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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Jalan-Jalan Jakarta/국립박물관 <사공경>

10,714 2013.09.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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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인들의정신적신전

국립박물관 Museum National

(신관2층후관/ 신관4층도자기관)

사공 경(*인니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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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늘어선 기둥을 통해 국립박물관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기둥들이 말을 걸고 있다.

우리를 지켜보는 그 기둥을 가로질러 유물의 숲으로 들어간다. 유적이 아니라 유물들. 문화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 역사의 주인은 사라졌지만삶은 남아 시공을 넘어 현재로 건너 와 있다. 각 유물들은 멀리서 통일되는 긴 메아리처럼 시간의 향기와 색채로 서로 응답한다. 때때로 느껴지는 숙연함과 신비스러운 속삭임으로 말을 건네는 신관의 목표는 국가의 기본을 반영하는 “통일 속의다양한 문화”이다. 이처럼 국립 박물관은 국가와 민족의 보고(寶庫)이며 인도네시아 문화의 정수

를 상징하며, 명실 공히 그들의 정신적 신전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신관은 2007 620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SBY) 대통령에 의해 낙성되었다. ‘상 건물(Gedung Arca)’로 불리는 신관은 각층의 주제가 다르다. 1층은 인간과 환경, 2층 전관은 공학 및 과학, 경제에 관한 것이다. 9월호에 다룰 2층 후관은 사회 조직 및 주거지 유형을, 4층은 도자기 유물에 관해 전시한다. 2층 후편 시대별 사회 조직과 거주지(주거지) 유형 편사회는 어떻게 유지되고, 또 변화할까? 인간은 다른 사람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다. 사회는 역할, 집단과 조직, 규범등을 바탕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2층 전시관 뒤쪽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 조직과 계층에 관한 유물을 시대별로 전시한다. 즉 옷차림과 액세서리 등이, 남녀 혹은 직무 등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1. 선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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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품과 유물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또는 지위를 알 수 있다. 구슬은 초기 금속 가공시대에 유래된 유물이며 화려한 각양각색 구슬은 목걸이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무덤에서 발굴됨으로 고고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흙으로 빚어 만든 물 주전자 끈디(kendi)는 앞부분이 부서진 상태로 동누사뜽 가라에서 발견되었다. 안에는 조개 화석과 모래가 들어있고 묘지에서 발견되어 무덤에 들어간 유물임을 추측할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목표와 과업을 달성하는데 역할과 지위가 있음으로 효율적으로 사회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힌두교-불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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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이 직업과 직위에 따라 정해졌다. 자바 섬에 있는 왕국, 특히 마자빠힛 왕국에서 Rsi란 특정 사회가존재하였다. 게다가 7세기에 스리위자야(Sriwijaya) 왕국에서유래된 바뚜 (Batu) 비문에 왕의 역할은 나라를 지도하고 백성들을 복종시켜 사회를 발전하게 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왕 아래에 왕자 왕태자와 섭정, 사령관, 판사 등 다른 직위가 많았다고 한다. 동부 자바의 말랑에서 발견된 깐주후란 (Kanjuhuran)비문(760)은 가자야나 (Gajayana) 왕이 아가 스띠야 (Agastya) 사원의 비문을 검은 돌로 교체하는 것을 기념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원래 아가스띠야 비문은 백단나무로 되어 있었다. 이 비문은 고대 자바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적혀 있다. Basrelief Batu(14c-15c)는 돌에 얕은 양각으로 마자빠힛 시대의 농경생활과 강가에 있는 논과 계곡, 언덕 등 자연에 대한 것이 새겨져 있다. 섬세하게 예술적으로 돌에 새겨진 양각을 보면 계곡 언저리에 피어나는 적막이 바람을 잠재우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3. 이슬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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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무역이 활발해지고 사회가 발전했으며 귀족과 백성들 간 경제적 격차가 뚜렷해졌으며,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아 사원과 복식문화가 발전했다. 중부 자바의 꾸두스 (Kudus)에 살았던 이슬람교 지도자 Kyai집의 모형의 조각을 보면 부 잣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읍장 역할도 한 것으로 보아 이슬람 시대에는 정교일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사원의 모형을 보면 힌두교-불교-이슬람 문화를 혼합하여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붕이 3층으로 구성되며 제일 꼭대기 지붕은 불교사원의 스투파 (stupa) 모양을 닮았다.

