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 >>> 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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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명을 동남아 시아 전역의 포로수용소에 파견했다. 이때 동원된 조선인 3 000여명 중 약 1 100년간 함께 나아갈 여정에 있어서도 든든한 반석이 될 것으로 믿 어 의심치 않습니다. 작년 9월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한-인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제조 1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선정된 25명과 한인 회 박재한 회장을 비롯한 손한평 수석부회장 1942년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 철도회사의 본부이며 1945년 10월 14일 인도네시아의 독립이 선언될 때 1946년 1월 6일 2) 인도네시아 한인 1호 장윤원과 자녀들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은 장윤원을 인도네시 아에 정착한 최초의 한인으로 추대하고 2011 년에는 고려독립청년당 총령인 이억관에게 건국 훈장 애족장 2024 박재한 한인회장 신년사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가족 여러분 2024 항일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몫이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9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본 역사탐방을 통해 재외한인 학생들의 역 사 소양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함양하는 한편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 립 운동가들을 기리고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가 되길 바라며 2024년 3월 27일부터 4월 1일까지 제22대 국회의원 재외선거 가 실시됩니다. 동포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선량을 뽑는 소중한 선 거에 여러분들의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여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2024년에는 양국이 명실상부한 ‘특별전략적 동반자’ 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 나가겠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2045년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경 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및 적극적인 경제·사회 발전 정책을 추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28일 양일간 인도네시아한인 고 등학생들과 함께 스마랑 지역 역사탐방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이번 역사 탐방을 통해 재외한인학생들의 역사 소양 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를 가졌다. 다수의 JIKS(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학생들 과 타 국제학교 10학년 2월 14일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500여명이 자바섬 자 카르타 500여명이 자카르타 딴중쁘리옥 항구에 도착 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 나서며 인도네시아까 지 전선이 확대되고 억류한 연합군 포로(와 그 가 족)의 수가 26만 명을 넘어서자 이들에 대한 감 시와 감독을 위해 1942년 3월에 군사목적(군인 6.25 전쟁 등으로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김만수는 이후 한인사회의 맏형으로 서 교민 사회 형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Angkatan Muda Kereta Api)과 일본군 간의 5일 전투로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지금은 철도 역사박물관과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고 약 600개 의 문으로 실내의 연결성과 규모에서 그 당시 철도회사의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탐방대원 학생들은 이태복 원장의 설명을 시종 진지하게 들었다. 라왕 세우를 끝으로 탐방일정 은 마무리 됐다. 탐방대원인 홍보배(JIKS 10)학생은 “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가 가장 인상깊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 인도네시아 수모워노에 독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머나먼 외지에서 항 일독립투쟁의 흔적을 좇고 그분들을 기억하는 시간 속에 감사함과 경외감이 느껴졌다” 고 소회 를 말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과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태 평양전쟁이라는 한편의 서사 를 보고 듣는 의미있는 여정이 었다 JIKS 박은주 KOCHAM Together!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이강현 2024 이강현 코참회장신년사 18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2024년 희망찬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3년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봉화 불’ 등)를 통해 민족의식 고취에 힘 썼으며 ‘스마랑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철도 청 년단(AMKA “이제 제가 고국에 들어가면 무엇을 하겠습니 까?” 이 절망적인 질문은 1940년대 중반 가난 간호사 감시 등의 역할을 수행한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 김문환 『적도에 뿌리 내린 한국인의 혼』 (2013) / 공저 『인 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2020)/ 한인뉴스 칼럼 * 우스미 아이코 『적도에 묻히다 – 독립 영웅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가정과 직장에 건강과 기쁨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 한인사회의 다양한 행사와 한인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크고 작은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와 따뜻한 성원을 보내 주신 한인동포 여러분께 감 사드립니다. 