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 ‘사소한 거짓말’ 혹은 ‘하얀 거짓말’ 모럴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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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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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거짓말’ 혹은 ‘하얀 거짓말’ 모럴 다이어트
개인의 도덕성 결여가 아닌 사회적 전염현상 에 의한 부정행위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소속된 집단 구성원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선을 넘는 부정행위를 하는 것을 지켜본다면, 나 역시 그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추종하게 된다. 일 찍이 솔로몬 애시(Solomon Asch)가 보여준 권 위에의 복종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이어지는 경우 다. 친구를 왕따 시키는 경우, 처음부터 불량한 마 음을 가진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군중심리와 동조현상이 강할수록 사회적 부정행 위는 확산된다. 이런 부정적인 사회현상을 막기 위 한 방편으로 1982년 제임스 윌슨(JamesWilson) 과 조지 켈링(George Kelling)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을 제시했다. 이들은 황폐한 지역 주민들은 건물의 유리창이 몇 군데 깨진 채 방치되어 있는 건물을 보면 멀쩡한 주변마저 파괴하고 싶은 충동으로 인해 결국 예전 보다 더 황폐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 이론은 일 견 이해되기도 하지만 현실성은 의문시 된다.
사회적 부정행위의 전염 현상을 차단할 수 있는 좀 더 쉬운 방안이 있다. 영국 뉴캐슬대학 Melisa Bateson 연구팀은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전염현상을 막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0주 동안 커피자판기에 자율적으로 정해진 금액을 넣도록 한 후 사람들의 행동을 지 켜봤다. 이 때 커피자판기에 처음 5주 동안에는 꽃의 이미지로 장식했으며, 나머지 5주 동안에는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 눈’의 이미지를 장 식했다. 그 결과 꽃 이미지에 비해 사람 눈 이미 지가 장식될 동안 동전이 3배 이상 늘었다. 부정 적인 행동의 사회적 전염일지라도 누군가 감시한 다는 인식이 들 땐 도덕성이 강화될 수 있음을 보 여주고 있다.
선의의 거짓말은 진짜 선한 것일까?
평소 사소한 부정행위는 경제적 이득보다는 심리 적 혹은 도덕적 동기에 기인한 경우가 더 많다. 그 중 하나가‘자아고갈(ego depletion)’이다. 스 탠퍼드 대학의 바바 쉬브(Baba Shiv)와 인디애나 대학의 사샤 페도리킨(Sasha Fedorikin)은 우리 뇌가 일시적인 인지 과부하에 직면하게 되면 쉽게 검은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상대적인 정신적 고(高)부하 실험집단은 과일샐 러드를 선호한 대조집단과 달리 즉각적인 만족감 을 주는 달콤한 초콜릿케이크를 더 선호했다. 즉 부정행위나 건강에 해로운 초콜릿에 대한 충동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성적.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고갈시킴으로써 유혹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 하게 된다.
또 다른 원인으로 ‘자기기만(self-deception)’ 이 있는데, 이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게 조차도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를 말한 다. 고등학생의 SAT시험과 관련한 실험결과, 부 정하게 점수를 획득한 학생들은 그 점수를 자신의 진짜 실력을 반영한 점수라고 스스로 믿었다. 또 이들은 다음번 시험점수를 예측하는 경우에도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과 대평가했다. 문제는 자기기만 행위가 지속될 경우 자신의 본질을 망각한 채 과장과 허풍으로 남들을 현혹시키는 부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 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30대 남성 이 유명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한 사법연수원생이 라 사칭하면서 금품을 갈취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런 부정행위를 한두번 하다 보면 허상을 현실 처럼 믿는 착각에 빠지고, 금전적인 이득만을 위 해서라기보다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한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득을 얻길 바라면 서 행하는 거짓말이나 부정행위도 있다.
일명‘하얀 거짓말’이다. 다이어트에 열심인 아 내가 거울을 보면서 체중이 좀체 줄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때, 한마디 거든다. ‘당신, 요즘 눈에 띄 게 날씬해졌는걸!’ 비록 입바른 소리일지라도 아 내를 기쁘게 해주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이런 거 짓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 워질 수 있다. 다만 상대방의 이러한 ‘호의’에 너무 마음을 뺏긴다면 또 다른 부정행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유명한 신경과학자인 미 국 베일러 의대의 리드 몬터규(ReadMontague) 교수와 그 동료들에 따르면, 호의는 자신도 모르 게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호의를 받고 있는 사람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fMRI)으로 촬영하자 쾌감중추가 활성화되 며, 연상과 의미와 관련된 고차원적인 사고를 담 당하는 복내측 전전두엽피질이 더 활성화 되었다.