3층 지붕은 발리와 롬복 (Lombok)에 있는 사원과 같다. 이로써 힌두교와 불교에 바탕을 두고 이슬람 사회가 형성되었 음을 알 수 있다.

 

4. 식민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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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네덜란드와유럽 사람들을 포함한 상류층, 중국과 아랍, 인도등 외국 상인들을 포함한 중산층, 종교인, 자바 지방 관리의 후손, 평민, 노예 등의 계층으로 나누어 졌다. 네덜란드 사람은 인도네시아 인들과 달리 시내, 즉 요새 주위에 살며, 사용한 가정 제품도 특 별하고 우아해 보였다. 전시된 크리스털 잔은 17세기 때 네덜란드 사람들이 포도주와 맥주를 마실때 사용한 잔인데 지금 사용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유리에 네덜란드 범선도 그려져 있고 동인도 회사의 복지를 뜻하는 글(Oost Indische Compagnie Welvaren)이 네덜란드어로 적혀 있다. 비밀이 가득해 보이면서도 실용적으로 보이는 철로 된 함은 독일에서 가져 왔다. 유럽 사람들 이 문서와 옷, 보물 등 값진 물건들을 이러한 함에 놓아 보관하였다.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 왕이 다스릴 때 발전해온 바로크식으로 꾸며져 있는 철함을 금고로도 사용했다. 꽉 짜인 규범을 거부하며 꿈틀대는 바로크 스타일이 가미되어서 철로 만들어졌지만 부드러워 보인다. 바로크의 창조적 뒤틀림이 숨 막히게 하는 철이라는 재료를 뒤틀면서 억눌렸던 감성을 분출했으리라. 1937년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전시된 동메달은 바타비아를 건설한 Jan Pieter Zoon Coen 총독의 탄생일 350주년 (1587-1937) 기념물이다. 본격적으로 식민시대를 연 악독한 독재자의 탄생 기념물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와 역사관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과거의 발자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아픔과 상처를 아물려 새살을 돋게 하는 것이 역사(歷史)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국민 생활은 귀족과 백성, 농부, 어부 등 사회 계층에 따라 사용한 옷과 장식품, 가정 제품, 교통수단 등이 다르다. 람뿡(Lampung)에서는 왕 취임식 때 후보자가 나무로 된 낮은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는다. 이 의자에 힘을 나타내는 용과 풍요를 상징하는 새, 비옥, 다산을 표현하는 물고기, 권력을 나타내는 사람의 얼굴 등이 새겨져 있다. 이 러한 상징들은 족장의 권위을 나타내며, 16~17세기 사용했던 스사꼬 (Sesako)라고 추정된다.

빨렘방 (Palembang)은 비단과 금실로 만들어진Songket 직물 생산지로 잘 알려진다. 금실의 문양에 따라 사회계층을 알 수 있다. 금실이나 은실로 된 songket 직물은 신랑이 신부의 가족에게 주는 결혼 지참금이기도 하고, 중요한 가족 행사 때 입는 세습되는 유산이기도 한다. 또 죽순 문양은 악령에서 보호해준다고 믿었다. 쓰르딸리(Sertali)는 북 수마트라의 바딱 까로(Batak Karo) 귀족들이 지금까지 사용하는 머리 장식품이다. 은으로 도금되었으며 물소 뿔과 바딱 까로 전통가옥 문양으로 되어 있다. 이로써 물소와 가옥이 중요한 자산임을 알 수 있다. 결혼식 때신부가 머리에 쓰르딸리를 쓰고, 신랑은 목에 쓰르딸리 라양 라양이라는 목걸이를 한다. 게다가 신부는 까라부 꾸둥 꾸둥이 라는 귀걸이도 한다. 3개는 결혼식 때 반드시 착용하는 장식품이라고 한다. 결혼식뿐만 아니라 무당도 역시 쓰르딸리를 쓰고 치료를 한다. 이처럼 쓰리딸리는 국민생활에 중요하고 물려주는 유물이 된다.

