돈이 모아졌다. 결혼할 신랑을 우리 식구들에게 소개하며빠르띠가 짐을 챙겨 떠나던 날은 우리 집은 이별의 진통을 치르느라 한동안 울음바다가 되었다.나도 그녀를 떠나보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렇게 그녀가 떠난 지도 어언 7년이라는 세월이지났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도 다 인도네시아를 떠나 한국으로 대학을 갔고, 빠르띠는 우리 가족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었기에 그녀의 전화는 뜻밖이었고 반갑기 그지없었다. 지금 빠르띠는 고향인 솔로에서 꽤 규모가 큰 슈퍼마켓의 사장이 되었단다. 성실함과 끈기와 인내심을 충분히 갖춘 그녀였기에고향에서 꿈을 이루고도 남았으리라 나는 믿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에서 떠날 때 퇴직금을 비롯해 저축한 돈이 사업자금의 큰 종자돈이 되었단다. 그때내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심어 주지않았던들 지금의 자신은 없었노라고 전화기 사이로전해져오는 그녀의 진심어린 눈물은 내 마음을 한없이 벅차게 했고 넘치는 감동을 안겨 주었다.그렇게 우리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서로말을 잊지 못했다. 한사코 우리 집 주소를 묻던 그녀는 며칠 후, 큰 박스의 선물을 보내왔다. 그 당시내가 주었던 옷이며 화장품들이 너무 고마웠노라고... 그녀의 마음이 담긴 긴 편지와 함께...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불편한 인연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나는 빠르띠 처럼 좋은 인연을 만났음에 감사한다.이제 201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인생은 정말 기도대로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걸까. 늘 목마른 삶속에서도 인연으로 맺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의미와 가치를 높여 달라고 기도하는 삶이었다.한그루의 나무도 정해진 순환의 되풀이만을 거듭하지만 겨울이면 앙상하게 말랐다가도 새봄이면다시 속잎이 돋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올 한해는 우리 한인들에게 경제적으로 혼란이 거듭된 한해였다. 새해에는 반드시 새로운 의미의 빛깔로 꽃을 피우는 멋진 한해가 되리라고 감히 자부해 본다. 제목 : 적도에서의 산책 지은이 | 서 미 숙펴낸곳 | 도서출판 허브월드 홈페이지 | www.herbse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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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서의 산책은 ---

동남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미숙 작가가 지난 20여 년간 적도의 삶속에서 얻은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을 담은 수필집 적도에서의 산책이 발간돼 화제다.(2013.10월) 저자는 적도일대 열대의 나라인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오면서 그곳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과 체험이 담긴 이야기를 감성적인글로 표현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열대의 햇살과 비와 바람을 느끼게 해준다. 적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인생을 통해 삶을 대면하는 긍정적인 자 세와 타인을 배려하는 사랑의 메시지로 아름다운 감성을 전하고 있다.

鄭木日(한국 수필가협회 이사장/한국문협 부이사장)은 적도에서의 산책 은 한국 수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표현했다. “공간성(적도의 나라인 점)과 시간성(20여년)을 통해 삶의 실상에서 얻은 감동과 느낌을 살려 타국에서 새로운 발견과 의미를 피워 낸 것이기에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대단한 일이다”며 한국 수필의 공간성과 소재를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한 수필의 진면 목에 닿아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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