한인회는 공동체 모두의 이해와 유익을 위한 과제들을 올해도 변함없이 소통 과 협의로 풀어갈 것 입니다. 지난 2023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한 지 5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한인회에서는 양국 국민들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문화행사와 체육행사를 개최하여 함께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축구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기업인을 비롯한 존경하는 모 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전세계적으로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따른 아세안 핵심 국가이 자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속에서 우리나라가 경제·외교 다변화를 추진할 중요한 파트너국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많은 한국 기업 의 진출과 기업인들 방문 러시가 이어지고 있지만 개인만을 우선시하는 현세태에 선대의 경험과 가르 침을 전달해야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국의 외딴 불 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 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 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 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1박 2일의 스마랑. 암바라와 지역 역사탐방으로 미흡하나마 여러분들의 초롱초롱한 눈으로 갈수 록 마모되고 스러지는 국외 독립투쟁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살아서 재생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 다. 여러분의 참여로 더 보람있고 값진 역사 탐방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역사탐방은... 10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2024 항일 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서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 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게 되새김 암바라와로 떠나는 시간여행 재인도네시아한인회(회장 박재한)는 8월 27일 격동의 시대 속에서 개인 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와 선택 계획이 일본 헌병대의 정보망에 걸려 실패 로 돌아갑니다. 결국 이활을 포함한 주요 당원 6명 이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고려독립청년당 당원 인 손양섭 고려독립청년당 혈맹 당원 9명은 2011년 서 훈을 받으며 뒤늦게나마 조국으로부터 독립유공 자로 인정받았습니다. 2) 재자바조선인민회: 동포 보호의 구심점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골프 3종목의 경기를 겨루는 <한-인도네시아 우정의 레이 스>를 통해 한인과 인도네시아인들이 서로를 응원하며 친밀감을 형성하였고 공공기관 공대학장과 건축본부장을 역임하며 자카르타 스망기 캠퍼스와 쁠루잇 소재 대학병원 등을 건축 해 현재의 캠퍼스 골격을 세운다. 로마 교황청은 이 공로를 인정해 1990년에 아트마자야대 개교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 장인 ‘실버메달’(Equitem Commendatorem Ordinis Sancti Silvestri Papae)을 장순일에게 수여한다. 셋째 딸인 장평화(1942~2016년)는 국립 인도 네시아대학교(UI)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학 조교 로 근무하면서 과거 친일 행적이 있었지만 이후 인도 네시아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 그룹으로 나 뉘었습니다. 1. 격동의 시대 국재 만 국재만 군위안부 귀국 후 1960년 6월1일에 가톨릭 유학생들과 공동으로 가톨릭계 대학교인 아뜨마자야대학교(Universitas Atmajaya)를 자카르타에 공동으로 설립하 고 그가 도 착한 날을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의 시작일로 기념 한다. 장윤원은 일제 패망 후 조선인 포로감시원 구명 운동과 민간인 귀환을 도왔고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 고 조선의 일본은행에서 근무할 정도로 일본어가 유창해서 네덜란드 총독부의 일본어 통역고등문 관으로 일했다. 이듬해 장윤원은 중국계 인도네시 아인 황항아와 결혼해 남해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독립 투쟁이라 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리고 조국 독립을 위해 이국땅 에서 처절하게 반일 무력 의거를 펼치다 산화하거 나 좌절했던 고려독립청년당원들의 희생은 단순 한 역사의 기록을 넘어 그리고 희생을 생 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의 복잡하고 때로는 비극적이었던 삶과 선택 은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굳건한 우호 관계를 맺는 데 든든한 초석이 되었으며 그의 자녀인 장남해와 장평화는 1970년대에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인의 정착을 돕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장윤원(1883~1947년)은 일본강점기에 조선 독 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다가 일제 탄압을 피해 중 국을 거쳐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 망명했다. 1920년 9월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 도착한 이후 1947년 사망 시점까지 27년 간 인 도네시아에 살았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총독부의 고위관리이던 안젤린(de Kat Angeline)의 권유 로 인도네시아로 온 그의 처가 또한 중국 국민당 산하 비밀결사 조직과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김구 주석의 승인을 받아 ‘고려 독립청년당’이라는 비밀결사 조직의 총령(總領) 으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가 김구 주석 에게 받은 태극기는 ‘재자바조선인민회’ 건물 앞에 휘날리며 조선인들의 구심점이자 조국 독립 의 염원을 상징했습니다. 2. 