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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의 꽃> <스포츠 하는 여자> 등 인도네시아 영화를 제작 000 명을 받았고 000ha로 줄었다. KPC는 인도네시아 최 대 석탄광산회사 부미리소시스(Bumi Resources) 의 자회사이다. 바흐릴 장관은 “이번 조치는 종교단체에 대한 국 가의 기부이며 000개는 1896년에 지어진 기 상청 건물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집 안 문들의 경첩은 찔리웅(Ciliwung)강에 있었던 부낏 두 리(Bukit Duri) 여자 교도소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61 Museum Di Tengah Kebun의 주인인 중부 자바 출신의 샤리알 잘릴 (Sjahrial Djalil 000개는 바타비아의 동인도 회사 건물에서 가져왔으며 000개의 벽돌로 건물을 지었는데 000만 ~5 000만 루피아 사이로 가장 저렴하지만 대기시 간이 길고 표준서비스를 제공한다. Tempo.co에 따르면 일반 트랙의 대기 시간은 최대 30년이다. 특별 트랙은 비용이 1억1 100만 루피 아 수준이며 109개의 62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다양한 크기의 돌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 쪽에는 박물관의 주인이자 2000여점의 유 물들을 수집한 Sjahrial Djalil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박물관을 오 래 즐기지 못했다. 파킨슨 병을 앓았던 그의 침실 전시실 천장에 그려진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림은 투병 중이던 그를 위한 치료목적의 그림이라 한다. 2019년 눈을 감은 Djalil은 그의 바 램대로 자신의 집 1200그루 이상의 야자수 12학년)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I 51 식을 접하지 못해 먹거리가 힘들겠다는 등의 질문 을 친구들이 쏟아냈다. 이건 분명 내가 인도네시 아에 도착하기 전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비슷하구 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들에게 인도네시아 현실에 대해 차분히 알려주었다. 인도네시아는 굉장히 큰 나라이고 17~18세기 왕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중국. 인도. 중동 지역으로 전 파되었다. 19세기 에는 무역로를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에는 유리 페인팅이 1840년대에 중국으로부터 발리에 처음 들어왔으며 1940~2019)은 인도네시아 현대 광고계를 이끌어가 던 중요한 인물로 1952년 2월 9일 자카르타에서 사망해 뻐땀부 란 공동묘지에 묻혔다. 김만수 1960년대 초 인도네시아는 한국 친선방문단을 거부할 만큼 우리와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1962년 2월 도쿄에서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수카르노 대 통령 간 만남을 주선해 막혔던 한-인니 외교의 물꼬를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앞서 1960년대 초 이리안자야(서파푸아) 지도자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일본 정 부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1981년 한국인 최초로 해외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든 서부 마두라 해상유전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수익이 나지 않아 경 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1990년 자신의 거주지였던 이 곳을 박물관 으로 등록하였으며 1단계 건 설을 위한 총 투자비용은 약 2조 4천억 루피아(약 1억 6천만 달러)로 예상된다. 전체 항나딤 국제공항 건설 프로젝트는 단계적으 로 진행되며 200명이 정리 해고 됐다. 이와는 별로도 일간 콤파스(Kompas)가 노동조 합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6년 12월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막 마 치고 이틀 뒤 2022년 영국 으로 유학을 갔다. 그녀는 출국하기에 앞서 하지 를 위한 저축계좌를 개설했다. 띠엔은 스코틀랜드에 도착해서 친구로부터 하지 대기 시간이 짧다는 소식을 들고 신청했다. 띠엔 은 “인도네시아와 달리 영국은 쿼터가 찰 때까지 선착순으로 등록을 받았다”고 말했다. 띠엔은 사우디가 유럽 2023년에는 3 300만 대를 운행하는 것을 목표한다. 지난해 발표된 AC Ventures 보고서는 인도네시 아 전기차 시장 성장률(CAGR=Compound Annual Growth Rate)은 연평균 58.5%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444대와 비교해 278% 증가했다. 반면 468대가 판매되어 지난해 같은 기간 의 1 5%의 경제 성장률이 가계 소비를 지지해 자동 차 산업의 판매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2 I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정치 500m² 면적의 부지 에 지어졌는데 500명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운다. 1961년 8월 9일 유형배는 자카르타 특별법원에 서 정식으로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북한 출 신인 유형배는 수카르노 정권의 2인자였던 수반드 리고 외무상의 평양 방문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 는 대일 청구권 자금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경제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을 자주 왕래 하며 사업을 키운다. 유형배는 1967년 이슬람 신 자가 되고 50여권의 책을 출 판한 다작 작가이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강조하 였으며 6) 인도네시아 최초의 한국인 조직 600명에 달 했다. 그들은 일본군과 분리해서 귀국할 때까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인 공동체를 만들었 다. 한국은 광복 후 혼란에 휩싸이면서 일본과 달 리 귀국선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600명을 받았다. 자카르타 출신인 띠엔 물얀티와 그녀의 남편은 지 난해 영국에서 하지를 신청해서 대기 없이 성지순 례를 다녀왔다. 인도네시아 장애인재단의 CEO인 띠엔은 장애를 가진 46세 여성으로 640대와 비교 해 크게 증가했다. 용끼 수기아르또 Gaikindo 회장은 전기차 판매의 긍정적인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674 대에서 526대로 감소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까라 왕에 건설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이 가동을 시작함 에 따라 현지 생산 모델이 강화되어서 올해 반등 할 것으로 기대했다. Gaikindo 자료에 따르면 729대로 작년 같은 기간의 4 800명 이상 이 일자리를 잃었고 800파운드짜리 하 지 상품을 선택했는데 900만 루피아 수준이 고 969대를 기록했다. 리즈완 알람샤 Gaikindo 공동 회장은 올해 자동차 판 매 목표 110만 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 며 9세기 중부 자바의 유물로 그 시대의 작품 중 가장 큰 것이라 한다. 미완성된 조각임 에도 불구하고 이 박물관에서 가장 값 비싼 소장품으로 알려졌는데 BIB)이 맡고 있다. 바탐 항나딤 공항 제2터미널은 공항의 수용력을 늘려 더 많은 관광객과 투자자를 바탐으로 유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프로젝트는 바탐 지역의 경제 성장과 인프라 발 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British School Jakarta Dia.Lo.Gue Arts Space이다. 음식과 예술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는 주제이지만 Djalil은 이 석상을 얻기 위하여 이것이 발견된 지역에 학교를 건립해 주었다고 한다. 정원은 가네샤 이외에도 136개 종류의 꽃 Duta Gallery 역시 인도네시아 대중 에게 예술 작품을 홍보하고 지역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작품을 전 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재단이다. Hamel은 1980 년대에 많은 인도네시아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며 JIKS)을 위해 당시로써는 거 금인 13만 달러를 쾌척했다. 최 회장의 유전사업을 이어받은 아들인 정필립 코데코에너지 대 표는 2020년 1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큰 금액의 장학금을 JIKS에 기부하고 NU는 즉각 논평을 하지 않았다. 2위 이슬람단체인 무함마디야 관계자는 “광산 경영 인도네시아의 전기차(EV) 판매량이 올해 1월부 터 5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109% 이상 증가 했으며 UIA 대학 교수) 전세계 인구의 77억명 중 무슬림 신도는 23%를 차지하며 세계 전체 인구 중 무 슬림 수가 제일 많다. 무슬림의 영역 YANG CHIL-SUNG [한인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제339회 문화탐방] 끄망 가구점들이 많은 곳으로 외국인이 자주 찾는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즐비해 밤 이 되면 인도네시아 젊은이들로 붐빈다. 아쉽게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우기철 상습 침수지 역이기도 하다. Kemang이라는 이름은 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망고 나무의 한 종류에서 따 왔다고 한다. 정원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 숨겨진 작은 박물관과 문화예술공간 가장 비싼 독점 트랙의 경우 사기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2023년 기준으로 일반 트랙은 비용이 4 가족과 함께 조상의 묘 에 성묘를 하는 풍습은 마치 우리 설의 명절 풍습 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르바란 명절 전에는 금식 기간 12개월 중 한달 금식기간의 최대의 소비시장이 형성되는데 각 해당 국가에서 무슬림들의 수 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도 인도네시아에서 이제는 이슬람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인도네시아 정착을 위한 문화적 접촉의 하나로 종교가 아닌 문화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고 많은 강의를 통해 전달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약 87% 가 이슬람 종교인 무슬림이다. 하지만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와 같이 국교가 이슬 람이 아닌 “다양성 속의 통일 국가” 즉 빤짜실라 건국이념을 모토로 하는 다민 족. 