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6월 지상겔러리 라울 뒤피 ,< 창이 열린 실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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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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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 ,< 창이 열린 실내 >
작가: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
작품: 창이 열린 실내(Interior with open window) 1928,
oil on canvas, 66x82cm
해는 매일 뜨고 진다.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되풀이 된다.
산과 바다는 변화가 있어도 늘 거기 그렇게 있다.
사람만이 온 생명을 다하여 인생길을 단 한 번 지나간다.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것일까?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의 그림은 일단 가벼워서 페인팅이 아니라 드로잉으로 보인다. 유려한 선들 그러나 애매한 형태, 우연처럼 부딪치는 날 색들. 곳곳에 파라독스처럼 튀는 색의 불협화음.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결코 가볍지 않은 구절이 떠오른다. 밀란 쿤데라는 1929년에 태어났는데 이 그림은 1928년에 그려졌다. 라울 뒤피는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그의 그림들은“도대체 무엇이 걱정이고 무엇이 어렵습니까?”하고 묻는다. 온갖 종류의 무거움, 책임, 사명, 굴레 등등을 먼지처럼 날려버린다. 그냥 즐겁다. 밝고 화사한 색으로 쉬운 감성을 거침없이 그렸다. 빛과 색의 축제와 같은 캔버스 어디에선가 음악도 흘러나오고 있다. 시간예술인 음악을 공간예술인 미술로 잡아내려면 이 정도의 유려한 필치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라울 뒤피는 궁핍한 집안의 9남매 맏이로 태어났다. 14살 어린 나이부터 가족을 부양하면서 미술공부를 했다. 그는 인상주의가 풍미하던 시대에 태어나서 근현대 미술을 두루 체득한다. 인상주의의 모네, 후기 인상주의의 세잔, 야수파의 마티스, 입체주의의 브라크를 차례로 섭렵하면서 결국엔 모든 사조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는 순수회화 작품만이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 섬유, 패션, 디자인에서도 감각적이고 경쾌한 작품을 많이 제작해서 화가로서의 그의 업적이 폄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의 미술동향을 보 면 그는 시대를 앞서간 작가라고 하겠다. 자신의 감정과 이끌림에 정직하게 반응하면서 열정적으로 쏟아 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가장 자기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면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 나오는 법이다.
“나는 젊은 시절 음악과 바다에 사로잡혔었다.”가난했지만 음악을 즐기는 예술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바다, 항구의 풍경들, 경마장, 음악을 평생에 걸쳐 그렸다. 바다로 미끄러져 나아가는 배들과 음악과 라울 뒤피의 거침없는 선과 색채는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의 방을 보자. 바로 앞에는 방의 내부가 보이는 거울이 있고, 거울 양 옆에는 바닷가 풍경이 보이는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려있다. 곧바로 베란다에 나가서 사람들을 부를 수 있고 번잡한 해변의 풍경에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다. 방에는 누구라도 방문하여 쉴 수 있는 의자들이 넉넉하고 방의 한 가운데엔 상쾌한 카 라꽃이 만발하고 있다.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꽃향기 맡으며, 오른쪽에 마구 쌓아놓은 책 더미에서 한 권 뽑아들고 앉아있고 싶다. 때로 세상살이에 지쳐서 무거워진 심신으로 어둑어둑한 계단과 복도를 지나...... 방문을 열었을 때, 이처럼 단순하고도 유쾌한 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단 한 번 지나가는 이 삶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방을 지니고 있을 터이니.
내가 만드는 “나만의 방”도 이렇듯 화사한 낙원이고 휴식이었으면 좋겠다.
글:김선옥(인니 미협회원/땅그랑문화원회화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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