두 개의 독립 투쟁 김진혁 교 사 2인 김현재 나와 또 공동체를 위한 작 은 일부터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귀한 시절을 나와 함께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각자의 목표를 향하는 그 과정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올 한 해 우리 동포사회에는 웃음과 여유 그리고 미담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2024년에도 한인 동포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협조를 부탁드리며 노 병한 등 세 명은 일본군의 트럭과 무기를 탈취해 서 일본군인과 협력자들을 사살하는‘암바라와 거사’를 일으킨다. 세 사람은 일본군에 추격을 당하자 도피했다가 자살로 마무리한다. 민영학이 자살했던 옥수수밭은 현재 논으로 바뀌었고 노 병한의 자결지)를 거쳐 철도박물관 노무 노무자 등)으로 식민지 조선과 대 만에서 강제동원한 민간인 약 5 노병한 등 3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노병한은 싱가포르 전출 명령 에 대한 불만과 조국 독립의 염원을 안고 암바라와 에서 일본군에 대한 무력 봉기를 시도합니다. 이들 은 무기를 탈취하여 일본인 관사를 습격하고 일본 군 위생병을 살해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격전 끝에 민영학은 일본군에게 총상을 입 고 옥수수밭에서 “그냥 가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총구를 가슴에 대고 자결하는 비극적인 최 후를 맞이합니다. 손양섭과 노병한 역시 다음 날 28 I 한인뉴스 2025년 7월호 위생창고에서 자결하며 “나는 할 일을 했다고 자 부합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의거는 단순 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조직에 바탕을 둔 해외 독립운동의 신호탄으로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수미레 마루호 탈취 기도(제2차 거사)도 결국은 좌절로 결말을 맺습니다. 암바라와 의거 소식을 접 한 고려독립청년당 총령 이활은 동지 3인의 죽음 을 기리며 ‘수송선 수미레 마루호 탈취 기도’라 는 제2차 거사를 계획합니다. 이들은 영국군 및 네 덜란드군 포로들과 연대하여 수송선을 탈취하려 했으나 농장 직원 당원들은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 조국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박 창원과 같이 귀국 후 한국 사회의 모습에 실망하여 유공자 포상을 거부하고 국토에 묻히는 것조차 거 부한 이도 있었습니다. 최후의 생존자인 이상문의 끈질긴 노력으로 암바라와 의거 의사 3인은 2008 년 대사관 류완수 영사 대선 결과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정책 개혁 방향성과 신수도 이전 프로젝트에 대한 차기 정부의 의지를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독립 투사가 되었던 그 들의 비애와 아픔에 분노하는 아이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고통 받았던 그 때가 불과 80여년 전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라 얘기했습니다. 나라의 힘없음으로 인해 고통 속에 삶이 무너지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목숨까지 바쳤던 선조들이 불과 80여년전에 이 곳에서 그렇게 사셨 다는 것이 현장을 가보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직접 두 발로 걸어 서 그 분들이 걷고 뛰셨던 그 곳에 발을 딛고 선 자체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고려청년독립당의 강령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에는 그들의 의지와 정신이 그 때에 끝난 것이 아니 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해지며 동부자바주 수라바 야 지역에도 조선인 여성 위안부가 있었다. 일본 군이 주둔했던 수마트라뿐 아니라 깔리만딴 동포사 회 동포여 러분의 가정과 직장마다 기쁨과 만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장 박재한 14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두 개의 독립을 좇았던 조선인들의 흔적 조연숙 |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인도네시아에 대한 천 개의 이야기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27 양칠성은 사후 46년만인 1995년 고국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국적 회복과 한글 묘비 교체식이 거행되 며 한국인으로서 재조명되었습니다. 양칠성 또 는 일본군에 의해 간호사로 위장된 군위안부들이 포함되었다.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1924~2004년)은 ‘애 국봉사단’에 입단하라는 이장의 권유에 넘어가 1938년에 중국 광동성을 거쳐서 자바섬 스마랑 으로 끌려갔다. 정서운은 성노예 위안부를 부정 하는 일본 정부 앞에 “내가 스마랑 암바라와 지 역의 일본군 위안부”라고 직접 반박했다. 정서운 은 함께 끌려온 여성 13명 중 6~7명 즉 절반만 종 전 후까지 살아남았으며 라왕 세우에서 이 먼 타지에 끌 려와서 강제 노역을 하고 러 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Go Global 만족할 만한 결과와 보완해야 할 과제도 도 출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행사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머나먼 인도네시아 땅에서 복잡한 운명과 마주했던 한 조 선인의 깊은 고뇌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광복절 (8월 15일)과 이틀 뒤인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 일(8월 17일)은 우리를 태평양전쟁 종전과 함께 인도네시아 독립 열망이 격렬하게 타올랐던 혼란 스러운 시대로 이끕니다. 당시 이국땅에서 자신들 의 방식으로 격동의 운명을 헤쳐 나갔던 조선인 군 속(軍屬)*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무 기고)을 방문하였다. 이어 수모워노 고려 독립청년당 결성지에서 탐방단의 목소리 로 결기가 넘치는 청년당의 강령과 ‘대 한독립만세’를 외쳤다. Novotel Semarang에서 탐방 첫 날을 마 감했다. 항일의거지(무기고)-성요셉성당 수모워노-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 12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둘째 날에는 스마랑 대표 관광명소인 라왕 세우(천개의 문)에 들렀다. 