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8월 <꿈 많은 청년들의 인도네시아 생활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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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자카르타의 교통체증이 익숙해졌다 싶었지만 차안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한숨 소리에 땅이 꺼져버릴 것만같다. 나는 자카르타 동쪽 외곽지역에 살고 있는데 오전 11시에 집을 나서 세노빠띠에 있는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혼자 자장면 한 그릇 먹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집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 간다. 이곳에선 머리카락 한번 마음에들게 자르고 오려면 반나절은 소모해야하고 차비에 이발비, 점심값을 지불하고 나면 지갑까지 홀쭉해진다. 홀쭉해진 지갑을 보면서 스트레스 받지말고 차라리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1년에 한번정도 연중행사로 삭발식을 거행한다면 연애는 못 할지언정 정신건강에는 더 이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카르타 시내와 20KM 남짓한 거리에 사는 내 모습이 이런데 수까부미나 수방과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청년들은 오죽할까. 내가 다니는 교회 청년부 모임에 나가보면 원래 기독교가 아닌데 한국 사람이 그리워서 교회에 처음 나오게 되었다는 청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자카르타를 벗어난 소도시에도 의외로 많은 한국인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에 온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들도 상당수 있다. 친하게 지내던 한 청년 얘기를 해보자면, 그는 처음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꽤 괜찮은 현장관리직으로 입사해 부푼 꿈을 안고 근무지인 수까부미에 갔는데 주변에 놀거리는 아무것도 없고, 한국인도 60세가 다되어 보이는 소장님 한분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낯선 생활의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시시때때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등 각종 SNS에 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을 공유하며 그 재미로 몇 달을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SNS에 공유할 소재가 떨어져 결국 방충망에 붙어있는 대왕 나방까지 팅커벨이라며 사진찍어 올리는 수준에 이르자, 본인이 지쳐 끝내 토요일에 일을 마치고 족히 5시간은 걸리는 자카르타행 원정을 시작했다. 그는 일주일 전부터 주말 약속을 확정하고 필요한 자금을 넉넉히 준비해 오곤 했다. 평일에 일이 끝나면 자기개발은 고사하고 외로움에 사무쳐 맥주 한잔에 억지로 잠을 청했다.
무조건 5년 경력은 쌓을 거라던 그는 결국 1년도 안 되는 짧은 해외취업 탐방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과연 현재 우리는 기회의 땅 인도네시아에서 얼마나 많은 기회를 살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무엇이 힘들고, 무엇이 즐거운지, 다만 젊은 날 잠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외국생활의 단상에 젖어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진단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7월의 어느 토요일 새벽 5시 30분. 자카르타 모컨설팅사의 직원 단합 등반대회에 끼어 찌빠나스 (Cipanas) 산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이번 산행의 목적은 자기성찰이라고 하신다. 일주일간 업무에 치이고, 회의에 치이고, 고객에게 치이며 고대하고 고대하던 황금같은 토요일에 늦잠이라도 푹 자고 싶으련만 밟은 표정으로 산행에 나선 그들의 모습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3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숲속의 맑고 산뜻한 공기가 내 전두엽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전두엽은 기억력, 사고력 등을 주관하고 다른 영역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조정해서 행동을 조절하는 기관이다. 실험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기능이 저하되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명상, 사색, 글쓰기를 하면 전두엽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등산을 할 때 사색에 빠지기 딱 좋으니 등산 또한 전두엽 발달에 도움되는 운동이리라. 나는 일행들의 후미에서 혼자 사색을 즐기며 산행을 시작했다. 출발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등산로 바닥에 버려진 수많은 쓰레기들을 보며 내 손에 들린 빈 물병도 버릴까 하다가 가방에 넣었다. 내 편의를 위해 남들 다하는 걸따라하고 싶은 마음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사소한 일뿐 아니라 본인의 삶에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자신의 소신보다 남들의 모습을 따라하다 큰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본인의 강한 소신으로 결정한
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강한 소신과 믿음으로 내 젊음을 불사르러 이곳에 왔다. 하지만 내 위치에서 열심히 한다고 나름 바쁘게 살았는데 2년의 시간을 되새기며 뒤를 돌아 봤더니 눈에 보일만한 이렇다 할 소득이 없어 실망했고, 더 열심히 나아가야할 앞을 보니 서른이 다 되어 10살 어린 동생들과 대학교를 다녀야할 내 모습에 앞이 캄캄하다. 실망과 후회, 자책감이 밀려오며 목적지를 향한내 발걸음이 점점 더뎌졌다.
큰 바위틈에 홀로 핀 손톱만한 보라색 꽃이 간밤의 폭우 때문인지 축 늘어져 처량해 보일 찰나, 우거진 나무사이로 드는 찬란한 햇볕이 꽃을 따듯하게 감싼다. 시시때때로 햇볕이 꽃잎에 내려 앉겠지만 이 꽃은 느끼고 있을까? 누군가 자신을 처량하게 쳐다볼 때 그 시선에서 지켜주는 햇볕의 고마움을. 저 꽃도 보잘 것없는 씨앗에서 싹이 트고 연약한 새싹이 되어 강한 비바람 견뎌내랴, 애벌레들의 공격을 견뎌내랴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예쁜 보라색 꽃을 피웠을 것이다. 이런게 산행의 묘미일까? 조금 전까지 너무 무겁던 발걸음이 작은 꽃과 햇볕으로 인해 다시금 가벼워졌다. 저렇게 작은 꽃도 해냈는데 내가 못해낼까? 힘을 내어 걷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보는 장엄한 폭포와 차가운 계곡물. 10미터도 넘어 보이는 높이에서 떨어져 시원하게 부서지는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이 시간만큼은 내 가슴속에 맺혀있던 답답함, 조바심 그리고 모든 불만들이 저 물줄기처럼 산산히 부서져 나가는 것 같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잠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고 해야할까. 고민, 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당장 눈앞에 대자연의 풍경을 감탄할 뿐이다. 일행들도 나와 같았던지 밝은 표정 덕분에 단체사진이 참 예쁘게 나왔다.
교통 사정상 2.5KM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내마음이 힘들어지면 언제든지 다시 오겠노라 다짐하며 산을 내려 왔다. 집에 돌아와서 이번 산행에서 본 보라색 꽃과 햇볕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지금 없는 것을 느낄 때의 불만 때문에 있는 것들에 대해 느낄 고마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타지 생활이 많이 힘들지만 내가갖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면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삶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있다. 가족, 젊음, 건강,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 온 결과물들. 이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가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고 되돌아보고 반성도 하며 아프지만 씩씩하게 성장해 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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