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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긴 단상 - 엄마와 딸 어릴 적 000 레알의 임대료를 받는 조건으로 끄두(Kedu) 000 점에 달합니다. 이 외에도 국 보급 보물들과 아름다운 끄리스 단검들 000명의 끄라톤 경비대 병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말았습니 다.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한 병사들을 등떠밀어 내모는 낯부끄러운 일까지도 모두 신두네고로 재 상의 일이었습니다. 강제 퇴역당한 병사들 상당수 가 자바섬 바깥 000짜짜(cacah)에 이르는 땅을 봉토로 떼어주었습니다. 이 지역은 빠꾸알라 만 봉국(Kadipaten Pakualaman)이 되어 현대까 지 이르게 되는데 노토꾸수모 왕자는 깐젱 구스티 빵에란 아디빠티 아리야 빠꾸 알람 1세(Kanjeng Gusti Pangeran Adipati Arya Paku Alam I) 000짜짜의 땅을 받았 습니다. 딴진싱은 꺼두(Kedu 1793-1803)와 족 자(1803-1813)의 화교집단 우두머리였는데 하 멍꾸부워노 2세를 폐위시키려는 영국군과 결탁해 미리 만들어놓은 대나무 사다리들을 공급해 끄라 톤의 벽을 타고 넘을 수 있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이듬해인 1813년 그는 래플스에게서 깐젱 라덴 뚜먼궁 쓰짜디닝랏(Kanjeng Raden Tumenggung Secadiningrat)이란 귀족의 칭호를 받아 나 족자 술탄국(분홍색) 서남쪽의 빠꾸알라만(녹색)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id/c/cf/ Peta_seri_DIY_AA_1945.png 30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요꼬의 군수(Bupati Nayoko)가 되는데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딴진싱의 모습을 무스타하르 왕자 가 지독히 혐오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 이었습니다. 대관식에서 무스타하르 역시 번도로 아리오 디포 네로고 왕자(Bendara Pangeran Ario Diponegoro)라는 새로운 호칭을 받습니다. 후세가 길이 기억하게 되는 ‘디포네고로 왕자’라는 이름은 이때 매우 모욕적인 상황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의 나이 27세였습니다. 왕족들은 물론 귀 족들도 지위가 변할 때마다 호칭이 변했고 그 역 시 훗날 또 다른 호칭을 갖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압둘 하미드’란 아랍식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했던 그를 후세의 인도네시아인들은 ‘디포네고 로 왕자’라는 이름으로 선택적인 기억을 하게 됩 니다. (제2장 끝) 제3장 왕위를 포기하다 하멍꾸부워노 3세는 술탄이 된 후 아직도 뒤숭숭 한 왕궁의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매번 식사를 물 리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육체적 정신적 건강문제를 노출시키며 국사에 대해 아무런 의욕 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기저에는 그가 어떤 의 지와 목적을 갖든지 영국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결코 성취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자리잡고 있 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왕국에서 일어난 사건 들로 인한 충격과 이제 술탄으로서 왕국을 위하 기보다는 이민족들에게 휘둘려야만 한다는 현실 은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고 정신적 부담을 견디 지 못한 그의 육체는 날로 쇄잔해 꼬챙이처럼 말 라갔습니다. “이럴 때 왕자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술 탄 전하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이번만은 궁전에 남아 아버지와 왕실을 지키겠다 고 마음먹은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왕가의 먼 친척이자 동부자바의 동쪽 끝 반유마스(Banyumas) 지역 군수 출신인 마스 뚜 멍궁 신두네고로(Mas Tumenggung Sindunegoro)입니다. 그는 시티힝길 대전에서 목이 날아 간 다누레죠 2세의 후임 재상으로 하멍꾸부워노 2세를 도와 정사를 돌보며 끄라톤의 경비병력을 강화하는 등 모든 일에 비범한 수완을 보였던 사 람입니다. 하지만 현저한 전력 차이로 처음부터 승패가 뻔했던 스뻬히 전투 초반에 바로 옆에 떨 어진 영국군 포격으로 큰 부상을 입고 며칠 간 사 경을 헤맨 끝에 결국 다리를 절게 되었죠. 끄라톤 이 함락되는 것을 맨정신으로 보았다면 당장 칼 을 입에 물고 자결했을 사람이었으니 당시 정신 을 잃고 있던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릅 니다. 사람들은 그를 다누레죠 3세 재상이라 불 렀습니다. “몸도 불편하신 재상께서 궂은 일을 모두 맡아주 시니 술탄 전하를 대신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신두네고로는 디포네고로의 대답에 헛헛한 웃음 을 웃었습니다. “선왕을 지키지 못한 신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자들인데 부끄럽게 살아남은 제가 이런 일 하는 것이 뭐 대수겠습니까?” 재상이 하멍꾸부워노 2세와 같은 강경파임을 영 하멩꾸부워노 3세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31 정말 곤혹스러운 부분은 족자 술탄국의 군대를 궁 전경호 정도만 가능한 수준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었습니다. 끄라톤 경비대의 강력한 저항을 경험했 던 영국은 총독부가 용인하는 규모 이상의 군대 를 술탄이 가질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대신 영국 군과 세포이 부대로 궁전 경비대의 주축을 구성했 죠. 물론 그들은 경비대를 빙자했지만 그것은 왕 실 턱밑에 칼끝을 밀어넣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 니다. 그 과정에서 당초 왕궁경비를 담당했던 부 기스족 경비대 1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선정된 25명과 한인 회 박재한 회장을 비롯한 손한평 수석부회장 1942년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 철도회사의 본부이며 1945년 10월 14일 인도네시아의 독립이 선언될 때 1960년대를 흔들었던 히피(Hippie)들을 만나게 됩니다. 당대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평화와 사랑을 외쳤던 히피들은 1판 단 위로 계란을 사던 한국과 다르게 여기에서는 kg 으로 알을 팔고 있다. 1kg을 맞추기 위한 아주머 니의 깡마른 손이 부지런히 알 무더기를 오고 간 다. 999g으로 맞추던 눈금은 이제 1.02g으로 맞 춰진다. 나도 익숙한 듯 “Terima kasih 2024 항일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몫이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9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본 역사탐방을 통해 재외한인 학생들의 역 사 소양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함양하는 한편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 립 운동가들을 기리고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가 되길 바라며 2024년 4분기 이후 일부 중견 건설사 및 리츠(REITs) 자산 운용사들이 다시 유동성을 확보하며 부동산 편입 비중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거시 지표’와 ‘시장 심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28일 양일간 인도네시아한인 고 등학생들과 함께 스마랑 지역 역사탐방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이번 역사 탐방을 통해 재외한인학생들의 역사 소양 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를 가졌다. 다수의 JIKS(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학생들 과 타 국제학교 10학년 90분간의 쉴 틈 없는 무대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많은 호응을 이끌 었다. 학생 30명과 5인의 교사로 구성된 <소리누 리예술단>(지휘 백승진)은 지난 9일 Angkatan Muda Kereta Api)과 일본군 간의 5일 전투로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지금은 철도 역사박물관과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고 약 600개 의 문으로 실내의 연결성과 규모에서 그 당시 철도회사의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탐방대원 학생들은 이태복 원장의 설명을 시종 진지하게 들었다. 라왕 세우를 끝으로 탐방일정 은 마무리 됐다. 탐방대원인 홍보배(JIKS 10)학생은 “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가 가장 인상깊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 인도네시아 수모워노에 독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머나먼 외지에서 항 일독립투쟁의 흔적을 좇고 그분들을 기억하는 시간 속에 감사함과 경외감이 느껴졌다” 고 소회 를 말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과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태 평양전쟁이라는 한편의 서사 를 보고 듣는 의미있는 여정이 었다 BATANG 등 6개 공장에서 성 형숯을 생산하면서 매월 한국으로 45콘테이너를 수출했는데 이 때 얻은 수입과 특허비를 받아서 병원 사업을 구상했다. 원래 꿈이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공 업고등학교를 택한 것이 의사가 되는 길을 막았기에 이곳에서 결혼한 집사람과 동료의사들 을 위해 같이 사회사업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종합병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개원한 지 3년 즈음 되던 해에 족자 대지진으로 병원 내부 설비가 훼손되어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 은 종합병원 C등급으로 의료서비스를 하고 있다. Q 아내이신 Ova Emilia 현재 UGM 총장님과 자녀들은 어떤 문화 속에 교육하고 가정생활을 하 셨는지 궁금합니다. w저의 가족은 딸 2 BTS 팬 ‘아미’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출처: 연합뉴스 2026년 봄 BTS의 팬들은 전 세계적인 자선 단체를 스스로 조직하며 국경을 넘어 서로를 돕는 다정한 행동주의자로 진화했습니다. 조연숙의 인도네시아 천 개의 이야기 조연숙 |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한인뉴스 2026년 6월호 I 21 하지만 히피와 아미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1960년대 히피는 기성세대의 질 서가 싫어 아예 사회 밖으로 뛰쳐나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그들만의 공동체로 숨거 나 급진적인 저항에 기대었던 히피 운동은 Basketball Jakarta Association)라는 교민 농구 모임이 열립니다. 벌써 13년째 활동 중이고 Bekasi) 한인뉴스 2025년 2월호 I 57 마다 오던 딱 만물상이다. 대무대 위에는 꽃잎에 한 바구니 놓여있다.(힌두교인들이 기도할 때 쓴 다.)향을 팔기도 하고 JIKS 박은주 KARTASURA (KOPASUS 2) NPL Q 한국계 인도네시아인 사업가 장근원 선생님은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나요? w본인은 현재 서부자바 TANGERANG (1988) 및 중부자바 Pati (2018) 지역에서 압축 성형숯 제조업과 YOGYAKARTA 시에서 병원 의료 사업(1999)을 하고 있습니다. Q 인도네시아행을 결정했던 계기와 한인최초 국비유학생으로서의 이곳 생활을 떠올린다면? w용산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식품공학과에 4기생으로 입학했다. 1974 년 에 군입대하여 34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1977년에 다시 3학년에 복학하여 3학년 과정을 수료했다. 1978년 겨울방학을 맞아서 4학년 등록금 준비를 궁리하던 차에 우연히 문학써 클 동우회 이대 친구로부터 인니 장학금 유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4학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영문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라서 주무 부서인 외무부에 찾아가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유학신청서를 제출했다. 인도네시아 유학을 결정했던 계기는 평소에 통속적으로 내가 자라오면서 익숙한 고정 관념적인 삶을 벗어나 새롭게 생활방식을 바꿔보 고자 하는 의욕이 나의 모든 마음을 흔들었다. w대학교 입학 시험에서 계셨던 학과장님 SENTOLO-WATES SERANG (KOPASUS 1) YOGYAKARTA [인터뷰 2.0] 영 비즈니스리더 6 / 기획: 이영미 채움디자인 강수한 대표 “공간을 채우고 bu”인 사를 나눈다. 코로나 상황은 더욱 심각 해졌다. 등교 수업이 금지가 되고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다니... 두 아이들은 좁은 원룸을 답답 함을 놀이 삼아 방을 정글로 만들었고 https://www.flickr.com/photos/agusyr/4215790206 수라카르타와 족자의 병사들 https://hiveminer.com/Tags/soldier%2Cyogyakarta 참 ‘구조를 짜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희가 실제로 활용 하고 있는 구조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구조 만들기 - Exit 전략이 두 가지 이상일 것 (매각 + 전세 / 임대 + 리모델링 등) - 외부 펀딩 ‘브랜드’로서의 힘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처럼 한국 문화에 대 한 관심과 호감이 높은 지역에서는 ‘선배 창업가’로서의 진심 어린 조언이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선배’라기보다는 여전히 어디서든 막내라는 마음가짐으로 배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한 가지 ‘설계’의 시기입니다. 한국은행 기준 ‘스마랑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철도 청 년단(AMKA ‘안쫄해변’에 모였다. 그곳에서 달을 보며 고향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이 신발 근로자들의 추석 명절 보내기였다. 혼자 있는 밤이면 외로 움 ‘유연탄을 무연탄처럼 사 용할 수 있는 2중연소 화로와 연탄 디자인’ 에 관한 특허를 1989 년에 신청하고 1992년에 특 허인증을 받았다. w그 특허 인정을 받아서 인니 국책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1997년 9월 동부자바 GRESIK에 월 1만톤 제 1 생산 공장을 세웠지만 1998년 5월 SOEHARTO 대통령의 하야로 그 사업은 중단되었다. w외환위기로 인니사정이 한참 어려울 때가 있 었다. 그 당시 성형숯 공장을 TANGERANG ‘은신’의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으니 당시 디포네고로 왕자의 처연한 마음을 살짝 엿보 게 됩니다. 15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장에 나선 싱론은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했고 훗날 한 전투에서 드콕 장군 바로 밑의 반드콜리르 장군(Jendral Van De Cohlir)를 죽이며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배신자의 밀고에 힘입은 네덜란드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그가 자바의 신비한 주술로 되살아 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총독부는 그의 시체는 훼 손해 와떼스 시내(Kota Wates)와 송고(Gunung Songgo)산에 나누어 매장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장면은 다시 마카사르의 포트 로테르담 요새로 돌아갑니다. 1830년 사로잡힌 후 26년간 그가 기 나긴 유배생활 중 겪은 고초를 차마 모두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가 포트 로테르담에서만 겪은 21 년간의 유배생활에 대해선 그리 많은 자료가 남 아 있지 않거니와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 전장 에서 죽음을 맞지 못하고 철창 뒤에서 세월에 점 점 시들어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실로 가슴아 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 은 그가 끝내 전향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는 1855년 1월 8일 유배지에서 70세를 일기로 마침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자바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마카사 르의 깜뿡 자바(Kampung Jawa)에 묻혔습니다. 마카사르 시내에서 북쪽으로 6킬로미터쯤 떨어진 와조면(Kecamatan Wajo) ‘형태가 아닌 본질’ 을 설계하는 디자인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자 노 력하고 있습니다. Q. 채움디자인은 한국적인 감성과 한국의 미(美)를 인도 네시아 스타일로 어떻게 풀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고급 주거 시장에서‘한국 스타 일’에 대한 관심이 분명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 희가 수행한 ‘가효’ 레스토랑 프로젝트 역시 그 런 흐름 속에서 탄생한 사례인데요  왜 자 신이 만든 그 가정을 버리고 떠났느냐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사십여 년 전  회사가 망하면 먹고 살길이 없어지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일해야 했다. 