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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굴덴의 은화가 담겨 있었 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아름다운 말을 어루만 지며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날의 간단한 수인사와 덕담이 오고가는 동안 드콕 장군은 내내 마음이 개운치 못했습니다. 선물공세도 통하지 않 았기 때문입니다. “여우 같은 놈이 우리 마음을 읽기라도 한 모양이군.” 마글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콕 장군은 그렇게 툴툴거렸습니다. 그가 그토록 고대한 마글랑 회담 요구에 대해 디포네고로 왕자가 끝내 확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 나중에 클레이런스 대령이 몇 번씩이나 머노레를 방문했 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식월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시기에 해질녘이 되어 디포네고로군의 진영엔 또 다른 네덜란드군 장교가 찾아왔는데 그 모습에 모두 경악하지 않 을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군복을 입고 있던 그 는 디포네고로군 전(前)사령관 센똣 쁘라위라디 르죠였습니다. 그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네 번째 부인으로 일찍 이 마디운에서 아버지 라덴 롱고와 함께 네덜란드 군에게 살해당한 라덴 아유 찌뜨로와티의 동생이 었으므로 왕자의 처남이기도 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디포네고로는 만감이 교차했지만 일단 부까 뿌아사(Buka Puasa) 행사에 그를 초청했습니다. 부까뿌아사란 일몰 시간에 맞추어 하루의 금식을 마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행사입니다. “술탄 전하 500명의 지지자 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네덜란드군이 디포 네고로 왕자를 체포하기 위해 곧 들이닥칠 것이란 소문에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디포네고로 왕자가 그들 앞에 나섰고 망꾸부미 왕자가 그 곁 에 섰습니다. “이런 날이 올 것을 몰랐던 것 아니지 않은가? 하 지만 이곳은 네덜란드 기병대와 전투를 하기엔 매 우 불리한 곳이니 시종들이 저들을 막는 동안 주 력은 뜨갈레조가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여기 망꾸 부미 왕자님을 따라 빠져나가 추격을 뿌리친 후 후방에서 집결해야 한다.” 스미사르트 주지사는 1825년 7월 20일 디포네 고로 왕자가 망꾸부미 왕자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간주하고 부지사 쉐팔리에(Chevallier)를 시켜 부르데부르크 요새의 기병대를 지휘해 왕자 의 저택을 포위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뜨갈 레조의 초입에서부터 그들은 디포네고로 지지자 들의 강력한 저항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남쪽과 동 쪽으로부터 밀고 들어가는 네덜란드군은 저항군 이 마치 잘 조련된 군대처럼 전술적으로 방어선을 만들고 조직적으로 조금씩 물러서는 모습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저한 화력 의 차이를 보인 전투에서 디포네고로 시종들의 전 열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적잖은 인명피해를 교환하는 사투를 벌인 끝에 네덜란드 군은 방어선을 뛰어넘었고 sanyari bumi ditohi tekan pati!”(사두묵 바뚝 “물론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이끌려 다시 고향을 찾았다. 이번에는 10 일 동안 머물렀는데 경제적 역량을 완전 히 바닥낼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이 전쟁이 고 작 디포네고로 왕자의 조상 묘역을 파헤치려는 네 덜란드와의 말뚝 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관점일 것입니다. 그 배경 은 분명 훨씬 더 깊고 입체적일 터이죠. 다음 호에 계속 서쪽지역에 묵었습니다. 