 

의류는 보호 기능에서 사회 계층과 명성을 상징하는 기능으로 변했다. 문양과 색상, 직물의 품질 등에 따라 사회 계층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귀족들은 쁘달람안 (pedalaman) 바띡을 입는 반면에 자바의 북쪽 해안 지역, 즉 마두라 (Madura)와 쁘깔롱안(Pekalongan), 그르식 (Gresik), 찌르본(Cirebon), 라슴(Lasem)에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은 쁘시시란(pesisiran) 바띡을 입는다. 바띡 쁘시시란은 해변과 중국과유럽에서 영향을 받은 문양이 특징이다. 쁘달람안 바띡보다 색깔이 더 화려하다. 바딱 또바(Batak Toba) 사람들은 울로스 라기 이둡 (Ulos Ragi Idup) 직물을 값진 것으로 여긴다. 보통 생일, 결혼식, 장례식 등, 통과의례 때 남녀들이 울로스를 입는다. 여자는 가슴에서 허리까지 올로스로 덮고, 남자는 어깨를 덮는다. 홍백 울로스가 제일 값진 것으로 불행과 악령에서 보호해준다고 믿는다. 또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 지참금으로 울로스를 준다. 직물에 다는 유리구슬은 humbolt만과 슨따니(Sentani) 호수에 살고 있는 파푸아 사람에게 값진 것이다. 특히 슨따니 호수에 사는 사람들은 구슬 팔찌와 돌도끼 외에 낡은 유리구슬을 결혼지참금으로 사용한다. 특별한 모양과 색상의 구슬이 힘을 가져서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종족과 무당만 입을 수 있다고 믿는다. 구슬로 된 앞치마 모양의 커버는 춤을 출 때 여자가 사용한다. 장식품은 인도네시아 민족에게 직물 유물처럼 중요하고 사회적.종교적 의미와 기능을 가지며 대대로 물러주는 유산이 된다. 중부 칼리만탄의 다약 아주(Dayak Ngaju) 종족이 의식 때 사용한 의자는 용(지옥)과 코뿔새(천국) 조각이 있어 아소 (Aso)라고 한다. 한 남자가 뱀을 손에 들고 의자 받침대를 받치고 있으며 아래는 용에 둘러싸여 있다. 이는 인간세계가 천국과 지옥의중간 세계라고 믿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이르 딸라웃(Sangir Talaud)의 신부가 사용하는머리쓰개는 배 모양이고 대모갑(玳瑁甲)으로 만들어졌다. 남부 술라웨시의 상이르 딸라웃에서는 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두라 여자들이 특별한 날이나 행사 때 은으로 된발찌를 착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담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 인도네시아 인들은 시간을 즐기면서 시리를 씹는 관습이 있다. 주로 결혼식과 손님을 반길 때 시리를 많이 준비해서 같이 먹는다. 시리 먹는 관습은 친절함과 연대감을 표현한다. 전시된 타구 (唾具)는 시리를 씹을 때 침을 뱉는 그릇이다. 은으로 만들어졌으며 유럽 영향을 받은 덩굴손과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남자들은 특별한 날에 담배를 전시된 대나무로 된 담뱃대로 번갈아 피우면서 가까워진다. 시리를 씹는 것처럼. 정이 많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가정용품 누산따라 (인도네시아군도)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특히 흙과 나무, 청동으로 만들어진 가정 제품을 제일 많이 사용했다. 나무로 된 이 접시는 파푸아의 Kaiserin Augusta강에서 발견되었는데, 검은색 타원으로 주로 음식을 담을 때 사용한다. 파충류 문양이 조각된 것으로 보아 강가에 파충류가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흙으로 만들어진 물 주전자는 전통 약인 자무(jamu)를 담기도 하고 결혼식 때 사용하기도 한다. 주둥이가 2개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신부상으로 미루어 보아 영원한 결혼을 상징한다. 예나지금이나 인간은 영원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는 듯하다.

권위의 상징 지도자의 권위는 다양한 상징으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상징들을 지니고 있으면 힘이

더 강해지고 현명해 진다고 백성들이 믿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칼집으로 덮이는 전시된 끄리스는 관을 쓴 거인과 덩굴손으로 조각되어 있다. 전통 옷을 입을 때 남자들은 허리 뒤쪽에 끼워 넣어 차기도 하고 유산으로 물려주기도 한다.