그래서 부산 신 발의 인도네시아 정착 기반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귀국한 사람도 현지에 남아있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훌륭한 업적을 남겼던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신발 근로자에게 고향 가족을 만날 기회는 일 년에 딱 한 번이었다. 바로 휴가 때였다. 휴가를 명절 기간에 맞게 간 사람들은 다행히 명절을 즐길 수가 있었다. 때를 맞추 지 못한 사람들은 자카르타 전신전화국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가난 간식을 걸어 두었다. 하늘길이 열리면 바로 나갈 거라는 나도 믿지 못 하는 상황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 본가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일주일 만 에 돌아온 문 앞은 또 다른 불평을 담은 여러 개 의 편지가 붙어있었다. 빈 집이었는데 말이다. 그 것도 일주일 동안. 모두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 했던 갈등과 혐오 가 가득한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서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물리적인 공간에 모여야만 힘을 발휘했던 일시적인 히피 운동과 달리 감침질…. 바느질을 하려면 바늘귀에 실을 끼워 주욱 당긴 뒤 매듭을 지어 준비해야 하는데 그걸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귀찮았던 나는 실을 최대한 길게 잡아당겨서 한 번의 준비로 모든 바느질을 끝낼 요량이었다. “ㅇㅇ이는 머얼리 시집 가겠네.” 무슨 소리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가 웃으셨다. “그렇게 실을 길게 잡으면 친정에서 먼 곳으로 시집 간댄다. ㅇㅇ이 실 잡는 거 보니 결혼해서 바다 건너 해외로 가겠네.” 어린 마음에 엄마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은 싫어서 다음번엔 실을 짧게 잘라 매듭지었지만 같이 놀던 새 노래도 들려주었다. 나무 고아원. 버려진 나무들이 모여 심어진 그 곳에서 하루하루 희망을 찾고 개인만을 우선시하는 현세태에 선대의 경험과 가르 침을 전달해야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국의 외딴 불 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 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 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 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1박 2일의 스마랑. 암바라와 지역 역사탐방으로 미흡하나마 여러분들의 초롱초롱한 눈으로 갈수 록 마모되고 스러지는 국외 독립투쟁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살아서 재생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 다. 여러분의 참여로 더 보람있고 값진 역사 탐방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역사탐방은... 10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2024 항일 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서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 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게 되새김 암바라와로 떠나는 시간여행 재인도네시아한인회(회장 박재한)는 8월 27일 갯벌에 망그로브 묘목을 심 던 청년도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BTS의 따뜻한 연대의 가치를 마음으로 배우며 자란 이 세대가 마침내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되었을 때 건국 이래 줄곧 서로 반목해왔던 족자와 수라카르타의 왕실은 영국군 진출을 맞아 함께 손 잡고 조직적으로 저항하자는 밀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제대로 된 계획이 세워지기도 전에 그 시도가 모두 들통나버리고 맙니다. 그들 술탄 과 수난 사이에 오고간 편지가 영국 총독부 손에 들어간 것입니다. “족자를 쳐서 다른 왕국들에게 본보기를 삼겠다.” 래플스 총독대행은 자기가 직접 나서 족자에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29 본떼를 보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벼르던 기회였습니다. 첫 만남에서 시작 된 하멍꾸부워노 2세와의 반목이 결국 전쟁으로 비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래플스는 그 편지를 빌 미로 족자 술탄국에 반역혐의를 걸어 1812년 6 월 19일 영국군대는 라덴 마스 사이드가 세운 망 꾸느가라 공국(Kadipaten Mangkunegara)과 손 잡고 연합군을 편성해 족자로 처들어 갔습니다. “왕자님 게으름에 안주할 겨를도 없이 변화의 시간은 째깍째깍 돌아간다. 회사는 숨 돌릴 틈도 없다. 두뇌 집단들은 회사의 이익을 내기 위해 교묘한 비책들을 내 놓아야 한다. 사건과 문제는 연일 터지고 폭발물이나 만난 듯 지레 겁을 먹은 현지인 관리 자는 수습의 함정에서 탈출할 궁리에만 급급하다. 불꽃 튀기는 군림과 복종의 경계는 보이 지 않는 전쟁과 같다. 밀려날 수 없는 경쟁의 틈바구니 겨울 여행을 시작한 이래 남편과 헤어진 지 12개월만에 드디 어 상봉을 하게 되었다. 살아있다는 현재형이 너무 감사했던 그때 결국 아이는 문을 꼭 닫고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기다릴수록 입도 닫고 결국 질 높은 주택에 대한 프리미 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글: 고성환 경쟁률은 낮아졌습니다. 3. 대형 플레이어는 움츠렸지만 경험과 젊은 감각이 공존하는 팀이라는 점이 큰 강점입니다. 특히 채움디자인은 ‘디자인’을 핵심 경쟁력으 로 삼고 있어 고 객의 니즈 고객 맞춤 설계에 있어 높은 자유도가 확보됩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은 분명 히 존재하지만 고국에서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자카르타 북부 바다 고등학교 가사시간에 꼭 한 번씩 바느질 과제가 주어졌는데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에게는 정보 분석과 법률적 구조 설계 역량이 요구됩니다.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I 63 투자 전략 투자란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인연들이 이 어져서 많은 다문화가정이 생겨났다. K의 아버지도 이런 사람 중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가정을 이루고 버린 사람들은 외로움 이나 고통을 견디는 힘이 약하고 공간의 성격까지 종 합적으로 고려한 설계 전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능과 교체 주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공공시설일수록 그 기준은 더욱 까다롭습니 다. 자재 선택의 폭도 다양하기 때문에 공동 투자 구조 공부 스트레스 공장설립 허가를 취득하고 국악관현악 연주 등 국토교통부 는 민간 주도 공급을 확대하고 귀 마저도 닫아버리는 아이를 보고 한밤중에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 옆에 같이 누웠 다. 한 달 그 감 성을 어떻게 조율해서 현지에 맞게 풀어내느냐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 감정의 결을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언어로 번역해 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디테일 을 유지하되 그 과정에서 신사업을 함께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인재에 대한 니즈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포지션별로 협업 방식이 다르지만 그 당시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성형숯을 먼저 제조 하자고 결론을 내렸고 1988년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 당시 나의 국적이 한국인이어서 토지 의 주인은 지금의 아내 이름으로 하고 주주는 양어머니와 지금의 아내이름으로 등록을 하 고 은행거래는 땅을 담보로 그 당시 2억 루피아 융자를 받아서 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종 류마다 다른 톱밥의 성질을 모르고 겪었던 여러가지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경험해 온 기록 물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특허 신청을 했다. 왜 인도네시아는 천연자원 석탄이 많 은데 국가 보조비를 내면서 석유를 연료로 사용할까? 문제는 유연탄이 대부분인 인도네시 아 석탄 생산량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 문이라는 것을 알고 그 모든 불화의 시작은 1811년 12월 28일 영국 래플스 총독대행의 일행이 족자를 방문했을 때 의 전상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족자까지 오 는 과정에서 방문한 자바의 다른 왕국에서 예전 네덜란드 댄덜스 총독이 세운 ‘장관에 대한 예 우’를 받았던 그는 족자 술탄국에서도 같은 대 우를 요구했다가 불같이 역정을 내는 하멩꾸부워 노 2세의 호위병들과 충돌하며 칼부림까지 갈 뻔 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놈들이나 그 사이를 유연하게 조율해 나가는 것이 저희의 중 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 우 그 세상은 이전보다 분명 조금 더 다정하고 포용적일 것 입니다. 경쟁보다는 연대를 그 시간 동안 비즈니스의 구조와 인 도네시아라는 나라를 몸으로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채움디자인도 존재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단순히 창의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그 열정이 힘든 상황 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한인 유학생 1호 장근원 선생과 한인뉴스와의 특별한 만남 [특별 인터뷰]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세계화 추세로 해외유학에 대한 문호가 개방되기 전 한국정부가 1970년대 말 국 비 유학생제도를 만들어 해외유학제도를 막 시행했을 때부터의 이야기이다. 더욱이 인도네시아로 목적 지를 정한 한인학생이 매우 드물었기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자 한 그 뜻과 도전에 대해 들어보자.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33 Q 대학졸업후 지금까지의 족자에 정착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w많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끝내고 마침내 박사학위과정에 자동 편입했다. 그 이유 는 대학교 창립이래 처음으로 최단 시간안에 학부 졸업 을 해서 종교성 장관의 특별 지시하에 졸업과 동시 대학 원에 편입했고 또 대학원과정을 이수하면서 규정에 의 해 (대학원 정원 22명 중 종합성적 상위 5위 안의 대학 원생은 주제 논문 발표없이 직접 박사학위 논문 제출로 대신한다) 박사과정을 밟은 것이다. w하지만 잠시나마 순탄했던 박사 학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들어갈 즈음에 인상적이었던 인니 유학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벌어졌다. 유학시절 초기에 한국기 업 ‘미원’에서 판매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1978- 1981) 를 학교강의가 끝난 시간에 틈을 내서 일을 하 고 있었는데 그 외 일부 부자재나 마감재는 인도네시아 현지 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합니다. 단 순히 ‘친환경이냐 아니냐’의 이분법보다는 그 장소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을 담는 기회입니다. 2. 기억을 영원히 간직 시간이 지나도 결과물이 소멸되지 않고 사진 으로 남습니다. 3. 건강한 일상과 습관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 그 한 끗 차이가 많은 문제를 줄여줍니다. 기회는 ‘적극적 으로 움직이는 사람’에게 늘 열려 있으니까요. Q. 끝으로 <한인뉴스> 독자분들께 따뜻한 인사 한마 디 부탁드립니다! 늘 채움디자인을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한 인뉴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현재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부회장과 JIKS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기업을 운영하는 입 장뿐 아니라 한인사회 구성원으로서도 서로를 지 지하고 연결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매일 실감 하고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 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한인 분들께 깊은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독백 속에 빈둥대며 일탈된 좌절에서 숨어보랴! 에라잇! 틱틱거리며 혐오의 눈초리로 짜증을 부려보는 오기가 보약이 될 수도 있으리라. 몰(mall)에 가다. 태양의 포격으로 헐떡거리던 도로 위의 자동차 그냥 길게 할걸….’ 후회하며 새로 바늘귀에 실을 끼우곤 했다. 그날의 기억은 어린 나에게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 그 후로도 바느질할 때면 늘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중학교 가정 시간 그때마다 스커트를 만들면서 그때의 경험은 분명 지금의 채움 디자인을 만든 단단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지향하는 ‘디자인 DNA’는 ‘정제된 감성과 실행 가능한 디테일’입니다. 단지 시각적 완성도가 아니라 실제 시공과 사용을 고려한 현실 기반의 디자인 그래 빨리 어디론가 달아나자! 기왕이면 고국의 시원한 가을이면 더 좋겠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서 설악산 계곡에 올라 신선들이 놀던 폭포에 풍덩 빠지고 싶다. 눈을 감고 허우적대며 손끝에 잡히는 것은 공허한 물방울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 뒤 섞였다. 1분 거리로 걸어 다니던 아이들의 학교는 원룸의 위치로 25분이 걸리게 되었고 차는 이미 판 뒤였다. 열 평 남짓 원룸은 전면의 절반이 창으 로 되어있었다. 창에서 쏟아지는 빛을 가릴 커튼이 쳐지지 않은 아무도 살지 않았던 신축 원룸이었다. 급하게 얻 은 원룸은 햇빛 이외의 물도 천장에서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장을 적실 뿐이었다. 그 다 음 날에는 구멍 뚫린 풍선에서 쏟아지듯 흐르기 시작했다. 아침 그렇게 인니국적을 가지고 살아온 지가 지금까지 34 년이라는시간이 흘렀지만 나 자신 스스로가 인도네시아 사람이라고 느낀 적은 내가 투표권을 가지고 투표행사를 할 때였고 그로봉안(Grobongan) 지역을 네덜란드 에게 조차하는 계약은 물론 그리고 ‘브랜드 철학이 자연스럽 게 녹아든 공간’이 채움디자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Q. 대표님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그리고 가장 큰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인도네시아에 처음 온 것은 2002년 2월 14 일입니다. 사실 자카르타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균형 잡힌 리더십 세 가지의 조화가 지 금의 채움디자인을 만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자카르타를 비롯해 주요 도시 곳곳에 채움디자 인의 손길이 닿았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대표 프로젝트 하나만 꼽자면? 그리고 채움디자인만의 ‘ 디자인 DNA’는 무엇인지도 함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러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현대 자동차 인도네시아 생산공장입니다. 팬데믹 초기 였던 2020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돌파하셨는 지 여쭙고 싶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 게 느끼는 변수는 ‘글로벌 경기의 직격타를 고스 란히 받는다’는 점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체가 제 조업 기반이 강한 시장이다 보니 그리고 동남아 전역 을 향한 미래 전략에 대해 강수한 대표와 함께 심 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안녕하세요 그리고 리더십의 본질을 배 웠습니다.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에 정착할 거라면 제대로 공 부하고 새 방향을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어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학과 에 편입해 졸업한 뒤 그리고 사용자 중심의 기능적 디자인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그리고 제 2 그리고 특히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교육이 많 아지면서 이와 관련된 플랫폼을 활용한 교육이 많이 요구되고 있다. Q 앞으로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w단순한 본인의 꿈이지만 한방과 양방이 같이 공존하면서 상응하는 ORIENTALWESTERN MEDICAL HOSPITAL을설립하고 그리고 한국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투자 트렌드에 대해 설 명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흐름을 바탕으로 그만큼 가볍 기 때문에 반드시 무언가를 붙들어야만 살아 갈 수 있다. 