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 이선진 전 대사의 대사일기 - 제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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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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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4) 대사의 사건 사고
2007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경제교류가 한층 활발해졌다. 대사로서 기분 좋은 한 해였으나 개인적으로 사건사고가 연달아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2월 대사관저가 홍수로 침수되어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였고, 3월 칼리만탄 출장 중 실로 위험한 교통사고를 당하였으며, 7월 한.인도네시아 축구시합 중 관중이 던진 물병으로 내 바로 뒤에 있던 대사관 직원이 다쳤다.(지난 호에서 언급)
보트타고 관저를 탈출하다
2007.2 자카르타에 기록적인 홍수가 나서 대통령 궁까지 발목에 물이 찰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한바 있다. 대사관저도 홍수에 직격탄을 맞았다. 저녁 식사 약속을 끝내고 9시 경 귀가하여 곧 잠자리에 들었다. 비가 평소보다 심하게 내렸지만 우기 철에는 수시로 장대비가 오기 때문에 특별히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새벽녘에 아내가 깨운다. 밖이 이상하다고 한다. 그래서 2 층 침실에서 내려와 1층으로 내려갔더니 이미 물이 정강이까지 차있었다. 전기가 나간 상태에서 칠흑의 어둠 속에서 대사 차 운전수, 관저 경비 및 경찰관(관저 경비하는 인도네시아 경찰) 들이 촛불을 켜고 둥둥 떠다니는 대사 차를 묶느라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밖으로부터 물이 계속 들어있어서 자칫 인명 피해가 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작업을 중지하고대피하라고 하였다. 아침 9시쯤 되니 물이 불어서 1층과 2층 계단의 중간까지 다다른다. 큰 길에서 관저로 들어오는 골목길이 깊이 2-3 미터의 수로로 변하였다. 대사관 직원과 이 나라 경찰들이 큰길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전화로 상황을 주고받는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그래서 관저에서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비상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고무보트를 타고 탈출하였다. 관저와 골목 어귀까지 약 100 미터 거리를 로프줄로 연결하여 보트를타고 그 줄을 잡고 나왔다. 물살이 매우 거세어 뒤집어지기라도 한다면 급류에 휩쓸려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들은 지붕위로 올라가 있다. 보트가 골목 어귀에 도착하자 기다리던 대사관 직원들과 경찰이 나를 박수로 맞이하였다. 내 평생에 이런 박수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옛 대사관저와 구명보트
이 당시 옛 대사관저에 와 본 사람들이라면 만찬장 밖의 대형 고무보트를 기억할 것이다. 크기가 커서 쉽게 눈에 띄고, 둘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만찬장 벽 옆으로 붙여 놓았기 때문에 관저에 처음 온 사람들은 으레 보트에 관하여 물어본다. 내가 부임하기 5년 전에도 비슷한 규모의 홍수가 나서 관저가 크게 침수를 당하였다. 그 후 홍수가 다시 날 것에 대비하여 구명용으로 준비한 것이다. 나는 부임하여 거의 2년 동안 심각한 홍수를 당하지 않았기에 2007년 초 보트의 바람을 빼서 창고(2층 위 다락방)에 넣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달포 만에 내가 그 보트를 타고 탈출할 줄은 누가 예측하였겠는가. 옛날 관저는 건물 외모가 장중하고, 크고 작은 외교행사를 치루기에 적절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대문 입구와 건물 뒤뜰에 있는 정원도 적절한 크기이다. 우리 부부는 부임 초기의 열정으로 그 관저에서 주 1-2회 관저 행사를 하였고, 화단 정비, 정원의 화초 가꾸기, 만찬장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꽤나 정성을 들였다. 만찬 때는, 전기를 키는 대신 훤칠하게 자란 정원의 야자수에 횃불을 매달아 정원을 밝히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기도하였다. 관저의 구조와 기능을 살려 관저 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대통령부인이 명예 회장으로 있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나로서는많은 추억을 남긴 건물이나 두 번이나 침수 피해를 입은 만큼 더 이상“대사관저”로서 부적절하다고 본부에 건의하고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그 건물은 후임 대사가 2013년 팔았다. 나는 자카르타 갈 때마다 폐허가 된 그곳을 찾는다.