 

가옥 형태 마을은 주로 촌장이 지도하며, 중심부과 논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거주지가 된 중심부

는 종교의식과 마을 정부행사를 행하는 곳임으로 전통 회의실과 시장(pasar), 촌장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통 회의실(Balai Adat)은 마을 사람들 이 문제와 이슈를 의논하고 해결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또 독특한 전통가옥은 일반적으로 나무와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형태가 무대와 같다. 서부 수 마트라 빠당 촌장은 가당(Gadang) 전통가옥에 살고 있다. 이 가옥의 지붕을‘새 끼에게 젖을 먹이는 코끼리’라고 부른다. 벽에 보석이 붙어 있어서 주인이 귀족임을 알수 있다. 모계사회로 일가가 이 집에 같이 산다. 강에서 생활을하는 남부 수마트라의 빨렘방(Palembang) 사람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뗏목 집을 지어 수상가옥에 사는데 귀족 일수록 큰 집에 산다.

 

교통수단은 자연환경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 바다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배가 많이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마차도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된다. 남부 칼리만탄의 반자르마신 (Banjarmasin)에서 사용했던 용과 코끼리의 두상이 혼합된 뱃머리장식은 왕족의 배에 장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용모양과 화려한 색깔에서 중국 영향을 받았음을 알수 있다. 용맹 기상한 용은 물과 관계가 있고 물은비옥한 삶을 상징한다. 코끼리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던 힌두 신 가네샤를 의미한다. 이는 왕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공주와 귀족 여성들이 타고 다닌 가마를 보면 어느 곳에서나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된 샌들은 북부 술라웨시의 몽온도우(Mongondow)에서성인이 될 아이가 신고 다닌 가벼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샌들은 인도네시아 인들에게는 일상이다.

 

어부 사회 지위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회는 직업 별로 나누어진다. 전시된 낚시 바늘과 그물,

어망, 부부( b u b u ) , 배 등 항해 장비를 보면 어부 사회가 중요한 부분을차지함을 알 수 있다. 묶여진 등나무나 대나무로만들어진 부부(bubu)를 해저에 놓고 물고기를 잡는다. 전시된 란짱꾸닝 (Lancang Kuning)배는 수 마트라와 칼리만탄에 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들어왔다. 추수 의식 때 모형으로 만들어 신에게 줄공물을 놓는 그릇으로도 사용된다. 술라웨시의 부기스족이 사용했던 삐니시(pinisi) 배도 전시되어 있는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아스맛족도 전통배를 스스로 만들고 사용했다. 파푸아의 강과 호수를 건너갈 때5-10명의 아스맛 사람이 각자 노를저어 한통의 나무로 된 배를 같이 탔다. 제일 앞에 지도하는 자가 방향을 가리켰다.

 

또한 사회 계층화 현상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존재하여 왔다. 불가피하게 사회적 희소 가치를 차등하게 분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기득권의 권력 때문에 계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불평등 현상에 대해 사회적 박탈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에 비해 일상의 노곤함이 온 몸에 배어 있으나 종교로 인한 관습으로 부요하게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지금 살고 있는 인도네 시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상식적 믿음에 역행하 기고하고 때로는 그 믿음을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우리 사회보다 계층이동이 힘든 그들이지만 쫒기는 삶을 자초하지 않는다.

 

신관4/도자기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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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 도자기 전시실(한인뉴스 5월호 게재)에 이어 신관 도자기 전시실에 들어오면 구관처럼 중국의 다양한 왕조에서 유래된 각양각색 도자기가눈에 띈다. 처음에 당나라(618~906)는 향로와 꽃병 같은 종교의식에 필요한 도자기를 만들었다. 청나라가 다스릴 때 해외 시장 경쟁에서 최고의 품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에는 흰색과 갈색, 회색밖에 채색하지 않았지만 기술이 좋아져서 유약을 칠해서 빤짝빤짝하게 만들었다. 명나라가 청자 녹색을 처음으로 만들어 칠했다. 차차 도자기 기술도 높아지고 항아리와 물통 같은 더 큰 가정 제품을 만들었다. 전시된 각나라의 도자기들은 주로 무역을 통해서 인도네시 아에 들어왔다. 그러나 제일 기술이 뛰어난 것은역시 중국 도자기였다. 중국 사람들은 중국의 전통 치료법과 약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쪽 벽에 중국의 선박인 떽싱 (Teksing)배의 사진과 이야기를 담은 판이 걸려 있다.‘진실한 별’을 뜻하는 떽싱 배는 중국 상품을 운송한 배였다. 18221 14일 인도네시아로 출발한 지 몇 주 뒤인 25일에 수마트라의 방카 블리뚱 (Bangka Belitung)에 있는 블라사 (Blasa) 바다에서 암초에 부딪쳐서 가라앉았다. 다행히 영국 배의 도움으로 180명의 선원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 배는‘동쪽의 타이타닉’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9995 12