다언어. 다종족의 다양성 속의 하나의 통일 국가로 지칭한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역사의 거울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 에 없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인류의 영원한 벗이 될만한 사랑과 평화의 사 도를 발견하고 한없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갈룽궁 산속 게릴라본부 등에서 벌어 진 전투에서 활약했다. 반둥과 족자카르타를 잇 는 철도와 도로를 공격하고 감독했다. 이 중에서도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인 도네시아 영화 최초로 키스신을 선보여서 사회 전 반에 뜨거운 찬반 논쟁을 야기했다. 허영은 일제 말기 조선에서 총독부의 국책 영화 <너와 나>(1941)를 찍으면서 맹렬한 친일영화인 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다. 인도네시아에 건너가서는 일본군 휘하의 포로수 용소에서 살아가는 호주군 포로들이 호화로운 하 루 일과를 보내는 것처럼 보여주는 <콜링 오스트 레일리아!>라는 선전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 사진 허영 [출처: Id Film Center]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61 제로 호주군 포로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고 감정-좋은 마음을 갖고 같은 한국인 친구들이지만 각기 다른 나라 개인 가방도 맡겨야 한다. 내부의 모든 가구 및 소품 하나하나가 오랜 역사를 지닌 전시품이기 때문이다. 집 내부의 거실 경제개발 5개 년 계획을 세워 잘살아 보겠다는 용기를 낼 무렵인 1963년 최 회장은 한국남방개발을 설립해 우여곡절 끝에 1968년에 대한민국 최초 해외투자 기업을 만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전체 외화보유액이 5천 달러를 밑돌았을 때 고급 숙박시설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인도네시아 종교부에 등록한 여행사가 운영 하지만 고데기 공부만 하 는 것이 아니라 세계곳곳에서 온 아이들과 친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인도 네시아 친구들만 사귀던 나에게 글로벌 코리안으 로 거듭날 기회를 준 것이다. 나는 우리 6조의 이 름 ‘육개장’처럼 다양한 맛이 있고 색깔이 있는 글로벌 코리안이 되고 싶다. Part 2. OK Friends! 역사의 길 위에서 한국을 탐구하라! 다양한 나라에서 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한국인 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우리는 더욱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2022년의 모국연수에서 잊지 못할 추 억을 많이 만든 나는 2023년 모국 연수 공고가 나 오길 기다리며 공고가 나오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이번엔 어느 나라에서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아온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는 마음에 공지가 나 올 때까지 내 가슴은 두근두근. 그래도 두 번째 참가하는 연수다 보니 새로운 친 구들과 만남이 서먹하기 보다는 ‘우리는 곧 친해 져서 다같이 깔깔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 라는 마음으로 한 친구 한 친구의 첫인상을 기억 하려 했다. 또한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등 해변의 모습과 자연의 논밭을 주로 그리는데 광고대행사 Ad Force Inc.를 설립한 사람이다. 역사 를 좋아하고 고대 유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30대때부터 취미로 유물 을 수집했다고 하는데 교내 나래홀 강당 앞에 최계월 회장 흉상을 설치했다. 최 회장은 국내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안 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 나가면 산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 후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고인 삶의 궤적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한-인니 관계가 지금 과 같이 뿌리 깊게 발전할 수 있는 데에는 최 회장의 기여가 적지 않다. 국가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 록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평가들은 정치적 지지에 대한 종교단체에 대한 보상이라고 지적했다. 광산연구원 Reforminer Institute 꼬마이디 노또 느고로 연구원은 “광산 사업은 대규모 자본 국재만 등이다. 이들 세 사람은 서부자바 가룻 지역에서 활동한 민병대 빵에란 빠빡(Pangeran Papak) 부대에 자원한다. 이들이 민병대에 가입 한 시점은 1946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빵에란 빠빡 부대’에는 조선인 4~5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칠성 군 수 451명 권별 귀-좋은 소리만 듣고 귀환 준비 등 생존을 위 한 활동과 함께 태극기 게양 그 곳이 바로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만 개방되는 수장고이다. 1986년 3월 당시 문화교육부 장관이었던 파웃 하산티(Fuad Hasanti)에 의해 개관된 Duta Gallery는 40년 가까이 국제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나 역사적인 작품을 전시 그 중 65 그가 그려낸 알록달록한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실 그는 그의 아내를 내세워 현 지 파트너가 된다. 1962년 아시안게임이 자카르타에서 열리자 그들을 네덜란드 의 은인」이라 불렀다. 종전 후에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네덜란드인 칸나백(Kannabeg) 백작은 김만수의 이런 활동을 증언했고 그래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끄망 곳곳 숨 겨진 이야기들을 찾아 나선 오늘 탐방이 우리가 인도네시아로 다가가는 큰 한 걸음이 되었기 그리고 갤러리를 순회하는 이번 탐방은 인도네시아의 역사 그리고 우리 문화를 지켜 주신 모든 독립투사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를 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연수는 은지라는 친구와 뜻깊은 우정을 나 누며 더욱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인 도네시아에서 태어나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나와 대화할 때 한국어를 사용하기도 했지 만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도 함께 사용하며 우리가 함께 아는 한국의 K-Pop 근영이를 다시 인도네시아에서 7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야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슬퍼 눈물이 났다. 눈물바다가 되어버린 연수원 안에서 ‘오늘은 통금 12시 10분까지다!’ 라는 선생님 말씀에 우리는 흘리던 눈물을 닦고 마지막 날밤을 위해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신 과자를 들고 내 방인 317호에 모였다. 317호 안에서는 5명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퍼 져 나갔다. 미국 글로벌 기업가정신 글로벌 장을 열다) 그 뒤 금식 관련 소식 정보에 아주 작은 빙산의 일각에 내용을 이번호를 통해 나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르바란( Idul- Fitri) 긍정적 사고 방 식으로 나 자신부터 변한다는 생각에 이노베이션 을 시작하자. 변화의 초점은 우선 사기진작 기브란은 수라카르타 시장 을 거쳐 2024년에 부통령에 당선됐다. 두 번째로 주목받는 후보는 지난 2월 대선에서 프 라보워 수비안토 후보에게 패한 아니스 바스웨단 이다. 아니스는 대선 당시 자카르타에서 상당한 득표를 해서 유력한 자카르타 주지사 후보로 언 급되고 있다. 지난 2월 총선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투쟁민주 당(PDIP)은 차기 정부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 고 기획 전시실 그리고 특별 수장고로 이어지는 관 람길에는 많은 그림들과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자친구를 모델로 한 Trubus Soedarsono의 흉상에서는 손끝 하나하나의 애정이 느껴지는 듯했고 길을 따 라 쭉 들어가 건물 사이를 지나면 아름다운 중앙 뜰 이 나오고 그 뒤에 기획 전시실이 있다. 정문 오른 쪽에는 상당한 규모의 아랍풍 대리석 건물이 있는데 김 만수는 항상 자결용 권총을 휴대했다고 한다. 네 덜란드인들은 김만수와 그의 동료들의 인도주의 적 배려 덕분에 생명을 건졌고 김만수는 교민 대표로 참석해 태극기를 게양한다. 그는 한 인사회 형성기에 인도네시아를 드나드는 많은 한 국 사업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한인사회의 맏형’역을 자처했다. 그는 1975년 자카르타에 서 사망한다. 유형배 나(Gue)라는 의미로 지어진 낭만 적인 이름은 지역사회의 협력과 대중의 참여 나는 그들이 느끼는 인도네 시아라는 나라가 얼마나 후진국인지 충격을 먹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아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난 누구와 친해지려 나! 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친구들의 얼굴을 살 펴보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김포 공항에서 본 그 친구들은 그냥 그냥 지나가는 존 재였다면 5박 6일 내가 매일 부르던 그들을 보면 한 명 한 명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함께 보여 진 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나라에 돌아갈 때 안전하 게 가라는 안부인사를 나누는 난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며칠 뒤인 다음 해 1월 내가 거주하고 있는 이슬람 무슬림신도 대다 수의 나라에서 종교가 아닌 문화로 받아들여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융합과 화합의 문화를 이들 무 슬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또한 이슬람에서의 비즈니스에 대한 옥석을 찾 고 내가 배정되었던 목포 그룹은 모국연수 3 일 차에 목포 근대 역사 공간을 방문하였다. 그 곳 에서 우리는 1944년 일본군 150사단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유달산 방공호를 보 았다. 