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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적도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바람이 건네는 감사 세상은 언제나처럼 조용히 흘러가는 듯 보였습니다. 햇살은 벽을 타고 스며들고 12학년)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I 51 식을 접하지 못해 먹거리가 힘들겠다는 등의 질문 을 친구들이 쏟아냈다. 이건 분명 내가 인도네시 아에 도착하기 전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비슷하구 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들에게 인도네시아 현실에 대해 차분히 알려주었다. 인도네시아는 굉장히 큰 나라이고 1시간 정도 만에 두 가지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후 경찰서에 돌 아와 운전면허 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서를 작성 한 후 접수 창구에 제출하면서 2016년 12월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막 마 치고 이틀 뒤 2021년부터 총 6기를 운영한 비파는 매 회 참여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주한인도네 시아대사관의 아말리아 교육관은 ‘비파 코리아’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응 덕분에 인도네 시아기록박물관(MURI)이 수여하는 상도 받았다고 전했다. ‘비파 코리아’는 온라인 수업을 통해 거주지역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어서 한국과 인 도네시아에 있는 한국인들이 동시에 수강한다. 또 일정이 맞으면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 에서 열리는 오프라인수업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 말하기 대회인 비파 롬바 (BIPA Lomba)는 인도네시아 시 낭송 2024년 상반기에 진행된 제6기 비파 참여자는 932명이 며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 산업 4차 디지털 산업 등으로 단계별로 산업이 발전했지만 4차 산업이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하나의 국가에 살아도 언어와 문화 72점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1주일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지 합 격 점수를 보고 기분이 무척 좋았다. 경찰서 직원 들도 외국인이 시험장에 온 것도 신기한데 British School Jakarta S자 코스 “Namo Buddhaya” (불교 인사) “Om Swastiastu” (힌두교 인사) “Salam Kebajikan” (유교 인사)” 등 각 종교의 인사말을 2~3개 섞어서 대중연설을 시작한다. 비평가들은 “종교분쟁은 종교가 이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2000년대 아체에서는 강성 이 슬람과 온건 이슬람 주민 간 충돌 “Shalom” (기 독교 인사) 가슴 한 켠에 작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았습니다. 왜 그냥 지나쳤을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음엔 꼭 도와야지. 그렇게 또 하나의 다짐을 마음에 묶어두었 습니다. 수요일이 되어 가습기도 각 종족을 대표하는 아나운 서 즉 외모가 다른 사람들이 표준 억양과 발음의 인도네시아어로 뉴스를 전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들을 보면서 머리를 도끼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가 있다. 도끼로 머리를 맞으면 아프고 상처가 남지만 허물어진 경계를 넘는 새로운 생각의 촉수 도 생겨난다. 이를 통해 내 나날의 삶과 사고가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끝] 각 지역 경 찰서에 위치한 운전면허 시험장에 방문해 시험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거주하던 지역에 있는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지역 경찰서 위치 를 알려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같은 한국인 친구들이지만 각기 다른 나라 거버넌스 건설 결과는 예상대로 불합격이었다. 시험에 떨어 진 후 경찰서에 다시 가지 말라 고 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다만 경찰서에 오기 전 미리 가져온 여권 경찰서에서 무슨 일이 있었 냐고 물었다. 경찰서에서 무슨 이유로 회사로 전 화했는지 경찰서에서 실제로 자동차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봐서 합격자를 본 적 있냐고 물었다. 본 적이 있다 고 했다. 어떻게 합격했냐고 물었다. 젊은 경찰관 이 답하기를 고대 중동 사막에서는 현대 한국과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체계 가 형성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무슬림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접 하는 이슬람과 무슬림은 서구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과 건설 노동자들이 경험한 아랍국가의 이슬 람이 대부분이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 고데기 골까르당과 연합개발당은 인물 중심의 여러 정당으로 갈라졌다. 한편 투쟁민주당은 수많은 성향의 집단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총 재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돈이 있어도 바나나를 마음껏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절대적인 공급 부족. 1990 년대 말 파푸아에서는 바나나가 귀했다. 파푸아는 토양이 척박하고 농사가 막 시작된 상황이어서 바나나와 파파야 같은 열대과일조차 귀했다. 도시처럼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 바나나와 파파야 를 먹으려면 재배하거나 타지역에서 재배한 것을 사와야(유통) 한다는 것. 당시에 한국은 농사도 유통도 발달해서 어디서나 비용을 지불하면 사과와 배를 마음껏 살 수 있었으므로 공부만 하 는 것이 아니라 세계곳곳에서 온 아이들과 친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인도 네시아 친구들만 사귀던 나에게 글로벌 코리안으 로 거듭날 기회를 준 것이다. 나는 우리 6조의 이 름 ‘육개장’처럼 다양한 맛이 있고 색깔이 있는 글로벌 코리안이 되고 싶다. Part 2. OK Friends! 역사의 길 위에서 한국을 탐구하라! 다양한 나라에서 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한국인 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우리는 더욱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2022년의 모국연수에서 잊지 못할 추 억을 많이 만든 나는 2023년 모국 연수 공고가 나 오길 기다리며 공고가 나오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이번엔 어느 나라에서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아온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는 마음에 공지가 나 올 때까지 내 가슴은 두근두근. 그래도 두 번째 참가하는 연수다 보니 새로운 친 구들과 만남이 서먹하기 보다는 ‘우리는 곧 친해 져서 다같이 깔깔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 라는 마음으로 한 친구 한 친구의 첫인상을 기억 하려 했다. 또한 관 광 관광공사 관광지 홍보 교육 교육 등의 수단을 통해 국가의 매력을 증 대시키고 타국의 마음을 얻는 능력을 말한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문화 와 정체성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공공외교 프로그램을 통 해 인도네시아어의 국제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교통 유도용 꼬깔콘 을 한 번이라도 건드리면 탈락이라고 했다. 시험 감독관이 세운 교통 유도용 꼬깔콘이 차량 한 대 가 겨우 지나갈 만큼 촘촘했기 때문에 직진으로 코스를 통과하고 후진으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 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시험감독관에게 시험 규칙에 대해 재차 물었다. 시험감독관은 맞다고 답변했다. 나는 시험감독관 에게 시범을 한번 보여 주면 군말 없이 시험을 보 겠다고 했다. 시험감독관이 시험용 차량에 탑승했 다. 시험용 차량은 한국으로 치면 봉고차와 비슷 한 종류였다. 시험감독관은 직진 기어로 시험 코 스를 모두 통과하고 국제 관계 등 55개 지 표를 통해 193개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평가한다. 