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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바라와>를 발간한 이태복 사산 자바문 화 연구원장과 김주명 시인 000개는 1896년에 지어진 기 상청 건물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집 안 문들의 경첩은 찔리웅(Ciliwung)강에 있었던 부낏 두 리(Bukit Duri) 여자 교도소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61 Museum Di Tengah Kebun의 주인인 중부 자바 출신의 샤리알 잘릴 (Sjahrial Djalil 000개는 바타비아의 동인도 회사 건물에서 가져왔으며 000개의 벽돌로 건물을 지었는데 000여명의 산 악 마을. 늘 경험해 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쉽게 마 음 먹고 나서긴 힘들었다. 멀고 험하고 또 평범치 않은 곳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내가 벌써 마카사 르행 비행기 안에 있었다. 비행기는 단 1분의 연착도 없이 부드럽게 마카사 르 ‘술탄 하사누딘’ 공항에 내려앉았다. 그곳에서 다시 시내의 버스 터미널로 이동 109개의 62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다양한 크기의 돌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 쪽에는 박물관의 주인이자 2000여점의 유 물들을 수집한 Sjahrial Djalil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박물관을 오 래 즐기지 못했다. 파킨슨 병을 앓았던 그의 침실 전시실 천장에 그려진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림은 투병 중이던 그를 위한 치료목적의 그림이라 한다. 2019년 눈을 감은 Djalil은 그의 바 램대로 자신의 집 10학년)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15 탐방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대한민국 대사관 류완수 영사는 “이번 8월은 경 술국치 주간입니다. 스마랑을 방문한 이유는 이곳 에 항일 독립 운동과 관련된 사적지가 다른 지역 에 비해 많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숙소나 고려독 립청년당이 투쟁한 곳을 학생들이 직접 방문함으 로써 1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선정된 25명과 한인 회 박재한 회장을 비롯한 손한평 수석부회장 1200그루 이상의 야자수 17~18세기 왕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중국. 인도. 중동 지역으로 전 파되었다. 19세기 에는 무역로를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에는 유리 페인팅이 1840년대에 중국으로부터 발리에 처음 들어왔으며 1940~2019)은 인도네시아 현대 광고계를 이끌어가 던 중요한 인물로 1942년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 철도회사의 본부이며 1945년 10월 14일 인도네시아의 독립이 선언될 때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 군부대 및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위안부 시설로 이 용되던 장소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 는 장소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암바라와 성은 군 사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오랜 시간 머물 수 없 었고 1970년대 또라자의 순수 혈통이었던 상알라 Sangalla의 마지막 귀족 장례식이 내셔널 지오그래 픽 채널을 통해 공개되면서 부터로 알려져 있다. 특 히 마네네 Ma’nene 라 불리는 행사가 치러지는 7 월과 8월에는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수만명의 관광 객으로 작은 산골마을 또라자 전체가 들썩인다. 마 네네는 매장한 시신을 다시 꺼내어 닦고 머리 손질 을 하고 옷을 갈아 입히는 의식으로 1990년 자신의 거주지였던 이 곳을 박물관 으로 등록하였으며 1시간 거리의 ‘암바라와 위안부 시 설’을 방문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2024 항일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몫이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9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본 역사탐방을 통해 재외한인 학생들의 역 사 소양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함양하는 한편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 립 운동가들을 기리고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가 되길 바라며 28일 양일간 인도네시아한인 고 등학생들과 함께 스마랑 지역 역사탐방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이번 역사 탐방을 통해 재외한인학생들의 역사 소양 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를 가졌다. 다수의 JIKS(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학생들 과 타 국제학교 10학년 500m² 면적의 부지 에 지어졌는데 50여권의 책을 출 판한 다작 작가이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강조하 였으며 8시간 버스 야간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라자 Mengkendek에 공항이 있으나 마카사르 와 발릭파판에서 각각 하루 한 편의 소형비행기 만이 운행되고 있어 대부분은 버스로 이동한다.) 야간 이동은 좌석이 일반 버스 좀 더 푹신한 Executive 버스나 침대 버스(Sleeper Bus라 불린 다.)가 운행되고 있었다. 마카사르에서 가장 큰 터미널인 Regional Daya Makassar는 에어컨 시설도 깔끔한 식당 하나도 없 는 8월 27일 오전 7시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모였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박재한 회장과 주인도네시 아 한국대사관 류완수 영사 9세기 중부 자바의 유물로 그 시대의 작품 중 가장 큰 것이라 한다. 미완성된 조각임 에도 불구하고 이 박물관에서 가장 값 비싼 소장품으로 알려졌는데 ACS Jakarta Angkatan Muda Kereta Api)과 일본군 간의 5일 전투로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지금은 철도 역사박물관과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고 약 600개 의 문으로 실내의 연결성과 규모에서 그 당시 철도회사의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탐방대원 학생들은 이태복 원장의 설명을 시종 진지하게 들었다. 라왕 세우를 끝으로 탐방일정 은 마무리 됐다. 탐방대원인 홍보배(JIKS 10)학생은 “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가 가장 인상깊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 인도네시아 수모워노에 독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머나먼 외지에서 항 일독립투쟁의 흔적을 좇고 그분들을 기억하는 시간 속에 감사함과 경외감이 느껴졌다” 고 소회 를 말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과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태 평양전쟁이라는 한편의 서사 를 보고 듣는 의미있는 여정이 었다 Dia.Lo.Gue Arts Space이다. 음식과 예술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는 주제이지만 Djalil은 이 석상을 얻기 위하여 이것이 발견된 지역에 학교를 건립해 주었다고 한다. 정원은 가네샤 이외에도 136개 종류의 꽃 Duta Gallery 역시 인도네시아 대중 에게 예술 작품을 홍보하고 지역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작품을 전 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재단이다. Hamel은 1980 년대에 많은 인도네시아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며 JIKS 박은주 [한인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제339회 문화탐방] 끄망 ‘사진’이 생기고 나서는 사진을 두고 생 전 모습과 똑같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론다Londa’는 또랭께 일족Marga tolengke 의 가족 무덤이었다. 1100여년전부터 또랭께 일가의 시신들이 이 죽 음이 숨 쉬는 동굴에 묻혀져 왔다고 한다. 론다를 지키는 이들도 그 근처의 기념품가게 ‘스마랑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철도 청 년단(AMKA 가구점들이 많은 곳으로 외국인이 자주 찾는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즐비해 밤 이 되면 인도네시아 젊은이들로 붐빈다. 아쉽게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우기철 상습 침수지 역이기도 하다. Kemang이라는 이름은 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망고 나무의 한 종류에서 따 왔다고 한다. 정원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 숨겨진 작은 박물관과 문화예술공간 가난 간단한 간식 정도 살 수 있는 매점만 줄지어 있 는 그냥 대기실이었다.(매점도 밤이 되니 문을 다 닫아버려 물도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화장실 시설도 열악해서 물조차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었다. 우리가 예약한 현지 여행사이트에는 출발 시간 한 시간 전부터 탑승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되어 있었 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의 텅 빈 대기실에 사람 들이 우르르 한번에 나타나면 잠시 후 버스들이 우르르 들어와 그들을 싣고 떠나고 개인 가방도 맡겨야 한다. 내부의 모든 가구 및 소품 하나하나가 오랜 역사를 지닌 전시품이기 때문이다. 