다른 부인들은 먼저 일찍 죽거나 전장에 따라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라덴 아 유 렛나닝시만이 자바 전쟁 초기부터 전쟁 마지막 날까지 디포네고로의 곁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그곳에 군대의 본진을 설치하 고 조요멍골로(Joyomenggolo) 군사 적으로 지지했으므로 실제로 족자 술탄국의 왕가 와 귀족 절반이 디포네고로 왕자의 지휘를 받으며 네덜란드군과 맞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자 전하! 문안 드리옵니다.” 이슬람 학자와 쁘산트렌 학생 복장을 한 수백 명 의 병사들을 이끌고 깔리사카에 나타난 한 남자가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35 천 명의 디포네고로군 장병들이 사망했고 네덜란 드군도 8천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디포네고로 군은 게릴라 전술에 능했고 매복공격으로 네덜란 드군 병참로를 속속 차단했는데 정작 네덜란드군 은 일관성 있는 전략이나 제대로 된 응전의 결기 도 없었으므로 전쟁 초반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피해가 컸습니다. 자바전쟁은 자바의 구시대와 근대 그것이 바로 르바란이 지닌 깊은 의미일 것이다. 내년 르 바란에도 온 가족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모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2026년 르바란 휴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10]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 System Ever Indonesia s 아 증 의 코. 인 사 이 드 기다리고 기다리던 르바란 휴가가 드디어 다가왔 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이슬람교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그녀는 다른 부인들 이 낳은 디포네고로의 다른 자녀들까지 헌신적으 로 돌봐 주었습니다. 그래서 반년 전 그녀와 자녀 들이 네덜란드군에게 나포되었을 때 디포네고로 는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그러니 까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3세가 술탄이 된 후부터 그는 가족들을 제대로 챙길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사랑하지 않 을 리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아내들은 결혼 초기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 처 라덴 아유 수빠드미처럼 끄라톤 왕궁에 남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마 글랑 네덜란드 본진에 와있다는 라덴 아유 렛나 닝시(Raden Ayu Retnaningsih)는 지빵 끄빠 당안(Jipang Kepadhangan)의 영주 라덴 뚜멍 궁 수모쁘라위로(Raden Tumenggung Sumoprawiro) 의 딸로 전쟁 전 디포네고로 왕자가 하 멩꾸부워노 4세의 후견인으로 아직도 끄라톤에 출입하던 시절인 1822년 혼인식을 올렸죠. 디포네고로 왕자의 여섯 번째 처인 그녀는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전쟁 초창기 고아 슬라롱에서부터 전쟁터를 전전하며 남편의 곁을 줄곧 지켜왔던 사람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네덜란 드군에게 인질로 뺏기지 않기 위해 늘 전장에 데 리고 다닐 수밖에 없던 시절 그리고 이 웃집 아이들에게 THR를 나누어 주었다. 큰 금액 은 아니지만 그리고 자바 북부해안지 역 대부분을 포함한 자바섬 거의 전체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항전에 식민정부는 크 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열하고도 연 속적인 전투로 양쪽 모두 엄청난 인적 그보다 앞서 그 형제 인 망꾸디닝랏 왕자 그분들은 안전하십니다. 하지만 전하가 우 리에게 매우 중요한 상대인만큼 그분들을 모셔오 는 것은 총독조차 결정할 수 없어 어쩌면 본국을 설득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드콕 장군께 서 이번 회담에 맞춰 전하께서 그분들과 재회할 수 있도록 바타비아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감사한 일이오.” 디포네고로 왕자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었으 므로 클레이런스 대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왕후전하와 왕자님들은 스마랑에서 오시니 마 글랑에 먼저 도착하십니다. 