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6월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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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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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미 숙 / 수필가, 시인
gaeunsuh@hanmail.net
창가의 나뭇잎들은 언제나 푸르고 무성하다. 한때의 봄날이 가듯이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5월도 가고 있다. 어느덧 6월과 함께 찾아 온 초록의 꿈들은 또 다시 내일을 설계하라고 나긋나긋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요즘 인도네시아의 날씨도 우기가 멈춘 탓인지 얼핏 고국의 계절 6월을 연상케 한다. 얼마 안 있어 햇빛이 쨍쨍한 건기로 접어들겠지만 마음만큼은 녹음으로 물든 초록의 향연에 흠뻑 젖어드는 느낌이다. 잠시 마음의 문을 열어보니 바람결 에 날아온 초록의 함성이 바쁘게 지나는 삶을 살며시 노크한다.
사노라면 마음이 혼탁해지고 힘이 들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영혼에 잔잔한 쉼터가 되어주는 안도현 시인이 쓴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라는 책을 꺼내어 읽는다. 우리 마음 속 동심의 강에는 끝없이 흐르는 흰 구름과 실개천을 따라 줄지어선 미루나무가 보인다.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지 않는 영원한 빛깔로 자리한 녹색의 그림이다. 책속의 구절에서 문득 초록강과의 대화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이유 없는 삶이 있을까요?”
“이유 없는 삶이란 없지요,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럼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건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그 자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 우리가 아닌 것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도토리 안에 들어있는 갈참나무도 생명을 틔우기 위해 도토리를 품다가 썩어 거름이 되는 낙엽, 연어의 삶을 완 성하도록 길을 틔워주는 초록 강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라 배경으로 동참한다는 안도현 시인만의 표 현법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곳저곳에서 배경이라는 낱말 을 자주 접한다. 소설에서도 듬직한 요소로서의 배 경인물과 사건의 때와 장소를 알려주는 배경이 있 기에 간혹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이 허구임에 도 재미와 현장감을 느끼고 주인공에게 동화되는 생생한 체험을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배경은 주인 공 못지않은 무게를 지니고 소설의 내용을 떠받친다. 모든 예술, 즉, 영화, 연극, 무용, 오페라에서도 배경은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는 물론이요, 장면마다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 작은 소품까지 배경이 맡는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사진예술의 경우는 배경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전문영역은 접어두더라도 우리 가정에서 소중히 취급되는 앨범을 펼쳐 봐도 알 수 있다. 아마도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만 찍혀 있다면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웃음 짓고, 찡그리고 어눌한 표정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지나온 시간을 실감케 하지만 인물 뒤의 배경 또한 우리를 추억 속의 현장으로 달려가게 한다.
예를들어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가족사진을 들여다 볼 때면 에펠탑도 기억하지만 그 때의 가족여행길에서 겪은 잔잔한 모험거리들도 두고두고 떠오르며 추억의 배경이 되어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것 같다.
언제나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멋진 배경이 되어주는 자연 역시도 그 자연을 형성하는 힘은 다양성속에 있다. 우리 인생의 다양성은 유년에서 노년까지 모자라는 것에서 넘치는 것까지,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모두가 포함 되어 삶을 형성한다.
자연에서는 어떤 생물 하나라도 다른 생물에 의해 소멸당할 때 생태계 전체가 위협을 받는다고 한다. 자연은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기 때 문이다.
물 없는 연어를 상상할 수 없듯이 낙엽 없는 도토리도 존재할 수가 없다.
자연은 서로 생김새도 다양하고 맡은 역할이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재케 하는 중요한 배경 이 되어준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만약 시인과 독자와의 관계도 예를 들어 안도현 시인의 글을 읽고 좋은 시인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독자들은 좋은 시 인을 있게 하는 멋진 배경이 된다. 시인의 책이 책 꽂이에 꽂혀 언제라도 우리들 마음속에 별이 되어 떠오르고 마음속의 꽃을 피운다면 그 시인은 우리 의 영적 성장을 돕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것이 다. 우리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상대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응답한다면 그 경청하는 자세가 바로 상대방의 믿음 직스러운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리라. 일상에서 흔 히 쓰는 이웃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나를 중심에 놓을 때 네가 이웃이고 상대방을 중심에 놓을 때 내가 이웃이듯이 주변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소중하고 내가 있음으로 해서 주위가 든든해지는 그런 관계를 [배경]이라는 낱말을 통해 시인은 표현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삶에서 그 존재 자체로 배경이 되는 관계를 꼽으라면 바로‘어머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다. 어머니라고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 세상에 생명을 내보내는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이는 어머니, 오직 자식이 건강하고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늘 기도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어머니,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고 완벽한 배경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배경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그런 어머니다운 아름답고 조건 없는 사랑의 배경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기꺼이 누군가에게 좋은 배경이 되어주는 삶에 우리는 과연 조그마한 마음 이라도 열어놓고 있는 것일까 자문해 보곤 한다.
잠시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자. 나는 과연 누구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을까?
좋은 사람의 배경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를 이해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상대방이 이랬으면 좋겠는데 하고 바라는 건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이 아닌 내 욕심의 투영이 아닐까? 상대방의 뜻이 올바른 일이라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과 주변에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리라.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안도현의 [연탄 한 장 중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구처럼 제 몸을 불태워 나 아닌 누구의 몸을 덥혀주고 하얗게 재가 된 다음에는 산산이 으깨어져 겨울날 얼어붙은 거리를 사람들이 마음 놓고 걸어갈 수 있게 길을 여는 삶,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 아름답고 숭고 한 배경, 마치 초록 강처럼, 낙엽처럼...
이 신록의 계절 6월에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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