집 내부의 거실 개인만을 우선시하는 현세태에 선대의 경험과 가르 침을 전달해야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국의 외딴 불 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 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 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 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1박 2일의 스마랑. 암바라와 지역 역사탐방으로 미흡하나마 여러분들의 초롱초롱한 눈으로 갈수 록 마모되고 스러지는 국외 독립투쟁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살아서 재생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 다. 여러분의 참여로 더 보람있고 값진 역사 탐방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역사탐방은... 10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2024 항일 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서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 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게 되새김 암바라와로 떠나는 시간여행 재인도네시아한인회(회장 박재한)는 8월 27일 곡선으로 말려 올라간 지붕과 앞 뒤로 긴 형태의 전통 가옥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비극을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고려독립청년단 소속 ‘3인의 열사들의 활동지와 교회’ 이후 우리는 고려독립청년단 소속이었던 민영 학 관광객 등 해변의 모습과 자연의 논밭을 주로 그리는데 광고대행사 Ad Force Inc.를 설립한 사람이다. 역사 를 좋아하고 고대 유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30대때부터 취미로 유물 을 수집했다고 하는데 광두 동북부 차 오저우-샨터우 지역(줄여서 차오샨 지역. 차오저우)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광둥지역(캔터니즈) 교도소장 국가가 없으면 국민들이 고 통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가의 중요성 그 곳이 바로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만 개방되는 수장고이다. 1986년 3월 당시 문화교육부 장관이었던 파웃 하산티(Fuad Hasanti)에 의해 개관된 Duta Gallery는 40년 가까이 국제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나 역사적인 작품을 전시 그 시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나타내는 자료 또는 뛰어난 미적 양식을 갖춘 자료 등의 선정 기준이 있다. UNESCO 국제기록유산센터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63 2014년 필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직지심체요절』 원본을 열람하기 위해 신혼여행 을 프랑스로 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도착해 사서에게 정중히 『직지』의 원본 열람을 요청했으나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 과 죽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2024년은 한국인이 태평양 전쟁의 포로 감시원 으로 징용되어 인도네시아 땅에서 피로써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벌였고 그 중 65 그 후 이곳에 뿌 리를 내리기 시작한 지 104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 다. 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걸 어온 길을 되새기며 그가 그려낸 알록달록한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닭이나 물 고기를 잡아 죽은 이가 떠나는 길을 축복해주면 된다”고 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이제는 그러 한 화려한 장례잔치 없이 매장을 하거나 그곳에서 나는 몸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간신히 빠져나와 차까지 걷는 길이 천 년같이 느 껴졌다. 유난히 쨍한 햇볕과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장례식을 위해 비로소 똥꼬난 안에 모셔두 었던 고인의 시신을 비로소 관에 담은 이들은 그들에게는 죽 은 이를 다시 만나는 즐거운(?) 행사다. 장례식을 마친 시신은 똥꼬난을 닮은 상여에 실 려 각자의 가족묘로 옮겨진다. 또라자는 높은 산맥속에 자리하지만 푸른 나무산 이 아닌 바위산이다. 보통은 산속에서 흘러내려오 는 계곡 물을 산 아래에서 식수원으로 쓰기 마련 인데 또라자는 산 아래서 물을 끌어올려 산 위에 서 써야 할 정도로 산맥 전체가 거대한 바위다. 때 문에 이들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바위를 뚫어 관을 넣고 네모난 문을 달아 마무리한다. 마네네 를 위해 시신을 다시 꺼내기에도 편리하다. 또라자의 살아 있는 박물관 ‘케테 케수Kete Kesu’ 또라자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케테 께수 마을은 입구에서부터 똥꼬난이 양옆으로 웅장하 게 늘어서 있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귀족들의 무 덤이 한 채씩 지어져 있고 유리벽 안에 그들의 타 우타우tau-tau와 생전 그들의 업적도 액자로 잘 설명되어 있다. 안쪽으로 더 들어서면 절벽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절벽에는 오래되어 부서진 관들과 그 사 이로 보이는 뼈들이 수북하다. 얼마나 오래 된 것 들인지 그곳을 지키는 이들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했다. 그 높은 절벽에 난간을 만들고 그 위에 나 무로 만든 관에 시신을 넣어 얹어 두었는데 비바 람과 시간에 삭은 관이 부서 지면 쏟아져 나온 뼈들은 다 시 그 옆 관에 넣는다. 그렇 게 섞인 오래된 해골과 뼈조 각들이 수북히 절벽에 매달 려 있다. 중턱에는 타우타우 들을 모아두고 철창으로 잠 죽음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여정 글: 조은아 편집위원 영생의 땅 또라자 - 두 번째 이야기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27 궈 두었다. 계단을 오르며 자꾸 위를 쳐다보게 된 다. 부서진 관에서 죽은 이의 뼈가 내 머리위로 떨 어지진 않을 지 내심 불안해하며 계단을 오르내렸 다. 이방인에게는 낯설고 두렵지만 그들에게는 자 연과 삶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 럼 극적이었다. 일제에 반대하며 몰래 무기를 훔 쳐 그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억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한인뉴스》 학 생 기자로서 이번 역사 탐방에 참여한 나를 포함 한 25명의 학생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과거의 아 픔을 잊지 않고 그들이 좋아하던 먹거리 음료수 병들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또라자의 정상 이지만 또 다른 또라자 문화의 정점이었다. 바투 뚜몽아에서 내려오는 길에 물소의 뼈가 세 줄이나 가득 전시된 똥꼬난을 만났다. 마침 주인 으로 보이는 분이 마당에 나와 있기에 차를 세우 고 안을 둘러보아도 되는지 물었다. 주인은 매우 상냥하게 허락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에 어머 님이 돌아가셔서 안에 안치되어 있으니 인사해도 좋다”고 했다. 형제들과 가족들이 다 모일 수 있 는 장례식을 내년쯤 치룰 예정이라고도 했다. 우 리는 정중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양하고 발길 을 돌렸다. 차마 며칠 전 방부 처리되어 흰 천에 싸 인 시신을 마주할 용기가 아직은 없었다. 나무 어미가 키우는 아기 영혼들 이가 나기 시작한 아이부터 성인은 일반 매장 방 식에 따르지만 이도 채 나지 않고 죽은 신생아들 은 나무를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삼았다. 살아 있는 나무를 파서 아기의 시신을 안치하고 그래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끄망 곳곳 숨 겨진 이야기들을 찾아 나선 오늘 탐방이 우리가 인도네시아로 다가가는 큰 한 걸음이 되었기 그리고 갤러리를 순회하는 이번 탐방은 인도네시아의 역사 그리고 스물 네 마리 이상 이 되어야 성대한 장례식으로 꼽힌다. 이들은 장 례식을 잔치(Acara)라고 부르며 온 마을과 지역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장례식을 즐기고 장례식에서 희생된 물소과 돼지 고기를 나눠 먹는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이른 체크인을 했다. 무박의 여독을 풀기 위해 샤 워를 하고 똥꼬난을 바라보며 야외 식당에서 아침 도 먹었다. 34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앞으로 펼쳐질 첫 경험의 기대로 피곤도 잊었던 설렜던 아침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렌터카의 사장은 다름 아닌 그 호 텔의 매니저였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들뜬 목 소리로 말했다. “Ada acara hari ini!” (오늘 잔치가 있어요!)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진짜 전통의 하이라이트를 보여 줄 수 있어 매우 기쁜 듯 했다. 매일 있는 행 사가 아닌데 정말 운이 좋다고 했다. “이미 만들어놨던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이 잔치 부터 가세요. 또라자 장례 문화의 시작은 이 잔치 부터니까요.” 장례식을 잔치라 표현하는 이들에게 장례식은 진 정 또 다른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였다. 우리를 태운 기사는 호텔 매니저가 적어준 약도 를 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미 그 지역 사람 들이 장례식 다 소식을 알고 있는 듯 기사가 길을 물을 때마다 서슴없이 잔칫집을 알려주었다. 잔칫집은 중앙 마당을 중심으로 앞쪽 정면에 커 다란 똥고난이 서 있었다. 똥꼬난 이층 난간에는 예수의 마지막 만찬 그림이 붙어있는 고인의 하 얀 관이 있었다. 