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차 한 잔 마시며<김문환> /경쟁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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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구도
김 문 환 / 논설위원
23년 전인 1989년은 국적기인 K 항공사가 자카르타에
첫 취항하며 교민들의 날개가 되어 준 기념비적
인 해이다. 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뜻하기 그지없는 수까르노 핫따 국제공항에 날개짓을 하며 착륙
한 항공기에서 내린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기념식을 위해 VIP실로 들어서자 네 명의 화동(花童)들
이 다가 가 이들의 목에 각각 화환을 걸어 주었다. 이때 목에 화환을 건 기장이 색동무늬 한복을 곱게 차
려 입은 한 여자아이 뺨에 뽀뽀를 하며 안아 주었다. 이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는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필자의 둘째 딸이었다.
필자는 몇 주 전 한국에서의 출장업무를 마치고 입국 길에 올랐다. 요즘 그 노선은 거의 매일 만석이 되
어‘즐거운 비행’을 한다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 객실 내에 유독
눈길을 끄는 한 자리가 있었다. 승무원들이 지나다니면서 그에게 분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가 회사소속 직원이거나, 또는 그 회사와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어 환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을 세우며 애써 무심한 척하여 보았지만, 6시간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은 결국 나의 마음을 흔
들기 시작했다. 35년 전 인도네시아로 들어가는 나의 첫 여행길을 안내해 준 그 고마움은 물론, 나의 둘
째 딸과 맺은 23년 전의‘아름다운 인연’마저 내동댕이치며, 나의 감정은 그 회사를 탓하는 단계로 격
화되고 있었다.
필자는 가끔 진출기업체 초청강의를 나간다. 인도네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병인 SARA(종족, 종교,
인종, 계층간의 격차)를 화두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SARA는 남의 이야기만이 아님
을 자각하게 된다. 일일이 다 형언할 수 없는 사례들이 바로 항공기의 협소한 공간에서도 벌어지고 있었
다. 몇 년 전에 부흥회에 오신 서울 어느 교회 목사님의 평범한 한 마디가 아직도 뇌리에 침전되어 있다.
“’교양’이란 내 곁에 제3자가 있다고 의식하며 행동을 절제하는 것이며,‘교양인’이란 또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요즘 어쩌다 고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면‘들뜨고 호기심 가득 찬 해외여행’이라는 예전의 선입견은
사라져 버리고, 오늘은 또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며 여행길에 올라야 할까 걱정하게 된다. 거기다 항공료
는 또 얼마나 올랐는가? 십여 년 전 경쟁시대에는 요금도 적정하고 좌석도 다소 여유가 있어 여행다운 여
행을 만끽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마 경쟁상대가 없어지다 보니 자만심에 빠져‘고객은 왕’
이라는 경구를 잊으셨는가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소비자를 배려하는데 기여하
였던 또 다른 국적기가 한인사회의 오랜 염원에 부응하듯 내년 3월이면 다시 우리의 곁을 찾아올 것이라
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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