맺는 말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탄생한 신생독립국 인도네시아는 독립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세계 5위 경제대국을 꿈꾸고 이를 향해 달리고 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45년까지 “황금 인도네시아”(Indonesia Mas)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무 대에서 인도네시아의 리더십과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를 통한 소프트 파워 전략은 인도네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비파 코리아’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어와 인도네시아 문화를 확산시키고 굽은 허리 권별 그 감사의 말은 되려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이 땅에는 그렇게 도와야 할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비자 연장을 위해 반둥 이민국을 찾았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이곳 은 그 강의를 여러 번 들으면 합 격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집으로 돌아와 운 전면허 시험에 전념했다. 1주일 후 다시 면허 시험장에 갔다. 70점이 합 격선이었는데 그 고요 속에는 허기와 그리움이 자주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모든 순간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바람은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감사하라 그 아주머니의 눈빛은 말을 대신했습니다. 돈을 달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지나쳐 버렸습니다. 한참을 걷다 문득 뒤돌아보니 그 아주머니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그동안 봐왔던 한국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반응에 놀란 건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교역하면 서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이슬람교 신자 즉 무슬림 수가 가 장 많은 국가이지만 세속국가이다. 세속국가는 종교국가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 땅. 그 모든 순간이 감사였습 니다. 고된 날이었지만 그리고 양국 간 교류 촉진이라고 설명했다.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에 따르면 그리고 어떻게 내 신상을 알고 회사로 연락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같이 운전면허 시 험장에 갔던 운전기사가 경찰에게 내가 어느 회사 에 다니는지 이야기한 것 같았다. 무슨 문제가 있 느냐고 총괄 부장님께 되물었다. 총괄 부장님께서 설명하시길 그리고 우리 문화를 지켜 주신 모든 독립투사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를 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연수는 은지라는 친구와 뜻깊은 우정을 나 누며 더욱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인 도네시아에서 태어나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나와 대화할 때 한국어를 사용하기도 했지 만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도 함께 사용하며 우리가 함께 아는 한국의 K-Pop 그리고 찌그러진 캔 몇 개가 담겨 있 지만 근영이를 다시 인도네시아에서 7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야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슬퍼 눈물이 났다. 눈물바다가 되어버린 연수원 안에서 ‘오늘은 통금 12시 10분까지다!’ 라는 선생님 말씀에 우리는 흘리던 눈물을 닦고 마지막 날밤을 위해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신 과자를 들고 내 방인 317호에 모였다. 317호 안에서는 5명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퍼 져 나갔다. 미국 글로벌 장을 열다) 그 뒤 기내식 대신 컵라면 하나를 받아 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무 사히 지나간 하루. 오늘도 숨 쉴 수 있었던 시간. 이 모든 것은 감사였습니다. 다시 입국 심사에 서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기다리라고 조언했지만 기존의 생각을 뒤흔들어 새로운 시각을 열 어주는 강력한 도구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후에 많은 작가와 문학 평론가들에 의해 인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저명한 작가이자 평론가인 박웅현이 자신의 저서 『책은 도끼다』에서 이 말을 인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내 입장에서 ‘책’을 ‘인도네시아’로 바꾸면 기타 이념과 종교 세력을 민족주의라는 이름으 로 모은 민주당(PDI. 현 투쟁민주당 PDIP)로 나눴다. 52 I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그래서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아닌 종교적으로 이슬람과 비이슬람(민족주의)으로 나뉘는 것.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나고 개혁 시대에 접어들면서 깍두기 나는 그 렇다고 답했다. 운전면허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 해 주겠다고 하시면서 나는 그들이 느끼는 인도네 시아라는 나라가 얼마나 후진국인지 충격을 먹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아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나는 당시 거주하고 있던 지역 경찰서를 찾아갔다. 인도네시아 현지인 들은 외국인이 면허 시험장 접수 창구에서 어슬렁 거리는 것을 신기해하는 분위기였다. 경찰서 직원 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느냐고 친절하게 물어 봤다. 나는 운전면허를 신청하러 왔다고 했다. 담 당 직원이 운전면허 접수 서류를 안내하면서 나는 또다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나는 무사히 입국했고 나는 무슨 이유인가 나는 원하는 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면 된다고 했다. 시험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 었기 때문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 얼거렸습니다. “주님 나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두 국가에서 진짜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운전 면허증이란 나를 경찰서 본관 건물 2층에 있는 한 사무실로 안 내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난 누구와 친해지려 나! 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친구들의 얼굴을 살 펴보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김포 공항에서 본 그 친구들은 그냥 그냥 지나가는 존 재였다면 5박 6일 내가 매일 부르던 그들을 보면 한 명 한 명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함께 보여 진 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나라에 돌아갈 때 안전하 게 가라는 안부인사를 나누는 난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며칠 뒤인 다음 해 1월 난로도 필요없다. 대신 거의 모든 음식을 냉장 고에 보관해야 한다. 쌀을 상온에 두면 쌀벌레가 생기거나 곰팡이가 생긴다. 옷장에 제습제를 넣 “인도네시아는 도끼다”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51 어두어도 옷을 입을 때 눅눅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현지인들은 아침저녁으로 샤워한다. 한국 에서는 피부가 건조해진다고 샤워를 자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그렇게 하면 ‘땀 띠’와 ‘습진’ 같은 피부질환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성경 속에 묘사된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들 이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낡고 해 진 자루 하나를 어깨에 멘 노인. 그 안에는 종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서도 마음속엔 주님의 인도가 느껴졌습니다. ‘창이 공항’은 고요하고 질서 정연했습니다. 오래전 방문했던 기억이 떠 오르며 낯설면서도 어느새 내 발길이 익숙해진 사역지입니다. 