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이선진 전 대사의 일기3 - "2006년, 3번 연기된 SBY 한국방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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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Y 방한 연기와 Hassan 장관의 방한 7.12 10:40-11:20 하산장관이 먼저 연기 결정을 통보하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하산은 통상 나와의 면담 시 내가 20-30분 가량 이야기하면 몇 마디로 답변할 정도로 평소 말을 매우 아끼는 성격이었다(그러나 장관 퇴직 후 만났을 때는 1-2 시간 거침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실제는 달변가였다). 하산 장관의 요지는 SBY의 남북한 방문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 북한만 방문을 취소할 경우 북한을 더욱 궁지로 몰아 넣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남북한 방문을 취소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나는 한국 방문 연기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 중 특히 강조한 점은, 양국 정부 간 여러 가지 좋은 협력 사업과 민간 프로젝트는 북한과 무관하게 준비해 왔으며, 한국 “대통령”과 국민들이“ 북한 가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오지 않는다는 논리를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이다. 한국 ‘정부’라고 할 부분을 한국 ‘대통령’이라고 한 이유는 사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자는 의도였다.
하산 장관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고 장관 재직 기간이 6-7년이 되는 만큼 국가 원수의 방문 연기 가 가져오는 부정적 여파를 알고 있겠지만 나로서는 문제점을 분명히 기록에 남기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흥분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였기 때문에 차분하게 이야기하였지만, 하나하나 따지는 나의 논리와 자세에서 나의 흥분 상태를 감지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산 장관은 양국 정부 고위층 간에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지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내가 “대통령 운운”한 부분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우리 국민 중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마저 이번 미사일 발사관련 북한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대통령께서 북한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을 오지 않는다는 설명을 납득하지 않을 것이 라고 다시 침을 박았다. 주재국 정부가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하여 반발하고, 그것도 주재국 외교 수장에게 맞대놓고 하는 경우 자칫하면 대사 자리를 내놓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실제 동남아 주재 한국 대사 중에서 외교부 장관에게 잘못 보여 크게 곤욕을 치른 예들이 있다. 면담을 끝내고 오면서 동행한 우리 대사관 직원에게 하산 장관의 말씀은 삭감 없이 그대로 보고 하되, 나의 발언 내용은 한자도 쓰지 말라고 지시 하였다. 해외 공관이 본부로 보고하는 내용은 외교부 본부만 받아보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를 포함 여러 기관들이 받아 본다. 방문 연기에 대하여 여러 부처들이 실망하였을 것이며, 이 경우 대개는 누구인가 비난 대상을 찾으려는(불만의 대상) 속성이 있다. 우선 대사가 그 첫번째 대상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사가 면피하기 위하여 때로는 강하게 반발하였다고 면담 내용을 과장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한다. 하산 장관에 대한 나의 반박 내용을 일일이 보고하면 인도네시아 측의 문제점이 확대되어 보이고 비난과 불만의 화살을 주재국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양국 사이의 우호와 협력을 증진해야 할 대사의 책무에 어긋난다. 이러한 비난은 바로 대사가 인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의 반박 내용은 일체 생략하고, 인도네시아 측의 방한 연기 이유만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7.12 인도네시아 외교부는 SBY 남북한 방문 연기를 공식 발표하였다. 다음날 인도네시아 외교부 는 하산 장관의 서울 방문 계획을 알려왔다. 인도네시아 측은 한국 방문 연기 이유를 북한 방문 연기와 연계시킬 경우 한국 측이 납득할 것으로 예 했는데, 한국의 강한 반발을 보고 놀란 하산 장관이 SBY에게 직접 건의하여 방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나로서는 하산의 서울 방문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돌이켜 보면, 인도네시아 측은 내가 언급한 내용이 서울의 훈령에 따라 한 것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고 대사의 개인 의견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신속하고 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7.17 하산 장관은 SBY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서울로 출발하였다. 서울의 냉랭한 분위기에 비추어 하산 장관에 대한 예우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반 장관에게 섭섭하더라도 따뜻하게 대해 줄 것과, 아울러 이 기회에 반기문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입후보 활동에 관하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도록 간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산 장관은 우리 대통령을 예방도 못하고 한국 방문을 마칠 정도로 서울 분위기는 싸늘하였다. 나도 하산 장관을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의문. 이렇게 2006년도 SBY의 방한 계획은 미루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인도네시아가 북한 미사일 발사를 두고 SBY 북한 방문을 예정대로 추진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한국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에 대하여 의견 조회를 한 결과 각국의 반응이 어떠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러 채널을 통하여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방북을 지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일본은 처음에는 지지하였다가 나중 반대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한국의 입장은 “조건부 지지”인 것으로 현지 외교가에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나에게 직접 묻는 다른 나라 대사들도 있었다. 문제는 미국의 태도가 미확인이다. 나 자신 미국의 입장을 알고 싶었으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미국 대사에게 직접 전화하거나 인도네시아 외교부에 문의하면 알 수 있었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의 반대로 SBY 방북이 취소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미국, 인도네시아 및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외교관은 알 필요가 없거나 알아서 불리한 사항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 현지 외교가에는 미국의 반대가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이러한 소문을 확산시킨 것은 방문 연기발표 며칠 후 국영 통신 ANTARA에 난 해설기사이다. 7.17자 기사 “Behind the cancellation of Yudhoyono’s visit to Korea”는 SBY 방북연기에 대하여 미국의 개입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에둘러 쓰고 있다. 동 기사는 하산 장관이 이를 부인하는 코멘트도 같이 실었지만 미국 개입설을 잠재울 수 없었다.
4. 개인적 과제(agenda) 하나를 접다
연이은 방한연기로 인하여 인도네시아에 대한 우리 정부 내 신뢰가 많이 실추되었다. 나로서는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대사로서 할 일을 다 하였는가 하는 의문과, 다른 한편 대사관, 양국의 관계 부처, 그리고 민간 기업들이 조금씩 회복해 가는한 인도네시아 관계 증진에 대한 열기(momentum)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등등의 문제를 고민 하면서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동안의 고민 끝에 나의 개인적 과제(agenda) 하나인 인도네시아를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한 관계 개선에 활용하겠다는 의욕을 접기로 하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2006년 SBY 방한이 실현되지 못한 배경에는 북한 문제에 대한 나의 욕심도 한 몫 하였을 것이다. 이 부분은 나중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 하겠다. 2006.7 SBY방한 연기 계기로 나는 그 동안 가졌던 북한 관련 개인적 과제를 깨끗하게 잊고 한. 인도네시아 경제교류 활성화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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