왼쪽으로는 가족들이 머물고 있 는 집과 오른쪽으로는 십자가가 크게 붙여진 방송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회자는 계속해서 고인 과 가족 그리고 인간의 경외감 이 이곳에서 하나로 녹아든다. 죽음과 삶 그리고 탐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안 내지가 담긴 가방을 받았다. 세심한 것까지 챙겨 주는 한인회의 마음을 느끼며 탐방에 대한 기대감 이 높아졌다. 젠데랄 아마드 야니 공항에 도착한 뒤 그와 함께 역사적인 호기심과 지 적 탐구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박재한 한인회장은 “이번 암바라와 역사 탐방 은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기념 뱃지와 간식 기록에 대한 조상들의 생각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 니라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를 보유한 나라다. 특히 『직지』는 한국의 발 달한 인쇄문화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기록 중 2023년에 등재된 2건(동학농민혁명 기록물과 4·19혁명 기록물)을 더 해 총 18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됐다. 이처럼 대한민 국이 기록유산 강국인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의 답을 선조들의 습관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개 선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의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을 통 해 국가의 주권 강화와 외부 침입에 대비하려고 했다. 조상들은 기록이 미래 세대에게 활용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1월 『직지』의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시에 유네스코가 ‘국제기록유산센터(ICDH)’를 개 관한 것은 대한민국이 기록유산의 강국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18건으로 기록은 행위자 사이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소통하는 ‘매개체’가 된다. 조상들이 남긴 기록을 모두 이해하려면 내용과 종류도 많아 어렵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하지 만 우리는 인터넷을 활용해 조상들이 남긴 매개체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여 보이지 않는 가치 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대량의 정보와 정보기술(IT)을 활용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기록유산을 보유·관리하는 기관에서는 예산과 기술력을 투입해 기록을 분류하고 컬렉션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시공간을 초 월한 서비스로 나아가고 있다. 기록관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활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국내외 기록관 기획 전시실 그리고 특별 수장고로 이어지는 관 람길에는 많은 그림들과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자친구를 모델로 한 Trubus Soedarsono의 흉상에서는 손끝 하나하나의 애정이 느껴지는 듯했고 길을 따 라 쭉 들어가 건물 사이를 지나면 아름다운 중앙 뜰 이 나오고 그 뒤에 기획 전시실이 있다. 정문 오른 쪽에는 상당한 규모의 아랍풍 대리석 건물이 있는데 김주명 시인님과 JIKS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들은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수모워노에 위치한 고려독립청년당 결 성지를 방문했다. 예상보다 작고 허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 한인들의 투쟁의 역사는 그 어떤 웅장한 건축물보다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먼 타 국에 남은 독립운동의 흔적을 직접 마주하면서 김진혁 교 사 2인 끝내 장렬히 자결을 선택한 그 들의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신비로우면서도 비현 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나(Gue)라는 의미로 지어진 낭만 적인 이름은 지역사회의 협력과 대중의 참여 나뭇잎 하나에도 엄마 젖도 제대 로 먹어보지 못하고 떠난 핏덩이 아기들의 몸과 뼈와 영혼이 녹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차마 손을 대서 나무를 만질 수도 없었다. 또라자를 지키는 분뚜 부라케Buntu Burake 아침 일찍 남중국해를 건너는 화인들에게 뚜렷이 상상되고 있었던 중국인의 네트워크라고 묘사한다. 네트워크의 핵심 작동 기제는 화인들이 그들끼리 ‘꽌시(關係)’와 ‘신용(信用)’을 맺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혈 연 · 지연 기반 공동체 단위의 멤버십이라고 말한다. 화인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경제적 영향력과 중국과의 정치적 연계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의 경우 노 병한의 자결지)를 거쳐 철도박물관 노병한 ‘3인의 열사’들이 활동했 던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열사들은 일본 군무원 으로 활동하면서도 일제의 통치에 맞서 싸운 조선 인들로 노트 에 수기로 우리 좌석 번호를 적고는 기다리면 불 러준단다. 첫 경험은 불안했다. 한 시간 넘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동네 꼬마들 과 잡담을 하며 버텼다. 드디어 우리의 버스가 도 착했다. 밤 10시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침대 버스 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깔끔하고 안락했다. 마카사르에서 또라자를 운행하는 버스는 장시간 운행을 하다보니 운전사 이외 두 세 명의 보조원 이 타고 있다. 그들은 손님들의 좌석 번호와 승차 지 논밭과 산악지대가 맞닿는 곳부터 는 바위들마다 고인을 모신 바위 무덤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부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 안은 그 위로 오르자 마치 천국의 문이 열리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바위 하나가 마치 지면의 공동 묘지를 바위에 옮겨둔 것처럼 바위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작고 네모난 문들이 바위 전체를 둘러 싸고 빼곡했다. 그 작은 네모난 문 안에는 고인의 시신과 관 다른 한편으론 한국에서 외국인 이주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교들을 살펴보 면 이주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되기도 하고 끝까지 이질적으로 남는 이도 있다. 인도 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현지화 또는 현지사회에 대한 동화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한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분화할 까? 한인공동체는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는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100년의 시간과 기회 를 얻게 될까?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현지인들과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는 방향성은 명확하다. [끝 담배 플랜테이션(대농장) 을 만들고 당신(Lo) 대만 등 여러 국가를 넘나들며 금융 대만에서 플라스틱 사업을 하는 추 가문 등이 언급되고 대부분 본인이 해외 여행 중에 직접 구입하거나 유럽 대사관 류완수 영사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 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도난품 거래를 막기 위해 국제적인 문화재 보호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고도 한다. 바투 뚜몽아Batu Tumonga 도서관으로 직접 방문하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래세대가 각 나 라의 세계기록유산을 시공간을 초월한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온라인을 활용하고 그 를 통해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후손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글 독립 투사가 되었던 그 들의 비애와 아픔에 분노하는 아이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고통 받았던 그 때가 불과 80여년 전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라 얘기했습니다. 나라의 힘없음으로 인해 고통 속에 삶이 무너지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목숨까지 바쳤던 선조들이 불과 80여년전에 이 곳에서 그렇게 사셨 다는 것이 현장을 가보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직접 두 발로 걸어 서 그 분들이 걷고 뛰셨던 그 곳에 발을 딛고 선 자체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고려청년독립당의 강령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에는 그들의 의지와 정신이 그 때에 끝난 것이 아니 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해지며 독립군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감사 하는 마음을 간직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JIKS의 박지나 학생은 “이번 탐험을 통해 인도 네시아에서 한국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게 되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독일 국제학교의 류호진 학생은 “암바라와의 역사를 깊이 탐구하며 애국심이 강 해진 뜻깊은 탐험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12 학년 박민준 학생은 “타국에서도 독립운동을 했 다는 것이 정말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소 감을 밝혔다. 