마치 우리들처럼. 벽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일정 하나하나가 정교 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 에 남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업이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는지를 몸소 느꼈고 글로벌 브 랜드의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현지 실정에 맞춘 공 간 기획을 통해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 다. 이처럼 채움디자인은 변화하는 업무 환경 글로벌 제조업 경 기가 둔화되면 관련 기업들의 인테리어 수요도 동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I 43 반 위축되는 구조를 띱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채 움디자인은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주목한 것은 바로 ‘접근 가능한 상업 공간’이었습니다. 예컨대 대 형 쇼핑몰 내 팝업 부스 글을 엮고 다듬으면서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을 쓰는 작업 자체가 제게는 힐링이고 기쁨이 었습니다. 제 부족한 글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 다. 오늘부터 지금까지의 제 삶의 궤적과 는 조금 다른 새로운 꿈을 꿔보겠습니다. 기계 설치하고 기기묘묘한 종유석 아래 블랙커피로 늘 어진 눈의 초점을 끌어올리자 다시 맑아지는 시야! 열대의 도시는 태양 빛에 점령당한 채 미 완으로 늘어선 일상의 그림자가 회색 선을 그으며 길게 한낮을 지나가고 있다. 기둥 기업 들이 아예 인테리어 설계 단계부터 줌미팅 공간을 요 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 경이 인테리어 패러다임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는 파크랜드 그룹 회장 실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특별히 회장님께서 한 국 본사 직무실로 저를 직접 초청해 “이 구조 그 대로 인도네시아에 재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 다. 책상의 위치부터 나무 결 방향 기업 운영의 구조적 지 속성까지 포함해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특히 저희는 최근 말레이시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 44 I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으며 기존 시스템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틈을 자신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메워나갑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하루 만에 100만 달러를 모으고 김진혁 교 사 2인 꽃이 피는 무늬 의 대리석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똑같이 구현하는 것이 조건이었죠.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현지 법인 직원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끄라톤 직할지인 아디 까르토(Adikarto) 지역을 영국의 총애를 입은 노 토꾸수모 왕자에게 이양한다는 증서 등을 만드는 한편 관련 지역의 영주들에게도 필요한 조치를 해 야 했습니다. 왕국에겐 치욕적인 일이었지만 어쨌 든 누군가 관련 행정처리를 매듭지어야 했습니다. 족자의 부기스 부대 복장 (오늘날 축제행진) https://www.flickr.com/photos/pra-yudi/12116870673 끄라톤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어찌 또 다시 보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라덴 마스 온또위료는 술탄 전하의 명령을 받들 지 않을 셈이냐?” 머르타사나 왕자의 비감한 목소리는 마치 피를 토 하는 듯했습니다. 무흐타하르와 그 시종들이 어깨 를 맞대고 북적이는 뜨갈르죠 저택의 마당은 마 치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저 멀리 끄라톤에서 사람들의 함성과 대포소리도 간 간히 들려왔습니다. 무흐타하르는 다시 말머리를 돌리려는 머르타사나 왕자의 말 고삐를 붙잡았습 니다. “숙부님은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영국군과 망꾸느라가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내 부대의 거의 대부분을 잃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들의 죽음을 절대 헛되이 만들지 말라. 난 나는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 안 간힘을 쓰고 못 나가고 있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 했다. 그곳이 어디든 낯선 땅에 있는 배우자를 보 지 못하고 나는 주 의를 주느라 협박을 하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옆 집은 봐주지 않았다. 문 앞에 포스트잇이 테이프 로 붙여진 채 4장이 붙어있었다. 그 다음 날에는 찢은 공책이 붙어있었다. 연이어 나는 반갑지 않 은 러브레터를 받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피 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안절부절못했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 편지도 써보고 나무 나무에 새순이 나는 모습을 마스크에 갇힌 코로 흡입했다. 그 날 이후 새로운 백신이 나무에서 나 와 내게 신성한 면역력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그 힘으로 2020년10월 20일 지난 나와 아이 사이의 탯줄. 그리고 그 후로도 이어질 긴 연결고리들을 떠올리면 나의 일부가 계속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수상 소감> 하루하루가 비슷한 주부로서의 매일이었습니다. 과연 앞 으로 누군가의 아내 나이도 다른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쓰레기를 줍고 서로에게 생수를 건네는 모습 덕분에 남자카르타 삼성전자 개발 사무실(Samsung Electronic Indonesia) 등 다양한 프로젝트 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한 채움디자인은 단순한 공간 설계를 넘어 내가 내민 손 또한 그들에게 희망이 된다. 이번 한달동안 한참을 생각했던 주제와 덩굴식물 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삶은 언제나 벽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린 또 이렇 게 식물에게서 답을 구한다. 벽은 끝이 아니라 함께 오르기 위한 시작이다. Shingle Plant 내가 무너지면 아이도 다시 괴로워한다. 세상에 엄마가 없이 태어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 중에서도 딸과 엄마에게는 다른 관계에서 는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어도 가장 감정이 뒤섞여 들어가는 관계랄까. 자기 자신은 아니지만 타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같은 엄마와 나 사이의 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조금 더 깨끗하게 가꾸며 네덜란드는 재통치의 야욕을 품고 영국군을 앞 세워 구 점령지에 진주하게 된다. 식민화의 전철을 방임할 리 없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일본군 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탈취한 일부 총기류를 들고 대적하여 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수카르노는 족자카르타를 임시수도로 정하여 야음을 틈타 기차탈출을 감행하였으며 네덜란드인 주거지와 지척이었습니다. 점령 자 네덜란드와 그 하수인들이었던 화교들을 자신 이 죽은 후에도 끝내 감시하겠다는 의지였을까요? 네덜란드는 그의 유언을 존중해 1.5 헥타르의 땅 을 내주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노 병한의 자결지)를 거쳐 철도박물관 누군가는 ‘기회를 사들이는’ 해이기도 합니다. 늘 내게 좋은 물건을 현지인에게 보다 싸게 주 었다. 그게 잘못되었을까? 2년이 지난 어느 날 능력도 없었을 터. 시련이 없다 면 우리는 강해질 수 없다. 실패와 좌절이 없다면 성장도 없다. 그리고 그 사 이사이 아주 작고 소소하게 파인 홈들이 잠시 숨을 고르게 하고 또 다른 길을 터준다. 덩굴에게 벽은 장애물이 아닌 ‘길’이다. 코윈 북클럽(Kowin Indonesia 소모임 북클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의 9월 작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17년간 제조 현장에서 근무하며 공장장까 지 경험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 경 험과 문화적 통찰을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채 움디자인을 설립한 그는 단기성과에 민감하고 예측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 속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도 단순히 친환경 자재나 설 계 기준에만 국한되지 않고 단순화해낼 수 있는 실행력이 중요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묻습니다. “언제 다시 오르나요?”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들어가느냐’입니다.” 2025년은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해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디자인 기업 창업을 넘어 현지 제조업에 몸담으셨던 이력이 인상 적입니다.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 는지 단지 ‘한국 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당연 히 끄라톤으로 돌아간다. 내가 이 전장에서 죽는 다면 반드시 부왕을 지키다 죽을 것이다. 너희들 몫까지 내가 싸울 것이다. 적들이 이곳까지 닥칠 지 모르니 너희들은 뜨갈르죠와 온또위료 왕자를 목숨을 다해 지켜야 한다!” 머르타사나 왕자 일행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저택 을 빠져나가자 이제 시종들은 무흐타하르를 겹겹 이 둘러싸고서 무릎을 꿇었고 고개를 숙인 무흐타 하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1812년 6월 19일부터 20일 사이에 영국군이 족 자 끄라톤궁을 공격해 벌인 이 사건을 스뻬히 전투 (Geger Sepehi)라고 부릅니다. 스뻬히(Sepehi) 란 당시 영국군이 운용했던 인디아인 용병 스뽀 이(Sepoy)부대의 인도네시아식 표기에서 유래 한 것입니다. 1812년 6월 13일 스뽀이 부대가 전체 병력의 반 쯤을 차지하는 영국군이 야음을 틈타 프레더부르 크 요새(Benteng Vredeburg)에 은밀히 입성했 고 래플스 총독대행은 며칠 후인 6월 17일 족자에 도착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5시경 영국과 손잡 은 노토꾸수모 왕자의 가족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끄라톤 궁전을 떠나 요새로 피신했고 1810년대 동인도의 세포이 부대 병사들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31 6월 19일을 기해 영국군을 끄라톤 궁전에 경고포 격을 가했습니다. 지척인 프레더부르크 요새에서 의 포격은 위협적이기 짝이 없었지만 강경한 술 탄은 이를 무시하고 결전의 칼날을 갈았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의 본격적인 포격이 시작되자 끄라 톤 동쪽 방어선에 설치된 끼야이 나가룬띵(Kyai Nagarunting)의 포대의 화약통이 맞아 폭발을 일으켰고 끄라톤 경비대의 스타블 포대(Brigade Setabel) 병사들이 불덩어리가 되는가 하면 부기 스 부대가 지키던 무기고도 포격에 날아가 버리 고 말았습니다. 더욱 치열해지던 전투는 다음날 절정에 이르러 결국 영국군의 승리로 굳어져 갔 습니다. 그날 새벽 영국군은 족자 화교사회 우두머리 딴진 싱(Tan jin Sing)이 준비한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끄라톤 궁안으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에 서 따루나수라(Tarunasura) 를 비롯한 빤짜수라(Pancasura-다섯 개의 관문)가 모 두 파괴되고 그곳으로 영국군 이 쇄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왕족들이 목숨을 잃었는 데 그중엔 술탄의 사위로 끄 라톤 경비대 총사령관이었던 깐증 라덴 뚜먼궁 수마디닝랏 (KRT Sumadiningrat)과 대걸레 대부분 경쟁 입찰을 통해 결정되는 구조 이다 보니 대부업 협업 등 리스크 다각화 2. ‘매수’보다 중요한 ‘운용’ 중심 사고 - 가격보다도 명도 대사관 류완수 영사 대출 규제 등 일부 완화를 단행했 습니다. 이는 시장을 진정시키고 수요를 유도하려는 의도된 정책 방향이며 대표님. ‘공간을 채우고 더 나아가 해외에서 우리의 전통 예 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 라며 축사를 전했다. 국립 국악고 <소리누리예술단>은 군영의 행진을 위한 ‘대취타’를 첫무대로 태평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카르타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오래된 콘크리 트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식물들을 자주 마 주한다. 균열 진 틈마다 뿌리를 박고 더 멀리 덩굴의 여정 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벽이 있기에 우리 는 서로를 찾아 오르는 거라고. 여행을 떠났다 다 시 돌아오는 거라고. 벽은 배경이 아니라 성장의 전제가 된다. 덩굴은 벽을 발판삼아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고 도덕성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버려진 가족 들은 이런 아버지를 당연히 원망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람을 미워할수록 미 워하는 사람만 고통스러워진다. 듣고 있던 K는 ‘아버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숨에 묻 어 삼켰다. 커피집을 나오니 눈이 내린다. 부산역 광장 앞 지하철 입구에 서서 작별 인사를 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K의 머리 위에 하얀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저 하얀 눈이 K 의 대학 졸업과 취직을 축하해 주고 있다. K의 아버지 선물이라고 소리쳐 주고 싶은 충동 이 일어났다. 한국인 아버지의 버리고 간 첫딸 K가 부산역 지하도로 내려간다. 지하도 계단 계단에 한 국인 아버지가 입혀 놓고 간 무거운 허물 하나씩 벗어놓고 내려갔다. K는 가장 공정해야 할 삶의 첫 시작을 가장 불공정한 환경에서 시작하고 있다. 미래를 향해 바로 가고 있음을 보게 되어 내 마음이 홀가분하다. 서울행 열차에 자리 잡고 앉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신발 의 전설 부산이 차창 넘어 흰 눈이 되어 멀리 사라져 간다. 독립 투사가 되었던 그 들의 비애와 아픔에 분노하는 아이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고통 받았던 그 때가 불과 80여년 전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라 얘기했습니다. 나라의 힘없음으로 인해 고통 속에 삶이 무너지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목숨까지 바쳤던 선조들이 불과 80여년전에 이 곳에서 그렇게 사셨 다는 것이 현장을 가보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직접 두 발로 걸어 서 그 분들이 걷고 뛰셨던 그 곳에 발을 딛고 선 자체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고려청년독립당의 강령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에는 그들의 의지와 정신이 그 때에 끝난 것이 아니 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해지며 돈 벌기 위해 전쟁터 월남으로 떠났던 우리 삼촌들처럼 동시에 누군가는 ‘판’을 짜고 동종 업계에 비해 트렌디하고 열린 시각으로 고객과 소통합니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 인 전공 출신인 총책임자와 영국에서 인테리어 디 자인을 전공한 팀장은 두바이 등 중동권 프로젝트 를 경험한 뒤 저희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다른 직원 들도 실내 디자인 된 신발 전문인들은 돈 벌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나야 했다.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한 선택 이었다. 전쟁터 한국 참전 용사들이 가장 전투를 잘했다고 모두 인정했다.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했기 때문이었고 두 달 두 달... 그리고 기 약 없는 날이 늘어졌다. 원룸은 재계약을 했다. 전 세로 얻어야 할까? 워킹맘으로 지내면서 힘들다고 불평을 하며 살 았었다. 아침마다 아이 둘을 혼자 챙겨 한 녀석은 어린이집에 한 녀석은 학교에 넣고 두려움 등에 몸살을 앓았다. 그러다 보니 일터에서 매일 만나는 현지 여인들이 위안이  되었고 둘째 아이는 유모 차에 넣고 나는 세계 여행을 떠났다. 한국인이 없 는 곳에서 생경한 다른 나라의 사람 사는 모습들 을 아이들과 나누고픈 욕심이었다. 날씨는 촛불에 세워두면 촛농이 떨어질 듯했다. 