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1월 논설위원 칼럼 <김문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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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논설위원
명동에서 자장면식당을 운영하던 화교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정착하여 개업한 식당에 한국인이 들어왔다. 그 한국손님은 주문을 한 지 채 몇 분이 되지도 않았는데 목청을 돋구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이었다. 식당주인은 이 말이 듣기 싫어 이민 왔는데 여기서도 또 듣게 되 었다고 불평을 하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국인이 다른 민족과 비교되는 특성 중 하나가 이‘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베어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자세가 때론 상대방에게 불편한 심기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근면성과 추진력이라는 긍정적 요소도 내재되어 있어, 때론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사기간을 단축하거나 물품납기를 지키는 상관습은 우리의 트레이드마크 처럼 고착되어 경제발전 추진력에 마력수를 더하여 왔다.
지난 10월 25일 일요일 오후, 대통령궁 앞 정원에서 조꼬위 신정부의 조각명단이 발표되었다. 땅 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 정원 앞에 마련된 포디엄에서 대통령이 한 사람씩 호명하면 해당장관이 걸어 나와 대통령 양 옆으로 도열하는 것이었다. 대통령궁 건물 안에서 얼굴만 내밀고 대기하던 장관들이 호명된 후 10~20 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통상 걸음대로 어슬렁거리자, 대통령은 갑자 기‘빨리 나오세요, 뛰세요!’라고 채근하는 것이었다. 이 순간부터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장관들이 체면불구하고 마구 뛰기 시작한 것이다. 중졸학력으로 입지전적인 성공스토리를 써 내려온 수시 뿌 지아스뚜띠(Susi Pudjiastuti) 해양수산부장관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차게 뛰어나와 숨을 가쁘게 몰아 쉬었다. 두 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 된 취임식 한국특사 접견을 부통령에게 미룰 정도로, 마지막 순간에 바뀌고, 또 바뀐 34명의 장관들이 모두 도열하자 조꼬위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실무내각(Kabinet Kerja)’이라 명명하였다. 유도요노 전 정부는 연정으로 인한 모자이크 내각을 의식하여,‘통합내각(Kabinet Bersatu)’이라 부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뉴앙스를 풍긴다. 조꼬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현장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으며, 이를 지켜 보던 장관들도 조꼬위와 유사한 복장을 갖추고 경쟁적으로 현장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위 관료사회는 지금, 자바어로‘불루스깐(Buluskan)’이라 부르는 ‘불시 현장시찰’현상에 함몰되어 있다.
우리 동포기업인들이 개척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몸에 베어있는 근면성과 추진력에 꼭 맞아 떨어지는 열기가 지금 인도네시아 관료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조각명단발표 당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수시 해수부장관은 그때 의 투지(?)를 살려 나포된 불법 어로 선박들을 속전속결로 폭파하는 과단성을 보이며 국내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나포된 베트남 불법 어선 세 척을 12월 5일 리아우섬 인근에서 공개적으로 폭파시키더니, 12월 21일에는 파푸아뉴기니 국적 어선 두 척을 암본 해상에서, 12월 28일엔 태국 국적선 두 척을 역시 리아우섬 부근에서 폭파하며 국가별로 돌아가며 경종을 울리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여성장관의 이런 결단성과 속도전은 전례가 없다 보니,‘상대국어선 폭파’에 대한 외교적 마찰 가능성에 대해 요즘 국제법, 해양법학자들이 바빠지고 있다.
지난 12월20일 발레이 까르띠니(Balai Kartini) 공연장에서 끝난‘우정 페스티발’을 관람한대로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종전의 케이팝 중심의 일방적 통행에서,
이제는 양국 국민들이 서로 친구가 되어 그들도‘크레용팝’을 즐길 줄 알며, 한국의 ‘경기민요’에도 접근할 수 있는 단계로 승화되어 가고 있다. 이렇듯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환경속에 우리 한민족의 상표인‘빨리빨리’까지 양국의 국경선을
넘어 인도네시아에 파급되는 트렌드로 자리잡는 현상을 느끼게 된다. 10년 전 인도네시아 부패척결위(KPK) 출범 초기, 한국 부방위의 역할이 숨어 있었듯이, 이젠 정부시스템, 또는 정신유산까지 수출품목으로 분류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드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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