교통사고의 악몽
2007.3 당한 교통사고는 아찔한 사고였고 후유증도 심하였다. 4월 한국 경제대표단의 자카르타 방문을 앞두고(제3장) 동부 칼리만탄을 찾았다. 한국 경제인들의 최대 관심은 자원개발일 것이라고 판단, 한국 기업의 개발 사업 가능성을 두고 현장 시찰을 간 것이다. 보르네오 섬에 있는 중부 칼리만탄은 지하부존자원이 가장 풍부한 주이고, 인구 3백만에 불과하지만 그 면적은 남한의 2배이다. 주 수도에 비행장이 없기 때문에 발릭파판(Balikpapan) 까지 비행기로 가고, 州수도 사마린다(Samarinda)까지 한 시간 반은 주정부가 제공하는 자동차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주 정부는 우리 일행 (대사, 경제참사관, 산림담당 직원 및 통역)을 위하여 2대의 승용차를 제공하고 경찰이 선두에서 에스코트 해주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사마린다 방문을 마치고 발릭파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난 길이라서 매우 아름다운 길이다. 그러나 어느 지점은 불과 십 미터 앞도로 사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커브가 심하다. 그 커브 길위에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경찰 선두 차는 이를 발견하고 급하게 옆으로 피하였으나 그 뒤를 따르던 나의 차, 그 뒤 대사관 직원 탑승 차량, 이어 따라 오던 일반 차량들이 급정거 하였지만 4-5 대가 연쇄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 그 중 가장 심하게 충격을 받은 차량은 나의 뒤에서 따라오던 대사관 직원들이 탄 차였다. 뒤 유리가 통 체로 앞유리를 치고 나갔고 직원들이 한동안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직원들이 근처 군부대로 긴급 후송되어 며칠 응급치료를 받은 후 자카르타로 후송되었다.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직원들은 계속 통증을 호소하여 결국 서울로 가서 정밀 검사와 한 달 이상 통증 치료를 받고 귀임하였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후임 대사들이나 대사관 직원들은 지방출장 시,특히 경찰차가 선도하는 경우 교통사고 가능성을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내가 사고를 당한 날도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출발하면서, 그리고 도중에도 경찰 선두 차에게 속도내지 말라고 두 차례나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모처럼 엥∽엥∽ 사이렌을 울리면서 달리고 싶은 지방 경찰들의 과시욕을 말릴 수가 없었다. 내가 탄 차도 선두 경찰차에 바짝 붙어 가면서 속도 줄이라는 나의 말을 흘려 들었고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사고 현장에서 싱가포르까지 헬기 후송 가능성까지 타진할 정도로 아찔한 사고였다.
(5) 대사관 신축
내가 있을 때 대사관 신축 예산을 확보하였다. 대사관 신축 부지를 백방으로 찾았으나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기존 대사관 부지에 짓기로 하였다. 나는 신축 대사관 기초 설계까지 마친 후 이임하였다.
내가 대사로 부임하기 몇 개월 전 자카르타에 출장 갔다가 대사관을 방문하였다. 대사관이 너무 낡았고, 대사실 에어컨마저도 소리만 요란하지 시원치 않았다. 30년 이상 된 건물과 모든 시설들이 낡아서 어디서부터 손을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내가 그 자리에 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만새로 짓던지, 다른 건물로 이사라도 가야겠다고 당시 대사에게 말하였다. 그 후 실제 부임하여 보니, 대사실을 포함 대사관의 주요 시설이 길 쪽으로 나있고, 더욱이 고가 차도가 대사관 앞을 지나가고 있어서 대사관이 테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내가 있을 때 대사관 신축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마음먹었다.
신축사업의 시작은 예산 확보부터이다. 외교부 본부의 신축 예산이 매우 작아서 해외 공관의 신축예산 확보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2006.2 서울 공관장 회의에 들어가는 길에 외교부 본부 예산담당을 찾았고, 예산부처의 담당 과장, 국장, 예산실장까지 찾아다니면서 읍소를 하였다. 그 결과 2007년도 재외공관 신축사업으로 허가해 준 2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예산이 국회 통과한 것은 2006.12이고, 외교부 본부가 우리 대사관 사업을 확정한 것은 2007.1월이다.
