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호 색채화가 아리핀 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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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많은 학교와 화실에서 넘쳐나는 입시미술 그림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필자 또한 중고등학교시절 내내 하얀 서양 석고상을 올려다보며 판박이 같은 연필석고소묘 연습을 하고, 늘 정물수채화를 그리며 세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훈련 받았다.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똑같은 그림들이 미술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객관식 문제를 맞추듯 소위 입시에서 점수를 잘 받는 ‘잘 그린 그림’의 샘플을 보면서 부단히 연습했던 기억 이 난다. 기본적인 미술교육을 넘어 자기스타일을 찾는 과정을 즐기고 몰두하기보다, 미술학도들의 손은 정확한 사물모사에 도가 트고 있었다.
아리핀 그림 속의 인물과 사물들은 하나같이 정답이 아니다. 남녀의 판판하게 눌려진 입체감과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늘어지고 부푼 사지, 그에 반해 정확하고 촘촘하게 묘사된 원경과 공간 분할에 신경을 쓴 세로선들, 인물과 배경의 비례에서 오는 괴리감은 특유의 에로틱하고 몽환적인 색채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근경보다 원경을 세세히 묘사해서 우리 눈이 먼 풍경을 보고자 초점을 맞출 때 코 앞 사물들이 아득하고 어렴풋이 보이듯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림속 단골 소재 중 재미있고 특이한 것은 테이블이다. 남녀의 인물들 옆에 테이블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위에 다양한 시점을 가진 사물들과 꽃병이 화사한 색을 튕기며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다. 사물의 색조 와 명도로 보아 오히려 목각인형 같은 희화된 인물들보다 더 생명력이 느껴지고 장식적으로 묘사되어, 인물들 이면의 따뜻한 심리를 투영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 안에서 형태, 선, 색채 모든 것들이 새롭게 소 화되어 그만의 세계를 지지하고 있다. 공들여 쌓은 탑같이 어느 한 부분도 빠질 수 없다. 독학으로 화풍을 이뤄낸 신비의 Colorist, Arifien Neif. 어려서부터 마티스, 샤걀, 세잔 같은 대가들을 흠 모하며 스스로가 스승이 되어 오랜 시간 끊임없이 연구하고 스스로가 학생이 되어 혹독하게 깨우친 그만의 아름다운 패러독스, 인도네시아 어느 작가에게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아리핀의 수수께끼 화풍은 궁핍한 어린 시절, 항구도시인 수라바야에서 시작된다. 1955년에 태어난 그는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최소한의 양으로 짜놓은 유화 물감을 다 사용하여(굳으면 사용할 수 없으므로) 표현을 극대화해야 하는 절박함과, 다음 그림을 그리 기 위해 물감을 골고루 남겨 놓아야 하는 절제력이 오랜 시간동안 단련 되어, 특정 사물에 원하는 색을 마음껏 쓰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대신 허락된 색으로 독창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15세가 되던 해, 홀로 낡은 옷 가방과 색연필, 스케치북을 들고 그토록 염원하는 화가로서의 꿈을 안고 자카르타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건설 노동일을 하며 외롭게 틈틈이 그림을 그리면서, 기초 미술지식이 없는 자신의 스타일을 굳건히 다 지는 동안의 힘든 경험들은 그를 둘러싼 빈곤을 초월하게 하고 정치적이고 무거운 소재를 그리는 당대 의 작가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나중에 광고대행사, 인테리어 일을 하며 생활의 여유가 생기자 본격적으로 전업작가로서 실험적인 작업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화면을 자유롭게 통제하는 경지에 이른다. 일상에서 벗어난 달콤한 커플이나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소재로 하여 그들로부터의 영감이 깊을수록 형 태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화면 전반에 배치하고, 인테리어 일을 할 때 체득한 공간 분할 감각이 향수에 젖은 수라바야의 이국적 식민지 풍경을 배경에 담아낸다. 원하는 물감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기쁨이 따뜻한 파스텔조의 그린과 핑크, 블루등 밝은 색감으로 표출되어 컬러풀한 화풍으로 빠른 변모를 한다. 걷잡을 수 없는 로맨틱한 시선으로 틀이 없이 탐닉하여 독학하고, 스스로 취했기 때문일까, 현재 아리 핀니프는 인도네시아에서 독특한 컬러리스트로 알려지고 작품이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에 소개되면서 콜렉터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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