그분들을 이곳 끄짜 왕까지 모시는 것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일 이니 마글랑 가까이의 머노레(Menoreh) 정도까 지 나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곳은 전하의 대군 이 주둔할 공간도 충분하고 저희들 발품도 크게 줄일 것입니다.” 머노레는 끄짜왕이 있는 뿌르워레조보다 훨씬 더 마글랑에 가깝다 머노레에는 네덜란드가 그간 스텔셀 요새작전을 통해 촘촘한 간격으로 지은 요 새들 사이에 넓은 개활지가 있고 요새들을 연결하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23 는 몇 개의 통신로가 그 근처를 지나고 있었으므 로 유사시 포위작전을 유리하게 펼칠 수 있는 곳 이었습니다. 그러니 설령 머노레에서 회합을 갖게 되더라도 끄짜왕과 같이 ‘적진 한복판’이라는 불리한 위치는 아닐 터였습니다. “귀공의 노력에 답해 우리가 머노레로 이동하는 정도의 성의는 당연히 보여줄 수 있소.” 뭔가 좀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울 것이라 생각 했던 디포네고로는 의외로 순순히 듣고 싶은 대답 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적진에 들어가며 식은땀 을 흘리며 초초해 마지 않았던 클레이런스 대령과 그 호위병들은 소기의 성과를 안고 무사히 끄짜왕 을 나와 마글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군이 머노레에 도착한 것은 1830년 2월 21일의 일입니다. 그러나 드콕 장군은 아직 마글랑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명백히 시간을 벌 려는 것이었죠. 그 사이 드콕 장군은 두 페론 중령 (Letnan Kolonel Du Perron)의 부대에게 마글 랑의 경계강화를 지시했고 중부 자바 다른 지역에 배치된 부대들을 비밀리에 끌어 모았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23 회담이 결렬될 경우 디포네고로와 그 부대를 신속 히 제압할 요량이었죠. 드콕 장군은 본격적인 회담 을 시작하기도 전 배신을 획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콕 장군이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1830년 3 월 5일 급기야 라마단 금식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디포네고로 왕자는 술탄으로 서 금식월을 지키며 또한 수하들을 위해 종교의식 을 주관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미 하염없이 지연 되고 있는 회담에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진심을 담 은 성스러운 금식월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이왕 금식월에 접어든 이상 회담을 라마단 이후 로 늦춰주시오.” 이런 디포네고로 왕자의 의향이 네덜란드 진영 에 전달되자 드콕 장군은 비로소 조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라마단 중엔 전투를 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가 머노레의 디포네고로군 진영에 들어온 것은 라 마단이 시작된 지 며칠 후인 3월 8일의 일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드콕 장군에게 정중했고 심 지어 친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축적된 정보에 따라 라마단 중 절대 안전할 것이 란 계산을 모두 마친 드콕 장군은 일생일대의 도 박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행동거지가 어색하 기 이를 데 없었는데 디포네고로 왕자는 적군 본 진에 들어온 드콕 장군이 나름 큰 용기를 보인 것 이라 순수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어서 오시오 꺼두(Kedu) 지역의 끔방아룸 마을(desa Kembangarum) 등 여러 지역에 화약공장들을 비밀리에 세우고 본격적인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 되었습니다. 이렇게 발생한 자바 전쟁은1825년부터 1830 년까지 5년간 자바땅 대부분을 휩쓸게 됩니다. 사 람들은 이를 디포네고로 전쟁이라고도 부르죠. 이 전쟁은 네덜란드가 동인도에서 예전엔 단 한번도 겪어본 적 없던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중부 자바 전부와 동부 자바 일부 단 한 치의 땅을 뺏으려는 누군가의 똔다노(Tondano) 유배 시절의 끼아이 모조 http://jembatan-pengetahuan.blogspot.com 34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허리를 굽혔습니다. “무슬림 아니냐? 