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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 났습니다. 그가 술탄으로 재위한 것은 두 번의 재 위기간을 모두 합쳐 865일에 불과했으니 2년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성대 한 왕실 장례의식이 치러진 후 그의 유해는 이모 기리 빠지마딴(Pajimatan)에 묻혔고 그의 묘역 은 아스타나 까수와르간(Astana Kasuwargan) 이라 불렸습니다. 한 시대가 그렇게 빨리 저물고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어린 이복동생 입누자롯 왕자 는 그때 막 10살의 나이로 하멍꾸부워노 4세가 되 어 술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성인이 될 때 까지 디포네고로 왕자가 국사를 도울 섭정이 될 것을 누구도 의심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 코 자기 편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래플스 총독은 영국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합니 다. 그와 깊은 교분을 나누고 있던 빠꾸알람 1세 를 섭정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스뻐히 전투에서 영국이 끄라톤을 함락시킨 후 영국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자치구인 빠꾸알 라만 봉국을 할양받고 그곳의 영주가 된 빠꾸알람 1세는 말레이 반도 삐낭섬으로 유배된 하멍꾸부 워노 2세의 동생입니다. 그가 어린 하멍꾸부워노 4세를 대신해 족자 술탄국의 모든 국사를 영국 총 독부의 입맛에 맞게 결정할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지만 감히 누구도 총독부의 결정에 이의를 달지 못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로서는 이미 예 상했던 일이었지만요. 빠꾸알람 1세의 초상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125605764@ N04/22639770464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3 디포네고로 왕자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다 누레죠 재상에게 그렇게 여러번 다짐을 받았고 그 후 정기적으로 술탄을 만나러 오는 일을 빼고는 대부분 뜨갈레죠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 기서 목가적인 생활을 즐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족자와 수라카르타는 물론 자바 전역의 이슬람 사 회와 인편과 서신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백성들 의 목소리와 지방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하 지 않았습니다. 뜨갈레죠에는 귀족들과 이슬람 학 자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어 시종들을 제외하고도 식솔들만 수백 명이 넘을 때도 있었는데 그들 중 엔 학문과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도 있었고 일단의 젊은이들은 부기스 부대 장교출신 무관들로부터 무술과 창검술을 배웠으므로 하긍 왕후의 저택은 물론 뜨갈레죠 일대가 학교나 병영처럼 기능하면 서 한껏 활기에 넘쳤습니다. “고모님 [반려꼬꼬] 닭 쫓던 브래디 “Terima kasih”는 “terima”는 “받다”를 의미하고 “kasih”는 “사랑 “인샬라”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관광지에 가면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성가시다. 섣불리 대응하면 계속 따라 붙기 일쑤다. 이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낮은 음성으로 “뜨리마 까시~”라고 말한다면 가끔은 혼자라서 외 로울까 걱정된다. 그래서 집사 김브래디(만 6세)는 요즘 길 가다 닭 무리만 보면 속으로 중얼거린다. 반려동물 랜선집사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I 57 “미노도 플레이데이트가 필요한데…” 닭 쫓던 브래디 감사합니다)이다. 이 말은 누군가가 해준 도움 거부 고양이 쓰다듬기’ 할 때 궁밖에서 살면서 접하게 된 백성들의 고단한 삶과 두 번씩이나 끄라톤을 유린한 이민족 의 만행을 보면서 누구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했고 그 결과 이미 굳건한 가치관 을 가지고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 총독부는 다른 왕자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술탄이 평생 열 명 가까운 왕후와 후궁을 들이는 왕가에서 왕자들은 얼마든지 넘쳐났습니다. 나중 의 일이지만 디포네고로 왕자 자신도 평생 아홉 명의 아내를 가지게 되죠. 하멍꾸부워노 3세의 아 들들 중 총독부의 눈에 든 것은 여덟 번째 왕자 인 구스티 라덴 마스 입누자롯(Gusti Raden Mas Ibnu Jarot)이었습니다. 그는 구스티 깐젱 라투 끈쪼노 (Gusti Kanjeng Ratu Kencono) 왕비에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1 게서 1804년 4월 3일 태어났고 스뻐히 전투가 있 던 1812년엔 겨우 여덞 살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입누자롯 왕자의 사이는 마치 인디아 라마야나(Ramayana) 전설에 나오는 크 레스나(Kresna)와 아르쥬나(Arjuna) 같은 관계 였다고 전해집니다. 크레스나는 힌두신 비슈누의 화신으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a)에 서는 아르쥬나의 절친으로 등장하고 바가바드 기 타에서는 주인공 아르쥬나의 조언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비슈누신의 모습으로 화해 친족과의 전쟁 을 거부하는 아르쥬나를 다시 전쟁터에 나서도록 설득하죠. 디포네고로가 많은 이복형제들 중 스무 살 가까이 차이지는 입누자롯 왕자를 각별하게 여 긴 것은 그의 온순한 성품이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3세를 너무나 쏙 빼어닮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랬기에 영국 총독부 역시 입누자롯 왕자에게 눈도 장을 찍어 두었던 것이고요. 