방공호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을 강제 동 원한 일본인들 조각상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내연기관 차량 판매는 올해 1월부터 5개월 동안 전년 대비 21% 감소한 334 네덜란드 정부는 그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김만수는 1947년 한국에 귀국했다가 다시 인도 네시아로 돌아가서 1955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과 재혼한다. 1973년 한국 기업인 미원 인도 네시아가 진출하자 네덜란드의 은인 김만수는 서부자바주 반둥 근교 수까미스낀 (Sukamiskin)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감시원 으로 일했다. 그와 동료인 조남훈 등은 네덜란드 포로들에게 지정된 음식 외에 물품을 공급해 주 고 비밀리에 바깥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런 행 위가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므로 높 은 수준의 기술 누숙에 등록한 다양한 여 행사가 제공하는 하지 상품을 선택할 수 있으며 눈-좋은 것을 보고 다량의 무기를 탈취 했다. 네덜란드 군의 포위를 저지하기 위해 찌마 눅(Cimanuk) 다리를 파괴했을 정도로 폭파 전문 가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군은 1948년 11월 기습 적인 소탕작전을 벌여 양칠성과 아오키 다른 종교단체에도 유사한 자산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조치는 정치와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다시 시골 고향에서 자카르타 도시로 귀환을 하게 되는데 이때 생각지도 않은 이촌 현 상의 일환으로 르바란 휴가를 떠났던 친구들이 고 향 친구들 하나 둘 데리고 다시 자카르타에 운집 하게 되면서 다음달까지 인허가 등 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도네시아 섬유봉제업계는 최근 해외 바이어들 의 주문 감소로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해 업계 관계자들은 수출 감소에 대해 우려 를 나타내면서 당신(Lo) 대 기기간은 5~9년이다. 일반 트랙과 특별 트랙은 모두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급한 비자로 출발한다. 독점 트랙은 후로다 하지(Furoda Haji)라고 부르 며 대부분 본인이 해외 여행 중에 직접 구입하거나 유럽 대승적 기업관 대신 가능한 한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을 확보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투쟁민주당은 지방선거 후보로 바수키 짜하야 뿌 르나마(일명 아혹) 전 자카르타 주지사 독립 후에는 우스마르 이스마일 영화감독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 영화계에 큰 족 적을 남긴다. 반둥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던 김만 수ㆍ조남훈 등은 일제에 대한 간접 저항의 하나로 포로들의 외부연락을 담당하였으며 독일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초상화 등등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전시품들이 많았다. 해외에서 온 수집품 외 에도 솔로(Solo) 왕궁에서 가져온 침대 독점 등 세 가지 트랙을 선택하게 한다. 세 가지 트 랙은 대기시간과 비용이 각각 다르며 동부칼리만탄 지역의 석 탄 광업권을 NU에 부여할 것이라고 지난 6일 바 흐릴 라하달리아 투자장관이 말했다. 바흐릴 장관은 이어 허가가 승인되면 종교단체의 광업권에 대한 세부사항이 공개될 것이라며 동화책 중에 원하는 분야에 들어가 그 분야에 알맞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 로젝트였다. 완성된 프로젝트는 캠프가 끝나기 전 날 발표될 예정이었다. 영상 편집에 관심있던 나 는 영상팀에 들어가 봉화에서 있었던 일상을 비디 오로 담기로 했다. 우리 그룹 이름은 ‘삼시새기 기’였다. 그 의미는 삼시새끼를 챙겨먹듯 두려움도 함 께 몰려왔다. 나와 같은 방을 쓸 친구는 나와 마음 이 잘 맞을까? 라는 걱정부터 내가 가는 경북 봉 화라는 곳은 어떠한 곳일까? 라는 기대감까지...... 이 모든 감정을 잘 버무려 내 마음속에 잘 넣어 두고 드라마 또라자 (Toraja) 지역에서 가져온 관 뚜껑 등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에서 온 것들 또한 다양했다. 세 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발견된 띠엔을 입구 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방에 배치했다. 반면 그녀가 사우디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캠프 이 용자들은 음료와 스낵을 제공받지 못했고 개별적 으로 사서 먹어야 했고 서비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고 상황을 전했다. 띠엔은 인도네시아 하지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문 제를 제기했다. 선착순으로 하지 신청자를 받는 영 국과 달리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와양 리더 십 그리고 책임감 즉 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이슬람 종교 무슬림으로서 현재 충실하게 이행할 일은 바로 이슬람의 5대 교리 즉 주요 의무사항 중의 하나인 금식을 종교의식의 방식에서 충실이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슬람 신도의 행동이다. 금식의 경우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이 계시한 12달 중에 제일 성월의 달로 우선시 하고 있고 마그립 마산 마음이 쓰라리기도 했다. 초등교육을 한국에서 받 은 나 역시 이러한 사실이 마음 아팠지만 마임 마치 지중해 의 집처럼 붉은 기와 지붕과 베이지색 벽으로 된 건 물이 등장한다. 왼쪽 건물은 상설 전시실 명부 작성 모국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뿌리를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 며 대한민국 모든 버스에 경사로가 있는지 확인했으며 모래사 장의 아이들 모로코에서 발견된 2억 3천만년전 쥐라기 시대의 조개 화석 문화 미국 등으로 이주하게 됨으로써 미국 출신 순례자 들을 위해 출시한 플랫폼인 누숙(Nusuk)을 통해 등록한 뒤 올해 하지(Haji)를 수행할 수 있었다. 누숙에 순례자 신청을 하고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원유 확보와 새로운 유전 개발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최 회장은 수하르토 대 통령의 최측근인 베니 무르다니 장군의 인맥을 활용해 서부 마두라 광구 유전개발 사업을 성 사시켰다. 베니 장군은1969~1973년 기간에 주한 총영사로 근무했던 지한파이다. 앞서 최 회장은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부탁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 로 가던 유조선 뱃머리를 돌려 한국에 공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온 동갑 친구 아린이는 ‘우리 또 언제 봐?’ 라며 울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꼭 안아주며 ‘꼭 또 만나자’ 라며 다독여주었다. 눈치 없는 버스는 너무 빨리 도착 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롤링페이퍼를 다 적지도 못하고 인스타그램 아 이 디도 모두와 다 교환을 못한 채 나는 김포공항 행 버스에 올라 탔다. 하지만 괜찮다. 캠프에 있던 모든 친구들과의 추억은 이미 마음 속에 저장해 두었으니까...... 사실 이 캠프는 친구들의 추천으로 한국 문화 체 험이나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캠프는 기대 이상이었다. 내 생에 최초 마산 친구 도 만들었고 미국 친구도 만들었고 러시아 친구도 만들었다. 이 캠프는 오로지 문화 체험 미술 민속 예술 민회) 는 1945년 9월 1일 설립돼 구성원들이 모두 귀 국선을 타게 되면서 1946년 4월 13일 해산한다. 자카르타 꼬따(Kota) 지역에 본부를 두고 빠사르 스넨(Pasar Senen) 주택가에 주택을 수십 채 임 차하여 극장 박물관 안 정원에 자리하게 되었다. Dia.Lo.Gue Arts Space 다음 탐방지는 맛있는 음식과 예술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 반덤핑 정책과 수입 보호 조치 등 과도한 선 적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를 관련 부처에 촉구했다. 2024 년 6월 월간 뉴스 브리핑 제공 : 데일리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11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내 회원수 기준으로 최대 이 슬람단체인 나들라뚤울라마(NU)에 석탄 광업권 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 30일 종교단체가 광산 자 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에 조코 위 도도 대통령이 승인했고 반둥조선인 회 반면에 비통한 전쟁과 억압의 역 사를 보면서 슬픈 마음을 금하지 못하기도 한다. 인류문화사 심층에는 반드시 종 교라는 씨앗이 심어져 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저변에는 유. 불. 선의 3교를 비 롯한 인도의 힌두사상 그리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발레인더 밤에는 기존 하루 다섯번 예배 외 에 따라위 특별 예배(Shalat Ijtihad)로 자신의 심 적 고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 믿음에 대한 만족 과 신뢰감 그리고 믿음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10일의 경우 이슬람 율법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사도 무함맛의 선행을 잘 이행함 은 물론이고 부대장 친척 주아나(Juana)를 생포한다. 이 듬해 8월 10일(5월 말 설도 있다) 양칠성은 일본 인 동료 두 명과 함께 가룻 시내 공동묘지에서 공 개 총살된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린체 (Lience Wenas)를 만나서 에디 자완(Eddy Jawan)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1975년 다후란 등 ‘빵에란 빠빡 부대’ 동료 였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식 청원하면서 양칠성과 아오키 부분에서 전체로 덮어 올리는 채색이 이 루어진다. 독특한 기법 불법 계획의 주모 자로 여겨지는 3명은 현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14 I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자카르타 대성당이 이슬람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이 둘아드하(희생절)를 앞두고 인근에 있는 이스티크 랄 대사원에 희생절에 쓸 소 한 마리를 기증했다. 이스마일 짜위두 이스티크랄 대사원 대변인은 “대성당으로부터 소 한 마리를 기부를 받았다” 며“이번 기부는 종교적 관용과 우정의 상징이 다”라고 말했다. 대성당은 또한 무슬림들이 희생절인 6월 17일 아 침에 열리는 기도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성당 주차 장을 개방했다. 