수 차례 연장해 온 사회문화 비자였기 에 내 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도 돈을 주고 가짜 운전면 허증을 구매했다. 그리고 모두가 가짜 운전면허를 진짜 운전면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가짜 운전면허증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 이 들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싶었다. 평소 업무적으로 알고 지내던 관공서 업무를 담당하는 에이전트에게 진짜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에 관해 물어봤다. 내가 저 렴하게 면허를 취득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오해 했는지 내 가 시험 보는 걸 지켜보던 젊은 경찰관 친구가 내 게 말을 걸었다. 그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내가 경 찰서에서 큰소리로 200만 루피아를 줘야 면허증 을 발급해 주는 거냐고 되물었던 것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내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 에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들을 총괄 부장님께 설 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한국인 총괄 부장님은 내게 또 면허시험을 보러 갈 것이냐고 물었고 내가 배정되었던 목포 그룹은 모국연수 3 일 차에 목포 근대 역사 공간을 방문하였다. 그 곳 에서 우리는 1944년 일본군 150사단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유달산 방공호를 보 았다. 방공호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을 강제 동 원한 일본인들 조각상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 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 시험 을 치르는 동안 시험장에서 실기시험을 본 사람이 나 혼자였던 걸 생각해 보면 내게 왜 계속 시험을 보러 오냐고 너의 걸음마다 내가 함께하노라.” 노래 노래 부르기 농수 산물유통공사 등 정부 단체와 그리고 민간단체들 의 한국문화 행사는 인도네시아인만이 아니라 현 지 한국인들의 삶에도 활력을 더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들은 폭동과 테러 같은 위기에 직면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다수자에서 소수자가 된다. 인도 네시아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 게 생각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유지해 왔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영주하려 는 한국인이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다시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늦은 밤 다시 실기 시험을 보는 공터로 갔다. 시험감독관은 나 한 사 람을 위해 여러 번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세워서 그런지 다시 이민국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비자는 없었습니다. “이민국장의 서명이 없어서 비자를 줄 수 없습니다.” 성재경 | <제7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자 감리교단 인도네시아 선교사 2013년 5월 인도네시아 반둥 입국 | 2017년 5월 암본으로 이동 (IAKN Ambon-Institut Agama Kristen Negeri Ambon 교수 사역) 2022년 6월 암본 세종학당 개원(KSI-King Sejong Institut Ambon) 한인뉴스 2025년 11월호 I 55 친절했던 직원은 이렇게 말했고 당황한 표정을 보이며 방 금 내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고 지금 당장 본 인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나와 1층에 있는 운전면허 시험 접 수장으로 갔다. 재시험 접수를 하고 싶다고 접수 창구에 물어보니 대로를 벗어나면 저 소득국가의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자연환경이 다르면 생활방식이 바뀐다. 일 년 내내 덥고 습한 열대기후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여 름옷만 있으면 된다. 겨울옷도 대부분 국가는 세속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한국도 세속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정치면에서 민주주의 국가이고 경제면에서는 자본주의국가이다. 종교국가는 아니지만 이슬람교를 포함해 개신교와 가톨릭 도로에는 태평양전쟁 시기부터 1990년 최신 모 델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된 자동차 모델이 모두 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자바어 나 순다어 같은 종족어를 쓰고 공용어는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다. 당시에 저녁 6시 에는 모든 채널에서 국영방송국이 제작한 동일한 뉴스를 방송했는데 도시 소비자 눈에는 농사도 유통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국가가 한국과 같은 단계로 발전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전국에 유선전화망이 설치되 기 전에 무선전화로 이동했다. 자기 집 전화번호를 가져보지 못하고 개개인이 핸드폰번호를 갖게 된 것이다. 인터넷도 유선망이 도시를 중심으로 깔리다가 이동통신으로 넘어갔고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왔습니다. 혼자 밥을 지 으며 나는 다시 기도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며 떠올린 하루의 풍경들 - 맨발의 노인 독일(3위) 독재자 수하르토 돈 주고 면허증을 사 는 게 진짜 인도네시아 면허증이 아닌가 하는 생 각도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돌아가던 길에 돈 주고 사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돈 주고 면허를 사는 게 맞냐고 되물었다.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오는 대답은 무성의했고 동문회 동화책 중에 원하는 분야에 들어가 그 분야에 알맞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 로젝트였다. 완성된 프로젝트는 캠프가 끝나기 전 날 발표될 예정이었다. 영상 편집에 관심있던 나 는 영상팀에 들어가 봉화에서 있었던 일상을 비디 오로 담기로 했다. 우리 그룹 이름은 ‘삼시새기 기’였다. 그 의미는 삼시새끼를 챙겨먹듯 두 번째는 신체검사 증서였다. 경찰서를 여러 번 방문하기가 어려워 두려움도 함 께 몰려왔다. 나와 같은 방을 쓸 친구는 나와 마음 이 잘 맞을까? 라는 걱정부터 내가 가는 경북 봉 화라는 곳은 어떠한 곳일까? 라는 기대감까지...... 이 모든 감정을 잘 버무려 내 마음속에 잘 넣어 두고 드라마 마늘장 아찌. 그 정성은 말없이 눈물지을 만큼 따뜻했습니다. 앙콧(소형승합차)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좁은 앙콧 안에서 풍기는 반찬 냄새에 잠시 다른 사람들에게 민망했지만 마산 마음이 쓰라리기도 했다. 초등교육을 한국에서 받 은 나 역시 이러한 사실이 마음 아팠지만 마임 몇 가지 다른 의미 없는 이야기를 더 하다 가 200만 루피아를 주면 면허증을 발급해 주겠다 고 말했다. 나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200만 루 피아를 줘야 면허증을 주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 경찰관은 살짝 흥분한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건지 모국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뿌리를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 며 대한민국 모두 가짜 운전면허증에 대한 방법만 알 려줬다. 왜 가짜 운전면허만 있냐고 관공서 업무 를 주로 담당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무비자 체류 기간은 이미 열흘을 넘어섰습니다. 림바트-현지인 친구는 걱정 말라고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이 먹는 것은 허용했다. 2000년대 초반에 테러 사건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무슬림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테러의 피해자들이었다. 실제로 인도 네시아에 처음 이슬람을 전파한 사람들은 인도와 중국 그리고 아랍 무역상들로 문득 내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창이 공항  내에만 머루르다 다시 반둥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반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문화 문화 및 미디어 홍보를 포함하여 올해 인도네시아 공공외교 프로그램을 구체적으 로 소개했다. 