라왕 세우는 네덜란드 정 부에 의해 1904~1907년에 건설되었고 문인협회 김 주명 사무국장 및 한인회 사무국을 포함 총35 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가루다항공편의 스마 랑으로 향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과 조선인‘위안부’ 등의 군속의 신분으로 1942년 9월 14일 자카르타 딴 중쁘리옥 항에 도착하여 힘든 삶을 견뎌 낸 선조들의 자취를 따라 첫날 첫 탐방지인 암바라와로 이동했다. 드라마 세팅장처럼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암바라와 성은 옛 모습의 처연함을 담고 있지 않았고 관광지 로써 탈바꿈이 진행 중이었다. 허락된 소수를 제외한 탐방원들은 입구까지만 입장이 가능했다. 한편 문학선 미래세대인 한인 학생들이 참여하는 역사탐방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인동포 여러분! 여러 측면으로 새해에도 체감경기는 더욱 나빠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치열하고 복잡할수록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민영학 민중 중에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타국에서 그 세 종 류의 입지로 산 군속들과 자신을 대비해 시간여행을 해보길 바랍니다. 억울함과 희생 박창원 반둥 방기 배드민턴 배터리 보다 양질의 영사 서비스가 동포 여러분들게 제공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봉제 불안정한 정세 속 에서 크게 네덜란드나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 은 그룹과 비루함을 매일 짊어지고 살았을 이곳 인도네시아에서의 하루하루를 상상해 보길 바랍니다. 서류상 지원한 것으로 되어있고 임금을 지급하였으니 정당한 노동행위라고 주장 하면서 실제 놓여진 상황의 실증을 회피하고 사산문화원 이태복 원장 선발 여부와 상관없이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위해 한인회의 어른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 이 들었습니다. 한국학교뿐 아니라 다른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도 신청하여 갈 수 있다는 사 실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신청을 하였기에 제비 뽑기를 통해 참여할 아이들이 정해졌고 성 노예가 되고 성요 셉 성당(일본군의 연합국 국민 억류소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것 으로 보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인 동포 사회를 만든 우리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올해도 슬기롭게 잘 이겨 내리라 믿 습니다. 2024년은 청룡의 해입니다. 청룡은 가정의 복을 기원하고 재앙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고귀한 존 재라고 합니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 올 한 해도 교민 분들 가정과 직장에 복이 넘치는 기쁜 일 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린도 그룹 회장 승은호 손양 섭과 노병한이 자살한 당시 창고는 암바라와 성요 셉성당 뒤편에 위치해 있다. 고려청년독립당은 1945년 1월 8일 일본군 수송 선인 스미레마루호 탈취 계획을 세우고 자카르타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던 영국군과 네덜란드군 손양섭 수감되어 있던 혈맹 당원들은 종전 10일 후 석방되었으며 수디르만 길을 함께 달리며 휴지를 줍는 <그린 런> 플로깅 행사를 통해 인도 네시아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3 ‘한-인니수교 50주년 기념음악회’에서는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정서로 하 나 됨을 느꼈습니다. 또한 인니어판 한-인니수교 50주년 기념책자 『Merajut Persahabatan Memupuk Kepercayaan(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한· 인니 수교 50년사)』을 출간하여 한·인니 교류의 역사와 인도네시아 한인들 의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50년을 향한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정식 외교관계의 시작인 1973년 9월 18일이래 수라바야 순일 술 라웨시 스마랑 등의 포로 수용소에 배치되어 포로감시와 노역업무를 했다. 애초 포로 감시원은 2년 연한의 계약직 군속 신분 이었으나 스마트시티 신발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의 협력을 넘어 전기차 신재생 에너지 신정부와도 견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실제 현지에서 기업을 운 영 중이신 분들은 봉제·신발을 비롯하여 무척 어려운 한 해를 보내셨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으며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듯했 으나 암본 등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에도 조선 인 위안부의 흔적이 남아있다. 해방 직후 귀국선 을 타기 위해 「재자바조선인민회」에 집결한 조 선인들은 포로감시원과 민간인들로 구성되어 있 었다. 민간인 그룹 중 여성들은 군위안부 출신 양국 경 제협력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겠습니다. 한인 동포사회가 더욱 결속력있 고 성숙한 사회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힘쓰겠습니다. 지난 한 해 코참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한인 기업인 및 모든 분들께 감 사의 인사를 드리며 양국 연 대의 중요한 역사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일본 군 포로감시원 외에도 동맹통신사 파견원 양국의 관계는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 가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왔던 한 해였습니다. 한인회는 2020년 즈음 양국이 성장통을 겪으며 나 름의 우여곡절의 역사를 써내려갔지만 역사탐방 에 적극 참여할 진정성 있는 학생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2020년 9월 20일 연중 다양한 형태 로 진행된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행사들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가운데 올해 2월에는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여 차 기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예정입니다. 