박민준 학생의 말처럼 독일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초상화 등등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전시품들이 많았다. 해외에서 온 수집품 외 에도 솔로(Solo) 왕궁에서 가져온 침대 동굴 안 빽빽이 관과 해골 28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외부 작업장에서는 타우타우 기념품을 만들고 섬 세한 작업이 필요한 진짜 타우타우는 집에서 혼자 만든다고 했다. 이미 안톤 아저씨는 세계 각지에 서 찾은 관광객들과 취재진에게 유명인사였다. 세 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발행된 잡지와 신문에 있는 자신의 기사를 펼쳐 보이며 자랑했다. 타우타우Tau-tau는 또라자의 장례문화에서 고 인의 영혼을 상징하는 나무 조각상이다. 타우타우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고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상징적 존재로 동을 통한 교역과 동남아 산물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일을 했고 돼지들은 있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높여 울어댔다.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정말 저런 것 이었구나 또 그게 반복 되고. 버스 탈 사람들이 나타나서 버스를 타고 떠 나는 데 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쪽에는 버스 회사별로 작은 사무실이 줄지어 있는데 또라자 (Toraja) 지역에서 가져온 관 뚜껑 등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에서 온 것들 또한 다양했다. 세 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발견된 또라자 일정의 막바지에 궁금하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웃으며 말했다.“우리는 기독교인들이다. 영생을 믿고 죄의 용서와 부활을 믿지만 돈이 없 어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물소를 사지 못하면 돼 지를 사도 되고 또라자 전통 유산 또라자의 장례문화가 전세계적인 관광상품이 된 것은 똥꼬난Tongkonan. 하늘을 향 해 치솟은 지붕은 마치 무거운 운명을 거슬러 올 라가는 영혼의 여정을 상징하는 듯했다. 똥꼬난은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단순한 전통 주거 공간이 아닌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와양 라왕 세우에서 이 먼 타지에 끌 려와서 강제 노역을 하고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어서 학생들은 옛 모 습을 충분히 보지 못했다. 비극적인 역사로 가득 한 위안부 시설을 떠나기 전 마음은 그와는 반대로 무거워졌 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번 역사 탐방의 첫 번째 목 적지인 ‘암바라와 성’에 내렸다. 암바라와 성은 1934년에 건설되어 처음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정치범과 성인 수감자들을 위한 교도소로 사용되었으며 마치 지중해 의 집처럼 붉은 기와 지붕과 베이지색 벽으로 된 건 물이 등장한다. 왼쪽 건물은 상설 전시실 마침내 또라자의 대지를 밟았다. 버스는 티켓에 쓰여진 터미널이 아닌 우리가 미리 예약한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산악지대의 서늘한 새벽 공기가 코 안 깊숙이 스 며들었다. 텅빈 거리에서 고요한 신비로움마저 느 껴졌다. 수천년 그들만의 특별함을 간직한 그곳에 내가 있었다. 호텔 정원에는 또라자의 전통 가옥인 똥꼬난이 줄지어 있었다. 네 개의 기둥 위에 화려한 무늬의 나무 벽 매표 소 등 일대의 모든 상권을 또랭께 일가의 후손들 이 일구고 있었다. 론다는 거대한 석회암 동굴이다. 역시 이 곳에도 절벽에는 타우타우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로 열린 동굴로 들어서자 몇 몇의 청년들이 들어와 돼지들을 건물 뒤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중앙 마당에 박혀있는 말뚝에 물소를 매고 목을 벨 것이라고 이방인들을 데려온 가이드가 설명했다. 뿔이 하늘로 잘 뻗은 물소는 한 마리에 한화 수 백 만원에서 모래사 장의 아이들 모로코에서 발견된 2억 3천만년전 쥐라기 시대의 조개 화석 무 기고)을 방문하였다. 이어 수모워노 고려 독립청년당 결성지에서 탐방단의 목소리 로 결기가 넘치는 청년당의 강령과 ‘대 한독립만세’를 외쳤다. Novotel Semarang에서 탐방 첫 날을 마 감했다. 항일의거지(무기고)-성요셉성당 수모워노-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 12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둘째 날에는 스마랑 대표 관광명소인 라왕 세우(천개의 문)에 들렀다. 라왕 세우는 네덜란드 정 부에 의해 1904~1907년에 건설되었고 무역 문인협회 김 주명 사무국장 및 한인회 사무국을 포함 총35 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가루다항공편의 스마 랑으로 향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과 조선인‘위안부’ 등의 군속의 신분으로 1942년 9월 14일 자카르타 딴 중쁘리옥 항에 도착하여 힘든 삶을 견뎌 낸 선조들의 자취를 따라 첫날 첫 탐방지인 암바라와로 이동했다. 드라마 세팅장처럼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암바라와 성은 옛 모습의 처연함을 담고 있지 않았고 관광지 로써 탈바꿈이 진행 중이었다. 허락된 소수를 제외한 탐방원들은 입구까지만 입장이 가능했다. 한편 문화와 쓰는 용어 역시 달랐다. 그들은 지역성에 기반한 정체성이 강했기에 서 로 경쟁하기도 하고 문화적 자산의 손실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또라자 지방 정부와 공동체는 이러한 도난 사건을 막기 위해 타우타우 보호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미국 민속 예술 민중 중에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타국에서 그 세 종 류의 입지로 산 군속들과 자신을 대비해 시간여행을 해보길 바랍니다. 억울함과 희생 바깥 풍 경은 밝았지만 박 물관 박물관 안 정원에 자리하게 되었다. Dia.Lo.Gue Arts Space 다음 탐방지는 맛있는 음식과 예술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 방언도 서로 달랐으며 보이지 않는 영토 그러나 상상되는 네트워크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45 네덜란드는 자바에 강제 경작제도를 도입해서 커피 부기스 족에 맞서 많 은 수가 기독교로 개종했고 독립 후에는 수카르노 정부와 대립하던 이슬람 반군이 술라웨시까지 들 어와 게릴라 활동을 벌이는 데에 대한 반발로 더 많은 수의 토라자인들이 기독교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토라자 인구의 80% 이상이 기독교 인이다. 산 정상에 서 있는 40m의 거대한 예수상은 양 팔을 벌리고 또라자를 굽어보고 있었다. 죽음 이 후에도 영생을 누린다는 아룩 또돌로 부족들의 믿 음은 예수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 기독교와도 통해 있는 듯 했다. 예수상 아래에서 만난 두 여인에게 ‘가난한 이 들의 장례’에 대해 물어보았다. 수천만 루피아나 하는 값비싼 물소를 살 수 없는 이들은 어떻게 장 례를 치르는 지 부동산 부분에서 전체로 덮어 올리는 채색이 이 루어진다. 독특한 기법 비루함을 매일 짊어지고 살았을 이곳 인도네시아에서의 하루하루를 상상해 보길 바랍니다. 서류상 지원한 것으로 되어있고 임금을 지급하였으니 정당한 노동행위라고 주장 하면서 실제 놓여진 상황의 실증을 회피하고 빈 공간의 중요성 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으로 사람을 한 곳으로 모은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곳이 다. 자카르타 지역 버따위(Betawi) 언어로 그/그녀 (Dia) 사산문화원 이태복 원장 사진. 홍덕용(《세계기록유산 100%활용하기》 저자) 사탕수수 상상을 초월하는 재력을 가지고 싱가포르 새 시작을 축하 해주고 있었다. 이들은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노랫 소리로 고인이 떠나는 길을 축제로 즐기고 있었 다. 가짜 울음소리라도 내어야 하는 우리의 장례 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놀라서 달아나는 이방인들이 그들의 눈에는 얼 마나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웠을까. 내가 정작 이곳 에 온 목적은 이 장례식과 장례문화를 내 눈으로 확인하러 왔던 것인데 서민들의 일상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Bonny의 작품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를 사랑한 외국 작가들의 작 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식민지 시절 예술 활동이 어려웠던 인도네시아인들을 대신하여 이 땅의 아름다 움을 캔버스에 담아왔다. 유독 눈길이 가는 그림이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화 가 Pierre Guillaume은 발리의 시장과 상인 서재 심지어 화장실까지 모두 전시실로 사용되며 그 안의 전시물 중 Sjahrial Djalil이 가장 우선시하는 수집품의 이름을 따서 전시실 이름 을 붙였다. 각 전시실마다 다양한 종류의 수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미국 한 박물관 전시물과 한 쌍을 이룬다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테라코타 선발 여부와 상관없이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위해 한인회의 어른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 이 들었습니다. 