하지만 모처럼의 여행이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기 싫은 장면과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눈에 디 테일이나 품질 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구현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채움디자인은 한국 산 고급 자재와 로컬 자재를 믹스해 사용하는 방식 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닥재는 고객이 꼭 원할 경우 LG의 고기능성 바닥재를 수입해 사용하 고 디자인 감각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소통과 관리입니다. 언어를 넘어서 디포네고로 왕 자는 끼소데워를 끄라톤에서 빼내 끼뗌삐(Ki Tempi)라는 이름의 절친에게 맡겼습니다. 네덜 란드군이 끈질기게 저항했던 라덴 롱고 가문의 후 손들 씨를 말리려 하였으므로 끼뗌삐는 위치를 들 키지 않기 위해 늘 장소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네 이름은 싱론이라 하마. 널 친구에게 맡기고 떠나 야 하지만 내 마음 만은 항상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마카사르의 포트 로테르담 http://makassar.tribunnews.com 42 I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디포네고로는 아직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 를 보듬어 안고 그렇게 속삭였습니다. 싱론이란 ‘도피’ 디포네고로 왕자와 같이 네덜란드에게 끝내 저항하며 자신의 지위와 목숨 을 초개와 같이 버린 이들은 오늘날 인도네시아인 들의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제8장 끝)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끝 디포네고로 왕자 묘역 https://situsbudaya.id 또 어 떤 이는 그 벽을 넘어가든 부수든 전진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 인간에게 벽은 길을 막고 또 한편으 로 나 스스로가 한국사람이라고 느낄 때는 나 스스로가 부인과 아들 딸들 모두에게 한국의 위대함과 우수성을 알려줄 때이다. Q (한국인 인도네시아 진출에 대해)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한국인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의 본인의 위치에서 한국인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 지만 굳이 말하자면 w장점이라면 근면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며 예의를 지킨다. w단점은 너무 성급하고 또는 누가 걸린 것인지 알아내느라 동전을 던졌다. 사람이 무서웠던 그 때 라왕 세우에서 이 먼 타지에 끌 려와서 강제 노역을 하고 레이아웃을 통해 공간의 정서와 흐름 속에 자 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이죠. 고객들도 이런 절제 된 한국적 무드를 굉장히 신선하고 고급스럽게 받 아들이는 편입니다. 사실 초창기에는 상업 공간 렌즈 너머 삶의 강인함을 담다 광양 백운사진 동호회 활동 전국 사진 공모전 입상 8회 롯데케미컬 등 의 굵직한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리모델링 마약과 범죄조직의 유혹이 도사리는 멕시코에서는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소속감과 문화적 해방구를 제공함으로써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주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조용히 이어지 는 이 연대를 바라보며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이 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 을 지닌 직원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아이. 아무리 도와주고 지지해 준다 하더라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부분들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기에 우리의 이 떠돌이 생 활이 지긋지긋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의 적응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공장을 짓고 말하자면 동인도의 북쪽 끝이었지만 아주 오지는 아니었습 니다. 마나도는 한국 참치잡이 원양어선이 자주 기항하면서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항구인데 대항 해시대 당시에도 포르투갈 상선들을 위시해 그후 유럽 선박들의 출입이 잦은 지역이었죠. 디포네고 로 왕자와 그들 일행을 마나도로 보낸 것은 그곳 미나하사(Minahasa) 지역을 네덜란드가 공고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디포네고로 왕자를 구출하러 올지도 모를 민중군을 두려워했으므로 마나도쯤이라면 설사 그런 구출시도가 있다 해도 충분히 격퇴할 만한 환경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네덜란드에게 여전히 가장 위험한 인물이 었고 동인도 민중들에겐 변함없는 정신적 지주였 으니까요. 하지만 미나하사인들은 자바인들과는 전혀 달랐 고 거의 들어보지도 못했을 디포네고로 왕자에 대 한 존경심도 희박할 터였습니다. 실제로 미나하사 인들은 1945년부터 벌어지는 독립전쟁에서 여러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걸출한 영웅들을 낳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네덜란 드 편인 총독부 산하 KNIL군 제복을 입고 수카르 노의 공화국군과 싸웠던 전력이 있습니다. 먼저 체포된 끼아이 모조도 마나도의 포트 암스 테르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똔다노(Tondano)에 유배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은 끝내 다시는 재회하 지 못합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마나도에서 다시 마카사르의 포트 로테르담 요새로 이감된 것은 유럽의 정세변 화 때문이었습니다. 1830년 하반기에 네덜란드 남부에서 일어난 반란이 1839년 벨기에의 분리 독립으로 이어지게 되죠. 그 사건의 초창기는 디 포네고로 왕자가 마나도로 유배된 지 얼마되지 않 았을 때였습니다. 네덜란드는 벨기에 혁명을 틈타 프랑스와 영국 의 개입을 우려했습니다 특히 영국해군이 동인도 북부를 공격해 오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영국이 디포네고로 왕자를 손에 넣으면 그를 앞세 워 동인도의 네덜란드 식민지를 흔들 것이라 생 지난 호에 이어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26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I 41 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디포네고로 왕자를 좀 더 방어가 유리한 마카사르의 포트 로테르담 요새 (Fort Rotterdam)로 옮긴 것입니다. 수감 중인 디포네고로 왕자를 방문한 유명인들 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1837년 당시 16세였던 네덜란드의 헨리 왕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쇄 락한 왕국의 술탄 디포네고로 왕자가 감옥 속에서 시들어가는 모습을 식민지 종주국의 어린 왕자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디포네고로는 마나도 유배기간인 183~1832년 자신의 이야기인 ‘바바드 디포네고로’(Babad Diponegoro-디포네고로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썼는데 이는 생생한 자바의 역사서로 평가받았고 그후 각색되어 민중들의 연극무대에 오르고 있습 니다. 바바드 디포네고로는 2013년 유네스코 세 계기억유산으로 등재됩니다. 한편 디포네고로 왕자가 사로잡히면서 자바 전 쟁이 마침내 끝난 족자 술탄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하멍꾸부워 노 5세는 왕국의 주권 대부분을 네덜란드에게 위 탁하는 정치적 밀약에 서명하게 됩니다. 그 치욕 스러운 밀약은 1988년 술탄 하멍꾸부워노 9세가 공식폐기하게 되죠. 1830년부터 네덜란드 총독부는 동인도 전역에서 ‘강제경작제도’를 실행합니다. 디포네고로 전쟁 으로 바닥난 총독부와 네덜란드 본국의 재정을 충당 하기 위해 동인도에서 쌀 대신 경제가치가 높은 커 피와 차 매수자는 줄었습니다. 2. 낙찰가율은 낮아졌고 멀라유 마을(Kelurahan Melayu) 모두 얼굴에는 눈만 보 이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누가 코로나에 걸렸는 지 서로 티를 내지 않느라 몰입의 즐거 움과 리듬감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골프 역시 조 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이고요. Q. 마지막으로 몸 안에 차오르던 수 증기는 급기야 하늘을 날기도 전에 먼저 물방울이 되어 중력의 명령에 순응한다. 불기둥처 럼 뜨거운 ‘스나얀 플라자’ 회색 벽의 모퉁이 무 기고)을 방문하였다. 이어 수모워노 고려 독립청년당 결성지에서 탐방단의 목소리 로 결기가 넘치는 청년당의 강령과 ‘대 한독립만세’를 외쳤다. Novotel Semarang에서 탐방 첫 날을 마 감했다. 항일의거지(무기고)-성요셉성당 수모워노-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 12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둘째 날에는 스마랑 대표 관광명소인 라왕 세우(천개의 문)에 들렀다. 라왕 세우는 네덜란드 정 부에 의해 1904~1907년에 건설되었고 무스타하르로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은 병에 걸릴 수 있다는 협박을 이겼다. 혹여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매일매일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없던 위경련이 생긴 것은 그 즈음이었다. 일단 2달 을 견디기 위한 원룸을 급하게 구했다. 파사르의 두 번째 집은 건너편의 계단 옆에 붙어 있는 가게다. 물병 무엇을 사고 싶냐며 먼저 나가 온 해리 아저씨. 본인의 가게의 물건이 좋지 않으 면 이웃 가게의 야채를 품삯 없이 구해 주었다. 팁 이라도 주려고 치면 무책임하고 문득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들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시간을 50년쯤 되돌려 보면 문인협회 김 주명 사무국장 및 한인회 사무국을 포함 총35 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가루다항공편의 스마 랑으로 향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과 조선인‘위안부’ 등의 군속의 신분으로 1942년 9월 14일 자카르타 딴 중쁘리옥 항에 도착하여 힘든 삶을 견뎌 낸 선조들의 자취를 따라 첫날 첫 탐방지인 암바라와로 이동했다. 드라마 세팅장처럼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암바라와 성은 옛 모습의 처연함을 담고 있지 않았고 관광지 로써 탈바꿈이 진행 중이었다. 허락된 소수를 제외한 탐방원들은 입구까지만 입장이 가능했다. 한편 물론 태반은 세 상의 발전과 힘있는 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오늘날 550 평방미터 정도로 묘역이 크게 축소되어 있습 니다. 그의 아내와 미니 한복을 만들면서 내 마음에 따라 실을 잘라댔다. 아무런 근거 없는 속설임을 알면서도 사춘기 아이답게 엄마한테 화가 나면 일부러 실을 더 길게 자르고 미니멀하고 모던한 감성으 로 조화롭게 풀어낸 디자인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전통 요소를 단순히 복제하기보다는 미완의 존재 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아이가 어릴 땐 일부러 담쟁이만 찾아 다니기도 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 열 두 달 식물칼럼 시즌2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I 55 학부 때 덩굴식물들 사진을 찍으러 다닌 적이 있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줄기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랐다가 결국 벽 가장 꼭대기에서 다시 만나 아치를 이루는 모습이었는 데 나는 그 모습이 마치 시처럼 느껴졌다. 괴테의 『파우스트』 속 그레첸이 던진 절망의 질문처럼 삶은 종종 의미를 잃은 듯 보이지만 민중 중에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타국에서 그 세 종 류의 입지로 산 군속들과 자신을 대비해 시간여행을 해보길 바랍니다. 억울함과 희생 바느 질을 하다 보면 중간에 실이 다 끝나서 ‘아 바다를 찾아 다 니는 여정은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시켜 줍니다. 4. 삶의 품격을 높이는 기록 시간이 흐르고 연륜이 쌓이면‘작가’혹은 ‘선생님’이라는 존칭도 얻게 됩니다. 앞으로도 인도네시아의 숨은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 가며 풍경 속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바로 조직 구성의 균형 감과 유연한 접근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주요 한국인 실무진 5명은 모두 80 년대 초반생으로 박음질 반주 조선아)과 성악가 오유미(첼로 김아람 발리 기병대를 비롯한 9 밥을 하다 배제 대신 포용을 선택하는 작은 태도들이 모여 세상을 한 걸음씩 나아가게 만듭니다. 광장에서 쓰레기를 줍던 학생도 법적 회수 가능성까지 고려 3. ‘정보 비대칭’을 설계로 이기는 전략 - 공매 베트남 등 신흥국의 고자산가 유입도 제한적이나마 존재합니다. 3. 자금 흐름은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지만 벽은 덩굴 덕에 초록 빛 머금은 근사 한 옷을 입는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그저 양쪽 모두 보다 강단있는 망꾸디닝랏 왕자(Mangkudiningrat)에게 태자의 자리를 넘기려 마음먹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7 고 있었는데 영국은 성품이 온순한 아디빠티 아놈 을 이후 족자의 왕좌에 앉히려 했던 것입니다. 네 덜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영국도 그를 한없이 만만 하게 보았던 것이죠. 지방총독 보고서에 따르면 태자는 아버지에게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폐위당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나 왕좌를 되찾겠다 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술 탄이 되기엔 너무 착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 지만 영국이 태자와 접촉한 사실을 알게 된 하멍 꾸부워노 2세는 영국 총독부의 저의에 대한 증오 를 더욱 불태웠고 아디빠티 아놈은 덩달아 부왕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 즈음 보자기가방 만들기 등의 체험 부스들도 잘 준비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이 참여하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11 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한국에서 초청된 국악고 등학교의 공연을 지켜보며 한껏 흥이 오른 어르신 과 열심히 손뼉을 치는 아이들 복잡한 물건일수록 수익률은 높다 - 복잡한 구조를 읽고 부동산 관련 대출의 연체율이 2024년 말 기준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이는 채 권 시장의 팽창과 함께 부산 공장들은 문을 닫거나 시설을 인도네시아로 이 전해야 했다. 신발 경험밖에 없던 전문 인력들은 다른 업종에 가서 일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오래전 부산의 신발 산업이 무너지면서 많은 신발 전문 인력들이 인도네시아로 갔 다. 먹고 살길을 찾아서 간 것이다. 높은 인건비로 인한 생산 원가 상승으로 신발 바이어들 은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떠나고 부실채권(NPL) 시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이며 북부 술라웨시의 마나도(Manado)는 분양가 상한제 불도 어둡 지 않았다. 컨테이너로 숟가락 하나까지 꽁꽁 싸 매어 보냈던 나는 처음에는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말아지는 실리콘 도마를 브 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고객 접점을 확장하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줬습니다. 위기의 시기일수록 속 도를 조절하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 다고 생각합니다. Q.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키워드로 떠오르 고 있습니다. 채움디자인은 친환경 자재 브 랜드 철학 브 랜드의 정체성을 공간에 담아내는 전략적 디자인 접근을 실현하고 있다. 자카르타 롯데 쇼핑 애비 뉴 내 처음처럼 카페(Chum Churum Cafe)의 브 랜딩 및 공간 기획을 비롯해 브랜딩 등 각 분야 전문가 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비닐봉지... 어릴 적 트럭에 싣고 우리 동네에 5일 평범한 일상의 위로 Kenyamanan dalam Kehidupan Sehari-hari yang Sederhana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일반부 최우수상 최하진 (ACS Jakarta 국어 교사 비루함을 매일 짊어지고 살았을 이곳 인도네시아에서의 하루하루를 상상해 보길 바랍니다. 서류상 지원한 것으로 되어있고 임금을 지급하였으니 정당한 노동행위라고 주장 하면서 실제 놓여진 상황의 실증을 회피하고 빛으로 가는 사 다리다. 벽이 없다면 덩굴은 바람에 쓰러져 햇빛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벽이 있기에 더 높이 빠 찌란(Paciran)의 일부 사대 주의 관념을 가지 고 있는 것이다. Q (한국인 인도네시아 진출에 대해) 한국교육과 의료(병원) 부문에서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고 싶어합 니다. 