우리 대사관은 동포사회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국가발전 목표를 지원하는 한편 올해도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갑진년 새 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외출과 휴식이 있었다고 식민지배 권력에 의해 강제 로 동원되어 목숨을 위협받았던 국가적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정립되어야하는 역사가 있기에 그 첫 역사탐방지로 ‘중부자바주 암바라와 지 역 항일독립운동지’로 정하였습니다. 잘 고증하지 않은 지난 일이라는 틈새와 현재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과연 맞는 태도일까요? 부끄러운 역사라고 각색하거나 포장할 일도 아닙니다. 거기에서 배움이 있고 기억이 있고 전승이 있다면 우린 다른 미래를 써내려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주권이 없다는 것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의미합니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갖고 대외적으로 독립성을 갖는 것을 의미 하며 국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재외동포라고 스스로를 역사와 거리를 두거나 우리 교민 사회는 한-인니 수교 50주년을 맞 이한 특별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양국 간의 협력과 발전을 위한 다양 한 세미나와 행사가 개최되었고 우리 진출 기업 및 동포 여러분들이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경제·사회 환 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대사관은 ‘팀 코리아’의 기치하에 우리의 역사는 학교 역사 수업시간에만 배웠던 아이가 우리 선조들이 인도네시아 땅까지 보내져서 겪었던 고 통과 아픔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여 1박 2일의 일정을 보내고 집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스마랑 공항에 잘 도착했다는 비행기 날개 사진 한 장. 일정 마치고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며 푸짐한 저녁 식탁 사진 한 장. 자 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한 개가 연락의 전부였던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와~~~” 라며 역사탐방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암바라와 조선인 소녀 위안소에서 윤석열 대통령님의 인도네시아 공식 방문까지 성사되는 매우 뜻 깊은 한 해였습니다. 100년여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동포사회가 지금까 지 이 땅에서 보여준 에너지는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이 앞으로 50 년 의거 현장에서 이 들의 희생은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격동의 시대 이 정신을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꼭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 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인도네시아 땅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었을 거라며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 리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를 보니 책을 통해 글로 배우 는 몇 년의 역사 수업보다 1박 2일의 현장체험이 이렇게 강력하게 아이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한인회 여러분의 꼼꼼한 준비와 배려 그리고 인솔하신 한국국제학교 선생님들의 섬세한 보살핌으 로 아이는 1박 2일동안 많은 배움과 한국인으로서의 귀한 생각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서 재외국민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이루어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역사탐방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정 과 준비과정이었겠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 하고 싶어 시작한 편지가 꽤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이런 기회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하며 가치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고정화 드림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이 내린 선 택은 과연 온전한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전범 처벌을 피하거나 생존을 위한 불가피 한 강요와 맞물린 결과였을까요? 이러한 이상과 생 존이라는 복잡한 동기가 작용한 그들의 고뇌에 찬 선택들은 오늘날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굳건한 우 호 관계를 맺는 소중한 토대가 되었으며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양국 관계의 미래를 더욱 밝게 만들어나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복잡성을 이해 하고 타인의 고뇌를 공감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주석] * 군속(軍屬): 군대에 소속되어 군의 업무를 보조하던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는 통역 이병용 역 시 인도네시아에 남아 활동했습니다. 이활(李活 이상문 이억관)은 김구 주석의 승인을 받은 독립 운동가입니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이활은 자카르 타 화교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며 이제는 팬데믹 이활을 비롯한 10명의 조선인 군속들은 혈 서(血書)를 쓰며 조국 독립을 맹세합니다. 암바라와 의거(제1차 거사)는 비극적인 자결로 끝납니다. 1945년 1월 4일 인 도네시아인 장교들과 공모하지만 사전에 적발되 어 실패한다. 1945년 7월 일본군에 체포된 고려 독립청년당원 10명은 군사법정에서 징역을 선고 받고 수감생활을 하다가 종전 후에 석방된다. 하지 만 다시 연합군에 체포되어 전범 조사를 받고 중노 동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1947년에야 귀국한다. 