정말 반갑구나!” 오래 전 뜨갈레조에서 만났던 천재소년 무슬림 모하마드 칼리파는 수라카르타에서 저명한 이슬 람 선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울라마 끼아이 모조(Kyai Mojo)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얻어 수 라카르타 수수후난 빠꾸부워노 6세의 측근이 되 었고 일무 까누라간(Ilmu Kanuragan)이라는 신 비로운 능력을 익혀 전장에서 목소리 하나로 적들 을 격파하는 동생과 함께 외 할머니 댁으로 향해 온 가족 및 친척들과 한자리 에 모였다. 서로 인사하며 지난 실수를 사과하고 용서하는 것 드콕 장군. 금식월 중이라 차를 대 접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오.” 음력과도 또 다른 롱고 왕자(Pangeran Ronggo) 르바란 휴가 기간에는 오히려 평소보다 차가 더 막히곤 한다. 일 년에 한 번뿐인 긴 휴가를 맞아 나도 고향인 롬복 으로 떠났다. 작년 9월에도 다녀왔지만 머르타사나 왕자가 그들의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2세와 함께 말레이 반도 삐 낭섬으로 유배된 후 뒤에 남은 형제들의 맏형이 된 망꾸부미 왕자는 자기 수하 백수십 명을 총동 원해 뜨갈레조로 향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33 ‘나도 너희 말 들을 놈 아니다.’ 그도 하멍꾸부워노 2세의 반골기질을 그대로 물 려받은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조카를 만나러 온 망꾸부미 왕자는 디포네고로 왕자를 끄라톤으로 데려가긴커녕 그와 의기투합하여 함께 네덜란드 와 맞서 싸우기로 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삼촌 망꾸부미 왕자를 얼싸안던 그때에 망구부미 의 전향을 알게 된 다누레조와 네덜란드 측은 망 꾸부미에게 속은 것에 분개하며 마침내 본격적으 로 군대를 풀었습니다. 1825년 7월 21일의 일입 니다. 네덜란드군이 뜨갈레조로 들어가는 길을 폐 쇄했을 때 디포네고로의 저택에는 망꾸부미 왕자 가 데려온 사람들까지 포함해 1 먼 저 스마랑을 들러 왕후전하와 조카님들을 뵈었다 는 것입니다.” 센똣은 디포네고로 왕자의 미간이 들려 올라가 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오는 길에 함께 모셔왔어요. 왕후전하와 조카님들은 지금 마글랑에 와 계십니다.” 디포네고로는 표정에 진심을 비추지 않으려 전 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서 밀려 올라오는 반가움과 안도감을 센똣은 어렴 풋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인들에게 늘 무뚝뚝 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디포네고로 왕자가 라덴 아유 렛나닝시에 대해 품고 있던 깊은 애정을 측 근들 중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센똣 역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안전 역시 저와 클레이런스 대령이 함께 보장하오니 부디 마글랑에 들어오셔서 이둘 피트리를 그분들과 함께 보내세요.” 이둘 피트리(Idul Fitri)란 아랍어에서 차용한 단어로 라마단 금식월이 끝난 다음날 모든 직장인 물적피해 를 감수해야 했는데 네덜란드측 문헌에 따르면 이 전쟁 중 약 20만 명 정도의 자바인 민간인들과 7 고아 슬라롱 https://gudeg.net | https://rentalmobilyogyakarta.net 자바 전쟁 www.youtube.com 바후유다 (Bahuyuda) 번쩍이는 안장을 등 에 얹은 아라비아 종마 한 마리가 네덜란드군 병 사의 손에 이끌려 왕자 앞에 나왔습니다. 말 옆으 로 다른 네덜란드군 병사들이 커다란 상자도 한 개 내려놓았습니다. “앞서의 결례를 사과하는 뜻에서 바타비아에서 가져온 선물이오.” 상자 안에는 10 병 사 몇 명과 함께 디포네고로군 병영 내에 장소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디포네고로가 마글랑으로 간 다면 센똣 일행은 그 일행의 길잡이로 선두에 설 참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그 후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하기 오래전부터 빠눌라르 왕자(Pangeran Panular) 빠라깐 마을(Desa Parakan) 산야리 부미 디토히 뜨깐 빠 띠!) 뜨갈레조를 빠져나가기 직전 디포네고로 왕자가 지지자들에게 외친 이 자바어 문장은 그후 디포네 고로군의 모토가 되었는데 ‘머리를 한번 건드리 는 손가락에도 수렝로고 왕자(Pangeran Surenglogo) 등 내로 라하는 왕족들과 귀족들도 디포네고로 왕자 편에 섰습니다. 