또한 올해 상반기에는 외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비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인도네시아 소프트 파워 순위 글로벌 컨설팅업체 브랜드파이낸스(Brand Finance)의 2023년 소프트파워 평가에서 인 도네시아는 45위를 했다. 인도네시아 소프트 파워 지수는 2022년에 34.8에서 2023년에 40.9로 상승했다. 2023년 소프트파워 순위에서 미국(1위) 문화 협력 등을 강화하고 있 는 점은 현지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였고 생활의 편의를 크게 개선했다.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이 라고 문화·예술단체 등 활동을 통해 다른 한 국인들과 교류하며 외로움을 달랬고 뭐가 잘못되었냐고 묻지도 못하고 전화번 호만 남긴 채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간 허탈함이 등을 눌렀고 미국에서 온 동갑 친구 아린이는 ‘우리 또 언제 봐?’ 라며 울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꼭 안아주며 ‘꼭 또 만나자’ 라며 다독여주었다. 눈치 없는 버스는 너무 빨리 도착 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롤링페이퍼를 다 적지도 못하고 인스타그램 아 이 디도 모두와 다 교환을 못한 채 나는 김포공항 행 버스에 올라 탔다. 하지만 괜찮다. 캠프에 있던 모든 친구들과의 추억은 이미 마음 속에 저장해 두었으니까...... 사실 이 캠프는 친구들의 추천으로 한국 문화 체 험이나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캠프는 기대 이상이었다. 내 생에 최초 마산 친구 도 만들었고 미국 친구도 만들었고 러시아 친구도 만들었다. 이 캠프는 오로지 문화 체험 미술 민주투사 메가와티 바꾸면 안 된다고 하던 직진 기어와 후진 기어를 여러 번 변 경하고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여러 번 건드린 후 에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시험감독관에게 시험 규칙에 대해 다시 물었다. 시험감독관은 씩 50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웃으면서 맞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시험을 보겠 다고 했다. 내 예상대로 직진으로 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바람은 나뭇 잎 사이를 지나며 낮고도 고요한 속삭임을 남깁니다. 그러나 내가 선 인도네시아의 땅 위에는 그 평온이 닿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이 땅의 삶은 조용하지 않았고 바틱 등을 배우는 문 화강좌도 운영한다. 인도네시아 소프트 파워와 ‘비파 코리아’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47 공공외교와 문화 외교 인도네시아의 공공외교 전략은 예술 봉제 부족한 제가 이 길을 가는 데 지치지 않게 하소서. 염려를 넘어서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시간은 흘렀고 북한 사람이 아니고 남한 사람이라고 강조 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불 교와 유교 불안은 발뒤꿈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초조함은 고요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민국으로부터 통보를 받았습니다. 비자 연장이 불가하다는 말. 새 정책으로 사회문화 비자는 4개월까지만 (종전에는 6개월) 연장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일주 일 안에 출국해야 했습니다. 마치 강제 추방처럼 들리는 그 말 앞에 브로커는 그 가격에 일정 마 진을 덧붙여 운전면허를 알선한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한국인은 브로커에게 구매한 가짜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었다. 윤리 경영을 최우선 으로 내건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지인들도 비록 한국어 보다는 본인이 현재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나 영 어를 구사하는 것이 더욱 편한 친구들이 비정상이 정 상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 비즈니스 비틀거리 는 걸음. 한 세기의 무게를 끌고 가는 듯한 그 모습은 내게 말없이 시대의 슬픔을 전해줍니다.  나는 가끔 발걸음을 멈춥니다. 주머니 속에서 꺼낸 2만 루피아 - 한국 돈으로 2천 원 남짓한 그 지폐를 조심스레 건넵니다. “점심이라도 드세요.” 말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는 순간입니다. 오늘도 집 근처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무거운 자루를 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나 치려던 길을 되돌아 그 손에 따뜻한 밥 한 끼의 마음을 건넸습니다. 노인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뜨리마까시”를 반복했지만 빈 부격차도 크고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산림이 우거 져 있어 대부분 그런 자연환경을 생각하겠지만 수 도인 자카르타는 국제 도시로 굉장히 크고 발달되 어 있다고...비록 인터넷이 한국보다 느리고 시스 템이 느리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그 나라의 특징에 맞춰 ‘느림의 미학’을 느끼며 살 수 있 는 곳이라고... 또한 ‘무궁화’라는 큰 한국 슈퍼 체인이 있어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제품을 구 할 수 있다고... 나의 말을 들은 친구들은 본인들 이 생각했던 인도네시아와 너무나 달라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못 사는 사람도 많고 상대적으로 미 국과 유럽 등지의 한국인들과 비교해 국적을 취득 하거나 영주하려는 비율은 크게 낮다. 한국 해외 진출의 개척자이자 한국을 도운 재외 동포라는 점은 인도네시아 한인의 큰 자부심이다. 인도네시아는 민간인이 한국 정부보다 먼저 진출 한 국가로 서류를 확인한 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돌아오는 길 세 번 째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쇼핑몰은 있는지 수수료를 적게 받는 친한 브로커를 소개 해 주겠다는 답변밖에 받을 수 없었다. 한국인 지 인을 통해서는 방법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 는 수 없이 인도네시아 현지 지인들에게 진짜 운 전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을 물어봤다. 인도네시아 현지 지인들도 돈을 주고 운전면허증을 구매했고 시 스템은 불투명했습니다. 행정의 벽은 냉랭했고 시간이 12시 5분을 가리키고 있는 걸 알게 된 내 친구는 ‘진짜 마지막이네…’ 라며 울상을 지었다. 별 리더선생님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이제 각자 방 으로 돌아가주세요’ 라고 했을 때 우리는 아쉬운 표정으로 ‘잘 가......’ 라며 서로를 벌써 그리워 하고 있었다. 마지막날 아침 시간이 될 때마다 실기시험을 보러 갔 다. 다섯 번째 시험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인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진짜 운전면허증 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국인이든 인도네 시아 현지인이든 다들 나를 괴짜처럼 바라본다. 아직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짜 운전면허증이 진짜 운전면허증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작은 씨앗을 뿌렸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나타 나서 씨앗을 계속 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 다면 언젠가는 진짜 운전면허증이 인정받는 세상 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인도 네시아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험 감독관을 통해 어떻게 필기시험을 준 비해야 하는지 물었고 시험감독관은 시험을 치렀 던 공터에 붙어 있는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도 착한 사무실 책상 위에는 탈락이라는 붉은색 도장 이 찍혀 있는 내 운전면허 접수증이 있었다. 시험 보기 전에 이미 도장을 찍어 놓은 것 같았다. 시험 감독관은 붉은색 도장이 찍힌 접수증을 돌려주며 시험감독관이 나를 공 터 옆 사무실로 안내했다. 어제와 같이 시험 접수 증에는 붉은색 불합격 도장이 미리 찍혀 있었다. 붉은색 도장을 보자 시험을 본 당일에는 재시험 접 수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주 쉬는 날에 다시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경찰서를 나섰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했다. 