한국 정부는 2011년 11월에 자바에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벌인 항일투쟁을 해외에서 벌 인 항일독립운동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또한 2008년에 암바라와에서 사망한 민영학 인도네시아 독립 부대인 국민방위군(TKR) 산 하 ‘빵에란 빠빡 부대’에 합류하여 네덜란드에 맞서 싸우는 독립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 담긴 “이제 제가 고국에 들어 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절망적인 질문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희망을 찾기 어려웠을 그 의 불안과 고독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빵에란 빠빡 부대는 일본군 잔류자 아오키 상사가 이끌고 온 조 선인 군속 4~5명을 포함하여 총 30여 명의 일본 군과 현지인 부대원 수백 명으로 구성된 혼성 부대 였습니다. 결국 양칠성 인도네시아 연극영화 산업의 선구자가 됩 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고국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한을 품고 43세의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 묻힙니 다. 이는 그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속죄할 기 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입니다. 양칠성(梁七星): 포로감시원 시절 악명이 높았던 양 칠성은 전범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귀국선을 포기하 고 인도네시아 한인의 중 요한 역사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그 림자마저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인도네시아가 일본에 정복당하면서 다시 고 초를 겪는다.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은 그를 체포해 고문과 구타를 하고 자카르타 글로독 형무 소에 수감한다. 그는 일본 패망 후 자신의 귀국조 차 미루고 조선인 포로감시원 구명운동과 민간인 귀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하지만 장윤원은 고문 후유증과 수형생활로 악화 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47년 11월 23일 자카르타에서 사망한다. 장윤원이 인도네시아에서 결혼해 낳은 자녀 중 한 인사회에 기억되는 인물은 세 명이다. 장남 장남해 (1921~?)는 부친 장윤원과 함께 일본 헌병에 체 포돼 고초를 겪었다. 장남해는 1945년 9월1일 결 성된 재자바조선인민회로부터 발급받은 100번째 회원증을 한국과 아버지와 자신을 연결하는 소중 한 증표로 여겨 죽는 날까지 간직했다고 한다. 그 는 1980~1990년대에는 건설 업종으로 진출한 한 국 기업의 현지인 파트너로 활동하기도 했고 인도네시아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5.0%의 경제성장률로 안정 적인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45년까지 세계 5대 경제진입을 목표로 인적 자원 개발과 보건복지 인도네시아에 최초의 한인이 첫 발을 내딛은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를 편 찬한 이래 ‘인도네시아 한인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습 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24년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 학생(10~11학 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탐방을 통하여 묻혀 졌던 이야기를 되살리고 무관 심 속에 사라져갈 역사의 현장을 가슴에 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세 종류의 사람 탄압자 인도네시아에서도 조선 독립 운동이 이루어졌다. 자바의 조선인 군속 총 16명 이 1944년 12월 29일 자카르타에 모여 이억관 (본명 이활 1907~1983)을 중심으로 상해 대 한민국임시정부를 따르는 항일 비밀결사체 고려 독립청년당 설립을 결의했다. 고려독립청년당은 ‘암바라와 거사’를 행하고 일본군의 수송선 스 미레마루호 탈취 계획’을 세우고 시도했다. 조선 사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 [출처: 연합뉴스]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57 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은 인도네시아 독립 을 위해 항일투쟁을 벌이던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자들과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과 협력하기도 했 다. 고려독립청년당 반둥 지구당의 당원이자 일 본군 포로감시원이었던 김두삼과 안승갑은 중국 계 인도네시아인 포로인 정지춘(鄭志春)의 적극 적인 협조를 받으며 활동했다. 1945년 1월 5일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에 있던 「자바포로수용소 및 억류소 스마랑 제2분견소」 에서 고려독립청년당 당원인 손양섭 인프라 확장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 이 임박했기에 예상외로 가벼운 형량(징역 7~10 년)을 선고받습니다. 일본이 항복하고 일본이 패망한 후 싱가 포르를 거쳐 1946년 4~5월경 부산항을 통해 귀 국했다. 암바라와 군위안소는 현재는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한 전쟁유적지이지만 70년 이상 방치되 어 있다. 5) 고려독립청년당과 항일독립운동 한국독립운동은 한인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느 곳 에서나 전개되었고 일제가 계약관계를 일방적으로 폐기하 고 무기한 근무를 강요했다. 반둥에서 포로감시원 으로 근무한 안승갑 선생은 생전에 일본이 조선인 군속들에게 약속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강제로 저축하게 하고 이를 돌려주지 않았 다고 증언했다. 일제 패망 후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했던 조선인은 일본군의 일부이자 전쟁범죄자로 인식되어 다른 조선인들(강제징용 노무자나 위안부 등)과 분리 된 채 전범재판에 회부되고 사법 처리되는 고초 를 겪어야 했다. 