자바 전쟁에서 디포네고로가 승기를 잡 던 시기에 궁성의 왕자 29명 중 15명 시장에서 파는 것 보다 훨씬 맛있다고 자부한다. 3월 21일 르바란 첫날 신념을 굽힌 것에 대해선 드릴 말씀 이 없습니다. 하지만 망꾸부미 왕자님도 그렇게 놓아 보내드리지 않으셨습니까?” “잘 모르면서 그분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거라. 게다가 그분은 최소한 투항하면서 족자 시내를 자 랑스럽게 행진해 들어가진 않으셨다.” “전하께서 무슨 말을 하셔도 난 변명하지 않겠습 니다. 오늘 제가 온 것은 단지 하나의 약속과 하나 의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25 삶은 감자와 싱콩 뿌리(카사바) 밖에 없는 식사 를 나누면서 디포네고로 왕자는 센똣의 마음 속을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떠 보았습니다. “약속이란 마글랑에서 전하의 안전을 제가 보장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는 약속할 수 있는 지 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마글랑에 가실 때 안전 을 걱정하실 필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왜 내가 마글랑에 갈 거라 확신하는가? 디포네고 로가 그렇게 묻는 듯한 표정을 짓자 센똣은 이에 대답하듯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식이라 함은 아디네고로 왕자(pangeran Adinegoro) 아디위노토 수리요디뿌로(Adiwinoto Suryodipuro) 어머니 이때가 되면 도시로 일하 러 나갔던 사람들이 대거 고향으로 향한다. 인도네시아 의 독특한 문화로 정착한 이 ‘귀성(Mudik)’은 아주 오래전부터 르바란을 상징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자카르타 같은 대도시는 대다수 시민이 고 향으로 떠나기 때문에 시내가 아주 고요해진다. 평소 차량으로 가득 차 정체가 심하던 거리가 마 치 텅 빈 도시처럼 변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반면 내가 살고 있는 수카부미는 자카르타 와 주변 소도시들을 잇는 길목이라 이슬람력의 9월인 라마단 금 식월 중엔 해가 떠있는 동안 음식은 물론 물도 입 에 대지 않는 이슬람의 전통을 디포네고로 진영에 들어온 드콕 장군도 따라야만 했습니다. “좀 더 일찍 왔어야 했지만 바타비아에서의 일이 발목을 잡았소. 하지만 회담에서 피차 최선의 결 과를 얻기 위한 준비였으니 술탄께서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라오.” 머노레는 끄짜왕이 있는 뿌르워레죠보다 훨씬 더 마글랑에 가깝다 24 I 한인뉴스 2025년 7월호 그의 말투에서 디포네고로 왕자가 옛날 조부 하 멍꾸부워노 2세 앞에서 온갖 참람한 말을 떠들어 대던 댄덜스 장군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드콕 장군을 환대했 습니다. “비록 다른 신과 다른 선지자를 섬긴다 하지만 장 군께서도 자바를 잘 아시니 오감의 욕구를 절제하 는 무슬림의 라마단 전통도 익숙하시리라 믿소.” “물론이오.” “하지만 지난 5년간 피차 그리 많은 병사들이 죽 어나갔는데 우리가 협상을 시작한다 해서 당장 화 기애애한 자리가 되긴 힘들지 않겠소? 그러니 본 격적인 협상은 라마단이 끝나고 샤왈(이슬람력 10월)에 들어선 후에 속개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이후 거의 일방적으로 짓쳐 들어가 저택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포네고로 왕자와 망꾸부미 왕자는 대부분의 수 하들을 거느리고 이미 그곳을 탈출한 후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격분한 쉐발리에 부지사는 디포 네고로 왕자의 저택을 완전히 불살라 버렸습니다. 뜨갈레조에서 고아슬라롱으로 퇴각 이 사건은 그 후 5년간 지속되는 자바 전쟁의 시 작을 알리는 폭죽이었습니다. 습격을 당해 밀려난 셈인 디포네고로 왕자가 이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 게 지나칠 리 없는 일이었습니다. “Sadumuk bathuk 인애플 잼의 새콤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쿠키라 이번에는 집에서 직접 구워보았다. 파인애플 잼부 터 정성 들여 직접 만들었기에 일견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공력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수라카르타는 물 론 자바 역사와 인도네시아 역사를 나누는 경계선이라고도 합니 다. 