이와 관련 비록 한국어 보다는 본인이 현재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나 영 어를 구사하는 것이 더욱 편한 친구들이 비용은 2억3 빈 공간의 중요성 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으로 빈 부격차도 크고 사람을 한 곳으로 모은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곳이 다. 자카르타 지역 버따위(Betawi) 언어로 그/그녀 (Dia) 사우디로부터 순례자 쿼터를 매년 20만 명 이 상 꾸준히 받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특별 초대 비자인 무 자말라 비자(Mujamalah visa)를 가지고 출발하 므로 대기시간이 없고 사회> 이 단체 사후 세계에서 자신들의 믿음을 통해 천국(Surga)으로 갈 수 있다고 무슬 림 신도들은 믿고 있다. 이슬람의 주요 5대 교리 중의 하나가 바로 금식 라 마단 이슬람 5대 의무 중 4번째 항목이다. 1. 신앙고백 (Syahadat) :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 님을 없고 무함맛은 그 분의 마지막 예언자이시다 (유일신 강조) 2. 예배 (Shalat) : 하루 5번 (파자르 산림이 우거 져 있어 대부분 그런 자연환경을 생각하겠지만 수 도인 자카르타는 국제 도시로 굉장히 크고 발달되 어 있다고...비록 인터넷이 한국보다 느리고 시스 템이 느리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그 나라의 특징에 맞춰 ‘느림의 미학’을 느끼며 살 수 있 는 곳이라고... 또한 ‘무궁화’라는 큰 한국 슈퍼 체인이 있어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제품을 구 할 수 있다고... 나의 말을 들은 친구들은 본인들 이 생각했던 인도네시아와 너무나 달라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못 사는 사람도 많고 새 공장이 해외 바이어 주문 감소로 어려움 을 겪고 있는 현지 섬유봉제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루훗 장관은 수방 지역은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꺼르따자띠(Kertajati) 국제공항이 있다며 중국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주 장했다. 그는 토지 수용에 대해 농업공간기획부 장관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며 새로운 터미널은 공항의 수용 능력을 크게 확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2터미널의 면적은 5만m²에 달하며 서민들의 일상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Bonny의 작품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를 사랑한 외국 작가들의 작 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식민지 시절 예술 활동이 어려웠던 인도네시아인들을 대신하여 이 땅의 아름다 움을 캔버스에 담아왔다. 유독 눈길이 가는 그림이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화 가 Pierre Guillaume은 발리의 시장과 상인 서부자바주 가룻 독립영웅묘지에 안장된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우쓰미 아이코(內海愛 子)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 부부가 서재 심지어 화장실까지 모두 전시실로 사용되며 그 안의 전시물 중 Sjahrial Djalil이 가장 우선시하는 수집품의 이름을 따서 전시실 이름 을 붙였다. 각 전시실마다 다양한 종류의 수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미국 한 박물관 전시물과 한 쌍을 이룬다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테라코타 선반에는 스낵이 넘쳐났다. 하지 요원들은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다뤘고 성월의 달을 30일로 계산 성월의 보름달이 비추는 특별한 날 을 통하여 금식일 라마단 달에 제일 큰 행운과 축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라마단 금식 기간 을 통해 또한 이 기간에는 이슬람 신도들이 흔히 두려워하는 지옥의 길을 피하고 성지순례 기간에 못할 경우 단식 절차의 순 례인 움러(Umroh)를 다녀옴 이슬람의 신도들은 주요 5대 교리 외에도 6 종류 의 믿음이 있다. 1. 유일신(Allah) 2. 천사들(Malaikat) 3. 하나님의 성서들(Kita-kitab Suci) 4. 예언자들(Nabi & Rosul) 5. 내세(Hari Akhir) 6. 정명 (Qada & Qadar) “이슬람 율법을 기초 근거로 한 금식에 대한 올바 른 이행과 능률적 사고 행동 진작” 금식을 통해 올바른 변화와 이해 세계 종교의 사상적 뿌리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종교가 인간에 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종교에 대한 이해와 공부에 대한 지식도 그만큼 소중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21 인도네시아 금식월 (Rahmadhan)에 대해 알아보자 금식월이면 어김없이 바쁜 일정을 보낸다. 각 교 육기관이나 정교. 정부단체 등의 모임에서 금식 일에 대한 주요 의미와 이행 그리고 그 목적 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의 교육을 많이 해왔다. 이번 호에는 본인이 인도네시아 식약청(BPOM) 을 방문 쇼핑몰은 있는지 수르요 수만또(Surjosumanto) 등에게 영화와 연극에 대 해 가르쳤다. 1947년 12월 2일 딴중쁘리옥 항구 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휴전 협정 조인 식의 기록사진을 찍은 사람도 허영이다. 1949년 독립전쟁이 종식된 후 허영은 자카르타 로 돌아와 영화제작사 ‘키노 드라마 아틀리에’ 를 설립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수방 지역은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 BYD의 공장과 가까운 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루훗 장관은 이 투자가 곧 실현될 것으로 기대한 다며 수출지향 산업에 투자 하는 투자자들에게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덧 붙였다. 한편 인도네시아 산업부는 자국의 섬유봉제산업 의 성장 둔화 원인을 주요 생산국의 덤핑 행위로 보고 수카르노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신생 정부는 350년 만에 찾아온 독립의 기회를 사수하 기 위해 다시 네덜란드와 4년간 ‘독립전쟁’을 벌였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강대국인 미국을 비롯 한 연합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에는 역부족이 라고 판단하고 수하르토 대통령 등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 다. 개발 초기인 1968년 인도네시아에 대한민국 해병대 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맹수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원시 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 임상조사와 위급환자 후송 등 목적으로 1969년 한국인 최초로 경비행기를 구매하는 등 수많은 일화를 남길 만큼 생각과 행동이 보통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7 최 회장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애국자이다. 동서냉전기인 1964년 북한은 인도네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압도했고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지만 관련 사업의 경험이 없는 단체는 이를 경영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건설 공사가 지난 5월 30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며 숙소로 사용하였다. 본부에는 중경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보낸 태극기를 게양했 다. 민회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회원들에게도 숙소 를 제공하고 집단생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 리고 일본군과 교섭하여 넉넉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물자와 자금을 확보한다. 조선어 교실 을 개설해 귀국을 앞둔 동포들에게 모국어를 가르 치고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 Museum Di Tengah Kebun - Dia.Lo.Gue Arts Space - Duta Fine Art Foundation 추은진 (한인니문화연구원 팀장) 비가 올 듯 말 듯 촉촉한 토요일 아침 스마랑조선인회 등 지역명을 딴 조선인(혹은 고려인)민회를 결성했다. 민회는 일본군이나 연 합군과 교섭을 통해 식량과 물자 확보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하고 시간이 12시 5분을 가리키고 있는 걸 알게 된 내 친구는 ‘진짜 마지막이네…’ 라며 울상을 지었다. 별 리더선생님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이제 각자 방 으로 돌아가주세요’ 라고 했을 때 우리는 아쉬운 표정으로 ‘잘 가......’ 라며 서로를 벌써 그리워 하고 있었다. 마지막날 아침 시장 93명을 선출하는 지방선거 태세 에 돌입했다고 10일 자카르타포스트가 보도했다. 지방선거 입후보자들은 8월 19일까지 총선거관 리위원회(KPU)에 후보등록을 해야 한다. 이에 주요 정당과 정치인들이 후보 선정에 분주히 움 직이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는 후보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차남인 까에상 빵아렙 인도네시아연대당(PSI) 대 표이다. 외식업을 하는 까에상은 310만 명의 엑스 (X·옛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이자 솔로시 축구팀 퍼르시스 솔로 구단주이기도 하다. 최근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지방선거법에서 주지 사와 부지사의 최소 연령을 30세로 제한한 것과 관련 연령 기준 시점을 출마 시기가 아닌 취임일 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연령 제한 기준 시점이 바뀜 에 따라 조코위 대통령의 차남인 까에상이 주지사 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그는 1994년 12월 25일생 으로 올해 생일에 만 30세가 된다. 이번 지방선거가 11월 27일이기 때문에 기존 규정 만 30세 이상 기 준을 적용하면 주지사에 출마할 수 없다. 11월 선거 에서 당선된 후보는 2025년 초에 취임한다. 까에상은 당초 자카르타 인근 위성도시 데폭시 시 장에 출마할 것이란 이야기가 많았다. 지방선거법 상 시장 연령 제한은 25세 이상이다. 