일 영국의 Michael Hatcher 보물 탐구 자가 해저에 가라앉은 떽싱 배를 찾아서 350여개의 중국 도 자기를 끌어 올렸다고 한다. 도자기 외에 177년 전에 죽은 선원들의 해골도 찾았다. 2000 11월 독

일에서 보물을 경매하여 인도네시아는 찾은 보물의 반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 찾은 도자기는 대부분 송·

 

당·명·청나라의 것인데, 오래된 시간 수중에 가라앉은 도자기는 색깔이 흐려졌고, 해양식물로 덮 이거나 해양식물이 자라서 깨끗하게 씻어지지 못했다. 가라앉은 배에서 찾은 보물이 도자기 외에 금과 주석이 있었다. 게다가 물통 안에 평평하고 중간에 구멍을 뚫은 꼐뼁 (kepeng) 동전이 많이 들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도자기도 있다. 즉 서부칼리만탄의 싱까왕(Singkawang) 지역에 살았던 중국 사람들이 항아리를 많이 만들었다. 그들은 무역하러 왔다가 귀국하지 않고 싱까왕에 살게된 중국인이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흙을 가져와서 항아리를 빚었다. 만든 항아리는 과일과 쌀, 야채등 식료품을 보관하는 통으로 사용했다. 다음 유리 장에 전시된 베트남의 도자기는 금붕어와 꽃, 새 등 베트남의 문화를 상징하는 문양이 특징이다. 한편, 태국에서 유래된 도자기는 대부분 물통, 항아리, 주전자 등 가정 제품으로 만들었다. 코끼 리와 뗄 수 없는 듯 코끼리 문양이 바로 태국 도자 기의 특징이다. 해외 도자기는 각 나라 문화에 따라 문양이 서로 다르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벚 꽃으로 많이 그려져 있는 일본 도자기는 필요한 재료를 중국에서 수입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왔던 도자기에서는 언제나 아늑한 향기가 있다. 도자기는 머나먼 길을 걸어온 구도자(求道者)같은 마음으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지는 원초적 그리움 때문이리라.

국립박물관은 이 지상의 가장 오래된 고독한 시간으로 우리를 옮겨 놓는다. 그곳은 거대한 역사를 숨기고 있는 유적지가 된다. 또한 유물과 함께하는 박물관은 시간의 흔적을 발굴하는 곳으로 인류 보편적인 우리들의 뿌리가 있는 우주적 공간이다. 그 공간은 수십만 년 전의 외로움을 품고 있다.

박물관에 숨겨진 이 거대한 고독은 잠들지 않는다. 그래서 외로울 때 문화의 나신을 보여주는 박물관 에서 역사를 읽으며 성숙해 가는 자신과 조우하라고 말하고 싶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만나는 노을 은 장엄하다.

 

 

Museum Nasional

Jl. Merdeka Barat No.12 Jakarta Pusat

Tel : 3811551 / 3447778

- : 08:30-16:00

- : 08:30-17:00

, 공휴일 : 휴관

입장료 : Rp 5000 (성인), 2000 (어린이)

/ 외국인 10.000

한국어 가이드: 셋째 토요일 9:30 (접수 인도웹)

 

사공경

(0816-190-9976 / (+62 21) 794 1963 /

Email : sagong@hotmail.com)

 

사단법인 한*인니문화연구원

(www.ikcs.kr)

Yayasan Kebudayaan Harapan Antar Bangsa

INDONESIAN & KOREAN CULTURE STUDY

 

한인성당 맞은편Graha STK 3 306

Jl. Taman Margasatwa No. 3,

Busway SMK 57 Ragunan, Jakarta Selatan

 

Tel. (+62 21) 7883 9597

Fax. (+62 21) 7883 9598

Email apakabarindonesia@hotmail.com

jalanjalanindonesia@ymail.com (문화탐방)

loveko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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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땅동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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