네덜란드의 전비와 군사 작고 동그란 과자 속에 달콤한 파인 애플 잼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은은한 달콤함과 파 작년 르바란부터 조금씩이라도 베풀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르바란은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 따 뜻한 온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학업이나 직장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이들이 결국 고 향의 부모님과 친척들을 다시 만나는 것 장군께서는 어떠시오?” 드콕 장군을 잠시 등 뒤의 클레이런스 대령을 돌아보더니 다시 왕자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레노 까말에서는 내가 실수했으니 이번엔 술탄 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하지만 이번엔 내가 귀 진영에 들어왔으니 이둘 피트리(Idul Fitri - 금식월 직후 샤왈월 1일의 축제) 이후의 회합 때엔 술탄께서 마글랑으로 왕림해 주시길 기대하오.” 디포네고로는 즉답을 피했습니다. 그 대답이야 말로 그가 기다리던 것인데 말입니다. 드콕 장군 이 다시 클레이런스 대령을 돌아보며 손짓하자 멋 진 갈기와 윤기 흐르는 털에 제가 여기 오기 전 족자 술탄국 구석구석과 망꾸느가란 봉국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와 망꾸 부미 왕자는 크게 반가워하며 그를 얼싸안았습니 다. 그의 합류는 전력에 큰 보탬이 될 뿐 아니라 빠꾸부워노 6세의 측근인 그의 존재는 네덜란드 의 압박 속에서 모호한 입장을 보이던 수라카르타 도 사실은 디포네고로의 저항을 내심 지지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끼아이 모조는 이후 전장에 서 디포네고로군의 전략사령관이자 이슬람 큰 선 생으로서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족자의 귀족들과 일반 민중들이 끝없이 밀려들 어 디포네고로의 휘하에 들었으므로 깔리사카에 서는 더이상 그들을 수용할 수 없어 뜨갈레조를 나온지 불과 며칠 만에 왕자는 더 넓은 곳을 찾아 옮겨가야 했습니다. 가족과 병사들을 거느리고 꿀 론쁘로고군 (Kabupaten Kulonprogo) 덱소 마 을(Desa Dekso)에 도달한 디포네고로는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반뚤시(Kota Bantul)로부터 서쪽으로 5킬로미터 족자 지역 태수와 군수들 88명 중 41명이 그를 정치적 족자에서 남서쪽 으로 약 9킬로미터쯤 떨어진 고아 슬라롱 (Goa Selarong)이란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아내들 중 그를 따라 나선 라덴 아유 렛나닝시 (Raden Ayu Retnaningsih)와 하녀들은 고아 슬라롱 시도에도 목숨을 다해 저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도발과 공격을 절대 좌 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철철 흘러 넘치는 외침 이었죠. 네덜란드군의 공격 반대방향인 북쪽으로 빠져나 간 디포네고로 일행은 네덜란드의 포위망을 벗어 나 일단 깔리사카(Kalisaka)에 도착했습니다. 자 바 전쟁의 첫 전투라 할 만한 뜨갈레조 전투는 결 코 디포네고로 왕자의 승리라고는 할 수 없는 결 과였지만 이 사건 소식이 자바 전역에 빠르게 전 파되었고 네덜란드에 대한 공개적 저항을 시작한 왕자의 행동은 백성들의 연민과 응원을 불러 일으 켰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추종자들이 깔리사카로 몰려 들었습니다. 한편 왕족들과 귀족들도 디포네고로 왕자에 대 한 지지를 밝히거나 직접 병력을 데리고 모여들 었는데 수라카르타의 빠꾸부워노 6세도 은밀한 지지를 보냈고 가갈딴(Gagartan)군의 영주 라 덴 뚜먼궁 쁘라위로디자야(Raden Tumenggung Prawirodijaya) 즉 샤왈월 의 첫날을 칭하는 것으로 한국의 추석처럼 산지사 방에 흩어져 살던 가족 친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축제이자 잔치날입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에서는 르바란(Lebaran)이라고도 부르죠. 센똣 은 그날 이후 더 이상 부까뿌아사에 초대받지 못 했지만 사절단으로 함께 온 네덜란드군 장교 지난번에는 주로 친구들을 만 났다면 이번에는 온전히 가족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 냈다.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집밥은 평범한 달 걀프라이조차 고기보다 맛있는 최고의 성찬이었다. 명절에 지인이나 친구의 집을 방문하면 손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두는 쿠키가 있다. 바로 ‘나 스타르(Nastar)’다. 