인도네시아 정당들 식 당 아 샤르 아랍 일부 국가의 멸망으로 몇몇의 능력 있는 부유층 무슬림의 경우 유럽이 나 아프리카 아련함과 향수를 자아내며 아버지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그의 친 형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의 뒤를 잇게 된다. 조코위는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를 거쳐 2014 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아진 안디까 뻐르까사 전 인도네시아군(TNI) 사령관 등을 놓고 저울질 하고 있다. 한편 조코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PDIP는 조 코위의 사위인 보비 나수티온이 북부수마트라 주 지사에 출마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앞 서 보비는 PDIP의 지지를 받아 메단시장이 됐으 나 알아듣지도 못하 겠고 대답하기엔 너무 버거운 질문들을 쏟아 내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국제학교에 입학을 해서 정 말 몸도 마음도 정신도 너무나 힘든 시기를 눈물 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에서 통역도 해 주고 점심시간에 같이 앉아 한국어로 이런 저 런 학교 생활을 이야기해 주던 그 친구가 없었더 라면 그 고된 시간을 버텨내어 지금까지 올 수 있 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점점 외국생활이 익숙해 질쯤 이제는 한국에 있는 한국친구들의 유 행어를 따라잡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한국친구 들 약간은 단조로운 푸르죽죽함 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화려한 색감으로 양국의 우호 양칠성 대한민국’으로 바뀐다. 2023년 11월 10일 서부자바주 가룻군은 인도 네시아 영웅의 날을 맞아서 찌삐쭝 마을의 한 도 로에 양칠성의 이름을 딴 ‘잘란 코마루딘(양칠 성)’을 명명했다. 찌삐쭝 마을은 팡에란 파팍 유 격대의 기지가 있던 곳이다.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사진. 양칠성의 묘비 여러 시대를 망라한 갖가지 종류의 수집품들을 한 곳에서 감 상할 수 있다는 것이 ‘다양성’을 강조하는 인도네시아의 국가이념과 닮아 있어서 Museum Di Tengah Kebun의 매력을 한 층 더 느낄 수 있었다. 관람의 마지막 순서인 뒤뜰은 ‘가네샤(Ganesha) 정원’이라 불린다. 이름대로 그 중앙 에 거대한 가네샤 상이 있는데 여러 예술품과 인 도네시아 예술에 관한 기록을 수집해 오고 있다. 솔로 출신으로 에너지 회사 회장인 Wiwoho Basuki와 꽃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인 부인 Kartini Basuki가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다. 두타 재단의 이사인 하멜(D.Hamel)을 빼놓고는 두타를 이야기할 수 없다. 화가이자 큐레 이터 여전히 고유한 정 체성을 형성하는 정신과 전통이 살아있는 인도네시아를 높이 샀다. 두타에서 키운 많은 작가 중에서도 존 반 데어 스테렌(John van der Sterren)은 대중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작가이다. 상설 전시실을 지나 영어로 빼곡히 칸을 채운 은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모국연수를 하는 6박 7일동안 우리는 한국의 다양한 명소를 방문하고 함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며 한국 문화 를 몸소 익혀 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선구 자가 됐다. 일제 패망 이후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귀환하였 지만 허영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인 도네시아 독립투쟁에 참여한다. 1946년 식민종 주국이던 네덜란드가 영유권을 내세우며 인도네 시아를 침략하자 예 린 예술가 들의 활동이 함께 이루어지는 예술 플랫폼을 지향함 을 반영한다고 한다. 끄망 남부에 위치한 Dia.Lo.Gue Arts Space는 인 도네시아의 유명 건축가 안드라 마틴(Andra Matin) 이 오래된 사무실 건물을 재디자인하여 완성한 작품 으로 1999년에 이미 건축상을 받았다고 한다. Arts Space로는 2010년에 오픈했으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보다 나은 이 해를 위해 연구원 윌리암(William) 국제교류팀장과 김경애 선생님께서 통역과 해설에 도움 을 주셨다. Museum Di Tengah Kebun 첫 번째 탐방지인 Museum Di Tengah Kebun 은 2013년 박물관 평가에서 최고의 개인 박물 관으로 선정된 곳이다. DKI 지방정부로부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두 번이나 상을 받은 곳으로 예술을 찾아보는 여행이었다. 가까이에 있다고 당연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한 걸음 다가가 들여다보아 야 보인다. 보고 느껴야 알게 되고 오른쪽은 빵에란 빠빡 부대 활 동 당시 모습 [출처: 책 적도에 묻히다에서 캡처] 60 I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8) 인도네시아에 남은 조선인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로 온 조선인 중 소수는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는다. 영화 감독 허영은 족자로 망명한 수카르노 정부에서 홍 보 활동을 하고 온갖 좋지 않은 행동 등의 몸 가짐을 금식기간에 바른 자세로 전 환하고 절제 등을 통한 이슬람 종교 율법의 가르 침에 응하라! 하는 더 깊은 의미도 있다. 그리 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IMAN) 올 상반기 에 1만3천명 이상이 해고됐고 올바른 종교의식 과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Allah)께서 배려해 주 신 천국으로 가는 제일의 지름길이라고 무슬림 신 도들은 믿고 있다. “Ya ayyuhal ladzina amanu kutiba ‘alaikum ush-shiyamu kama kutiba ‘alalladzina min qablikum la’allakum tattaqun” Al-Quran Surah Al-Baqarah ayat 183 쿠란 알바카라 183 문장에 언급한 금식의 의미: 이슬 람을 믿든 신도이시여 ! 금식은 당신들의 의무조 항이고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기차 도매 판매량 은 9 옷을 개고 가방을 정리하면서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 라는 심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내 친구들과 나의 양말 외국인이 현지 거주 허가를 증명하고 거주국 쿼터를 쓸 수 있다. 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하지 쿼터 25 요구하는 서류를 정해 진 기한 안에 제출하면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려는 노력에 있어 서 인도네시아의 좋은 동반자라고 말했다. 이날 프라보워 당선인은 압둘라 2세 국왕에게 “인도네시아 정부는 악화하고 있는 가자 지구의 상황을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다”며“인도네시아 는 극도로 취약한 가자지구 주민들의 현재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라보워 당선인은 인도네시아 1998년 사태 직 후 요르단으로 건너가 장기간 거주하면서 압둘라 프라보워 당선인 우리 그룹의 영상이 공 개되고 반응은 아주 좋았다. 친구들은 영상을 보 고 캠프가 더 생각날 것 같고 벌써부터 그리워지 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비록 5박 밖에 보지 않았지만 정말 정이 들어버린 아린 우리 문화의 장점과 인도네시아 문화의 장점 을 통해 새로운 창작 문화의 (Corporate Culture)융합과 화합의 하모니를 형성해 보자. 우리 의 삼시를 새기자는 것이다. 마지막 날 밤이 왔을 때 우리가 주역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청소년부 대상 주ASEAN대한민국대표부대사상 황다인 (BSJ 우리는 8개 조로 흩어졌다. 나는 6조에 배 정되었다. 6조에는 외국에서 온 아이들과 마산에 서 온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쑥스 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활동을 통 해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팀 단합을 위 해 팀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육개장은 어때?’ 라는 선생님의 제안에 우리들은 ‘육개장’은 너 무 아재장난이라며 선생님을 나무랐지만 생각해 보니 육개장은 깔끔하면서 얼큰한 맛이고 짠 맛 같으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다양한 종류의 맛을 가 진 것이 마치 우리 팀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 같았 다. 우리는 ‘육개장’조로서의 다양성을 유지하 며 서로의 맛은 존중하자는 규칙을 세워 5박 6일 동안 재밌게 놀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실컷 놀다 보니 이틀 후 면 뿔뿔이 전세계로 흩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 다. 우리는 마지막 날밤에 있는 프로젝트 랩 발표 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Project Lab’은 영 상 우리의 뿌리인 대한민국에 모여 한국을 알아가고 함께 배 꼽 잡고 웃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 라는 마음 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이다. 짧지만 강렬하 게 한국을 경험하고 우리는 모두 다 각자 나라로 돌아가지만 7일 동안 우리가 함께 한 추억들이 하 루하루 살아 가며 지치고 힘들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며 우리의 삶을 더 욱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중버뚱 위자야 까리아(PT Wijaya Karya)로 구성된 컨소시엄인 바탐 국제공 항(PT Bandara Internasional Batam 유럽 등 대부분의 서구 시장이 경기 침체를 겪음에 따라 많은 수출국들이 대체 시장으로 인도 네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 일간지 비즈니스(Bisnis)의 지 난 6월 중순 보도에 따르면 유럽인 캠 프의 호텔 복도에 있는 냉장고에는 각종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이 있었고 유리페인팅의 다양한 기능 등이 그 주제이다. Duta Fine Arts Foundation 마지막 탐방지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작 품 컬렉션을 소유한 Duta Fine Arts Gallery 이었 다. 인도네시아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며 유머 감각 등을 두루 갖췄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부터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유족이 없 고 일본 이름치곤 이상한 한 사람을 집요하게 추 적하면서 양칠성이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 는 것이 밝혀진다. 1995년에는 한국 시민단체 등 의 노력으로 묘비명이 일본인 ‘야나가와 시치세 이(梁川七星)’에서 ‘KOMARUDIN 육(六)! 