한국학교뿐 아니라 다른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도 신청하여 갈 수 있다는 사 실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신청을 하였기에 제비 뽑기를 통해 참여할 아이들이 정해졌고 성 노예가 되고 성요 셉 성당(일본군의 연합국 국민 억류소 소 통의 시공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수이다. 즉 손양섭 송금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이민을 살펴보자. 1840년~1940 년 기간에 중국인 약 2천만 명이 동남아시아로 내려왔고 송출국과 이주국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으로 이주 인구는 2억8천1백만 명으로 세계인구의 3.6%를 차지하며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 Museum Di Tengah Kebun - Dia.Lo.Gue Arts Space - Duta Fine Art Foundation 추은진 (한인니문화연구원 팀장) 비가 올 듯 말 듯 촉촉한 토요일 아침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하고 시간 이 지나 나무가 자라면서 아이의 영혼이 자연 속 으로 스며들기를 바랐다. 과거 아룩 또돌로Aluk Todolo 공동체에서는 아 기가 죽으면 타라Tarra 나무에 묻었다. 이는 죽은 아기를 엄마의 자궁으로 돌려보내는 형태로 타라 나무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타라나무의 굵은 기둥 에 네모난 구멍을 뚫고 아기를 자궁 속에 있는 것 30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시 토라자인들은 마카사르 식 당 식당 신들의 정원 절벽과 동굴에 타우타우까지 세운 고위층 혹은 부자들의 매장지가 아닌 서민들의 매장지인 바투 뚜몽아에 오르는 길은 꽤 험했다. 돌 산에 길을 뚫 기도 쉽지 않으니 산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이 꽤 좁고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이었다. 하지만 정상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아…’하는 감탄 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29 처럼 옷도 입지 않은 채 앉은 자세로 넣고 나뭇 가지로 사각형의 문을 단다. 아기는 나무 수액에 녹아 스며들어 나무를 키우고 아이는 나무와 함께 푸른 잎으로 자라 햇살에 반짝인다. 한 나무에 여 러 개의 아이 무덤을 만들 수 있고 지위가 높은 사 람의 아이일수록 나무의 높은 곳에 묻힌다. 이렇게 아이가 묻힌 나무를 Baby Kambira Grave라고 부르며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돼지들의 울부짖 음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이 가득한 절규였다. 잠시 후 심지어는 전쟁을 벌이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는 단지 같은 문자를 공유한다는 것과 청(淸)이라고 하는 대륙의 제국으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매 우 느슨한 공유의식만이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김종호 교수는 중국계 이주민들이 각 방언그룹에서 벗어나 중화민족으로서의 자각하는 계 기로 20세기 초중반 신해혁명(辛亥革命)의 발생과 쑨원(孫文)의 노력 그리고 일본의 중 국과 동남아시아 침략을 꼽았다. 중국계 이주민 중 무역업자(상인)와 유통업자(상인)들은 유럽인들이 세운 항구도시에서 살면서 싱가포르 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이 순식간에 소식을 알게 된다. 말로만 듣던 화교 네트워크를 시각 적으로 구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실제 동남아시아 화교들은 어떤 사람들일 까? 어떤 계기로 언제 그리고 무엇을 위해 동남아로 왔을까? 그들은 어떤 사업을 하고 어 떻게 연결되고 있나? 책 『화교 이야기』의 저자 김종호 서강대 교수는 동남아시아 화교를 남중국해 해역공간 에서 눈에 보이지 않고 실질적으로 발을 디딜 수는 없지만 아니면 역사적인 여정을 통해 16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느낀 감정들이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일까 아련함과 향수를 자아내며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모두가 침묵 속에서 암바라와 성의 무 거운 역사와 그곳에 서린 아픔을 가슴에 새기며 약간은 단조로운 푸르죽죽함 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화려한 색감으로 어용 상인 등을 포함한 12명을 사살하고 억류소장 여기 에 유럽인과 중국인과 인도인이 더해지면서 더 다채로워진다. 개인 또는 집단 단위로 이루어지는 이주는 거주지를 재조정해서 새로운 정착지를 만드는 행위이며 여러 시대를 망라한 갖가지 종류의 수집품들을 한 곳에서 감 상할 수 있다는 것이 ‘다양성’을 강조하는 인도네시아의 국가이념과 닮아 있어서 Museum Di Tengah Kebun의 매력을 한 층 더 느낄 수 있었다. 관람의 마지막 순서인 뒤뜰은 ‘가네샤(Ganesha) 정원’이라 불린다. 이름대로 그 중앙 에 거대한 가네샤 상이 있는데 여러 예술품과 인 도네시아 예술에 관한 기록을 수집해 오고 있다. 솔로 출신으로 에너지 회사 회장인 Wiwoho Basuki와 꽃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인 부인 Kartini Basuki가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다. 두타 재단의 이사인 하멜(D.Hamel)을 빼놓고는 두타를 이야기할 수 없다. 화가이자 큐레 이터 여전히 고유한 정 체성을 형성하는 정신과 전통이 살아있는 인도네시아를 높이 샀다. 두타에서 키운 많은 작가 중에서도 존 반 데어 스테렌(John van der Sterren)은 대중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작가이다. 상설 전시실을 지나 역사의 비극이 서려 있는 ‘암바라와 성 식사 후 역사의식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기를 바 랍니다.”라고 말하며 역사탐방 에 적극 참여할 진정성 있는 학생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2020년 9월 20일 열 한 마리에서 스물 세 마 리까지는 중급 장례식 예술가 들의 활동이 함께 이루어지는 예술 플랫폼을 지향함 을 반영한다고 한다. 끄망 남부에 위치한 Dia.Lo.Gue Arts Space는 인 도네시아의 유명 건축가 안드라 마틴(Andra Matin) 이 오래된 사무실 건물을 재디자인하여 완성한 작품 으로 1999년에 이미 건축상을 받았다고 한다. Arts Space로는 2010년에 오픈했으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보다 나은 이 해를 위해 연구원 윌리암(William) 국제교류팀장과 김경애 선생님께서 통역과 해설에 도움 을 주셨다. Museum Di Tengah Kebun 첫 번째 탐방지인 Museum Di Tengah Kebun 은 2013년 박물관 평가에서 최고의 개인 박물 관으로 선정된 곳이다. DKI 지방정부로부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두 번이나 상을 받은 곳으로 예술을 찾아보는 여행이었다. 가까이에 있다고 당연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한 걸음 다가가 들여다보아 야 보인다. 보고 느껴야 알게 되고 오 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영원의 땅이었다. 마카사르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갈 때는 캄캄한 어둠속에 숨어있던 또라자의 대자연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높고 깊은 바위 산골을 달리고 오늘 잔치 올바른 역사관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습 니다. 이러한 뜻깊은 활동에 진정성을 가지고 참 여할 학생들을 모집하여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 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2020년 9월 20일 외출과 휴식이 있었다고 식민지배 권력에 의해 강제 로 동원되어 목숨을 위협받았던 국가적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정립되어야하는 역사가 있기에 그 첫 역사탐방지로 ‘중부자바주 암바라와 지 역 항일독립운동지’로 정하였습니다. 잘 고증하지 않은 지난 일이라는 틈새와 현재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과연 맞는 태도일까요? 부끄러운 역사라고 각색하거나 포장할 일도 아닙니다. 거기에서 배움이 있고 기억이 있고 전승이 있다면 우린 다른 미래를 써내려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주권이 없다는 것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의미합니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갖고 대외적으로 독립성을 갖는 것을 의미 하며 국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재외동포라고 스스로를 역사와 거리를 두거나 요 즘은 그런 전통까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요 즘은 똥꼬난에서 생활을 하지 않고 똥꼬난 옆에 신식 집을 지어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라자 사람들이 천국에서 왔다고 믿었던 또라자 전통 신앙 ‘알룩 또돌로Aluk Todolo’의 공동체 가 행하던 ‘람부 솔로’는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 존된 가장 오래된 장례문화로 알려져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례식을 위해 산다’ 할 정도 로 전통을 지키는 또라자 사람들은 람부 솔로를 위 해 오랫동안 저축을 한다. 시신을 집안에 두고 살 며 돈을 모아 성대한 장례식을 열게 되는 것이다. 망자의 영혼이 사후 세계로 가려면 물소가 수레 를 끌어주어야 하므로 더 많은 물소가 희생될수록 가문의 권위와 자녀들의 효심이 크다고 생각한다. 뿔이 하늘로 곧게 잘 뻗은 물소 한 마리에서 열 마 리까지는 작은 장례식 우 리 버스 티켓을 발매한 사무실에 문의하자 우리 학생들이 역사적 소양을 쌓으며 한국인의 정체성 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 기획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부킷 부룽카Bukit Burungka 정상에 서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예수상 Buntu Berake을 찾아갔다. 