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빅 딜(Big D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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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논설위원
1980년대 중반 이후 인도네시아 합판산업은 세계 합판교역량의 90%를 점할 정도로 독점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주요 목재수입국인 일본의 종합상사(總合商社)들도 대부분 목재거래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세계적인 기업들인 일본의 상사들은 어김없이 1년에 한번씩 고객관리를 위한 성대한 파티를 주관한다. 본사의 사장급 경영자들이 친히 내방해 고객사 간부들을 초청하여 최고의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한다. 이또추(伊藤忠) 상사의 마쓰끼(松木) 전무라고 하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필리핀 원목검수원부터 시작하여 40년 이상 세계 목재현장을 뛰어 다녔으며, 일본 목재협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그 분야의 권위자였다. 그를 둘러싸고 담소하고 있는 하객들에게 던진 말 중에 귓전을 때리는 한 마디가 있었으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리안 자야(현 파푸아)가 승부처가 될 것입니다. 이제 깔리만딴 지역은 머지않아 목재자원이 고갈됩니다. 장기적으로 이 나라에서 목재사업을 하려면 이리안 자야 지역을 선점하십시오. 물론 열악한 자연조건을 감안하여 투자비도 더 계산해야 하고 고생도 더 많겠지만 4~5년 후엔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좋은 임지, 좋은 여건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사내 신규사업팀에서 이리안 자야 목재사업 신규투자와 관련하여 일본의 M상사와 프로젝트 화이낸싱(Project Financing) 추진을 위한 타당상조사에 시간을 흘리는 사이 벌써 2년여가 지나고 있었다. 그사이 의사결정이 빠른 화교계 경쟁업체들은 벌써 그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이리안 자야의 산림개발 및 합판사업 진출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권력과 밀착된 몇몇 선두권 회사들은 좋은 입지부터 골라가며 선점해 들어 갔다. 이렇게 수수방관하고 있던 1994년 4월초 일간신문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금일 부로 이리안 자야의 모든 합판공장 신규허가를 동결한다’는 대통령령이 떨어진 것이다. 일주일 후 급거 입경한 회장은 예상외로 덤덤하게 반응하였다. 본 프로젝트 허가를 실기한 것은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스스로 대책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글쎄 대통령령으로 금방 내려진 빗장을 어떻게 다시 걷어 올리겠다는 건가? 과연 비장의 카드가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추측만 하며 그날 회의실을 나와 모두 회장 뒤를 따라 사무실 건물 맨 꼭대기층 스카이 라운지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다.
몇 달이 지난 1994년 7월 금요일 오후시간, 한 두 시간만 더 지나면 한 주일도 다 지난 셈이고 내일 주말운동 궁리를 하며 책상주변을 정리하며 퇴근 준비를 하는 순간, 갑자기 인터폰이 울리면서 사장 호출이다. “긴급 사항인데 곧장 파리로 가줘야겠어, 지금 당장 공항으로 나가 가장 빠른 비행기를 잡아 늦어도 내일 아침 7시까지는 무조건 호텔에 도착해야 돼. 만약 그때까지 이 서류가 전달되지 않으면 우리 신규사업은 물 건너가는 거야. 착오 없도록 해야겠어!”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시간이 없으니 무조건 지금 당장 공항으로 나가라는 지시일 뿐이었다. 사장실을 나와 출퇴근 시 들고 다니던 날렵한 007가방 하나만 들고 그대로 공항으로 줄달음쳤다. 제임스 본드가 된 기분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전광판을 쳐다보니 파리까지 가는 직항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겨우 런던 경유 파리 행이 시야에 잡혔다. British Airway로 런던으로 가서 다시 Air France로 갈아 타고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다.
드골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예정대로 새벽 6시, 텅 빈 공항은 끝이 보이지 않아 이민국 신고대가 있는지 세관이 있는지 의식할 틈도 없이 무사 통과하여 대합실을 무조건 뛰었다. “택시! 서둘러 주시오, 라떼빵스(La Defance)에 있는 소피텔 호텔로! 7시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밟아 주십시오.” 라떼빵스 지역은 신도시 정도 되는지 새벽 총알택시로도 꽤 시간이 걸렸다. 거대한 호텔정문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시간이었다. 밀봉된 서류를 회장에게 전달하고 잠시 몇가지 보고를 마친 후, 오후에 곧장 자카르타로 귀임하겠다고 하자, 파리에 왔으면 루~브르 박물관은 꼭 보고 가는 법이라며, 오전 중으로 끝날 총회 결과를 듣고 가라는 분부대로 일단 호텔방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정오 가까이 되었을까? 인터폰이 울렸다. “김군, 됐다! 해냈다!” 꼭 내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펄쩍펄쩍 기뻤다.
다음 날 자카르타에 돌아와 신문을 펼치니 금번 파리 IOC총회에서 새로 선임된 신임 IOC위원 명단 중엔 아시아 지역을 대표한 인도네시아의 유력자 B씨의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하여 이리안 자야 합판 프로젝트는 신규허가가 불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일본 종합상사 M사로부터 차입된 미화 1억불의 자본이 투자된다. 소위 말하는 빅딜(Big Deal)의 소산이었다.
Rumah pohon Suku Korowai. Irian J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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