개장(開場) (육조 은근히 타오르는 뜨거움 을 이끌어내는 것은 인도네시아를 향한 Guillaume의 애정일 것이다. 제 339회 문화탐방은 우리 주변의 역사 음식을 제공 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네덜란드인 포로들을 도와 주었다. 당시 수까미스낀 수용소에서 김만수와 같 이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로는 유홍배ㆍ이병용 등 이 있었다. 김만수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하여 자카르타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는 1966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총영사관 개 설에 일익을 담당할 만큼 초창기 이곳 한인사회 형성에 공헌하였다. 유홍배는 중국계 인도네시아 인과 결혼하여 1970년대 초에 자카르타에서 사 망하였다. 이병용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해 동부자바 주도인 수라바야에서 살다가 그곳에 서 사망하였다. ★허영 음악 이 비참 한 역사를 처음으로 접한 친구들 역시 충격에 깜 짝 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프로젝트 Lab을 통해 한민족의 연합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I 53 과 우리나라 문화를 접하는 활동을 하였다. 우리 는 아리랑을 리믹스한 노래에 맞춰 태극기를 들고 안무를 하는 활동하였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부분을 태극 기를 흔들면서 무대 위를 활보하며 우리는 유관 순 열사가 느꼈을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충성 심을 느낄 수 있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친구들 과 나는 마치 삼일절에 ‘대한 독립 만세!’를 외 치는 용감한 대한민국 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독립 기념관에서는 한국의 전통춤을 볼 수 있 는 기회도 얻었다. 꽹과리를 울리며 다양한 색감 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는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묻혔으리라 생각하니 보다가 가슴이 갑자기 울컥해졌다. 또한 전시되어 있는 것 중 한국어로 156년 전에 쓰인 글을 보니 내가 평소에 부모님과 사용하는 한국어가 다시 보 였다.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만 여겨지던 것이 옛 날에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배우며 우리 민족 의 정체성을 지켜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또한 이 중 1만 명 가량 이 고용했던 회사에서 해고수당을 받았다. 루훗 장관은 경제성장률을 연간 6.5~7%로 끌어 올리려면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수출지향 제조업 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며 이 친구는 내게 편지 한 통 을 내밀었다. 편지안에는 인도네시아어 이 행되는 르바란 이슬람 최대의 명절 행사이다. 이 슬람 명절 르바란의 시작은 금식을 마친 다음 날 전체적으로 단체 예배를 동네 운동장이나 넓은 공 간 아니면 모스크를 통해 합동 예배를 이행한다. 합동예배를 마치고는 차려 놓은 이슬람 명절의 대 표적인 음식 끄뚜빳(찰밥과 비슷)과 염소사테. 양 고기국을 온 가족이 모여서 우리 한국의 설 명절 과 같이 이는 각 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경우 1년에 한번 르 바란 보너스를 받는 달이기도 하다. 르바란에는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고향을 찾기 위해 민족 대 이동(Mudik)을 시작하는 데 이는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하는 추세와 대조된다. 인도네시아자동차제조협회(Gaikindo) 자료에 따 르면 이는 인도네시아의 종교적 관용 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카르타 대성당 이러한 과정은 모두 누숙에서 모니터할 수 있다. 띠엔은 자신은 가장 저렴한 6 이로 인해 코데코의 사세가 기울었다. 초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은 최계월 회장은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에 유치원 이미 오래 전부터 당신이 이행하기 전에 이행되었기에 당신도 강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의 길을 가노라! UIN Sunan Kalijaga 대학교수 아흐맛 자난씨 의 금식을 통한 이슬람 율법의 근본 도덕적 행동 의 장점은…? 1.열심히 자신의 역량을 넓혀 일하는 것은 하나님 곁으로 가는 믿음의 신뢰이고 2. 지식을 넓혀 나가는 기회이고 3. 하나님 Allah의 지시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길 이니라 -책임감 고취 -하나님 Allah에게 좀더 다가가는 믿음의 길 -다수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배움의 길로 인도하노라 금식을 통한 마음의 정서에 대한 선물 1) 하나님Allah대한 축복의 감사 2)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바른 행동 3) 인내심 고취 (인고의 연습) 4) 마음의 정서를 가다듬고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좀더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는 기회 5) 금식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하나 님 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더욱 숙지하게 됨 6) 마음의 안정과 평화 부드러움을 심취할 수 있 는 시간. 금식에 대한 정의가 보다 넓게 알려져 있으나 이샤) 3. 자선 또는 선행 (Zakat) : 주변 불우한 이웃들 에게 베푸는 절차 4. 금식 (Puasa) : 금식(Puasa/Rahmadhan)을 통한 많은 깨달음의 경지 5. 성지순례 (Haji) : 이슬람 신도라면 의무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통한 성지 순례 이스마일은“이는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호혜정책이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이스티크 랄 대사원 역시 대성당 신도들을 위해 주차장을 개 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희생절에 약 25만명의 무슬림이 대규모 기도회를 펼칠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시내 중심에 있는 자 카르타 대성당은 자카르타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 이다. 자카르타 대성당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이스티클랄 대사원과 서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으며 이슬람 교리 공부를 통한 종교 지식과 믿음을 높이고 이슬람 최대 명절 르바란 이슬람 명절은 한달 금식월이 끝나고 이슬람교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슬람단체 NU에 석탄광업권 부여 Coal(PT KPC)의 기존 광업권의 일부라고 말했다. KPC의 광산 면적은 2022년 신규 허가를 받으면 서 약 29 이슬람의 의무사항 중의 하 나인 금식과 르바란 이슬람 문화 풍경에 대해 스 케치를 해 보았다. 이슬람 문화에 이해와 학습을 통해 이제는 이슬람을 단순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 고 이슬람의 의미와 금식의 중요성 그리고 르바란 안선근 박사 (UIN 국립이슬람대학교 이제는 오는 11월 27일 주지사 37명 이집트 무덤에서 가져온 50여개 세트 중 하나인 작은 셉티 수호석상 이후 글로독 형무소로 이감된다. 1946년 4월 무 렵 이후 이슬람학교 설립 자금을 후원하 는 등 인도네시아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자바에 전파되었으며 찌 르본이 그 중심이 된다. 특히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신질서 엘리트들의 지원과 중산층의 관심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부족해졌고 예술 가 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이에 Dia.Lo.Gue Arts Space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유명 한 딴질(Tanzil) 선생님과 부인 엔젤 여사는 이 전시회를 통해서 인도네시아 민속예술인 유 리페인팅의 역사를 알리고 문화유산으로서 그 기법을 보전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5년 동안 준비하고 기획하였다. 유리페인팅은 일반페인팅과는 다르게 유리의 뒷면에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그 려진 뒷면이 아닌 앞면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그렇기 때문에 넓은 면적을 칠하고 세밀하게 묘 사하는 인 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인 천국제공항공사(IIAC)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1915~1949)은 인도네시아 외국인 독립영 웅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과 친일 매국노 사 이를 오간 조선인 영화감독 허영(1908-1952)은 ‘독립 인도네시아’를 꿈 꿨던 한국인 영화감독으로 일본식 이름은 히나 츠 에이타로(日夏英太郞) 인도네시아 및 해외 예술 작품 및 기록물들이 전 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3 인도네시아 영화공사(BFI) 관 계자들과 함께 족자카르타로 가서 수카르노 망명 정부에 합류한다. 허영은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선을 누비며 항쟁의 역사를 뉴스와 기록영 상으로 담아냈고 한편으론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 했다. 허영은 당시 일본 군정감부 선전부 소속 인 도네시아인 직원이었던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 인도네시아 이름은 꼬마루딘(Komarudin) 이다. 양칠성은 일본군 군속으로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파견돼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뒤에 양칠성은 귀국하지 않고 한국인 동료 8명과 함께 인도네 시아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1946년 양칠성 은 200~300명 규모의 ‘빵에란 빠빡 부대’에 서 행동조의 팀장으로 활약했다. 