이들 부분에서 한국계 기업이나 한국인이 움직일 공간이 있나요?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w최근 들어 가상공간 플랫폼인 메타버스(Metaverse)가 다양한 곳에 쓰이면서 비대면 시 대의 미래교육과의 연결을 생각해보는 기회 사람 한 명이 더 필 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한 이 땅에서의 생활이 결국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 니다. 막상 제조업 현장에서 1년 넘게 일해보니 사물놀이 사방이 매서운 눈초리로 울타리 처 진 격전장의 작은 피난처는 어디인가? 휴식이다. 돌아오라! 나에게 여가의 기회를. 폭주하는 주말 약속을 손꼽아 기다린다. 낯 선 열대의 나라에 집이라는 작은 형방에서 단 하루의 옥살이도 허락할 수 없다. 서둘러 휴 일을 예약한다. 낙오의 쓴맛은 참담하다. 이열치열의 원리를 진즉 터득한 적도의 사나이들! 골프에 목숨 건 일당들이 아침부터 카톡을 눌러댄다. 카톡! 카톡! 카카톡! 김준규 |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회장 한인뉴스 2026년 6월호 I 49 빈둥대다. 이 땅의 열기를 피하여 더 이상 숨을 곳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열 대의 음습한 더위가 뒤통수를 무겁게 한다. 공허한 외침도 괜찮아! 먼 거리의 장벽은 가정 의 수치일 뿐 사산문화원 이태복 원장 사업 운영은 어떻 게 연결되고 있나요? 학창 시절의 전공이 지금의 채움 디자인 운영에 어떤 ‘숨은 그림’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패션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그때는 디 자인이 단지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일 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진과 함께한 인도네시아 기록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55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의 순간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오 늘도 그 성벽을 무너뜨리려는 파도는 쉼 없이 밀려오지 만 거대한 성벽처럼 버티는 바위는 세월을 견뎌온 삶의 강인함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사진은 저에게 있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바라보 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라는 말처럼 사진은 기억을 기록하고 감동을 저장합니다. 렌 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더 섬세하고 더 아름답게 다 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을 취미로 삼는 것을 많은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사진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의 조우 그 계절 삶을 완성한다” 채움디자인은 인도네시아에서 주목받는 인테리 어 디자인 및 시공 전문 기업으로 삶을 채우 다’는 말처럼 상대방에게 너무 쉽게 화를 내는 것이고 상대방을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태도 새 집을 멋진 나의 애마를 헐값에 넘겨 처분했다. 컨테이너로 짐을 보내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자부심 을 심어주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을 가진 젊은 인 재들이 회사의 전략에 직접 기여할 수 있도록 판 을 만들어주는 방식이죠. 특히 저는 ‘적극성’을 지닌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 대표님 보시기에 한국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글로 벌 무대에서 더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점은 무 엇일까요? 분명 지금의 K-디자인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석 달…. 마치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었던 시절처럼 깜깜한 방 안에서 큰 아이를 품고 재웠다.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선발 여부와 상관없이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위해 한인회의 어른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 이 들었습니다. 한국학교뿐 아니라 다른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도 신청하여 갈 수 있다는 사 실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신청을 하였기에 제비 뽑기를 통해 참여할 아이들이 정해졌고 성 노예가 되고 성요 셉 성당(일본군의 연합국 국민 억류소 세 달이 지 나고 나는 나무 도마를 주문했다. 스텐 젓가락과 숟가락을 골랐다. 기약이 없어짐을 느꼈기 때문이 다. 아직 내 곁에 아이들이 있음을 세심하고 배려 깊은 회장님의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철학이 공간에도 고스란히 녹아들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아디다스 크리에이션 센 터가 있습니다. 파크랜드 1공장 내에 위치한 이 공 간은 경쟁 입찰을 통해 수주한 곳인데 셋째는 장남으로 UGM 의대 일반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막내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다. 모든 가족이 아직 한집에서 모여 살고 있는데 소재와 조 명 손녀해서 총 9식구가 한집에서 살고 있다. 그냥 일상적인 자바 사람들의 문 화생활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오며 자랐다.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일반 초등학교를 나왔고 손양섭 수디르만과 나수띠온 이 이끄는 정부군은 각각 중부자와와 서부자와의 산악지대를 수많은 신발 전문 인력들이 그곳을 통해 인도네시아행 비행기 를 탔다. K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라고 전해 주었다. 무척 반가워할 줄로 생각했다. 아버 지가 한국 가정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부산에 와서야 알게 되었고 수업을 봐주다 청소 빨래를 하다가 엄마라는 사명 감으로 정신없이 버티고 있었다. 그 와중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온 거다. 젊은 아가씨였다. 그 사람도 코로나로 인해 자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갑갑해서 뛰어 댔고 숨도 쉬었다. 상쾌한 나무 향기가 답 답했던 원룸 냄새를 날려버렸다. 가슴 벌려 뻗은 가지는 답답했던 내 마음을 하나 하나 접었던 가 지 펴듯 열어주었다. 두려운 것은 인간이 만든 것 이었지 스스로의 연약함 덕분에 더 높이 오른다. 만약 줄기가 강철 처럼 구부러지지도 않고 단단하기만 했다면 벽을 타고 오를 이유도 시공 시공력 모두 를 갖춘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 회사를 이끄는 강수한 대표는 2002년 인도네시 아에 첫발을 디딘 이후 시끌벅적하다. 수마트라에서 건너온 아라비 카의 초콜릿 향과 로부스타의 묵직한 쌉쌀 함이 눈으로 보이는 이곳에 왔다. 정신을 밝히는 신비의 음료는 반지하 공간의 습도 어린 땀 냄새 와 같이 뒤섞였다. 낮이었고 먼지 낀 전등의 깜박 임에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휴 우~”하 고 깊은 숨을 마시고 한 사람 겨우 지나갈만한 틈 을 사이에 두고 한 평 남짓 가게들을 지나쳐 들어 갔다. 히잡을 쓰거나 무하메드의 수염을 닮은 사 람들이 쉬어 가는 곳. 눈인사로 이웃임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이곳에 나는 나를 커피를 닮은 살갗의 사람들 사이로 비집어 넣었다. 난 이방인이 아니 라고 최면을 걸고 이곳에 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 금 인도네시아 사람들 속 파사르에 있다. 2020년 큰아이의 손을 잡고 시야를 차단하며 식물을 사랑하는 자의 시선으로 이 도시를 바라보 면 자카르타는 곳곳이 철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유독 마음이 가는 것은 덩굴식물이다. 덩굴 은 스스로 뿌리를 내리되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 며 줄기는 연약해 보이지만 유연하고 식민정부가 소유한 외곽 농장에 서 천덕꾸러기처럼 구박받으며 막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대의 해산과 축소는 끄라톤뿐 아니 라 족자 술탄국 전역에서 네덜란드군의 감시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국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영국으로서도 족자 술 탄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끄라톤이 제 기능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그의 성향을 문제삼으며 신두네고로를 족자 술탄국의 재상으 로 인정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세우고 있었지만 병상에서 일어난 그가 재상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을 굳이 막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능함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영국이 끄라톤을 무릎 꿀린 후 족 자 술탄국 정치지형의 변화로 처리해야 할 행정업 무들이 산더미 같았는데 신두네고로는 그 일을 묵 묵히 감당해냈습니다. 우선 족자 술탄국이 형식적으로나마 매년 100 식음 공간의 리뉴얼 등 빠르게 기획되고 실행 가능한 중소형 프 로젝트를 집중 타깃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고객 중심의 프로젝 트 운영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Q.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신발 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마주했습니다. 문명과 단절된 채 자급자족하는 그들의 일상은 인간 본연의 단 단함과 고요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자바 섬 사와르나(Sawarna) 해안에서는 수천 년 전 땅을 뚫고 나온 용암이 대서양으로 흘러가며 만든 성벽 같은 암석지대를 만났습니다. 그 위에 부딪히는 파도와 양진영 | 크라우카타우 포스코 근무 크라카타우 포스코에서 4년 신발 생산해서 해외로 팔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어느 하나도 잘못되면 회사가 망하고 신발 수출을 위한 해외 영업도 하 고 실 길이를 오 락가락하며 자르던 모습과 겹쳐져서 웃음이 나온다. 장원정 | <제7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1979년 11월 서울 출생 2023년 인도네시아 이주 실과 시간에 바느질을 배웠다. 홈질 실의 길이와 친정까지의 거리 비례설은 낭설이 아니었던지 나는 국내와 해외 를 수년씩 오가며 살고 있다. 해외살이 할 때면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 가장 아 쉽기에 한국에 있을 때는 부모님 댁 아주 가까이에 붙어 지내는 내 모습이 어릴 적 실제 착공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드문 상황입니다. 이는 공급 병목 현상을 장기화시키고 심지어 이웃 식물마저 덩굴식물 들에겐 길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권영경 | 『식물일기』 저자 인간은 매 순간 장애물을 만난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어떤 이는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하고 아 디빠티 아놈 태자의 어머니 끄 다톤 왕후(Ratu Kedaton)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그 추종자들은 영국군과 약속된 표시인 하얀 천을 왼쪽 팔에 묶고 영국군과 합류했습니다. 1810년 12월 네덜란드의 끄라톤 공격 당시 하멍꾸부워 노 2세의 편에 서서 함께 저항했던 노토꾸수모 왕 자가 불과 1년 반 후인 1812년 6월 이번엔 영국 군 편에 서서 끄라톤 공격에 가담한 것입니다. 영 국 기병대를 급습해 소기의 성과를 올린 라덴 하 르야 신두레자(Raden Harya Sindureja)의 부대 만이 이날 전투에서 끄라톤 궁전 측의 유일한 승 전사례였습니다. 그외의 모든 방어선은 철저히 열 세에 몰렸습니다. 래플스 총독대행이 왕위를 태자에게 양위하라는 최후통첩을 술탄에게 보낸 것은 요식행위일 뿐이 었습니다. 하멍꾸부워노 2세가 그 요구를 받아들 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래플 스는 빌미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요구가 거절되자 따르나수라 관문(Plengkung Tarunasura) 출처 - http://krjogja.com/web/news/read/3144/Lima_Plengkung_ Kraton_yang_Sarat_Sejarah 아 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제값을 주고 살 것을. 안 받는다고 해도 팁을 챙겨 드릴 것을.”아쉬운 마음 에 두 개뿐인 앞니로 활짝 웃던 아저씨가 그립다. 옆집 아가씨는 고무 망치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 둔탁한 물체로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벽 을 치기 시작했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은 여의치 않았을까? 나무로 연결된 머리맡의 벽을 “쿵 쿵 쿵 아니 라덴 마스 온또위료 역시 더욱 큰 상실감에 빠진채 대관식에 임하고 있 었습니다. 이틀 동안 끄라톤 궁전이 이민족들과 반 역자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하는 동안 자신은 무력 까지 동원해 만류하는 수하들에게 둘러싸여 꼼짝 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치 할아버지 하멍꾸부워노 2세를 폐위시키는 데에 공이라도 세 워 상을 받는 것처럼 아버지의 큰 아들로서 대관 식에 참석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대관식에 참석한 래플스 총독대행은 스뻐히 전 투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한 노토꾸수모 왕자에 게 그 포상으로 족자 술탄국의 서남부 아디까르 토(Adikarto) 군의 4 아들 2을 두었으며 아름 다운 꽃향기는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름조차 종이꽃이다. 죽지 않고 소담스럽게 피 어나는 꽃송이가 더할 나위 없이 대견할 뿐이다. 출근이다. 새벽부터 시간의 심장에다 빨대를 쑤셔 넣고 황금 같은 피를 빨고 있는 정체 된 도로 아미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디 지털 영토에서 매일 작동하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입니다. 게다가 10대 청소년부터 그들의 부모 세대까 지 함께 보라색 야광봉을 드는 세대의 확장성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유행처럼 쉽게 휘발되지 않을 단단 함이 이 팬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건 거창한 구호나 제도에 대한 저항만을 뜻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타인의 아픔에 깊 이 공감하고 아이들 학교에 서류를 챙기고 이제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길이 막혀버렸다. 심상치 않은 한국의 코로나 상황에 인도네시아로 입국되는 비자 발급이 중단이 된 것이다. 차라리 한국으로 입국하지 않고 머물던 싱가포르에서 들 어갔다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행기표는 하늘에 매단 굴비가 된 격이었다. 외국에 머물던 재외 동 포들이 가족과의 이별을 감수하며 한국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을 때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 는 즈음에 적도 문학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들을 챙기고 아직 건강함을 감사하며 지냈다. 그 이외의 다른 고민과 걱정들 은 하나로 단순해졌다. 인도네시아로 들어가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기를. 하지만 어쩌면 곧 갈 수 있 을 거라는 나의 바람은 누구도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아직까 지 가족이 흩어져서 살아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족자의 지금 집에서 자랐다. w한국 문화를 접하는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 같이 거의 20년을 생활하셨기에 기본적인 한국 예의나 문화풍습을 접할 수 있었다. 그 리고 휴가 때마다 한국에 있는 친척들 집에서 같이 한국 음식이나 문화풍습을 배우는 기회 를 가졌다. Q 본인이 스스로 인도네시아사람이라고 느낄 때와 한편으론 한국사람이라고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w인도네시아에 도착한지 12 년째 되던 1990년도에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악기들이 수레에 산더미처럼 담겨 네덜란드 주지사 저택으 로 옮겨졌습니다. 영국군의 그런 야만적인 약탈행 위를 족자 술탄국의 왕가와 백성들은 감수할 수밖 에 없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삐낭섬 (Pulau Pinang) – 당시 족자 술탄국의 귀족들 대부분은 삐낭섬이 어 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29 족자 술탄 하멍꾸부워노 2세는 차기 술탄으로 마 음에 두었던 아들 망꾸디닝랏 왕자(Pangeran Mangkudiningrat) 앞으로 는 산학협력이나 인턴십을 통해 ‘젊은 인재들과 의 프로젝트 기반 협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 할 계획입니다. 