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지상겔러리 - 클림트 ,The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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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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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여
그것을 찾으며 또한 숭배 하느니
그보다 더 찬미할 게 무엇이랴.
사람은 아름다움으로 해서 영예로운 것“
사랑하는 연인들은 아름답다.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이 온갖 방식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을 표현했다. 하지만 클림트처럼 한 눈에 황홀경으로 몰입시키는 작품이 또 있었을까?
180cm x 180cm의 정사각형 캔버스에 펼쳐놓은 황금빛 우주.
황금가루가 흩날리는 은하수를 배경으로 절벽 끝에서 하나가 된 두 사람.
맨발에 무릎을 꿇은 여인은 손이 오그라들 만큼 수동적이다. 그들의 몸을 장식한 무늬는 사각형과 원.
그가 즐겨 쓰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징이다. 그들은 꽃이 만발한 절벽 끝에 있다. 두 사람의 머리도 꽃 으로 장식되어 있고 여인의 머리는 꽃으로 장식된 후광처럼 보인다. 연인의 몸에서 드리워진 황금빛 잎 들이 절벽의 끝을 덮고 있다. 운명의 끈처럼 두 다리를 감아 내려오고 있다.
불안함과 정지된 평화로움. 고립됨과 우주적 광활함.
“나는 진정한 사랑에 두려움과 존경심을 느낀다”던 그의 말처럼 몰입된 사랑에 관한 이중성이 느껴진다.
클림트 의 황금빛 시대의 대표작 <키스> 이다.
유화 작업 위에 8가지의 금박을 써서 불변의 사랑을 그린 연금술사.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한 ‘현재’로 바꾼 시간의 연금술사라고 하겠다.
클림트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유럽의 세기말 문화의 절정기) 시기에 비엔나의 화가로 살다 갔다. 금 세공사와 오페라 가수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다. 20대 초반에 이미 아카데믹 한 화풍의 대가였으며, 벽화 제작도 하면서 부와 명예를 누린다. 아르누보, 빈 분리파 등의 신미술 운동을 주도하며 에곤 실레나 오스카 코코슈카 같은 전위적인 화가들에게 멘토가 되기도 한다.
명성에 비해서 클림트의 사생활에 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나를 알고 싶으면 내 그림을 봐라!” 할 만큼 자신감이 있었고 그만큼 독창적이었다. 삶도 작품도.
그는 결혼을 “시민사회의 가증스러운 행위”로 여겼다. 물론 독신이었으나 사후에 14건이나 되는 친 자확인 소송이 있었다. 비엔나의 카사노바로 알려진 그에게도 구원의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인이 바로 < 키스>의 주인공 에밀리 플뢰게(Emily Floge)이다. 에밀리 역시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이며 사업가였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 27년간 연인으로 살았다. 클림트가 죽기 전에 애타게 찾았던 그의 분신, 마돈나, 누이이자 어머니였다. 평생에 걸친 정신적인 사랑이 ‘현재’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게 된 연인.
그래서 이 작품을 보는 우리도 몰입하게 되는 것 아닐까. 전 세게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이라고 하 니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되겠다.
11월에. 세기말 비엔나의 걸출한 화가 클림트.
클림트의 황금빛 시대 걸작 <키스>를 본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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