구 대사관 자리에 신축하기로 결정
그 때부터 대사관 신축 부지를 찾아다녔다. 부지선정에 최우선 고려 사항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토지 소유주가 확실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공식 토지 대장이 없다. 자카르타 한국 학교가 부지 확장을 위하여 인접 땅을 두 번이나 샀으나 두 번 모두 법정 소송에 걸려 몇 년 고생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 60년대 자카르타 중심부에 있는 넓은 땅을 샀으나 소송에 걸려아직까지 대사관 건물을 짓지 못하고 있다 (JW Marriott 과 Ritz-Carlton 호텔 옆 넓은 공터),러시아 대사관도 토지 소유 소송에 말려있다. 만일 우리 대사관의 신축 부지가 10년, 20년 그러한 소송에 휘말리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둘째, 2007.2 자카르타 홍수를 경험하고 보니 홍수로부터 안전한 지역을 찾는 것도 중요하였다. 대사관이 홍수로 인하여 업무가 며칠 씩 마비되면 보통 일이 아니다. 새로운 부지가 상습 홍수 피해지대인지, 접근로도 상습 침수지역이 아닌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 또한 보통문제가 아니다. 현 대사관 부지는 자카르타 70%가 물에 잠길 당시에도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현 대사관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앞으로 늘어날 직원을 생각하면 훨씬 넓은 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자카르타 부동산 중개업자는 물론, 개인적 채널을 통하여 대상 부지를 찾아보고 여러 곳을 직접 찾아 가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땅을 찾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 한국 정부의 예산 지출 관행은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2007년도 예산은 그 해 말까지 부지가 확정되지 않고 기본 설계 공모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대사관 신축에 배정된 예산이 다른 사업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기존 부지에 건축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사관 크기에 불만
기존 부지에 신축하기로 하고도 차선책을 모색하였다. 먼저, 대사관 뒤쪽에 붙어있는 주택 매입을 시도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다음은, 대사관과 현한인회 부지를 합하여 공동 건축물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1-2 층은 대사관과 한인사회가 공동 사용하는 구조물을 짓고 3층 이상은 대사관과 한인회가 각각의 건물을 올리는 방안이다. 쌍둥이 빌딩이지만 하단 부는 연결되어있는 모양으로, 한인촌을 만들자는 이상적인 구상이다. 그러나 한인회 부지의 소유 구조가 복잡하고, 자칫 이나라 정부와 토지 소유권 분쟁마저 일으킬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대안은 건물을 높이 올리는 방안이다. 이는 우리 정부 승인만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조달청(해외공관 신축 관리기관) 규정이 대사관 건물 층수, 사무실 개수, 사무실/회의실 넓이를 대사관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당시 대사관 인원은 KOICA 요원을 합하여 20명 남짓하다. 장래 35명 외교관 규모를 상정하여건의하였으나 25명 이상은 안 되고, 대사 실, 직원 사무실, 회의장 면적이 지정되어 있다. 해외공관들이 크고 호화롭게 짓지 못하도록 모든 규격들을규정화해 놓고 있다.
2013년 대사관 신축 건물이 완공되었다. 내가 기본 설계까지 끝낸 상태에서 떠난 지 6년이 걸린셈이다. 이 건물에 현재 두 개의 대사관이 들어가있다. 주 인도네시아 대사관과, 최근 창설한 아세안 주재 대표부도 여기에 입주하고 있다. 대사와 직원들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건축 설계당시에는 아세안 주재 대표부의 창설은 예상치도 않았으나 대표부마저 이 건물에 입주하였다. 벌써부터사무실 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부임하는 대사와대사관 직원들이 대사관 부지의 위치, 특히 사무실 크기에 만족할리 없다. 나는 후배 외교관들에게 욕먹을 일만 남았다. (제7화 끝)
[이 게시물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님에 의해 2017-09-07 10:17:38 백업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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