반둥 인도네시아 이름은 후 융이다. 1948년 허영은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 시아의 독립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오르고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 인도네시아 전기차 판매량 증가세 장 규모가 2030년에는 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 로 예상했다. 올해 초부터 5개월 간 가장 인기 있는 전기차 모 델은 중국 자동차 제조사 울링(Wuling)이 생산한 전기차로 5 인도네시아 정부 자료에 따르면 종교부에 등록한 하지 희망자는 530만 명 이 넘는다. 하지만 영국이나 한국처럼 하지 쿼터보다 가려는 사람이 적어서 자리가 남으면 인도네시아는 신청 때부터 일반 인도네시아는 하지를 가 려는 사람이 쿼터보다 많아서 대기시간이 길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이 많은 국가 로 인도네시아도 많은 국가와 마찬가 중국 인도네시아섬유협회 (API)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기간에 20~30개 의 공장이 운영을 중단함에 따라 10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섬유봉제공장 건설 추진 지로 새로운 시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현재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미국 인도네시아의 자연 은 이렇게 따스하지 않다. 사시사철 싱그러운 푸르름을 넘어서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 모 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등 개성 넘치는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이 흥미로웠다. 바틱 그리기를 즐겼 던 Sukamto의 민화 풍 그림은 바틱의 아름다움을 바 탕으로 전통적 주제를 새로운 양식과 결합하려는 시 도가 보였으며 인스타그램에 서로 의 일상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눌러 주는 특별 한 사이가 된 것이다. 한국에 방문하더라도 서울 또는 친할머니가 계 시는 대전이 전부인 내게 경상북도라는 곳은 새로 운 곳이기에 장장 5시간 동안의 고속버스 이동 중 에도 지치지 않았다. 봉화에 도착해 다양한 나라 에서 온 친구들 인프라가 제대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 않지만 자원이 풍부하기에 언젠가는 도약하 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나라 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내비쳤다. Part 1. 육개장 일반 트랙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로 완성된 그림 들은 명암이 표현되지 않아 한 컷의 Cartoon(만화) 같은 느 낌이 들었다. 또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감상하는 그림은 얕은 입체감이 보이면서 그 자체로 액자에 넣은 것 같이 보였다. 여러 수집가와 박물관으로부터 엄선해 가져온 유리페인팅은 4월 11일 까지 전시된다. 작품들은 여러 테마로 나뉘어 구역 별로 전시되었는데 일본 정·재계와 돈독한 인맥이 있던 최 회장은 외교 수완을 발휘해 네덜란드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귀속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2년 최 회장을 인도네시아에 특별 초청했 고 입구가 잘 눈에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전시 공간이자 거주지인 Museum Di Tengah Kebun은 소유주의 의도대로 건축되었고 전시 되어 있다. 역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 80 자신이 받은 서비스가 만 족스러웠다고 말했다. 띠엔에 따르면 자야꾸스마(Djajakusma) 자카르타 시내 인구 가 거의 텅 비었을 정도로 한산하고 교통도 혼잡 하지 않을 정도로 각자 고향을 찾아 떠나는 민족 대이동 현상이 수도 자카르타부터 시작된다. 개중에는 르바란 명절 휴가가 거의 1주에서 2주 에 끝나면 자카르타 인 구밀도의 증가추세를 막기 위한 주요 지역 통제를 했었던 바 있다. 르바란 명절이 끝나면 이슬람 문화의 또 하나 의 독특한 점은 축제“Halal bi Halal : 할랄 비 할랄”(1년에 있어서의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다시 함께 잘 해보자) 행사이다. 그리고 각자 가 슴에 손을 얹고 다짐하면서 두손 모아 인사를 하 거나 악수를 하고 “Minal Aidizin Wal Faizin: 미날 아이딘 왈 화이진”.“Mohon Maaf Lahir & Batin”영혼과 마음을 통해 상호 용서를 구한 다”라는 의미의 이슬람 무슬림 신도들의 한해 다 시 잘 해보자는 인사말이다. 결론 이슬람의 금식과 르바란 이슬람 명절에 대해 이 번호를 통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지인이나 모르는 경우의 경우 미력이나마 도 움이 되었으면 하고 자카르타포 스트가 보도했다. 루훗 장관은 중국 기업이 서부자바주 수방과 중부 자바주 수꼬하르조에 각각 의류 공장을 세울 예정 이며 작가이면서 배우인 프랑스인 Hamel은 1986년 갤러리 설립부터 함께했던 인물이다. 64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1970년대에 인도네시아로 건너와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위해 예술을 소개하는 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재봉틀도 비치해 여성들에게 양재기술을 가 르치는 등 귀국 준비를 시켰다. 또한 『조선인 민 보』라고 하는 기관지를 등사판으로 인쇄해 매주 배포했으며 100호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7)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운 조선인들 일본이 패전한 후 네덜란드가 다시 일본을 점령 하자 재자바조선인민회 종전 후 전범 처리나 귀국선 탑승을 기다리며 자 카르타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은 약 1 적십자 봉사요원이었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 우이 마리아(Oey Maria)의 도움을 받아서 석방된다. 후일 유형배는 우이의 딸인 스리 뿌르 나마와띠(Sri Purnamawati)와 결혼해 5남 1녀 를 둔다. 1951년 유형배 부부는 자카르타 북부 안쫄 지 역에 인도네시아 최초의 메리야스 공장인 글로리 아사(PT. Gloria)를 설립한다. 당시 적십자 활동 을 하며 대통령 영부인 파뜨마와띠를 비롯한 고위 층 부인들과 교분을 가지고 있던 우이가 그의 사 업을 지원했다. 1954년 유형배는 자카르타 뜨붓 지역에 두번째 사업체인 트리코트를 생산하는 회 사 뻐르소조(PT. Persodjo)를 설립해 종업원 수 1 전범 조사를 받기 위해 임시수용소에 수감되고 전시되는 작품에 따라 건물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현재는 “Cerita Kaca”라는 제목으로 유리페인팅 전시가 진행중이다. 유리페인팅은 14세 기에 유럽에서 시작했으며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요 지를 정리하고 이슬람의 금식기간이 포함된 라마 단의 중요성과 금식 이후 르바란 인도네시아 무슬 림들의 분위기를 설명해 본다. 금식의 의미는 식. 음료 절제 외에 나 자신의 주 변에 탐욕의 유혹과 이슬람신도로서 도덕적 위반 행위에 대한 이슬람 율법이 금하는 모든 악의 근 원으로부터 멀리 한다. 즉 우리 신체의 5가지 주요 기능(Panca Indra) 중 입-언어의 조심 전체에서 부분으로 쌓아 올리는 채색이 아니라 반대로 강조되는 부분을 먼저 그리고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63 그 뒷배경을 칠하는 전화로 프라보워의 대 선 승리를 축하할 만큼 가까운 관계이다. 그는 프 라보워를“나의 형제”라고 부르며“인도네시아 는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프라보워도 “나는 암만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앞서 프라보워 장관은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가 자지구 난민 아동 1천명을 인도네시아 이슬람기 숙학교에 보내자는 코피파 인다르 파라완사 전 동 부자바 주지사의 제안을 환영한다며 조코 위도도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무슬림이 인구의 절대다수인 인도네시아는 오래 전부터 이슬람 형제국인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 지하며 이스라엘과는 외교 관계도 맺지 않고 있다.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15 인도네시아 정당들이 지난 2월 대선과 총선을 마 치고 절친 요르단 국왕과 팔레스타인 문제 논의 2세 국왕 등 요르단 정관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 았다. 앞서 압둘라 2세 국왕은 지난 3월 인도네시아 대 선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접점이 하나 도 없는 지역에서 온 우리지만 그때만큼은 10년 지기 죽마고우 같았다.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연예인 정부 와 업계가 주도적으로 충전소를 늘리기를 기대한 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는 2030년까지 전기 승용차 200만 대와 전기 오토바이 1 정수 호 조직원에 게 숙소 제공 종종 사기 행각도 벌어지고 있다. 2024년 6월 초에 남부술라웨시주 마카사르 출신 순례 희망자 37명이 가짜 하지 비자를 소지하고 입 국하려다 적발돼 사우디 당국에 구금됐다. 이들 중 34명은 인도네시아로 돌아갔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52 I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 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노래를 켜놓고 따라 부르며 춤도 추며 놀았다. 하 지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좋아하는 연예 인 이야기와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해 온 다양한 에 피소드에 대해 손뼉을 치며 서로를 공감해 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헤어지는 날 주흐르 중국 기업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 지역에 최대 10만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규모의 의 류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20일 루훗 빤자 이딴 해양투자조정장관의 말을 인용 중동 이슬 람 문화와 인도네시아 현지 문화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종교적 테마 중부 자바(Jawa)에서 발견된 금강수보살상 즉 이슬람 종교는 다 출산 문화와 이주민 정 책 지난 2월 대선에서 PDIP 후보인 간자르 프라 노워 대신 프라보워 후보를 지지해서 PDIP 당원 자격을 잃었다. 지난해에는 7 지방선거 태세 돌입 대법원 판단에 따라 카에상이 자카르타 주지사에 출마하면 지역 주 민과 기업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바탐 항나딤 국제공항의 제2터미널 수백만 명의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사우디아라 비아로 성지순례(Haji. 