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3 취미는 떨림이고 설렘이 있는 희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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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부룬넨 포 뎀 토레..”나의 노래소리를 가로 지르며 교실문이 드르륵 열렸다. 주번 선생님인 수학 선생님이 고개를 들이밀며“합창반이니?” 하고 물었다.
“아뇨... 미술반입니다~.”“엉.. 그래?!...”갸우 뚱하시며 문을 닫으며“그만 집에 가거라. 넘 늦었다.”“네!~~~~.”
와우... 나보고 합창반이냐고 물으셨다.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내 짝꿍녀석이 합창반에 뽑혀 곧 있을 합창대회에서 노래할 곡을 연습하는 걸 어깨너
머로 배웠다.
“성문앞 그늘 곁에 서있는 보리수...“ 우리말 가사로는 이렇게 시작하는데 원어인 독일어로 부른단다. 어찌나 부러웠던지... 친구가 연습하는 합창실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앉아서 합창반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속으로 따라하며 배웠다.어느 날 늦게 남아 자습을 하다가 흥얼거린‘보리수’곡을 듣고 수학 선생님이 합창반으로 짐작하셨던 것 같다.
중학교때 오영칠 음악선생님의 닉네임이 007이셨다. 첫 수업에서 이름소개를 그렇게 하셔서 한바탕 웃었는데 바로 합창반 단원을 뽑는다고 한명씩 일일이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는 고난위도(ㅋ)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소리내 보라 하셨다. 그런데 조건이‘가성’이란다. 직접 시범을 보이시며 한명씩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 난 너무도 떨려서 그만 끝까지 못해내고“ 극..”하는 소리와 함께“앉아”소리를 듣고 말았다. 이어서 테스트받은 내 짝꿍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당시 또래 아이보다 소위 변성기라는 것이 빨리 찾아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뒤늦게‘오스트리아 빈 소년합창단’같이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낼 줄 아는 합창단원을 뽑는다는 것을 알고 많이 아쉬워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정착한지 20년이 되어간다. 본 직업인 미술지도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앞 만보고 살아왔다. 어느날 후배가 운영하는 음악학원을 들렸다가 성악전공자 분을 소개받아 그 자리에서 중학교때 경험했던 간단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또 다시 떨림...ㅠ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이직도 떨어... 그런데 한가지 더해진 감정이 있었다.‘설렘’이다.
반세기 나이를 먹어 오랫만에 목청껏 소리내 보긴 처음이었는데 의외의 반응,목소리가 좋단다.
이걸 믿어 말어.. 후배가 선배한테 하는 기분좋은말이려니 했다.
그 날 이후 난 어느새 이끌리듯 주기적인 발걸음을 음악학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랐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발성,호흡, 공명등의 생소한 단어들은 골프를 처음 배울때와 같은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집에와서 그때부터 유투브를 보고 듣기 시작했다. 아내는 유투브에 올려있는 성악곡을 몇시간씩 듣는 나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 했다.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누구나 꼭해보고 싶은 자신만의 꿈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또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하고싶은 일을 접어두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아닌가. 마음 한켠에 보이지않는 열정을 묻어두고 현실이라는 울타리속에 갖혀 가정을 지켜야하고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해야했던 우리남편...........^^
멋진 노래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당신의 모습이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2013년 10월 30일에 아내가 쓴 메모 글이다.
생뚱스런 이 글을 오늘에서야 한인뉴스 편집자 글을 쓰다 노트북 메모 글에서 발견했다. 감동... 나를 그동안 소리없이 응원해 주었구나..
혼자서하는 취미생활에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이고 혼자만 하고 싶은거 다 한다고 투덜댄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간 20년 자카르타의 생활이 달달해 졌
다. 힘이 났다.
고음 처리가 뾰족하고 감미롭게 들리는 플라시도 도밍고를 흉내내기도 했다가, 카프만의 굵직한 테너 소리가 맘에 들어 흉내를 내봤다가 바이브레이
션이 너무 좋은 파바로티를 흉내내 봤다가..
나는 어느 쪽일까를 고민하면서 나의 성악 사랑은 그 좋아하던 골프를 점점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무렵 쯤 자연스럽게 중년의 아버지가 되어서 중학
교 시절 해보지 못했던
합창단의 멤버가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합창의 미묘한 소리의 조화에서 나는 매번 희열을 느낀다. 내 소리가 튀어서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까봐 조심스레 나를 내려놓는 배려심도 함께 키워지니 이 얼마나 정신건강에 좋은가? 합창연습이 있는 그 날이 설렘으로 기다려 지는 것은 당연한 것 같았다.
좋은 취미활동이 나에게 이런 활력소를 가져다 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극 권유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렸을적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실천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모든 사람들은 하나정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악기이든 요리이든 그림이든 바리스타이든 무엇이든간에 조심스레 도전해 보길 바란다. 아니 적극적으로도전해 보길 바란다.
2017년 올해 나에게는 어깨에 지워진 짐이 많아진 듯 하다. 내 역량을 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럴수록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달콤한 ‘희열’로 다가올 것을 믿는다.
바쁜 와중에 한가지라도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치열하게 사는 나의 삶에 여유를 넣어주는 축복이다.
나는 오늘도‘설렘’을 갖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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