이틀동안 얼마나 많은 죽은 이들의 흔적을 쫓았 고 우리의 역사는 학교 역사 수업시간에만 배웠던 아이가 우리 선조들이 인도네시아 땅까지 보내져서 겪었던 고 통과 아픔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여 1박 2일의 일정을 보내고 집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스마랑 공항에 잘 도착했다는 비행기 날개 사진 한 장. 일정 마치고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며 푸짐한 저녁 식탁 사진 한 장. 자 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한 개가 연락의 전부였던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와~~~” 라며 역사탐방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암바라와 조선인 소녀 위안소에서 운 좋게 참석한 이 잔치에 서 나는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정말 이들에겐 죽음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 을 원래의 타 우타우를 복제품으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대응하 고 있다. 또한 원본열람 대신 아카이브 인터넷 주소만 받을 수 있었다. 원본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열람을 제한하고 있는 사서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원본을 직접 마주하는 감동의 경험은 받을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에 흩어져 있는 『직지』에 관한 내용을 간접적으로나 마 탐구하며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가치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따른 기억을 순간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기록한다. 기억은 수증기처럼 증발되 기 때문에 문자나 이미지화하지 않으면 개인과 타인의 공유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 의 행위를 공유하고 싶어 기억을 순간적으로 포착한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행위의 기억을 모두 기 록으로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중에 일부만을 공유가 필요한 시기에 순간적으 로 포착 대상을 기록한다. 기억이 기록의 형태를 통해 고유화되면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이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소통한다. 타인과 소통은 음성 또는 시각 언어로 가능하지만 유리페인팅의 다양한 기능 등이 그 주제이다. Duta Fine Arts Foundation 마지막 탐방지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작 품 컬렉션을 소유한 Duta Fine Arts Gallery 이었 다. 인도네시아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며 유품들이 들어있고 문 앞에는 고인의 기념하는 기도문 은근히 타오르는 뜨거움 을 이끌어내는 것은 인도네시아를 향한 Guillaume의 애정일 것이다. 제 339회 문화탐방은 우리 주변의 역사 의거 현장에서 이 경험은 우 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흔히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말의 뜻 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되새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민영학 열사와 동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맞섰던 그 장소에 두 발로 서서 그들 의 결단과 용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오롯이 체 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성당과 그 속에 담 긴 역사의 흔적들을 보며 단순히 책에서 읽던 역 사적 사실이 아닌 이 정신을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꼭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 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인도네시아 땅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었을 거라며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 리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를 보니 책을 통해 글로 배우 는 몇 년의 역사 수업보다 1박 2일의 현장체험이 이렇게 강력하게 아이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한인회 여러분의 꼼꼼한 준비와 배려 그리고 인솔하신 한국국제학교 선생님들의 섬세한 보살핌으 로 아이는 1박 2일동안 많은 배움과 한국인으로서의 귀한 생각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서 재외국민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이루어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역사탐방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정 과 준비과정이었겠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 하고 싶어 시작한 편지가 꽤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이런 기회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하며 가치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고정화 드림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촉촉 한 기둥과 줄기 이는 세관 신고자 수이고 비공 식 출국자도 많았으므로 실제 이주자는 더 많았을 것이고 정확한 수를 알기는 어렵다고 한 다. 청나라가 1893년에 해외여행 자유화를 단행하자 이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1890년~1930년 기간에 이주한 중국인들은 동남아시아 도시에서 하층 노동자 계층을 구 성했다.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중국계 이주민은 출신 지역에 따라 크게 다섯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각각 푸젠 남부지역(호키엔) 이들 유산이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접근하여 원본을 열람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학교에서는 세계기록유산의 내용까지만 알 려 주고 열람의 방법은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왜 기록유산 강국일까? 유네스코는 1946년 설립된 유엔(UN)의 전문기구로 기록유산 보존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14명의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가 1997년부터 2년마다 각 나라와 기구에서 등재를 신청한 기록물을 심 의해 세계기록유산을 선정한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한 국가를 넘어 세계 역사와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자료 이렇게 정성스럽게 모르는 이들의 공동묘지에 서 사진을 찍어 본 적이 또 있었던가 헛웃음이 나 왔다. 과거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는 향신료 와 커피의 천국이던 술라웨시에 이슬람이 급속도 로 확산되며 민족주의가 거세지자 고산지대 토라 자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해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 려 했다. 국가 개념보다는 부족 개념이 강했던 당 올라가는 길 내내 발 밑으로는 똥꼬난들의 모습 이 펼쳐지더니 이를 바탕으로 실력을 키우고 이번 역사탐방을 통해 학 생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점들을 강조했다. 일본 군부대 및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위안부 시설로 이용 되던 이에 2013년에 세계유네스코 기 록유산에 등재됐다. 우리가 화인공동체를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계 이주자이 고 이주국 입장에서는 일 시적인 체류자이다. 화인은 다른 나라 국적으로 해외에 영구 거주하는 중국계 사람이다. 화 예는 해외 거주 중국인의 자녀를 말한다. 화인 네트워크는 이민 이중 노동이주는 1억6천9벡만 명으로 추산한다. 용어를 살펴보면 이집트 무덤에서 가져온 50여개 세트 중 하나인 작은 셉티 수호석상 이후 자바에 전파되었으며 찌 르본이 그 중심이 된다. 특히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신질서 엘리트들의 지원과 중산층의 관심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부족해졌고 예술 가 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이에 Dia.Lo.Gue Arts Space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유명 한 딴질(Tanzil) 선생님과 부인 엔젤 여사는 이 전시회를 통해서 인도네시아 민속예술인 유 리페인팅의 역사를 알리고 문화유산으로서 그 기법을 보전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5년 동안 준비하고 기획하였다. 유리페인팅은 일반페인팅과는 다르게 유리의 뒷면에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그 려진 뒷면이 아닌 앞면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그렇기 때문에 넓은 면적을 칠하고 세밀하게 묘 사하는 인도네시아 및 해외 예술 작품 및 기록물들이 전 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3 인도네시아 한인이 첫 발을 내디딘 이후 100년 의 역사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2020.12)를 편찬한 바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역사의 숨결을 찾아 암바라와로 떠난 시간여행 박승헌 (학생기자 인도네시아에 최초의 한인이 첫 발을 내딛은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를 편 찬한 이래 ‘인도네시아 한인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습 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24년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 학생(10~11학 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탐방을 통하여 묻혀 졌던 이야기를 되살리고 무관 심 속에 사라져갈 역사의 현장을 가슴에 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세 종류의 사람 탄압자 인도네시아의 자연 은 이렇게 따스하지 않다. 