단순히 업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은 풀을 먹고 자라는데 어떤 프로젝트를 맡더라 도 국제적 감각과 실무 중심의 접근이 가능합니다. 저는 인테리어나 건축 전공은 아니지만 어수선한 정치계절 김문환/논설위원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일본군이 철수하게 되자 언니가 자랑스 러워!”이유도 없이 연습한 한국어를 내게 말하 는 살사는 인도네시아인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내 가 자랑스럽 단다. 4년전 그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 며 만난 나무를 닮은 사람들이 나를 반긴다. 나에 게 웃음 짓는다. 나는 그냥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 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한국의 나무는 가슴을 벌 리고 기다리고 있겠지. 언어뿐 아니라 문화와 사고방식 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경험 은 지금의 채움디자인 운영에 있어 굉장히 중요 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작업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엄마 와 사이가 좋은 날엔 귀찮음을 감수하고 실을 짧게 자르면서 엄마와 멀리서 살게 될지 가까이 살 게 될지 궁금했다. 30년이 지난 뒤 여백의 미 같 은 전통 요소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탯줄이 이어 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식물을 꼭꼭 씹어 삼켜 영양분을 보내듯 내 생각을 잘 갈무리해서 전해주고 역사탐방 에 적극 참여할 진정성 있는 학생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2020년 9월 20일 연구실에 서 글을 쓰고 열대의 어떤 일상 아침이다. 은둔의 어둠이 걷히고 열대의 아침은 우윳빛 여명으로 시작한다. 붉은 화색 으로 서재를 가득 채우는 종이꽃(부겐빌레아)! 건조한 담벼락에서 꽃이 피고 지기 를 반복하면서 20년을 용케 살았다. 척박한 공간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생명력 열압에 피폭되어 그을린 아스팔트가 기 절한 빙어처럼 길 위에 파닥인다. 작은 산소통(승용차)에 몸을 가두고 이동의 순번을 기 다리며 근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스마트 폰의 밋밋한 얼굴을 문지른다. 작은 손끝에 놀 아나는 또 다른 세상의 문지방을 들락거리며 차창 밖 스타벅스의 팻말을 보고서야 인내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종유석 동굴처럼 서늘한 거대 갱도로 몰려드는 피서객들 영국군 포위망을 넘나들었 던 머르타사나 왕자(Pangeran Mertasana)와 함 께 스마랑으로 압송되었다가 머나먼 말레이 반도 의 뻬낭섬(Pulau Penang)으로 유배되고 맙니다. 전투가 끝나고 며칠 후 또 다시 대관식이 열렸습 니다. 아디빠티 아놈로서도 영국군이 끄라톤 중심부를 압박해 오자 술탄 하 멍꾸부워노 2세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치 입관을 앞둔 시체처럼 온통 흰색 옷으 로 갈아입고 걸어나와 패배를 인정했고 왕과 왕 족들은 무기는 물론 걸치고 있던 귀금속과 패물 들을 영국군에게 압수당하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영국군은 끄라톤 궁전 안의 중요 문서들도 마구잡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7 이로 압수하여 영국으로 가져갔는데 이때 약탈당 한 문서들은 7 영국놈들이나!” 술탄은 전쟁광 유럽 야만민족은 누구나 할 것 없 이 무례할 뿐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결국 래플스 의 의자를 술탄의 의자보다 조금 낮춤으로서 그날 충돌위기를 살짝 비켜갈 수 있었지만 이 첫 대면 에서 크게 빈정이 상한 두 사람은 폭주 기관차처 럼 이내 충돌궤도로 들어섰습니다. 래플스는 영국측 족자 주지사 존 크로퍼드(John Crawfurd)를 시켜 아디빠티 아놈을 은밀히 접촉 했습니다. 하멍꾸부워노 2세는 유약한 현재의 태 자 대신 예민 해 있었던 탓이라고 하자. 한인뉴스 2025년 2월호 I 59 야채 가게를 도착하기 전 떠오르는 아저씨가 있 다. 해리 아저씨. 로컬 시장에서 장을 보는 외국인 이 안쓰러웠는지 오랜만에 큰 무대에 선 BTS를 보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을 보았습니 다. 무대가 끝나고 그 많던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흥미로운 풍경이 남았습니다. 수백 명의 아미(ARMY)들이 보라색 띠를 두르고 광장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적도 오랫동안 제조업과 스타트업 중심의 경영가 관리 포지션에 집중해 왔기에 팀원들이 각자의 전문성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직을 조율해왔습니다. 결국 전문성과 감각 올해는 인도네시아 전체 산업 흐름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느낌입 니다. 단순한 스타일의 모방이 아니라 왜 인도네시아 가정을 만들었고 외국인의 서울 집중 선호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외출과 휴식이 있었다고 식민지배 권력에 의해 강제 로 동원되어 목숨을 위협받았던 국가적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정립되어야하는 역사가 있기에 그 첫 역사탐방지로 ‘중부자바주 암바라와 지 역 항일독립운동지’로 정하였습니다. 잘 고증하지 않은 지난 일이라는 틈새와 현재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과연 맞는 태도일까요? 부끄러운 역사라고 각색하거나 포장할 일도 아닙니다. 거기에서 배움이 있고 기억이 있고 전승이 있다면 우린 다른 미래를 써내려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주권이 없다는 것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의미합니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갖고 대외적으로 독립성을 갖는 것을 의미 하며 국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재외동포라고 스스로를 역사와 거리를 두거나 우리 인간은 생선이나 짐승들이 만들어 낸 단백질을 섭취하 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상관 관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 다” 라고 대답했었다. w변화를 찾아서 새롭게 도전한다” 가 그 당시 내 가슴을 뛰게 했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됩니다. 이들이 기업의 의사결정권자가 되고 우리의 역사는 학교 역사 수업시간에만 배웠던 아이가 우리 선조들이 인도네시아 땅까지 보내져서 겪었던 고 통과 아픔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여 1박 2일의 일정을 보내고 집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스마랑 공항에 잘 도착했다는 비행기 날개 사진 한 장. 일정 마치고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며 푸짐한 저녁 식탁 사진 한 장. 자 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한 개가 연락의 전부였던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와~~~” 라며 역사탐방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암바라와 조선인 소녀 위안소에서 운영 수익 확보 전략이 더 중요 - 단순 매매보다 임대 수익 유지보수 가능성 유지보수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턴 키 프로젝트(Turn-Key Project) 를 통해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고 책임 있 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인테리어 분야에 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책임’입니다. 채 움디자인은 외주를 최소화하여 책임 소재를 명확 히 하고 의거 현장에서 이 상황이 언제까지 헤매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남편의 연 락이 왔다. “아무래도 더 길어질 것 같아. 원룸을 다시 알 아봐.” 남편의 걱정스러움은 순간의 위로를 주었다. 새로 얻은 원룸은 다행히 물도 새지 않았고 이 시장에 와주는 것만으로 도 반갑고 고맙다고 한사코 마다했다. 양이 적었 고 이 정신을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꼭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 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인도네시아 땅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었을 거라며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 리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를 보니 책을 통해 글로 배우 는 몇 년의 역사 수업보다 1박 2일의 현장체험이 이렇게 강력하게 아이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한인회 여러분의 꼼꼼한 준비와 배려 그리고 인솔하신 한국국제학교 선생님들의 섬세한 보살핌으 로 아이는 1박 2일동안 많은 배움과 한국인으로서의 귀한 생각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서 재외국민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이루어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역사탐방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정 과 준비과정이었겠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 하고 싶어 시작한 편지가 꽤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이런 기회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하며 가치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고정화 드림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학생 VISA를 가지고 있으면서 불 법으로 일을 했다는 제보가 중앙정부와 이민국에 신고 되면서 그동안 나를 도와 주셨던 양부모님께도 잘못 불 이익이 될까 봐 두려워 그만 학위취득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 당시 나를 도와 주셨던 총 장님이 인도네시아 종교성 관리 대학 국장을 하고 계셨 기 때문이다) w그렇게 하면서 학위 취득을 포기한 후 자카르타로 넘 어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중국 상인들과의 접촉을 가 졌다. 나는 열심히 한국제품을 취급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알고 지내던 전자통신기 상회이 며 NATIONAL-PANASONIC 과 INTECOM AIPHONE을 취급하는 대리점 Mr. Yaw (PULAU MAS INDAH) HARCO 에게 한국상품을 알게 되면 당신도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한국의 인터폰을 소개해 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상품은 전혀 진출을 못하고 있었을 때였다. 인터폰을 소개한 것은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는 분야로 성능이나 모 델이 뒤지지 않고 가격 경쟁력에서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샘플 900불로 시작한 시장이 2개월만에 9만불이 되고 4개월이 되던 때에는 30만불로 주문량이 뛰어올랐다. 이 렇게 되다 보니 NANTIONAL-PANASONIC 과 AIPHONE 총판 대리점에 문제가 생겼 다. 그 당시 이들이 만들어 가는 연결과 경험이 앞으로 사회 에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끝] 이런 나쁜 한국인 아버지들이 떠나버린 가정이 땅그랑 주변에만 해도 칠십여 가구나 된다. 가정을 버린 아버 지의 행위는 무책임하고 원망받아야 마땅하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이 편 해야 한다. 이 말에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차디찬 그 얼음장에 틈이 생긴 듯하다. 당 시 상황을 말해 주기 전에 미끼를 계속 던졌다. 마음이 편해지려면 아버지 행위 발생 원인 을 알아야 한다. 왜 한국에 가정이 있는 아버지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오지로 유배를 떠나 돌아올 기약 도 없게 되었고 스뻐히 전투 당시 영국군 포격에 어머니마저 잃고서 애도할 틈도 없이 이민족에게 등떠밀려 술탄이 되는 것은 견디기 힘든 모욕이기 도 했습니다. 끄라톤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 들 중 그가 얼굴이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흘린 피 위에서 자신이 다시 하멍꾸부워노 3세가 되어 술탄의 왕좌에 오 르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모독하는 것만 같았습니 다. 게다가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술탄이 되어야 만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떠밀 려 술탄이 되면 영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될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대관식 내내 얼굴에 웃음 한 점 띄우지 않았습니다.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 이제 머릿속에서 아버 지를 지우고 싶다며 고개를 돌렸다. 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G사 사무실이 있었던 건 물 유리창들이 회색으로 번뜩이고 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라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K는 아버지가 도덕성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사람이라 했고 인도네시 아~~~’ 어릴 적 헷갈려 가며 불렀던 그 고무줄 놀이의 단골 노래 가사 속의 그곳으로 말이다. 그 런데 남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바 이러스가 출몰했다. 코를 후비는 검사를 지독히 도 하게 만들었던 코로나바이러스. 얼마 남지 않 은 입국인데 비행기를 못 타면 어쩌나 마음 졸이 며 한국에 도착을 하였는데 그 걱정은 뒤로 펼쳐 질 일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결정을 해야 했다. 남편이 떠나고 난 뒤 모든 것 들은 나의 판단에 의해 처리해야 했다. 집을 내놓 고 인도네시아 가정을 버린 사람이라서 더 화가 난다고 했다. 육 년 전  다문화가정 모임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여고생 K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정이 있었 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아버지에 대한 얼음장 같은 태도에 말 을 꺼내지도 못했다. 결국 그녀의 분노에 공감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사랑 하는 삼발 소스를 만드는 절구도 판다. 나무를 깎 아 정교하지 않지만 작은 공이를 세트가 돌로 만 들어진 절구와 함께 올려져 있다. 가벼운 물건들 은 비닐봉지에 묶여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 다. 어릴 적 문구점 천막 위에 매달린 빨갛고 통 통한 돼지 저금통을 보듯 했다. 이곳에서 나는 쓰 레기봉투를 구입한다. 봉투를 구입하면서 아저씨 는 피상고fod 하나를 내게 권한다. 맛있게 튀겨진 바나나 튀김을 들고 나는 약과 두 봉지를 건넸다. 한 가지씩 일이 해결이 될 때마다 안도감보다 는 걱정과 후회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덩굴식물로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란 별 명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로 간 신발인들이 기반을 잘 만들었다고 인정을 받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일했기 때문이다.  성공할지도 실패할지도 모르는 해외 신발 산업에 투자 인도네시아어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오라” 는 말에 이끌려 인도네시아에 최초의 한인이 첫 발을 내딛은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를 편 찬한 이래 ‘인도네시아 한인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습 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24년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 학생(10~11학 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탐방을 통하여 묻혀 졌던 이야기를 되살리고 무관 심 속에 사라져갈 역사의 현장을 가슴에 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세 종류의 사람 탄압자 인도네시아에 최초의 한인이 첫발을 내딛은 100년을 맞이하여 그 첫 해에 ‘한인의 날’로 제정하고 인 도네시아한인과 인도네시아인 들이 함께하는 축제를 계획하 였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 해 외부의 모임없이 ‘한인이 주 100년사’의 편찬 등으로 갈음했다. 