이하 하지)를 가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린다. 그러다보니 인도네시아 대신 다른 나라 쿼터를 이용해 하지를 수행하는 인도네 시아인도 적지 않다. 족자카르타에 있는 국립 가자마다대학교(UGM) 한국문화학과의 수라이 아궁 누그로호 교수는 한 국에 취업해서 오는 인도네시아인들의 희망사항 중 하나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 쿼터로 성 지순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Haji)는 재정적 여유가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가진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 이상 의무적으 “인도네시아인이 사우디 성지순례 가려면 해외에서 기회 더 좋아”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13 로 수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성지순례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하지 순례자 수가 2023 년에 180만 명에서 올해 240만 명 이상으로 늘어 날 것으로 전망했다. 사우디 당국은 각국의 무슬림 인구 수를 고려해 하지 쿼터를 배정하며 지역사회 진짜 전범인 일 본인과 조선인을 분류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면 서 빠른 귀국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에 조선인들은 인도네시아 각지에 재자바조선 인민회를 시작으로 팔렘방조선인회 차선책으로 게릴라전으로 시간을 끌면서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외교전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은 이를 위해 민병대 창설을 독 려하고 첫 번째 10일 금식이 시작한 일의 기간에는 하나님을 향한 성월의 초기 의식으 로 금식일 시작과 함께 충실히 이행하고 총 투자액은 6조 루피아(약 4억 달 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추가 계획에는 최대 10대의 항공기를 더 수용할 수 있는 항공기 플랫 폼과 공항 계류장의 신축도 포함된다. 연간 960만 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제2터미 널 건설은 앙까사뿌라 I(PT Angkasa Pura I) 최 회장의 산림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데코는 대한민국 1호 해외투자에 이어 1981년 ‘해외 유전개발 제1호’라는 새 역사도 썼 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중동발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최계월 “조국의 영광 최초의 메리아스공장 설립 유형배는 김만수와 함께 반둥 지역 수까미스낀 수 용소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 그는 동료 7명 과 함께 서부자바 지역에서 독립전쟁에도 참여했 다. 유형배는 1946년 4월경에 귀국선을 타기 위 해 자카르타 딴중쁘리옥 항구에 갔다가 체포되어 코-좋은 냄새 를 맡고 코데코는 외환보유고의 10% 규모인 450만 달러를 빌 려 인도네시아에서 산림개발에 투자했다.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고 남부 칼리만탄주 바뚜리찐 (Batu Licin) 지역에 27만㏊를 개발해 모국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지금도 현 지 간선도로의 이름이 ‘잘란 라야 코데코’(Jalan Raya Kodeco)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최 회장은 183㎝의 우람한 체구와 선이 굵은 얼굴에 운동 으로 다져진 강인한 신체. 보스 기질과 배짱 태극기를 그리기 트리 리 스마하리니 전 수라바야 시장 포 로감시원 시절 동료인 유형배와 함께 한국 선수 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지원한다. 동아일보 특파 원은 1962년 9월 2일자 기사에 두 사람의 적극 적인 봉사 이야기를 소개했다. 1966년 12월 1일 주인도네시아 한국영사관이 개설될 때 포로 들의 실상을 ‘조작’한 이 영화는 종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되레 포로 학대를 입증하는 증 거로 채택된다. 한편 우스미 아야코는 그의 저서 『적도에 묻히 다』에서 일본이 패전한 직후 허영은 일본군과 협 상을 벌여서 일본군 감옥에 갇힌 조선인 군속의 석 방을 요구하고 조선인들이 귀국 때까지 머물 식량 과 자금을 일본 측에 요구해 받아냈다고 전한다. 허영은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안나 마 리아(Anna Maria Karuntu)와 결혼해 딸을 두었 고 피카소의 큐비즘을 연상시 키는 현대적 감각의 그림 하 나님(Allah)에게 자신의 모든 행동을 통한 신뢰 와 인정(Tawakal) 즉 하루 다 섯번 예배 외에도 이프타르 하루 금식일을 깨는 행사 후 마그립 저녁 예배 후 바로 따라위 라는 예 배인 11 번 절을 하는 방식의 예배를 금식기간 한 달 동안 하게 된다. 22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두 번째 10일의 경우는 10일 간의 그간 하나님 에게 보인 무모한 행동이나 이슬람 율법을 위한 사례에 대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곁으로 가는 올바른 선행의 행동을 말한다. 즉 성월의 러 마단 달은 하나님의 시험 고사장이라고 흔히 이슬 람에서는 말한다. 금식 성월 한달 동안 충실하게 러마단 금식이행 외에도 낮에는 쿠란을 낭송하고 암기하며 하세가 와 하세가와 등 3인은 처형 26년 만에 ‘외국인 독립 영웅’으로 추서 되고 학교 등을 지어주는 등 현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또 우리 기업 진출 초창기인 1976년 자카르타에 한국학교 설립(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학교생활 한 글과 한국 노래를 배우기 그리고 한국 춤·음악· 연극 등을 공연하며 조선인의 정체성을 찾는 활동 을 펼쳤다. 가장 먼저 설립된 재자바조선인민회(이하 한·인니 민간외교의 선구자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간 우호 관 계를 통해 회사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최 회장의 소망을 사훈에 담았을 것으로 그를 아는 사람 들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최계월 회장은 2015년 11월 향년 96세로 일본에서 별세했 다. 최 회장의 삶은 애국 한국문화에 항상 목마름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외국에 사는 한국인 아이들 에게 모국 문화 체험을 시켜준다는 글을 보게 되 어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바로 지원서 작성 을 준비했다. 두둥!! 드디어 결전의 순간. 호기롭 게 등록을 했으나 막상 새로운 친구들과 5박 6일 을 보낸다 생각하니 설렘만큼 걱정 한국어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음 글로벌 코리아 한때는 자카르타시 공무원들이 각 버스 버스터미널이나 주요 항구 등 한인니문화연구원 관람시에는 특별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박물관 전시관 까지 개방해주기도 한다. 주차장에 내려 아치형 정문을 지나면 한인니문화연구원(IKCS)에서 진행하는 339회 문화 탐방은 자카르타 남부의 끄망(Kemang) 지역에서 열렸다. 끄망 지역은 구석구석 작은 소품 가게와 갤러리 할 당할 광구는 이전에 석탄광산회사 Kaltim Prima 인니 정부 함께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명절날이라 고 보면 된다.이날 명절에는 모두 새 옷을 입고 자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23 녀들에게는 용돈을 주고 현대차의 판매량은 같은 기간 동안 2 현재 이 곳에는 그가 세계 63개국과 인도네시아 21 개 주로부터 수집한 2000여점의 역사적이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수집 품들이 전시 및 보관되어 있다. Museum Di Tengah Kebun은 내부 사진 촬영이 불가하며 호주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경매를 통해 모았다고 한다. 많 은 이들이 자신의 수집품을 함께 즐기기를 원했던 Djalil은 자신의 집과 컬렉션을 공개하기로 결정 홍콩 화장품으로 어지러져 있던 방이 이제 는 다시 깨끗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 보며 힘이 쭉 빠진 채 카드키를 뽑았다. 캐리어를 들고 내려가는 한 계단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내 방은 다른 친구들보다 높이 있어 떨어져 있다고 투덜대던 첫날이 기억났다. 그 날로 간절히 돌아 가고 싶었다. 타임머신이 내 눈앞에 있으면 하고 비는 와중에 나는 일층에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강당에 모여서 폐막식을 진행했다. 폐막 식에서는 롤링페이퍼와 인사할 시간이 있었다. 나 보다 한 살 어린 동생 근영이는 ‘언니 또 봐요!’ 라며 나를 꼭 안아 주었고 환경에서 자랐으니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잘 지내야지! 라는 굳은 결심을 내 여행 캐리어에 함 께 담았다. 나의 픽업장소는 김포공항. 김포공항에 가 보 니 모두 새로운 얼굴이었고 회관 회사의 번영’은 한국남방개발㈜(KODECO/코데코)의 사훈이 다. 매우 독특한 사훈에는 코데코 창업자 최계월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일 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에 폐허가 된 조국이 영광을 되찾고 회사의 번영”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투철한 애국심과 진정한 글로벌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의 선구자 ‘조국의 영광 훈련된 전투원과 무기를 확보를 위해 일 본군 출신 하사관과 사병들을 용병으로 중용했다. 이 과정에 조선인 35명가량이 인도네시아 ‘독립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8) 사진 1945.12.16. 재자바 조선인민회 반둥지 부.사진 [안승갑 회고록]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59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참전 한 조선인 중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양칠성 희생절에 이스티크랄 사원에 소 한 마리 기부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6월 11일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요르단 압 둘라 2세 국왕을 만나 가자지구에서 전쟁으로 피 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희생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양국 관계 증진에 대해 관해 논의했다. 요르단 사해에서 열린‘가자지구 긴급 인도적 대 응 회의’에 참석차 현지를 방문 중인 프라보워 국방장관은 오랜 친구인 압둘라 2세 국왕을 만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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