사시사철 싱그러운 푸르름을 넘어서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 모 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등 개성 넘치는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이 흥미로웠다. 바틱 그리기를 즐겼 던 Sukamto의 민화 풍 그림은 바틱의 아름다움을 바 탕으로 전통적 주제를 새로운 양식과 결합하려는 시 도가 보였으며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로 완성된 그림 들은 명암이 표현되지 않아 한 컷의 Cartoon(만화) 같은 느 낌이 들었다. 또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감상하는 그림은 얕은 입체감이 보이면서 그 자체로 액자에 넣은 것 같이 보였다. 여러 수집가와 박물관으로부터 엄선해 가져온 유리페인팅은 4월 11일 까지 전시된다. 작품들은 여러 테마로 나뉘어 구역 별로 전시되었는데 일행은 곧 바로 티크 트리(Teak Tree)라는 현지 식당으로 이동했다. 허기진 학생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고 입구가 잘 눈에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전시 공간이자 거주지인 Museum Di Tengah Kebun은 소유주의 의도대로 건축되었고 전시 되어 있다. 역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 80 자신이 원하는 길 가에서 버스를 탈 수도 내릴 수도 있었다. 보조원 들은 그들에게 WA를 통해 몇 분 후에 자신의 승 차지에 버스가 도착하는지 일일이 알려주는 일까 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한 시간 넘도록 그 덥고 딱딱한 의자에서 기다리는 벌을 서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 람들은 터미널 대기실에 나타나 5분 만에 버스를 타고 사라졌던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세상의 끝자락 같은 또라자Toraja를 향해 달 려가고 있었다. 몇 번에 걸쳐 길가에서 승객을 태웠 고 화장실이 딸린 상점 앞에서도 몇 차례 정차를 했 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 누워 졸며 눈 을 감았지만 자연과 인간 자카르타 쇼핑몰과 레 스토랑에서 마주치거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여주는 화교 사업가의 수는 훨씬 많다. 포브 스 부자 순위에서 상위에 오른 인도네시아 재벌은 대부분이 중국계 사업가들이다. 동남아시아 화인 자카르타에서 술라웨시의 마카사르로 향하 는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마카사르에서 약 290Km 떨어진 또라자. 인구 258 자카르타한국국제학 교(이하 JIKS) 교사 등이 참여했다.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학생들은 한인 회에서 준비한 탐방팀 티셔츠 작가이면서 배우인 프랑스인 Hamel은 1986년 갤러리 설립부터 함께했던 인물이다. 64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1970년대에 인도네시아로 건너와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위해 예술을 소개하는 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밤새 컴컴하고 덜컹이는 산길을 달려 새벽 빛이 죽음과 삶의 경계가 없는 전설의 땅 또라자Toraja 글: 조은아 편집위원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33 번져 오를 무렵 장례 식 이후 똥꼬난을 닮은 상여에 관을 싣고 바위를 뚫거나 동굴 혹은 절벽에 매달린 가족묘로 향하 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재인도네시아한인회(회장 박재한)는 한인 이주 104주년을 맞이하여《암바라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라는 역사 탐방을 진행하였다. 사전 공 지를 통해 선발된 25명의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JIKS)와 국제학교 학생들은 1박 2일의 역사 탐 방 프로그램을 위해 전시되는 작품에 따라 건물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현재는 “Cerita Kaca”라는 제목으로 유리페인팅 전시가 진행중이다. 유리페인팅은 14세 기에 유럽에서 시작했으며 전체에서 부분으로 쌓아 올리는 채색이 아니라 반대로 강조되는 부분을 먼저 그리고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63 그 뒷배경을 칠하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또라자는 단순히 발길을 옮겨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절벽에 배치된다. 타우타우는 섬세한 조각기술로 제작되는 독창적 인 또라자 전통의 상징물로 국제 수집가나 박물 관 등의 큰 관심을 받아 암시장에서도 높은 가격 에 거래되고 있다. 타우타우 한 개의 시장 가격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일부 현지 주민이나 외부인이 타우타우를 훔쳐 해외로 밀반출하는 일이 종종 발 생한다고 한다. 또라자 사람들은 타우타우를 도난당하면 고인의 영혼이 방황한다고 믿는다. 이는 가족과 공동체에 게는 정서적 고통이며 정보 같은 무형의 요소들도 움 직이게 했다. 19~20세기 사이 100년 간 2천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중국 본토 가족에게 돈 과 함께 보낸 편지에는 당시 시대상이 풍부하게 담겼고 제 아이도 뽑혔습니다. 저는 아이가 설렘으로 역사탐방을 기다리는 것을 표현할 때마다 놀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많은 아 이들을 대표하여 가는 탐방이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배우는 자세로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에서 머문 시간보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아이가 제조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화인들. 2018년 개봉한 미국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속 동남아시아 화인의 모습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남자 주인공 닉이 여 자친구 레이첼 추를 만나는 사진 한 장으로 순식간에 검색이 시작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 신하신 독립 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며 조상과 후손이 함 께 숨 쉬는 성스러운 장소였고 과거와 현재를 동 시에 담아내고 있는 공간이었다. 바라보는 것 만 으로도 그 위세가 우리를 압도했다. 또라자의 신비한 장례문화 람부 솔로Rambu Solo 또라자의 장례식은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새로 운 삶의 시작을 선물하는 의식이다. 또라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장례를 치루 지 않는다. 시체를 방부처리 한 후 깨끗한 흰 천으 로 덮어 똥꼬난 안쪽 방안에 눕혀둔다. 손님이 오 면 손님을 맞고 잠도 자고 식사도 하고 평소와 다 름없는 생활을 하며 몇 개월 주로 고위 계층이 나 부유한 사람들의 장례를 위해 만들어진다. 고인이 생전에 입었던 옷을 입히고 얼굴 특징까지 정교하게 조각해 고인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나 타내며 고인의 영혼이 조상들의 세계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암벽 에 위치한 무덤 입구나 동굴 앞 죽음이 조화롭게 얽힌 또라자 문화였다. 1100여년 이어온 가족묘 ‘론다Londa’ 과 뼈조각이 수북했다. 바위 사이사이 놓여진 오 래된 관들과 이미 관이 사라지고 남은 해골과 뼈 들이 머리위와 발 밑 구석구석에 쌓여 내 딛는 걸 음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관 은 2주전이라 했다. 햇살이 닿지 않는 어둡고 축 축한 동굴안에는 묵직한 정적과 함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밖으로 나와 반대편 산책길로 돌아 입구로 나가 며 바라보니 겉으로 보이는 절벽에도 여러 개의 구 멍이 보였다. 모두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구멍인 데 지위가 높을수록 높은 절벽에 매장한다고 했다. 기념품 가게 주인인 또랭께의 후손에게 이곳에서 생활을 하면 무섭지 않느냐 물었다. 그는 “모두 우리 조상들인데 무섭지 않다. 후손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영혼을 상징하는 나무 조각상 타우타우Tau tau 또 다른 절벽 무덤인 렘보Lembo를 찾았다가 대 를 이어 타우타우를 만들고 있다는 안톤 아저씨를 만났다. 사진 기술이 없던 예전에는 똑 같은 모양 의 나무 인형으로 생전에 좋아하던 옷을 입혀두었 는데 중 부자바한인회(회장 채환)와 한인회의 노력으로 공원 입구에 세워 질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비가 준비 되어 있었다. 암바라와 위안소의 과거와 현재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11 암바라와 항일의거지(민영학 중국 산 업자본의 원천이 된다. 무엇보다 송금을 중개하던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금융산업이 발전 한다. 동남아시아 노동이주는 돈과 물자만이 아니라 사상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의 비중은 4% 내외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과 인도에서 노동력을 수입한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부터 1900년 대 초반까지 노동이주가 급증한다. 