인도네시아한인이주 104주년 기념 ‘한인의 날’ ‘한인의 날’ 맞이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9 박재한 한인회장은 ‘한인의 날’ 기념식 환영 사에서 “지난 2023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 교 50주년 기념행사에 집중하여 별도의‘한인의 날’행사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2024년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의 날’을 되찾은 특별한 기념 행사를 준비했다. <소리누리예술단> 학생들의 전 통문화예술 공연을 통한 한류의 예술적 지평을 넓 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원준 총영사는 “이 행사는 우리의 정체성과 뿌리를 기억하게 하고 인도네시아에서 꿈을 펼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창업이든 취업이 든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아오며 스 스로에게 늘 강조해온 지론이 있다면 바로 ‘적극 성과 존중’입니다. 중요한 건 현지인과의 관계입니다. 불합리한 상 황에서는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자란 두 젊은이들의 새로운 도전 한국 부동산 시장의 새 바람을 자카르타에 전하다 두 번째 이야기 앞서 저희는 회사의 창업 배경과 철학 인도네시아인과 한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한 국무용공연을 한 무대에서 즐길 수 있었다. 또한 한인문화예술총연합회 소속의 자카르타어 린이합창단(지휘 송혜선 인도의 코로나19 병원에 산소호흡기를 보낸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수평적인 소통 방식입니다.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전 세 계 아미들이 가사를 번역하고 공익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순식간에 실천으로 옮깁니다. 뚜렷한 리더 나 사령탑이 없어도 상호 존중과 조율을 통해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모습은 일상 이 그리웠던 그때를 기억하는 나는 오늘 파사르에 간다. 이제는 깊은 숨을 들이쉬지 않는다. 작은 가 게들을 지나갈 때 시간이 지체된다. 친구들과 눈 맞춤을 하는 순간이 행복한다. 눈웃음으로 나를 반기는 반가움이 느껴진다.”언니 일의 무게 일자리를 잃게 입선 50회 이상 수상 『한인뉴스』커버 수차례 장식 크라카타우 포스코에 근무한 지도 어느덧 4년이 가까 워졌습니다. ‘적도의 보석’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의 다채로운 풍경을 렌즈에 담고자 틈틈이 이 나라 곳 곳을 여행했습니다. 숨바(Sumba)의 해변에서 만난 석양과 맹그로브 숲 의 고요함은 말없이 다가오는 평온 그 자체였습니다. 브로모 화산의 일출과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장 엄한 자연은 숨을 멈추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바두이(Baduy) 마을에서는 전기도 자고 있는 아이 둘을 한번 그렇 게 날을 샜다. 처음에는 새는 물을 받을 살림살이 도 없는데 그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매서운 초봄 바람에 아이들을 데리고 짐을 싸서 나와 비 즈니스호텔을 전전했다. 한 달 자동차를 매매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사 람들의 거래가 줄은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집 도 보여주지 못한 채 자빤(Japan) 자연은 두려움 없이 다가왔다. 원룸에는 놀이터도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그때에 나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렇게 원룸에만 있다면 코로나가 아니라 쿵쿵 망치 소리에 쓰러질 판이었다. 안되겠다. 나는 접는 자전거를 샀다.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바람에 보내 버렸다. 아이들을 가둬둘 수만은 없는 거 아닌가. 나가자. 가까운 곳이 안된다면 시외 로라도 나 가자. 택시를 잡아탄 나는 꾸역꾸역 자전거를 트 렁크에 넣고 아이들을 안았다. 공원은 그대로였 다. 왜 이제 왔냐는 듯 기어가는 애벌레도 보여주 고 자연의 손길은 언제나 자애로웠다. 아이 들과 작은 조약돌을 주워 공기놀이를 했다. 흙을 파며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고슴도치를 닮은 마른 풀 포기에 누런 잎이 연두색으로 변하는 광경을 자유 를 제한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식물의 입장에 선 다른 이야기다. 덩굴식물에게 벽은 단단한 장벽 이 아니라 기어오를 수 있는 손길 자재 선택 폭이 한국만큼 넓지는 않습니다. 특히 로컬 자재만으로 구성할 경우 자카르타에 10 I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도착하여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나래홀에서 재학 생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의 공연을 하였고 타국에 서 만나는 동포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활기찬 모습 이었다. 성장기 청소년들의 재능을 뿜어내는 열정 의 무대로 세대가 하나가 되고 자카르타한국 국제학교 12 I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작은 촉수가 마치 손가락처럼 벽을 붙들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 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차가운 시멘트 벽은 그 자체로는 생명을 품을 수 없지만 덩굴에게는 든 든한 동반자가 되어 준다. 이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노트에 이렇게 한 줄 적어 둔 적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충분하지 않다. 그러다 가끔 장기적 자산 운용 전략의 리셋을 요구합니다. 2. 전세 제도의 약화는 단순한 수급 문제가 아닌 주거 방식과 금융 구조의 전환입니다. 3.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일시적이 아니라 도시화와 인구 집중이라는 인구 구조적 흐름의 결 과입니다. 투자자는 단기 가격 변동보다 장벽을 세우기보다는 수평적인 소통을 먼저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아미의 성장은 음악이 건넨 위 로가 어떻게 한 세대의 건강한 시 민성으로 자라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조용하고 확실한 증거입니 다. 그래서 중요한 건 “아미가 세 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 면 더 중요한 것은 재건축 부담금 재인니한인 음악협회)의 찬조 공연은 우리 이웃의 친근한 무 대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공연을 관람한 권영경(자카르타 거주) 한인동포 는 “켈리그라피 재인도네시아한인회(회장 박재한)는 9월 20일 인도네시아한인이주 104주년을 기념하는 ‘한인 의 날’을 맞아 초청공연을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 를 열었다. 자카르타 꾸닝안 소재 롯데 몰 KOREA 360에서 국립국악고등학교 <소리누리예술단>의 초청공연 으로 한인과 인도네시아인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오픈 무대를 갖고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우리의 가락과 소리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라는 새로운 업 무환경에서 비롯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1인 줌미팅 부스’ 의 등장입니다. 초기에는 생소했지만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학교 를 다닌 탓에 나와 같은 바느질 숙제를 한 적이 없어서 실을 얼마나 길게 자르고 싶은지 알 수 없 다. 지금 한창 수험생 시기를 보내며 예전의 나처럼 엄마가 싫을 때도 있고 저녁 차림이며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혼자 감당하 는 것이 버거웠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남편이 없고 보니 그래도 그때는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주 말은 남편이 있었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었던 것이다. 물이 새지 않는 집에 살아서 따뜻한 물로 겨울을 추운지 모르고 지냈다는 대 수롭지 않은 일에도 감사가 생기게 되었다. 지금 시기에 따뜻한 물을 감사하게 될 줄이야. 물이 새 지 않는 곳에 있음에 마음의 평안을 얻을 줄이야. 58 I 한인뉴스 2025년 2월호 비즈니스호텔이지 모텔에 가까웠던 그곳에 아 이들과 지내야 하면서 나는 미안했고 저녁 특정 시간대에 쏟아졌다. 윗 집에서 샤워를 하는 시간대였을까? 그릇도 없는 데 새는 물 한 번 저는 그 안에서 가드 포지션을 맡고 있습니다. (웃음) 농구는 저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저쪽을 보십시오!” 하긍 왕후가 살았던 뜨갈르죠 저택에서 하인 한 명이 무흐타하르 왕자에게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 습니다. 무흐타하르가 고개를 들어보니 끄라톤 궁 전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뜨갈르죠에 나와 살고 있었지만 당시 영국 총독부와 관련해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 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뜨갈르죠는 끄 라톤에서 말을 타면 30분도 안되어 도달할 수 있 는 거리였고 하긍 왕후가 생전에 뜨갈르죠에 방문 하는 모든 손님들을 반갑게 맞던 전통을 무흐타 하르도 이어갔으므로 귀족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 아 끄라톤의 소식을 늘 가깝게 접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이미 한 차례 끄라톤 궁전을 네덜란드군 에게 유린당했던 하멍꾸부워노 2세는 지난 반년 간 끄라톤을 경비를 크게 늘렸는데 그것은 오직 이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적군이 끄라톤에 다다 른 것입니다. “모두 무장하고 나를 따라 나오거라!” 그가 왕위계승서열이 높은 왕자였던 만큼 뜨갈르 죠의 처소엔 궁에서 보낸 백여명의 시종들이 있었 는데 무흐타하르는 그들을 강한 사병(私兵)으로 조련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병장기를 갖 춰 들고 이제 막 뜨갈르죠의 저택에서 출발하려는 참이었습니다. 끄라톤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그 역시 왕가의 남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만 했 습니다. 무흐타하르도 끄리스 단검을 품에 차고서 말에 오르려 했습니다. “라덴 마스 온또위료(Raden Mas Ontowiryo) 여! 거기 멈추거라!” 그 순간 말을 탄 사람 여러 명이 저택 안으로 뛰 어들었습니다. 무흐타하르 일행은 깜짝 놀라 칼을 뽑아 들었지만 그들은 이끌고 온 사람은 아버지 아디빠티 아놈의 형제인 머르타사나 왕자(Pangeran Mertasana)였습니다. 그는 그의 부친인 하멍꾸부워노 2세의 괄괄한 성격을 가장 많이 물 려받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전투복을 차려 입 은 그들은 막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온 듯 먼지투 성이였고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리고 있는 자도 있 었습니다. “이럴 줄 알고 술탄께서 날 보내셨다. 너희 아버님 도 신신당부하셨으니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얼굴 가득 수염을 기른 머르타사나 왕자는 말에 서 내리지도 않은 채 빠른 말투로 술탄의 말을 전 했습니다. “술탄께서는 온또위료 네가 분명 군사를 끌고 올 것이라 하면서 반드시 막으라고 하셨다.” 라덴 마스 온또위료란 무흐타하르가 20세에 첫 결혼을 할 때 하멍꾸부워노 2세가 내려준 칭호였 으므로 궁전에서는 무흐타하르 대신 온또위료라 고 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술탄 전하와 아디빠티 아놈 태자께서는 모든 사 태가 종료될 때까지 온또위료 왕자와 그 수하들이 뜨갈르죠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 명하셨다. 알라의 도움으로 끄라톤이 이민족을 물리친다면 30 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위대한 신께 찬양하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 도 오늘 죽는 것은 끄라톤 안에 있는 사람들만으 로 족하다. 그러니 궁 밖의 왕자들은 자중자애하 며 후일을 도모하라! 부왕과 태자께서 그렇게 전 하라 하셨다!” “숙부님 저희 역시 이에 맞춰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죠. 하지만 올해 들어 제조업 과 일반 기업체 프로젝트는 다소 정체된 분위기입니 다. 지난해에는 엘지에너지솔루션 저희 일트가 직접 현장에서 체득한 거시적 투자 전략과 구조 화된 실행 방식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지금은 ‘전환기(Transition Period)’입니다. 2025년 현재 저희 팀 역시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정을 맞추며 프로젝트 매니 지먼트와 조직 운영의 본질을 깊이 배웠습니다. 동 시에 기술력과 책임감의 한계를 스스로 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전 세계가 멈춰있던 시기였지만 현 대자동차는 인도네시아 진출이라는 중대한 미션 을 안고 있었고 채움디자인도 그 일정에 함께했습 니다. 매일 코로나 검사를 받으며 현장에 들어가야 했고 전반적으로는 심플하고 미니멀한 분위기를 선 호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는 단순한 미적 취향이 라기보다는 전시회 부스 전통 무용을 통한 문화 소통 의 장을 펼쳤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2020 년 9월 20일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만물상을 이맘 아저씨를 지나쳐 계란 아줌마에 게 간다. 세 개의 나무 박스가 나란히 놓인 그곳 은 한 무더기의 일반 계란 정말 가고 싶지 않은 대관식이었습니다. 두 번째 대관식을 갖게 되는 아디빠티 아놈으로서는 두 번 모두 자신의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그 빈 자리에 앉게 된 것이 결코 즐거울 리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 아버지와 믿음직스럽던 형제들은 모두 정성환(ILT 공동대표) 62 I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2. 수요 측면에서는 1~2인 가구 증가 정치가들이 그의 묘역을 찾아 그의 정신을 기리며 정기를 받아가고 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곳곳에 서 발견됩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 당시에도 총을 든 자바인 들은 디포네고로의 정신을 따랐고 초기 인도네시 아 이슬람 정당이었던 마슈미당은 디포네고로를 인도네시아 저항사의 지하드 운동가이자 국가형 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디포네고로가 속한 하멍꾸부워노 왕조는 오늘날 까지 이어져 내려와 술탄 하멍꾸부워노 9세는 인 도네시아 독립과 신생정부 수립에 커다란 기여를 바바드 디포네고로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I 43 했고 술탄 하멍꾸부워노 10세는 족자 특별시의 현직 주지사입니다. 족자 술탄국은 인도네시아 공 화국으로부터 더없이 존중받고 있습니다. 1969년에는 군의 후원을 받아 디포네고로 전 쟁의 첫 전투에서 불타 없어진 뜨갈레죠의 저택 을 재건해 디포네고로 왕자의 기념관을 만들었습 니다. 그는 중부 자바 출신 수하르토가 대통령으 로 재임하던 시절인 1973년 11월 6일 대통령령 No.87/TK/1973으로 인도네시아 국가영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규군 TNI의 제4지방군 사령부 디 포네고로 부대는 중부 자바를 방위하고 있고 인도 네시아 해군도 그의 이름을 딴 군함 두 대를 보유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대인 디포네고로 전함(KRI Diponegoro)은 네덜란드로부터 사들인 시그마 급 코르벳함입니다. 스마랑에는 디포네고로 대학이 있고 인도네시아 각 도시의 주요 도로가 그의 이름을 따라 불리고 있습니다. 자카르타 최중심지인 호텔인도네시아 로터리로 진입하는 도로들 중 이맘본졸 도로(Jl. Imam Bonjol)와 연결되는 빵에란 디포네고로 도 로(Jl. Pangeran Diponegoro)는 디포네고로 왕 자를 기념하는 도로입니다. 네덜란드와 결탁한 술탄들과 영주들이 민중을 핍박하고 착취하던 시절 제 아이도 뽑혔습니다. 저는 아이가 설렘으로 역사탐방을 기다리는 것을 표현할 때마다 놀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많은 아 이들을 대표하여 가는 탐방이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배우는 자세로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에서 머문 시간보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아이가 제3 지망학과를 기계공학과와 화학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이에 대 한 나의 답변은 “원래 지원하고 싶었던 학과는 의예과였지만 공업고등학교 출신은 힘들 다고 해서 이공대를 지원했다. 그 중에서 식품공학을 택한 것은 우리 인간의 식생활과 건강 에 상당히 밀착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 분야가 확장범위가 나머지는 그냥 형식적으로 적 어낸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학과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의 얼굴이 다소 싸늘 하게 보였다. 두번째 질문은 학과장님이 하셨는데 식품공학을 전공하면 어떤 분야에 관심 을 갖고 있나? 였는데 “왜 바다 생선과 민물공기들은 플랑크톤을 섭취하고 또한 소나 염 소 제가 그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삶 의 방식 조직 내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의 협업 을 이끌어가는 데 인문학적 감수성과 언어적 접근 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좀 더 체계화된 한방교육을 통해서 한의 과대학을 설립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종이컵 좋을 때도 있을 것이 다. 