출근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신발 실은 삶의 고단함이 더 무겁게 담겨 있습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 아내가 동생처럼 아끼는 예진씨가 반찬을 바리바리 들고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장조림 아이를 업은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아듣지는 못 했지만 아진 악기 알아듣지도 못하 겠고 대답하기엔 너무 버거운 질문들을 쏟아 내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국제학교에 입학을 해서 정 말 몸도 마음도 정신도 너무나 힘든 시기를 눈물 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에서 통역도 해 주고 점심시간에 같이 앉아 한국어로 이런 저 런 학교 생활을 이야기해 주던 그 친구가 없었더 라면 그 고된 시간을 버텨내어 지금까지 올 수 있 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점점 외국생활이 익숙해 질쯤 이제는 한국에 있는 한국친구들의 유 행어를 따라잡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한국친구 들 암본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 주민 간 유혈충돌이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너무 달라서라지만 이슬람끼리도 온건과 강성으로 나뉘어 충돌 한다고?’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언론 기사와 책을 찾아보고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들 어보니 선주민과 이주민 집단과의 충돌이라는 것. 표면에 드러난 것은 종교지만 실제로 교리 싸 움은 아니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에서 파견하거나 이주시킨 이슬람 또는 온건 이슬람 성 향 주민들과 원주민인 기독교 또는 강성 이슬람 성향 주민들이 정치와 경제적 이익을 두고 경쟁 하다가 충돌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모든 나라가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정당은 한국 기준으로 하면 보수 성향에 가깝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집권한 후 정당을 직능 대표자들로 구성한 집권당 골카르당 야자수 여기에 외국에서 공부해서 미국인이나 싱가포르인의 정체성까지 더한 사람 도 한인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한 인공동체는 어떤 모습이 될지? 인도네시아 한인 들은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하다. [끝] 여러 번 방문해서 그런지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아침 먹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여자농구·카누·조정 등 일부 종목이 지만 단일팀이 구성됐고 열무김치 영국(2위) 영어로 빼곡히 칸을 채운 은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모국연수를 하는 6박 7일동안 우리는 한국의 다양한 명소를 방문하고 함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며 한국 문화 를 몸소 익혀 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른 국가 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인도네시아 외교부 는 올해 초 외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외교 모임을 개최해 인도네시아의 창조 경제 예 린 예술 예진 씨의 반찬 예진씨의 마음은 정 말 고마웠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옷을 개고 가방을 정리하면서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 라는 심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내 친구들과 나의 양말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가 내게 의자에 잠깐 앉으라고 했다. 직급이 높은 경찰관 같았다. 그 경찰관은 내게 간단한 안부를 물은 후 외교 요리 우리 그룹의 영상이 공 개되고 반응은 아주 좋았다. 친구들은 영상을 보 고 캠프가 더 생각날 것 같고 벌써부터 그리워지 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비록 5박 밖에 보지 않았지만 정말 정이 들어버린 아린 우리 의 삼시를 새기자는 것이다. 마지막 날 밤이 왔을 때 우리가 주역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청소년부 대상 주ASEAN대한민국대표부대사상 황다인 (BSJ 우리는 8개 조로 흩어졌다. 나는 6조에 배 정되었다. 6조에는 외국에서 온 아이들과 마산에 서 온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쑥스 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활동을 통 해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팀 단합을 위 해 팀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육개장은 어때?’ 라는 선생님의 제안에 우리들은 ‘육개장’은 너 무 아재장난이라며 선생님을 나무랐지만 생각해 보니 육개장은 깔끔하면서 얼큰한 맛이고 짠 맛 같으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다양한 종류의 맛을 가 진 것이 마치 우리 팀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 같았 다. 우리는 ‘육개장’조로서의 다양성을 유지하 며 서로의 맛은 존중하자는 규칙을 세워 5박 6일 동안 재밌게 놀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실컷 놀다 보니 이틀 후 면 뿔뿔이 전세계로 흩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 다. 우리는 마지막 날밤에 있는 프로젝트 랩 발표 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Project Lab’은 영 상 우리의 마음과 사고를 깨우고 우리의 뿌리인 대한민국에 모여 한국을 알아가고 함께 배 꼽 잡고 웃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 라는 마음 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이다. 짧지만 강렬하 게 한국을 경험하고 우리는 모두 다 각자 나라로 돌아가지만 7일 동안 우리가 함께 한 추억들이 하 루하루 살아 가며 지치고 힘들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며 우리의 삶을 더 욱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운 전면허증 취득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먼저 주변 지인들에게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방법을 물었 다. 나는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방법을 물 었지만 운전면허를 이미 취득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필기 시험장에 있던 직원이 내 운전면허 신청서 에 필기시험 합격 도장을 찍어줬다. 처음 필기시 험을 접수했던 접수 창구로 가서 실기시험을 접수 했다. 필기시험과 동일하게 소정의 실기시험 인지 비용을 지불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10분 정도 기 다리니 실기시험 담당 경찰관이 나를 실기시험장 으로 안내했다. 한국에서 운전 경력이 몇 년 있었 기 때문에 실기시험에는 자신이 있었다. 시험 장소는 경찰서 내에 위치한 공터였다. 한국 처럼 별도의 시험 장소가 세팅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도착하자 시험감독관은 공터에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세우기 시작했다. 꼬깔콘 간의 간격은 시험감독관 마음대로였다. 시험감독관은 눈대중 으로 꼬깔콘을 모두 세운 이후 내게 시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시험 항목은 단순했다. 일자 코스 운전이 하고 싶어졌다. 차량을 구매하기 전 유통 등 산업을 중심으로 유튜브에 운전면허 시험 관련 강의가 있으며 육(六)! 개장(開場) (육조 음악 이 가정에 은혜를 베푸소서. 사랑과 행복한 가정으로 복을 더하소서.” IMLAC-반둥에 있는 외국인 언어학교. 인도네시아어 고급반 수업을 들으며 내 삶에 새로운 언 어의 감각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엔 여전히 비자 문제가 미완의 숙제처럼 얹혀 있었습니다. 스폰서인 IMLAC학교 교장과 상담도 해보았지만 이 말은 책이 단순히 정보를 전 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 비참 한 역사를 처음으로 접한 친구들 역시 충격에 깜 짝 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프로젝트 Lab을 통해 한민족의 연합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I 53 과 우리나라 문화를 접하는 활동을 하였다. 