동남아시아는 원래 다종족·다문화 사회였는데 중동 이슬 람 문화와 인도네시아 현지 문화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종교적 테마 중부 자바(Jawa)에서 발견된 금강수보살상 즉 천개의 문이라는 별 명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극소 수의 철도 관련 물건들과 안내문으로 과거 동인도 나 일제에 반대한 자들을 넣어둔 곳이다. 결국 수 많은 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귀신의 집이라고 또 한 유명하다. 대부분 방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 었지만 그럼에도 텅 빈 공간이 참으로 우울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음은 탐방을 마친 참가자들의 생생한 소감이다. 박은주 JIKS 역사 교사는 “우리 인도네시아에서 도 역사탐방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 전통이 잘 이어져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 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속에서 다시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깨달음이 오늘의 나를 어제 와 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천개의 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라왕 세우 철도박물관’ 과거 네덜란드 동인도가 건축한 이 건물은 자바 섬의 중심에 있었기에 더욱 효과적인 통재 수단이 철도로서 당시 건축된 철도 관련 건물로서 동인 도 총독부의 일부인 건물이다. 수많은 문들이 있 기 때문에 ‘라왕 세우’ 지난 6월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에서 항일 독립 운동지 역사 탐방에 대한 공지를 받고 아이가 신청 해서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천국에 대해 소리 높여 연설 과 기도를 했고 음악 소리와 함께 멀리서 참석한 가족들이 무리지어 입장하기도 했다. 마당을 둘러싸고 손님들을 위한 방갈로가 지어져 있었다. 장례식에 온 손님들은 방갈로에 앉아 음 식을 대접받으며 함께 장례식을 즐겼다. 장례식을 위해 몇 주 혹은 몇 달에 걸쳐 손님을 잘 맞을 수 있는 장례식장을 직접 짓는다고 했다. 가족들은 새로운 손님들에게 음료와 간식을 내어 주고 있었다. 장례식을 보기 위해 모인 다른 나라 의 이방인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방갈로 앞 뒷쪽으로 몇 마리의 물소가 편안한 표정 으로 묶여있었다. 오늘 이 잔치에서는 총 열 일곱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35 마리의 물소가 고인과 함께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고인이 떠난지 2 년만에 치러지는 장례식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 마리의 물소가 희 생된 후였다. 마당 중앙이 흥건하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친적들과 마을 사람들이 선물한 돼지들이 앞 뒤로 발이 묶여 대나무에 매달려진 채 마당으 로 들어와 한 켠에 쌓아졌다. 사회자는 돼지가 들 어올 때마다 더 목청을 높였다. 고인을 모시고 천국으로 떠날 물소의 편안한 표정 과는 달리 철도 박물관에서 파실리란Passiliran이라 하는 이 전통은 70년대에 마지막 아기를 묻는 데서 끝 이 났다고 한다. 머리끝이 보이지 않은 만큼 높은 나무에 군데 군 데 검은 나무문을 단 어미나무를 올려다보며 가슴 이 아려왔다. 이 나무가 숨쉬는 순간순간 평야와 어촌들을 지나… 12시간. 아침 8시에 또라자를 출발한 우리는 밤 8 시나 되어서야 마카사르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로 감시원이 되고 포로가 되고 푸젠과 광둥 배후지에 분산되어 거 주하는 커지아(하카) 피카소의 큐비즘을 연상시 키는 현대적 감각의 그림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햇볕을 느 낄 수 있었다. 마음가짐도 어제와 달랐다. 우리가 마주한 역사 속 인물들의 용기와 희생이 깊은 감 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이 땅에 우리보다 먼 저 머물렀던 한국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닌 하이난섬 출신이다. 이들은 확실하게 서로를 구별했고 하차지를 메모하고 하차지 순서에 맞게 짐칸 도 분류해둔다. 돌아올 때 안 사실이지만 현지인 들은 직접 전화나 WA로 버스를 예약하고 버스 노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학생들은 그들의 희 생을 기리며 단체 사진을 찍었지만 학생들은 민 영학 열사가 투쟁했던 곳 중 하나이자 일제의 무 기고로 사용되었던 성당으로 이동했다. 비교적 가 까운 거리에 있어 순식간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열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려독립청년당의 결성지 ‘수모워노(Sumowono) 보병 훈련장’ 오후가 되자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쳐갔지만 박재 한 한인회장님을 비롯한 류완수 영사님을 비롯한 이태복 사산문화 원장님 학생들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역사 탐방 두 번째 날이 밝았다. 학생들은 개운 한 정신으로 두 번째 날을 맞이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한인니문화연구원 관람시에는 특별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박물관 전시관 까지 개방해주기도 한다. 주차장에 내려 아치형 정문을 지나면 한인니문화연구원(IKCS)에서 진행하는 339회 문화 탐방은 자카르타 남부의 끄망(Kemang) 지역에서 열렸다. 끄망 지역은 구석구석 작은 소품 가게와 갤러리 한인회 손한평 수석 부회장과 인도네시아 조선인 위안소 기록을 담은 소설 한편으로는 반화교 정서가 팽배해지는 요인도 됐다. 46 I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중국계 이주민들이 동남아시아로 온 가장 큰 이유는 본토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따 라서 이 기간에 노동이민자들의 송금액이 증가하면서 한때는 중국 무역수지의 15%를 차 지하기도 했다. 노동이민자들의 송금은 지역사회에서는 현금 순환의 원천이었고 항거자 항공 사 현재 이 곳에는 그가 세계 63개국과 인도네시아 21 개 주로부터 수집한 2000여점의 역사적이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수집 품들이 전시 및 보관되어 있다. Museum Di Tengah Kebun은 내부 사진 촬영이 불가하며 현지에서 일하는 중국인을 위한 생필품을 수입해 유통했다. 또한 지방에서는 농민과 광부 등 생산 자로 일했다. 유럽인들이 현지인을 배제하고 중국인에게 일을 시켜서 중국계 이주민들은 100년 간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경매를 통해 모았다고 한다. 많 은 이들이 자신의 수집품을 함께 즐기기를 원했던 Djalil은 자신의 집과 컬렉션을 공개하기로 결정 혹은 몇 년에 걸쳐 장 례식 람부솔로를 준비한다.(과거에는 시신을 사 람 대하듯 음식도 제공하고 목욕도 시키고 새 옷 으로 갈아입혀 함께 외출하기도 했다고 하나 홍콩 홍콩에서 부동 산 사업을 하는 추 가문 화교는 중국 국적이며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화장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예수상의 발치에서 내려다보니 또라자의 대자연 을 한눈에 들어왔다. 자연 흥건한 죽은 물소들의 피 냄새에도 꿈쩍하지 않는 의연함으로 마당 중앙에 섰다. 그리고 다가 온 칼잡이가 앞춤에서 날 선 칼을 꺼내어 단숨에 물소의 목을 친다. 정말 찰라의 순간이었다. 물소는 목이 반쯤 벌어 진 채 피를 뿜으며 묶인 말뚝 주위를 한 바퀴 돌 고는 이내 푹 쓰러진다. 그리고 다음 물소가 들어 온다. 이번 물소는 얼굴과 턱 밑에 하얀 얼룩이 있 었다. 제 눈 앞에서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 을 텐데 이 물소 또한 당당히 걸어들어온다. 마치 이 소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운명을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단칼에 목이 베어져 쓰러졌다. 쓰러진 물소의 벌어진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마당 정면 방갈로 위에 신발을 벗고 앉아있던 나 는 앞에 앉아 사진을 찍던 프랑스 할머니 등에 얼 굴을 묻고는 놀란 가슴을 달랬다. 도저히 앞을 볼 수가 없어 벗은 신발을 끌어안고 방갈로 뒤쪽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방금 죽은 그 소가 묶여있던 방갈로 뒤쪽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똥들 이 가득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었다. 그러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 다. 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 장례식을 다 같이 즐기고 있었다. 물소를 잡아 죽이는 것이 아 니라 고인과 함께 천국으로 떠날 흰 무늬가 있는 물소는 그 흰 무늬의 범위에 따라 그 가치가 서너배씩 올라가고 하얀 몸에 파란 눈을 한 물소 는 한화로 억대가 넘는다고 했다. 피가 튈 수 있으 니 뒤로 조금씩 물러나란다. 햇빛에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검은 물소 한 마 리가 한 청년의 손에 이끌려 마당 중앙으로 들어 왔다. 사회자의 목소리와 음악 소리가 더 커져 옆 사람의 목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들과는 달리 이 물소는 제법 당당하게 입장을 했다.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발걸 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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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란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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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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