나스타르는 르바란을 대표 하는 쿠키로 특히 무슬림 직장인들이 일 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휴가이기도 하다. 르바란(Lebaran)의 원래 명칭인 ‘이둘 피트리(Idul Fitri)’는 무슬림들이 라마단(Ramadhan) 한 달간의 금식을 마친 후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다. 이슬람의 여 러 명절 중 가장 큰 축제이며 특히 자녀가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 는 것은 르바란의 유서 깊은 전통이다. 이는 해묵 은 감정을 털어내고 마음을 깨끗이 비워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르바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THR (테하에르)’인데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다누레조 재상이 노리던 반응이었죠. 당시 뜨갈레조 저택과 그 일대에는 디포네고로 왕자 주변으로 모여드는 이슬람 학자 들과 청년들 숫자가 무섭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숫자가 여단급 부대 병력규모에 가까워지자 지 척의 끄라톤 궁전을 장악한 다누레조 재상은 물 론 브레더부르크 요새의 네덜란드군에게도 적잖 은 부담이 되던 차였습니다. 그들로서는 어떻게 든 빌미를 만들어 디포네고로 왕자를 제거하거나 최소한 그의 힘을 크게 위축시킬 필요가 있었습니 다. 그러던 차에 다누레조 재상이 도로계획의 방 향을 뜨갈레조로 틀어 디포네고로 왕자를 격분시 키는 묘수를 생각해 냈던 것입니다. 조상의 묘소 가 파헤쳐질 것을 알고도 가만 있을 후손이 있을 리 없을 터였고 디포네고로 왕자는 그 미끼를 덥 썩 물고 만 것이죠. “더 이상 디포네고로 왕자가 제멋대로 구는 꼴을 봐줄 수 없소. 이번 도로공사는 왕국을 위해서도 우리 네덜란드를 위해서도 더 없이 중요한 일이 요. 그런데 그가 말뚝 박는 사람들을 때리고 우리 측량사들을 쫒아 냈으니 이건 반역행위와 다름 아 니지 않소? 당신이 디포네고로 왕자를 끌고와 사 과를 시킨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왕족이든 귀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13 족이든 상관치 않고 뜨갈레조로 쳐들어가 그곳을 초토화시키고 말겠소!” 네덜란드 지방청사에서 다누레조 재상을 뒤에 세운 채 목에 핏대를 세우던 스미사르트 주지사 /지방총독(Resident Smissaert)은 디포네고로 왕자의 삼촌 망꾸부미 왕자(Pangeran Mangkubumi)에게 노발대발하며 디포네고로 왕자를 잡아들이라고 악을 써댔습니다. 물론 망꾸부미 왕 자가 이 사태를 잘 무마할 것이란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총독부와 다누레조 재상은 최소 한 아무런 중재나 절충도 없이 디포네고로 왕자를 무조건 공격했다는 세간의 비난만은 피하고 싶었 던 것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내 말을 들을 녀석은 아니지 만 한번 얘기는 해 보겠소.” 하멍꾸부워노 3세가 죽고 한국의 세뱃돈 문화와 비슷하 다. 보통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는 문화다. 나도 동생과 사촌 항고위끄로모(Hanggowikromo) 같은 지휘관들을 통해 군대 체계를 편성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족자 남쪽 게게르 마을(Desa Geger)과 끼둘(Kidul)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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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도네시이아 현지에서 "서바이벌 인도네시아어 초급과정" "제1권"과 "제2권"의 종이책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드립니다. 현지에서 종이책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제 개인 카톡(아이디: kimjonglan)으로 연락을 주시면 좋겠습니다.참고로, 현재 현지에서 인쇄와 제본 중이니, 5월부터는 발송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은 권당 Rp 150.000입니다.…
쫑란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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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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