전범 혐의에서 벗어난 이들도 고 국 귀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대부분 수용소 에서 굶주림과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네덜란드에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저항한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이 종식된 후 싱가 포르와 일본 등지를 거쳐 어렵게 조선 땅으로 돌 아갔다. 4) 군위안부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한 일본군 군속들의 증 언과 2009년 발간된 『인도네시아 동원여성명부 에 관한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임 헌근 자 카르타 한인 가톨릭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한인들 의 정착과 한인성당의 설립을 안내하고 지원했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7) 장윤원 가족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55 차남 장순일(1927~1995년)은 인도네시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네덜란드에 서 유학할 당시 ‘재네덜란드 가톨릭대학생 연 합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자바섬에서 비밀결사 조직인 ‘고려독립청년당’이 탄생합니다. 1944년 12월 29일 자카르타에 있 던 제6위안소(현 보로부두르 호텔 인근)에 조선 인 출신 여성 7명이 있었고 장윤원은 3.1 독립운동 의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본군에 체포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과 구타 를 겪었음에도 장평화는 한국을 방문 해 친척들과 만나기도 했다. 1974년 3월에 장평 화는 한국인 여한종과 자카르타 시내 성마리아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여한종은 외무부(현 외교부)에 채용돼 재 자바조선인민회 주최로 암바라와 의거에서 산화 한 동지 3인을 위한 제1주기 추도식이 거행되었 습니다. 이 날짜로 ‘고려독립청년당’은 정식으 로 해산되며 재자바조선인민회는 격동의 시기에 조선인 들의 구심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3. 비극적 선택의 오늘날 의미: 그들의 숭고한 유산 인도네시아라는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위해 힘썼던 조선인 군속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친 일 행적에 대한 자책감으로 ‘국제 미아’가 되었 던 허영의 고뇌 전범 색출의 위협 속에서 인도네 시아 독립 투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양칠성의 비극적인 운명 절대적 우위에 있는 후보의 부재로 젊은 세대 교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이끌어가는 모습 속에 서 인도네시아 교민사회의 밝은 미래도 보았습니다. 뜻깊고 의미 있는 수교 50주년 한 해를 우리는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은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혼돈과 끝나지 않은 경기 침체라는 악재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2024년 대선을 포함한 굵직한 정치 이슈가 있어 작년 못지않은 다사다난한 한 해가 될 듯합니다. 2024 승은호 코린도 그룹 회장 신년사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9 지난 백여 년간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정부의 자 국 역량 강화를 위해 수입규제를 확대하고 국산 부품 사용을 권장하고 있습 니다. 올해부터 시행예정인 수입인증제도 확대에 대해 사전에 대비하여 피해 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코참은 올해 대선 결과에 따른 여러 변화 등에 대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고 정부 채널 네트워킹을 강화해나갈 것입니다. 또한 정수호는 1949년 네덜란드군에 의해 안타깝게도 사형당했으며 정수호는 서부자바주 가룻군에 있는 국가영웅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2) 또 다른 선택: 친네덜란드-친중국 세력과의 협력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네덜란 드나 중국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조선인들의 생존 과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장윤원(張閏遠)은 조선인 보호에 헌신한 이국땅의 선구자입니다. 1920년 자바섬으로 이주하여 네덜 란드 총독부 고위 관리로 일하며 현지 화교 사회 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제 아이도 뽑혔습니다. 저는 아이가 설렘으로 역사탐방을 기다리는 것을 표현할 때마다 놀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많은 아 이들을 대표하여 가는 탐방이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배우는 자세로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에서 머문 시간보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아이가 조 국의 독립과 삶의 터전이 된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두 개의 독립 투쟁’이라는 복잡 하고 다층적인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 패망과 동시에 연합군의 전범 색출이라는 위협 조규홍 등 당원들에게 「건국훈장포장」을 수여했다. 사진 암바라와 군위안소 유적 [출처: 한인뉴스] 조선 어 교실을 운영하고 『조선인 민보』를 발행하는 등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동포들의 귀환을 돕는 데 힘썼습니다. 비록 허영과 양칠성 처럼 인민회를 떠나 다른 길을 택한 이들도 있었 지만 조선인 위안부 등 다양 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으며 조선인들의 복합적인 선택 1) 전범 색출의 그림자 속에서: 생존과 속죄를 위한 고뇌 일본의 패망은 조선인들에게 해방의 기쁨과 함 께 전범 색출의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특히 포로 감시원 출신 조선인 군속들은 연합군 포로를 가혹 하게 다룬 전력이 있을 경우 전범으로 지목될 위협 에 놓였습니다. 허영(許泳): 친일 행적을 보였던 허영은 종전 후 친 일 행적에 대한 깊은 자책감으로 조국으로의 귀국 을 포기합니다. 전범 색출을 피해 처자식이 기다 리는 일본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국제 미아’ 신세가 된 그는 총칼 대신 연극과 영화라는 예술 적 무기를 들고 수카르노 망명 정부에 합류하여 인 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뛰어듭니다. 수카르노 망명 정부의 공보 담당관으로서 연극과 영화(‘민족의 혼’ 조선인들의 안 전한 귀환과 권익 보호를 위해 ‘재자바조선인민 회’가 설립됩니다. 허영은 과거 친일 행적에도 불 구하고 일본군 제16군 사령부를 끈질기게 설득하 여 1945년 9월 1일 자카르타에 조선인 최초의 자 치단체인 재자바조선인민회를 탄생시키는 데 핵 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인민회는 일본군과의 협상을 통해 약 3년간 생 활할 수 있는 충분한 물자와 군표를 확보하여 귀 국을 기다리는 동포들의 생계를 지원했으며 종전 후 자신의 귀국 계획을 미루 고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구명 운동과 민간인 귀 환 문제 해결에 헌신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 니다. 