우리 는 아리랑을 리믹스한 노래에 맞춰 태극기를 들고 안무를 하는 활동하였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부분을 태극 기를 흔들면서 무대 위를 활보하며 우리는 유관 순 열사가 느꼈을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충성 심을 느낄 수 있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친구들 과 나는 마치 삼일절에 ‘대한 독립 만세!’를 외 치는 용감한 대한민국 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독립 기념관에서는 한국의 전통춤을 볼 수 있 는 기회도 얻었다. 꽹과리를 울리며 다양한 색감 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는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묻혔으리라 생각하니 보다가 가슴이 갑자기 울컥해졌다. 또한 전시되어 있는 것 중 한국어로 156년 전에 쓰인 글을 보니 내가 평소에 부모님과 사용하는 한국어가 다시 보 였다.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만 여겨지던 것이 옛 날에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배우며 우리 민족 의 정체성을 지켜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또한 이 친구는 내게 편지 한 통 을 내밀었다. 편지안에는 인도네시아어 이것도 지나 가리이다.” 싱가포르행 티켓을 예매하고 다시 이민국을 찾아 출국 연장 서류를 받았습니다.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기도했습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이들 종교 축일을 국가공휴일로 기념한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 은 “”Assalamu’alaikum warahmatullahi wabarakatuh” (이슬람인사) 이들을 지원하는 금 융업과 인허가 관련 컨설팅업체 이를 통해 국가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다 른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도네시아어 교육 프로그램인 비파(BIPA: 외 국인을 위한 인도네시아어 교육과정) 운영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미 결과가 정해진 시험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에도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접수 창구의 직원은 친절했고 이불도 이슬람 이슬람세력을 모은 연합개발당(PPP) 이제 오지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운용하는 미국의 저궤도 우주인터넷 통신사업인 스타링크 도입 을 언급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통신발달사에는 시티폰과 삐삐 시대가 없다. 철도와 도로가 전 국에 건설되지 못한 상태에서 항공편으로 군도의 섬들을 연결하고 있다. 한국은 농업과 광업 등 1차 산업 이탈리아(9위) 등 G7 국가 전체가 톱10에 포진해 G7 의 글로벌 영향력을 드러냈다. 글로벌 소프트 파워 지수는 전 세계 17만 명 이상의 개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인 도네시아 노래를 부르며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인도네시아 노래 인도네시아 맛집을 찾아다니는 한국인들. 한국과 인도네시아 교 류가 증가하고 인도네시아의 글로벌 위상이 상승하면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관심과 호감 도 늘고 있다. 한편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 전략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어와 인도네시아 문화를 알리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사용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문화 소개 인도네시아 바틱 옷을 입고 인도네시아 시낭송 인도네시아 에서 운전면허는 각 지역 경찰서의 주요 수입원이 라고 한다. 각 지역 경찰서가 브로커에게 정해진 상납금을 제시하고 인도네시아 여행지 소개와 대사관 관계자들의 앙끌롱연주 (5월25일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 인도네시아가 세계 무대에서 더 욱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끝] <Bipa Korea lomba> 인도네시아 동화 구연 인도네시아는 1 인도네시아는 내가 한국에서 쌓은 생각의 경계를 부수는 도끼였다. 인도네시아에서 보고 듣고 경 험하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고 그것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새로운 생각의 촉수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는 도끼다”라는 문장은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처음 말한 것으로 알려진 “책은 도끼다”라는 말을 패러디했음을 먼저 밝힌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 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인도네시아대사관과 인도 네시아 교육문화부가 주최하는 바파 코리아(BIPA KOREA)도 그 중 하나이다. 인도네시 아 교육부의 디딕 교육관은 비파의 운영 목적이 인도네시아어의 국제화 증진 인도네시아어를 매개로 한 상호 이해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 고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촉진하면서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고 인도네시아에서 잔뼈가 굵은 한국인 총괄 부장님 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어제 경찰서에서 회사 로 연락이 왔다면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원 래 돈을 주고 면허를 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 다. 원래 그렇다는 말을 들을수록 가짜 운전면허 증에 대한 내 본능적인 거부감은 강해졌다. 다음 주 시간 되는 날에 시험을 다시 봐야겠다고 결심 하고 경찰서를 나섰다. 그 다음 주에 다시 시험장에 갔다. 시험장 접수 창구를 가니 인도네시아인에 게 한식을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덕분에 2000년 대 중반 인스타그램에 서로 의 일상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눌러 주는 특별 한 사이가 된 것이다. 한국에 방문하더라도 서울 또는 친할머니가 계 시는 대전이 전부인 내게 경상북도라는 곳은 새로 운 곳이기에 장장 5시간 동안의 고속버스 이동 중 에도 지치지 않았다. 봉화에 도착해 다양한 나라 에서 온 친구들 인지 비용을 지불하고 접 수 창구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분쯤 지났을 때 인프라가 제대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 않지만 자원이 풍부하기에 언젠가는 도약하 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나라 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내비쳤다. Part 1. 육개장 일본 (4위) 자카르타 등 피해가 없는 지역에서는 구호 성금과 물자를 모아서 보냈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직접 펼치는 구호 활동 외 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여러 단체의 지원 을 인도네시아에서 필요한 곳에 도달하게 하는 매 개 역할을 해왔다.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은 위기에는 서로에게 도 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폭동 때 한국인을 지켜준 사람들은 평소에 잘 지내던 이웃의 인도네시아인 들이었고 자카르타에 한식당 수가 100개를 넘겼 다. 지금처럼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진출 초기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에 한국무용을 공연하고 다도 시범을 보이고 인도네 시아와 한국 화가 교류전을 시작한 사람들도 인도 네시아 거주 한국인들이다. 인도네시아 소수 종족 가운데 하나인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문자로 도입 하게 된 배경에도 앞서 한국어와 한글을 소개하는 활동이 있었다. 한편으로 한류의 전파와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 아와 외교 작은 체념이 내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내가 집안 사정으로 한국으로 떠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습니다. 혼자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고요했고 저녁에는 소주에 삼겹살을 먹으며 큰 목소리로 저소득국가’ 등이었다. 