이는 타인으로부터 호의를 받게 되면, 우리들의 뇌는 그 사람을 더 좋아하도록 하는 편애감정이 강화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근거 없는 편애 는 부정적인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호의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 심해진다고 한다. 사 회조직에서 공(公)과 사(私)를 적절히 구분할 줄 아는 균형 잡힌 의식적 행위가 필요한 이유다.
소비심리에 반영된 사소한 부정행위들
짝퉁 소비심리가 대표적인 사소한 부정행위다. 값비싼 명품은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대외 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때문에 우리들의 뇌는 명품을 볼 때 유난히 쾌락중추가 활성화된다. 하지만 이 쾌락이나 쾌감은 지속적으 로 강화되기에 좀 더 비싸고 새롭고 특별한 명품 을 갈구함으로써 쾌락의 쳇바퀴에 빠지게 된다.
생활수준이 향상된 많은 중상류층들은 0.1퍼센트 에 속하는 열망집단인 상류층을 모방하기 위해 명 품소비를 늘린다. 상류층 역시 자신들만의 차별 성과 성역을 강화하기 위해 더 비싸고 희귀한 제 품으로 눈을 돌린다. 끝없는 인간들의 욕망을 보 여준다. 문제는 명품이 아닌 짝퉁 브랜드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하는데, 짝퉁은 명품을 통 해 자신의 위상을 남들에게 알리는 ‘외부 신호 화’현상을 희석시킨다. 또 실제로 명품 소유자 의 이미지나 진품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할 우려 가 높다는 점이다. 즉 짝퉁 구매행위는 사소한 부 정행위이며, 진품 소유자들과는 정말 다른 행동 을 보인다.
프란시스카 지노(Francesca Gino)와 그 동료들 이 수행한 2010년 연구결과를 보면, 진품이 아닌 짝퉁을 사용하면 도덕적인 자제력이 약해지며 부 정행위 역시 더 수월하게 저질렀다. 실험참가자들 에게 선글라스를 착용하도록 한 후, 이들에게 진 품이라는 정보를 준 집단과 짝퉁이라는 정보를 준 집단 그리고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일반 사용 자 집단으로 나눈 후, 이들의 부정행위 정도를 관 찰했다.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용자의 비율은 진 품 사용자의 30퍼센트와 일반 사용자의 42퍼센 트인 반면, 짝퉁 사용자는 두 배 이상인 73퍼센트 로 나타났다.
짝퉁은 명품을 통해 남들에게 알리는 ‘외부 신호 화’현상을 희석시키며 명품 소유자나 진품에 대 한 신뢰성을 훼손할 우려가 높다.
생명보험이나 자동차 손해보험 가입자들이 저지 르는 보험금 부당청구 행위 역시 부정한 사례다. 반대로 소비자가 기업으로부터 사소한 부정행위 를 통해 손해를 보기도 한다. 신용카드 가입자는 많은 약관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음으로써 연 체 등과 같이 사소하게 규칙을 어길 경우, 카드사 는 높은 연체이자와 같은 법적 혹은 금전적 제약 을 가하기도 한다. 또 보험사의 경우 보험금 지급 과 관련된 약관 내역을 소비자들이 대체로 인지하 지 못한다는 약점을 알고 수시로 사소한 부정행위 를 하기도 한다.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이나 시 술사례 역시 의료기관의 이득을 위한 사소한 부정 행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소하게 발생되는 부정행위를 미연에 방 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성과 정직성을 자극시킬 필 요가 있다. 즉 도덕적 각성장치를 만들어 소비자나 기업 관계자들이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너코드(Honor code)가 대표적인 도덕적 각 성장치다.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과제물을 제출 할 때 혹은 시험을 볼 때 지극히 양심에 따라 행 동하며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 하는 제도다.
자필이력서를 작성할 때 맨 하단에‘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름없습니다.’라고 쓴 후 사인을 하도록 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시험이나 과제물 제출시 정직하게 하겠다는 서약 인 아너코드는 부정행위를 줄여준다.
니나 마자르(Nina Mazar)와 댄 에리얼리 연구 팀은MIT와 예일대학처럼 아너코드 제도가 없는 집단과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프린스턴대학 재 학생들을 비교했다. 비록 아너코드가 항상 도덕 적으로 높은 선한 행위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해 도 사소한 부정행위를 막아주는 예방주사 역할로 써 의미가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아너코드의 경 우, 사전에 서약을 받는 경우엔 상당한 효과가 있 다고 한다. 성경책이나 십계명을 두고 맹서한 경 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비록 종교가 다르 더라도 말이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눈에 쉽게 띄 지 않는 사소한 부정행위는 경제적 관점뿐만 아니 라 오히려 도덕적 혹은 심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만 효과가 있다.
심지어는 과도한 법칙금을 적용하는 강력한 도덕 적 각성장치를 마련할 때 사회적 부정과 비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도 경청 할 필요가 있겠다.
요즘처럼 부정과 비리가 난무할 땐 더 그렇다.
범상규( 건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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