그는 허영과 함께 ‘재자바조선인민회’ 설 립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고문 후유증과 고령으로 1947년 이국땅에서 한 맺힌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후손들은 인도네시아 에서 교육자이자 사업가로 성공하며 양국 관계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김만수(金萬壽)와 이병용(李炳鎔)은 인간적인 연대 를 택한 사람들입니다. 조선인 군속 김만수와 이병 용은 일본군 감시원으로서 연합군 포로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주파푸아뉴기니 대사를 끝으로 정년퇴 임 후 귀국한다. 장평화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귀 국해 한국에서 여생을 마친다. 3) 조선인 포로감시원 1942년 일본이 강제로 징집해 파견한 조선인 약 1 중 부자바한인회(회장 채환)와 한인회의 노력으로 공원 입구에 세워 질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비가 준비 되어 있었다. 암바라와 위안소의 과거와 현재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11 암바라와 항일의거지(민영학 지금까지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역량 과 결집을 바탕으로 청룡의 기운을 받아 힘차게 도약하고 풍요와 번영을 이루 는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7 올해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성장 둔화로 인해 지난 100년간 인도네시아 한인의 분야별 발자취를 총망라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의 출간을 위해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현장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 이후 줄곧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이 땅을 밟은 한인군속들이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한 곳인 수모워노(Sumowono)를 비롯한 암바라와 일대의 역사적 현장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울림처럼 퍼져갔습니다. 저희 한인회는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비를 세우고자 스마랑 한인회와 함께 뜻을 모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누구도 보호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 분들의 용기와 희생을 눈감았던 시절에 대한 미안함으로 올해 한인회에서는 현재만 보는 1차원적 시점에서 벗어나 지난 2023년 인도네시아의 우리 한인사회는 국제 정치·경제적 긴장과 불확실성이 가중된 복합위기 속에서도 서로 단합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우리 동포사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에 힘입어 지난 6월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에서 항일 독립 운동지 역사 탐방에 대한 공지를 받고 아이가 신청 해서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진출기업 등이 함께 서로의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고 찔라짭 창포 철도 박물관에서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진 출하고 있는 대기업들과 현지 토착 기업들이 서로 화합하여 인니 정부에 하나 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결집력을 배가시키겠습니다. 신규 진출하는 한 국 기업들에게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여 아세안 지역을 비롯하여 글로벌 시 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상생을 위해 인니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1기업 1지역 지원프로그램 등 CSR 활동도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코참은 한인 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계속하여 이어갈 것이며 특히 네덜 란드인 포로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했습 니다. 이들의 인간적인 배려는 전후 네덜란드 정부 로부터 표창과 고무 수출권 등 사업 이권으로 이어 지기도 했으나 평 화 등 2남 3녀를 두고 포로 감시원이 되고 포로가 되고 푸른 용의 해 갑진년을 맞이했습니다. 동포 여러분의 하시는 모든 일이 용의 기운을 받아 순조롭게 풀려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 이상덕 2024 이상덕 대사 신년사 16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안녕하십니까 핀테크 등 첨단 미래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이고 구 체적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대사관은 지난 정상회담의 성과를 토대로 하나의 비극 이 시기 인도네시아 내 조선인들은 각자의 방식 으로 독립을 향한 열망을 표출했습니다. 조국의 독 립을 위한 직접적인 투쟁과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 한 또 다른 투쟁은 때로는 얽히고설키며 비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1) 고려독립청년당의 처절한 반일 의거: 암바라와와 수 미레 마루호 일본의 패망이 임박하고 조선인 군속들의 불만이 쌓여가던 1944년 한국대사관 직원 가족들에게 인도 네시아어를 가르쳤다. 이어 1960년대 말에 설립 된 한국총영사관에서 비서로 근무했다. 1971년 김좌겸 총영사의 배려로 한국어 도 잘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국의 미래가 더 발전적으로 갈 수 있다는 확 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항거자 항만 노 동자 현장에서 맞닥뜨 리는 어려움들을 합심하여 풀어 나가는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5 본국 정부는 작년 6월 750만 재외동포의 염원을 담아 재외동포청을 출범시 켰습니다. 우리 대사관은 재외동포청과 긴밀히 협력하여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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