하지만 1999년 7월 수카르노하타국제공항에서 자 카르타 시내로 이동하면서 본 도로를 호위하던 초고층빌딩들은 저소득국가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말에는 한국에서도 초고층빌딩이 드물었다.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에 는 최신형 벤츠부터 낡은 바자이와 목초를 실은 소달구지까지 함께 다녔고 전래동화 구연 등 부문 으로 나뉘어서 언어와 관련된 인도네시아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주한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인도네시아어 교육과 더불어 인도네시아 음식 전자 젊은 경찰관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 다. 인도네시아 사람도 운전면허증을 돈 주고 사 는데 접수 에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증명 사진 접점이 하나 도 없는 지역에서 온 우리지만 그때만큼은 10년 지기 죽마고우 같았다.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연예인 정상이 정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정식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필기시험 과 실기시험을 치르고 합격 점수를 받아 취득한 운전면허증이다. 한국에서는 진짜 운전면허를 취 득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진짜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가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이 없다. 내가 이야기하는 가짜 운전면허란 진짜 운전면허와 반대로 정식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치 르지 않고 취득한 운전면허증을 말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직장 생활을 한 지 1년쯤 됐을 때 제일 시원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시 험을 봤다. 시험은 인도네시아어로만 되어 있었 고 제조업을 기반으 로 근면하게 경제활동을 한다. 인도네시아는 남한과 북한이 만나는 완충지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의 삶 이다. 인도네시아는 남북 대사관이 동시에 설립된 아시아 최초의 국가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 렘방 아시안게임과 장애인 아시안게임 때 남북한 공동 입장 종족과 인종이 다를 수 있다. 1990년대 말 한국은 한민족이 한국어를 하며 한반도에 사는 나라였다. 서울에서 외모가 다른 외국인을 보면 쳐다보던 시절이었 다. 인도네시아에 오니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하지만 종족이 다르면 외모도 언어도 달랐다. 심지어 자카르타에는 전세계에 모든 사람들이 오가고 종종 마주치는 풍경이 있습니다. 맨발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으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52 I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 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노래를 켜놓고 따라 부르며 춤도 추며 놀았다. 하 지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좋아하는 연예 인 이야기와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해 온 다양한 에 피소드에 대해 손뼉을 치며 서로를 공감해 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헤어지는 날 주변에서 증명사진 촬영 및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 내게 서류를 안내했던 직원은 경찰서 바로 맞은편에서 필요한 서류 두 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진짜 운전면허증 SIM Asli 남기훈 (PT HWA SEUNG INDONESIA) Kudus)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최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49 경찰서 건물 바로 맞은편에 증명사진 및 신체검사 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고 주차 세 가지 시험 코스를 모두 통과한 이후 주차 총 세 가지 항목에 대해 평가했다. 특이한 점은 직진으로 일자 코스 중년쯤 되어 보 이는 중화학공 업 지금 내가 시험을 보는 경찰서는 정 해진 규격 없이 시험감독관이 교통 유도용 꼬깔콘 을 마음대로 두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하기가 어렵 다고 했다. 그러면서 합격했던 사람은 10번 정도 시험을 보러 온 사람이었고 지금은 인도네시아인이 먼저 한국인이냐고 물어주고 반가워해 준다. 현지 인들이 한국 식품과 화장품 등을 소비하게 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제품을 구입하기도 훨씬 쉬 워졌다. 한국대사관 지나친 아주머니 지진과 화 산 폭발 등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자연에 순응하 며 서로 돕는 삶을 배웠다. 1998년 5월 인도네시 아 민주화 시위와 폭동 때 현장을 지킨 한국기업 은 인도네시아인과 해외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어 서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2004년 아체 쓰나미와 2019년 술라웨시섬 빨루 지역 지진 등 자연재해 를 당했을 때 한국인들은 재해 현장에 들어가 긴 급구호 활동을 벌였고 지하드 전사 처음 봤을 때와 다르게 노련하게 교통 유 도용 꼬깔콘을 세웠다. 꼬깔콘 간의 간격도 제법 일정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시험 결과는 전과 같 이 후진 기어를 놓고 후진하는 도중에 꼬깔콘을 건드려 탈락했다. 시험 보기 전 회사 울타리 내에서 회사 차량으 로 운전 연습을 장시간 해와서 그런지 처음 시험 봤을 때보다는 이동 거리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합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세 번째 시험에 불합격하고 나니 총 괄 부장님께 직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관에게 200 만 루피아를 제시받았던 일에 대해서는 경찰서 내 에서 일절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다음 주에 경찰서에 다시 방문했다. 이전과 동일하게 접수처에 실기시험을 접수했다. 시험감 독관은 다시 공터에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세우고 시험을 보게 해줬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후진 기어를 넣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다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건드렸다. 불합격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불합격 통보를 받자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 기 위해 기어를 후진으로 바꿨다. 후진으로 운전 한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건 드렸다. 탈락이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취득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현지 지인들은 인터넷에 서 찾은 정보를 내게 알려줬다.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싶다면 친근하게 블랙커피 한 잔 마시겠냐고 물 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접 수 창구에 가서 실기시험을 접수하고 친근한 미소를 보이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운전면허를 취 득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운전 면허 시험을 접수할 때 필요한 비용은 전부 지불 했다고 대답했다. 그 경찰관은 조용히 고개를 끄 덕이고 캐나다(7위) 키타스(KITAS) 테러리스트... 돼지고기를 안 먹 는 것은 맞았지만 프랑스(6위) 플라스틱 필기 시험까지 합격한 것에 놀란 눈치였다. 카메라맨 이 와서 내 사진을 찍었다. 비록 필기시험이었지 만 필기시험을 담당하는 직원이 내게 다가와 지금 바 로 시험을 보겠느냐고 물었다. 지금 바로 보겠다 고 답변했다. 내 답변을 들은 직원은 나를 허름한 사무실로 안내했다. 허름한 사무실에는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고 필요하면 브로커를 알아봐 주겠다고 답했다. 나는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싶다고 학교생활 한국 전통문 화를 보존하고 2세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 자 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는 한국인 이주 초기 인 1976년에 설립돼 2세들이 한국인으로서 정체 성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시작했다. 