낯선 땅에서 새로 적응해야 할 때마다 준비된 소형 투자자에게 시장은 열리고 있습니다. 결국 줄여서 빠꾸알람 1세라는 봉건영주로 자리매김합 니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요란한 칭호들은 분명 왕보다 아랫단계였지만 사실상 그 자치구를 배타 적으로 통치하는 절대 영주가 된 것입니다. 중국인 우두머리 딴진싱(Tan Jin Sing)이란 자 도 영국군을 도운 공으로 1 중 부자바한인회(회장 채환)와 한인회의 노력으로 공원 입구에 세워 질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비가 준비 되어 있었다. 암바라와 위안소의 과거와 현재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11 암바라와 항일의거지(민영학 중장기적으로는 서울 과 수도권의 핵심 입지에 대한 매수 심리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 공급 측면에서는 수도권 재건축/재개발 물량이 여전히 제한적이며 즉 공간을 구성하는 감각과 디테일을 읽어내는 능력은 지금도 프로젝 트 초기 콘셉트를 잡을 때 유용하게 작동합니다. Q. 혹시 채움디자인에서 산학협력이나 인턴십 같은 ‘젊은 피 프로젝트’도 운영 중이신가요? 젊은 인재들과 함께하는 협업이 회사에 어떤 에너지 를 불어넣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은 입찰 기반 경쟁이 매우 치열한 구조입니다.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서 바로 실행되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는 저와 아내 외에 두 딸과 두 아들 그리 고 사위와 손자 지금은 ‘기다림’의 시기가 아니라 지금은 디포네고로 거리라고 불 리는 곳에 그의 무덤이 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죽기 전 자신을 멀라유 마을 에 묻어 달라고 굳이 유언을 남겼는데 그곳은 중 국인 지금은 저희 법 인만 해도 10개 이상 설치할 만큼 보편화되었고 지금의 ‘구조 변화’를 읽는 힘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부 정책 역시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지난 6월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에서 항일 독립 운동지 역사 탐방에 대한 공지를 받고 아이가 신청 해서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지도 교수님들과의 면접에서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질문은“공업고등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교 학과 제 1 지망으로 식품공 학과 지빵(Jipang) 지속 가능성이라는 개념은 ‘디자인 철학’이자 ‘운 영 전략’이기도 합니다. Q. 대표님의 인문학적 감성과 디자인 지속 가능하고 유연한 디자인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고자 합니다. Q. 바쁘신 와중에도 대표님만의 힐링 루틴이 있으시 다면 살짝 공개해 주세요. 저에게 가장 큰 힐링은 운동 지속 가능한 설계와 시공에서 어떤 접근을 하고 계신가요? ‘지속 가능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의 기 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국가별 자재 인식과 제도적 기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진학에 대한 고민에 더불어 친구 관계까지 아이를 가장 힘들게 했을 때 짐을 싸서 왔죠. 당시 치간칫솔을 OEM 생산해 일본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제조 공장 을 운영하는 PT Kang International에서 이미 문 중 형님 세 분이 먼저 와 계셨고 집과 자동차와 아이들 학교를 부탁하 며 남편은 그렇게 떠났다. ‘인도 집안일하는 틈틈이 떠오르 는 단상들을 메모장에 적어 보며 나 자신 을 돌아보게 되고 찌까랑(Cikarang) 과 자카르타의 가효 레스토랑 프로젝트 등에서도 기능성과 스토리텔링을 아우른 공간 솔루션을 선 보이며 인도네시아 내에서 신뢰받는 디자인 파트 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채움디자인의 비전과 인도네 시아 인테리어 시장의 흐름 찌까랑(자카르타 외곽도로) 흡혈귀에 목덜미를 잡혔는지 겁에 질린 친구는 절규 하듯 다른 길로 돌아가라며 연신 SOS를 갈겨댄다. 먹이사슬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 해가 뜨고 일몰까지의 거리를 자로 잰다면 그 길이는 얼마나 될까? 눈금처럼 촘촘하게 박힌 스 케줄 간극을 지배하는 생각과 생각을 몸으로 전이하는 이동 경로 차별화된 디자 인 철학과 정교한 시공 기술을 기반으로 고급 주 거 공간 및 상업 공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브카시(Bekasi)에 본사를 두고 자카르타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 며 채움 디자인은 어떻게 그 틈을 비집고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성공의 열쇠’ 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채움디자인(PT The Chaeum Design & PT Sejin Jaya Lestari) 강수한 대표의 인도네시아 디자인 경영 이야기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I 41 아직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이르다고 생각 합니다. (웃음) 다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 있다면 채움디자인이 장 기적으로 그리고 계신 꿈과 비전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채움디자인은 인도네시아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 로 단순한 진출을 넘어 채움디자인이 추구하는 비전과 철학은 어떤 모습인가요? 디자인부터 설계 천 원짜리 과일 칼과 플 라스틱 접시 그리고 천오백 원짜리 포크와 수저를 구입했다. 두 달이면 떠날 수 있 으리라 생각했으니까. 두 달이 지나고 천식처럼 기침을 달 고 살았다. 그러고 나서 퇴근 후 둘을 데리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놀이터며 철도 박물관에서 청 년 세대가 주체적으로 거대한 문화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아미와 무척 닮았습니다. 비틀즈 가 음악을 통해 던진 평화의 메시지는 히피들에게 일종의 나침반이었고 청년들이 나이를 먹고 생계라는 현실에 부딪히면서 결국 주 류 사회 속으로 무력하게 흡수되며 사라졌습니다. 반면 아미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본업을 충실히 지키면서 디지털 공간에 서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됩니다. 이들은 무언가를 무너뜨리기보다 청년층의 실거주 수요 축제가 끝난 광장은 시 작할 때보다 오히려 더 단정해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한국의 광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인도네시아 아미들은 바닷물에 잠겨가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드막(Demak) 지역에 8천 그루 이상의 망그로브 나무를 심었고 출근하기가 벅찼었다. 직장에서는 쉴 새 없이 서서 이야기하 는 일이라 다리는 퉁퉁 붓고 친환경 이전에 ‘안전’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 다. 실내 공간에 사용되는 모든 자재는 기본적으로 방염(Fire Retardant) 인증을 받은 자재를 써야 하고 카 메라에 쓸어 담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 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은 그 와중 갑자기 해외지사로 발령이 났다. 먼저 인도네시아에 가 있겠노라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식음 업계 가 크게 위축되면서 흐름이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기업체 사무공간 중심의 프 로젝트가 주를 이루게 되었고 쿵쿵 쿵” 아침부터 아이들의 발소리와 말소 리와 망치소리로 합창을 시작해서 또 그렇게 하루 가 끝이 났다. ”쿵쿵 쿵 쿵쿵 쿵”. 밖은 코로나로 위험했고 큰 딸과 사위는 각각 UGM 의대병원에서 피부비뇨기과와 정형 외과 전문의를 하고 있고 둘째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35 딸은 아직 UGM 상경대 경영대학원 학생이고 클레이 키건의 문 장을 다시 떠올려 본다. “서로 돕지 않는 다면 삶 에 무슨 의미가 있나” 덩굴식물의 생애를 지켜 본다는 건 단순한 생태 학적 관찰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 고 있는지에 대한 은유!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는다면 더 멀리 갈 수 있고 타 인을 통해서 완전해지곤 한다.” 덩굴과 벽의 관계도 그러하다. 덩굴은 벽이 없이는 설 수 없고 탯줄로 노폐물을 되돌려 보내듯이 아이가 뱉어내는 하소연들도 내가 다시 거두어들였 다. 그렇게 수개월 통신장비 수요는 매월 200만 불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시장점유율 7% 점 유하게 되었기 떄문이다. 그러니까 정식 마케팅을 한 고작 3개월만에 시장 점유율 7%까지 파고든 것이 상당히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w그 후 또 다시 불거진 문제는 본인이 학생VISA를 가지고 불법으로 무역업을 했다는 비 밀 제보가 Mr. Yaw가 관리하는 비밀 정보경찰로부터 알게 되었고 가능하면 빠른 시간내 에 NATIONAL-PANASONIC 총판 회사인 PT. INDO TIGATAMA사장을 만나라고 했 다. 문제는 COMMAX 대리점을 넘겨주든지 아니면 강제 추방을 할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 34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상인 Mr. Yaw와 상의한 후 신변안전을 위해 이 사업을 포기하자는 제안을 받고 사업을 놓으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정리해야만 했다. w그후 한국에서 제안을 받은 인도네시아 나무톱밥을 이용한 성형숯이나 WOOD PELLET 생산을 부탁 받고 투자에 기회가 생깁니다. 모든 자산 시장은 ‘돈의 흐름’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금처럼 레버리지가 줄고 고금리가 유지되 는 환경에서는 현금을 가진 이가 구조를 설계하고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1. 급매는 많고 투자자는 비효율적인 시장의 빈틈을 선 점할 수 있습니다. 현금의 가치가 상승할 때 특히 농구와 골프입 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비비자(BBJA 특히 레스토랑 프로젝 트가 주력이었지만 패션디자인을 공 부했던 시절의 ‘보는 눈’ 팬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첫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BTS와 아미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끝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BTS가 건넨 “Love Yourself”라는 다정한 위로는 깊은 공감대를 만들었습니다. 비틀즈의 팬들이 히 피가 되었듯 팬데믹 때는 고생 하는 오토바이 배달 기사들에게 도시락을 나누었습니다. 페루에서는 소외된 동네를 찾아가 거리를 청소 하고 꽃을 심었으며 포로 감시원이 되고 포로가 되고 푸르스름한 오리알 플라스틱 통 피서 즐길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 치가 않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나가는 쇼핑몰 피아노 조선아 한 층 깔릴까 말까 한 유정란이 있다. 10알 한국 부동산 시장은 단순한 조정기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1. 고금리는 단기 대응이 아니라 한국의 공 간 철학을 인도네시아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유연 하게 녹여내는 것이 저희 채움디자인이 지향하는 디자인 전략입니다. Q. 외국에서의 시공은 늘 ‘예상 밖의 변수’가 가득하 죠. 인도네시아에서 인테리어와 건축 시공을 하며 마 주한 ‘진짜 위기’ 한국적인 결이나 소재 한국적인 미 감 자체가 하나의 프리미엄으로 작용하기도 합니 다. 하지만 진짜 경쟁력을 가지려면 한국적인 미감 을 살리되 과하지 않게 한인문예총 함께 추방당했던 추종자들도 모두 같은 묘역에 안장되었고 오늘날에도 순례자 들과 군인들 항거자 핸드폰도 행정가가 되어 정책을 만들 때 향료 등을 심도록 한 것이었죠. 쌀 수확이 급감하고 탐욕스러운 영주들의 수탈이 동시에 자행 되면서 지구상 최대 곡창지대인 자바에 몇 번씩이나 대규모 기근이 찾아와 수많은 자바인들이 굶어죽게 됩니다. 이 강제경작제도는 1870년까지 유지되며 자바인들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체포된 후에도 디포네고로 왕자의 또 다른 아들 끼소데워(Ki Sodewo)가 꿀 론쁘로고(Kulon Progo)와 바글런(Bagelen)에 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끼소 데워는 바구스 싱론(Bagus Singlon) 또는 라덴 마스 싱론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디포네고로가 마 디운의 영주 라덴 롱고(Raden Ronggo)의 딸 라 덴 아유 찌뜨로와티 (Raden Ayu Citrowati)에게 서 낳은 아들입니다. 그의 흔적은 족자 왕실 족보 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끼소데워가 아버지와 함께 전쟁에 나선 것은 마 디운 폭동의 수괴로 몰린 할아버지 라덴 롱고가 어머니와 함께 네덜란드군에게 살해당한 사건 때 문이었습니다. 라덴 롱고를 진압한 네덜란드군은 당시 아직 어린 센똣과 젖먹이 끼소데워를 전리품 처럼 족자 끄라톤으로 데려와 왕실에 인계했죠. 아직 자바전쟁이 시작되기 전 허물을 벗는 그림자 오후 부산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K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인도네시아 다문화가정 출신의 대학 졸업반 학생이다. 그녀에게 역광장 왼편 높은 건물을 보라고 했다. 오 층에는 G사 부산사무소가 있었고 현 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인도네시아 실무자들과 함 께 부대끼며 현실의 무게와 생산의 가치가 다르게 다가왔습니 다. 20대에 다른 업체의 대표님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설계와 책임 있는 시공을 할 수 있는 토대는 모두 그때의 경험에서 42 I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비롯되었으니까요. 제 인생의 진짜 터닝포인트는 바로 그 제조공장 시절이었습니다. Q. 인도네시아의 인테리어 트렌드는 말 그대로 ‘변화 무쌍’이군요. 최근 주목할 만한 흐름에 어떻게 발맞 추고 계신가요? 인도네시아 인테리어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 니다. 현재까지는 여전히 기업체 중심의 프로젝트가 많고 현장에서 제조업과 조직 운영 을 직접 경험하면서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어·말레이시 아어를 전공하며 현재 자카르타 거주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I 53 이제는 내 아이가 그때의 나보다 훌쩍 커 버렸다. 아이는 이 나라 현재 재인도네시아 한인 회 부회장과 세계한인무역협회 자카르타 지사 사 무총장으로도 활동하며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산 업 및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함께 수행 중이다. 채움디자인은 현대적인 감각에 한국적인 미적 감성을 절제 있게 결합한 디자인을 지향한다. 이 같은 철학은 자카르타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판매 법인 사무실(Hyundai Motors Indonesia Office) 현재는 6년 째 회장직도 맡고 있습니다. 멤버만 해도 무려 53 명에 달할 만큼 규모가 꽤 크고요 현지 라이프스타일이나 문화 코드와 자연스럽게 맞닿게 하는 설계력입니다. Q. 인도네시아를 넘어 동남아 전역으로 현지 시장에서 디자인과 실용성 현지의 문화와 수요를 존중 하는 디자인 파트너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동남아 전역에 채움디자인만의 감성 과 철학이 담긴 공간들을 선보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 로 발길을 멈추고 지켜보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보며 묘한 뭉클함이 밀려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후원: KOREA 360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아이는 다시 밝아져서 방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탯줄이 느껴진다. 내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버텨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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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도네시이아 현지에서 "서바이벌 인도네시아어 초급과정" "제1권"과 "제2권"의 종이책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드립니다. 현지에서 종이책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제 개인 카톡(아이디: kimjonglan)으로 연락을 주시면 좋겠습니다.참고로, 현재 현지에서 인쇄와 제본 중이니, 5월부터는 발송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은 권당 Rp 150.000입니다.…
쫑란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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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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