선교 활동의 일환이지만 선교사들은 현지 사회에 깊숙이 들어 가서 구호 활동을 펼치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해왔다. 인도네시아 한국인들은 한국문화와 한식을 전파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55 하는 디딤돌이었다. 한식을 먹어야 하는 한국인들 은 한식당의 든든한 소비자였고 한국과 너무 나 다른 나라인 인도네시아로의 이주는 지리적인 국경을 넘어서 나의 사고의 틀을 깨고 생활 방 식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가야 한다고 들었을 때 떠오른 단어는 ‘열대 한국기업을 지켜준 사람들은 현지인 직 원들이었다.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인도네시아인 을 닮아간다. 특히 자바 예절은 목소리를 크게 하 지 않고 갈등을 드러내지 않으며 대화와 협상을 한다. 이슬람이 주류인 공간에서 기독교인으로 살 려면 교회 안에서는 뜨거워도 교회 밖에서는 차분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어를 생활어로 말하고 인 도네시아 전통 의상인 바틱 옷을 즐겨 입으면서 조용히 협상하는 모습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큰 목소리로 한국어로 말해야 속이 후련해지는 모 습. 모두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안에 있는 모 습이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은 앞으로도 바틱 옷 을 입고 나시고렝을 먹으면서 조용히 인도네시아 어로 말하다가 한국문화에 항상 목마름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외국에 사는 한국인 아이들 에게 모국 문화 체험을 시켜준다는 글을 보게 되 어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바로 지원서 작성 을 준비했다. 두둥!! 드디어 결전의 순간. 호기롭 게 등록을 했으나 막상 새로운 친구들과 5박 6일 을 보낸다 생각하니 설렘만큼 걱정 한국문화원 한국어 한국어로 말하는 삶을 오갈 것이다. 한국이 어려움을 겪으면 돈이든 독립운동이든 대 인도네시아 로비 등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 두 할 것이다. 또 인도네시아가 어려움을 겪으면 역시 한국에서든 인도네시아에서든 할 수 있는 모 든 일을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인인 사람도 있고 한국인인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에서 취 득한 운전면허증을 함께 제출했다. 접수 창구 직 원은 내가 제출한 서류를 모두 복사한 후 다시 돌 려줬다. 그리고 오늘 필기시험을 볼 거냐고 물었 다. 경험 삼아 보겠다고 답변했다. 소정의 인지 비 용을 내야 한다고 해서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오면 우리 국민에서 외국인이 되고 한국음 글로벌 코리아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어를 적극적으로 배운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들은 종교단체 한식당과 여행사 등이 순차적으로 생기면서 한국인의 활동 업종이 다양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합해 한국계 기 업은 2천 300여 개로 추산되며 한인 사업가들이 성금을 모금해서 한 국대사관 부지를 매입해 준 것을 포함해 진출 초 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정부와 대사관을 지원 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는 종목별로 동포 응원단을 꾸려서 경기장에서 선 수들을 응원하고 경기장 밖에서는 한식을 대접하 고 부족한 물품을 구입해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때는 일 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왔다가 살고 있던 김만수와 유형배가 국교도 없던 대한민국의 선수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봉사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한국 인은 취업과 사업 등 경제 활동을 위해 인도네시 아로 왔다. 목재 해당 지역 경찰서 에서 회사 HRD 현지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고 향우회 현지 남북한 동포들이 공동응원도 했다. 개막식에는 이낙연 총리와 리룡 남 북한 내각부총리가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메 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은 남북한을 동 시에 방문해 평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반도 분 위기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한국인이 쇼핑몰에 서 마주친 북한 사람과 인사할 수 있고 북한 식당 에 갈 수 있는 곳이 자카르타이다.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어로 생 활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기도 하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는 영어권이 아 니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같이 영국 식민지 를 경험한 국가에서는 외국인이 영어로 생활할 수 있다. 국립인도네시아대학교(UI) 외국인을 위한 인도네시아어과정(BIPA)에는 20년 이상 한국인 학생 비중이 60~70%에 이를 정도로 화 를 내며 한국인 관리를 똑바로 하라는 연락을 받 았다고 한다.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화가 났다. 왜 불합격 도장이 미리 찍혀 있냐고 따져 물었다. 시험감독 관은 대답이 없었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돌아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51 가려는 순간 화장품으로 어지러져 있던 방이 이제 는 다시 깨끗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 보며 힘이 쭉 빠진 채 카드키를 뽑았다. 캐리어를 들고 내려가는 한 계단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내 방은 다른 친구들보다 높이 있어 떨어져 있다고 투덜대던 첫날이 기억났다. 그 날로 간절히 돌아 가고 싶었다. 타임머신이 내 눈앞에 있으면 하고 비는 와중에 나는 일층에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강당에 모여서 폐막식을 진행했다. 폐막 식에서는 롤링페이퍼와 인사할 시간이 있었다. 나 보다 한 살 어린 동생 근영이는 ‘언니 또 봐요!’ 라며 나를 꼭 안아 주었고 환경에서 자랐으니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잘 지내야지! 라는 굳은 결심을 내 여행 캐리어에 함 께 담았다. 나의 픽업장소는 김포공항. 김포공항에 가 보 니 모두 새로운 얼굴이었고 회사 총괄 부장 님이 비용을 대납해 주겠다고 했을 때 그냥 알겠 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면허 시험장에 왔을 때는 가짜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 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후진으로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 간에 기어를 바꿀 수 없었고 후진으로 돌아오는 코스 절반 정도 온 후에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건 드렸지만 시험감독관이 불합격이 아닌 합격 처리 를 해줬다고 했다. 물론 인도네시아 국적이었다. 합격했던 사람이 있다고 하니 희망이 보였다. 나 는 이후에도 회사 울타리 내에서 장시간 운전 연 습을 했고 후진으로 돌아오던 중 교통 유도용 꼬 깔콘을 건드렸다. 시험감독관은 불합격이라며 차 에서 내리라고 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자 흔들리던 비행기 힌두교를 인정하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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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도네시이아 현지에서 "서바이벌 인도네시아어 초급과정" "제1권"과 "제2권"의 종이책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드립니다. 현지에서 종이책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제 개인 카톡(아이디: kimjonglan)으로 연락을 주시면 좋겠습니다.참고로, 현재 현지에서 인쇄와 제본 중이니, 5월부터는 발송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은 권당 Rp 150.000입니다.…
쫑란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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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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