재상 신두네고로는 날로 악화되던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정작 자신이 스뻐히 전 투 당시 입은 부상이 도져 1813년 어느 날 권유에 대한 정중한 거절로 “띠닥 뜨리마 까시”(Tidak terima kasih) 또는 “뜨 리마 까시”를 쓸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그 몇 곱절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냄비가 다른 고가의 수입 냄비들처럼 고가의 돈을 지불하 고 샀더라면 아마도 그 가치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가의 물건은 그에 합당한 가치를 해주어 야하기 때문에 그 성능의 우수성을 추가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짜로 받아온 냄비가 공짜의 가치를 열 배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자가 85% 이상인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인샬라”(Insya Allah)라는 말이 있다. “신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샬라”는 이행 여부가 불투명한 약속이나 기대하는 바를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당장 결정하기 어렵거나 본인이 결정 권한 밖에 있다는 의미를 에둘러 표현할 때 많이 사용 할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인샬라”라고 말할 때 그 중 인구의 45%인 약 1억2천만 명의 자바족 이 자바섬 중부와 동부에 살고 있고 그들의 말씨 나 표정을 순간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그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속내를 알 수 없는 “인샬라”를 듣는 순간 근심 긴장감 등을 감추려 할 때이다. 후자의 경우 인도 네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무시당한다거나 뻔뻔하다고 느 끼고 화가 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조차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친근하게 다가 온다. 이들의 환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격언에 “비아르 람밧 아살 슬라맛”(Biar lambat asal selamat)이라는 말이 있다. “늦 더라도 확실한 게 낫다”라는 이 격언은 한국인의 습성인 “빨리빨리”와 대비되는 인도네 시아 사람들의 생활철학이다. 느림의 미학인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이들 을 태도에 익숙해져야 인도네시아인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끝) 꾸랑따우 (kurang tahu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상 대화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인샬라”는 모든 결정에 신중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습성을 나타낸다. 동남아시아 해양부에 유치한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바다를 통한 해상무 역을 통한 경제 활동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러한 환경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 큼 신에 의존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7 인도네시아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근 왕국 간 또는 멀리 인도 놀랍기도 하네. “역시 넌 대단해 당신의 어깨가 매우 무겁다 는 걸 명심하시오. 내가 끄라톤을 멀리 떠나 있진 않겠지만 이젠 당신이 술탄 전하와 섭정전하를 가 장 가까이에서 잘 보필해야 하오.” 디포네고로 왕자는 재상 다누레죠 4세에게 그렇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아버지 술 탄 하멍꾸부워노 3세의 장례식을 위해 빠꾸알라만 봉국에서 왔다가 돌아가지 않은 채 곧바로 술탄의 섭정이 된 빠꾸알람 1세의 견제를 벌써부터 받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하멍꾸부워노 2 세와 함께 당시 어린 무스타하르 왕자를 흐뭇한 눈 으로 지켜보던 노토꾸수모 왕자는 여전히 혈색좋 은 얼굴로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었지만 왕실에서 영향력을 키워 나가던 디포네고로 왕자를 더 이상 흐뭇하게만 여기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토꾸수모공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멍 꾸부워노 4세가 성인이 되기 전에 끄라톤에 공의 사람들을 심어 족자 술탄국이 우리 총독부에 더 욱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오. 그것이 우리와 보조 를 맞추고 있는 빠꾸알라만 봉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 아니오?” 래플스 총독은 서신을 통해 빠꾸알람 1세에게 그 렇게 속삭였죠. 그러기 위해선 왕가와 귀족들의 구심점이 되어 있던 디포네고로 왕자의 힘을 줄 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하여 빠꾸알람 1세 가 섭정이 된 후 끄라톤 궁에서 디포네고로의 행 동은 크게 제한되기 시작했고 많은 회의와 행사들 이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열렸습니다. 디포네 고로 왕자가 하멍꾸부워노 4세를 만나는 것은 다 행히 여전히 자유로왔지만 그것은 어린 술탄이 전 혀 실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난 수마디뿌라공만 믿겠소.” 당혹스러움 더 이상 추근거리지 않고 물러난다. 자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의 말 한마디이다. 물론 디포네고로 왕자도 떠르스라(terserah 또는 친절한 행동에 대해 고마움을 표 현하는 방식이다. 직역하자면 띠닥따우(tidak tahu 모른다) 먹이 흔들어도 미노는 “그거 먹을 시간에 메뚜기나 더 잡아야지”란 표정 으로 푸다닥 날갯짓하며 가버린다. 하지만 오늘도 미노를 보며 행복한 브래디. 그래도 꿋꿋한 닭 집사 브래디! 닭 쫓아다니며 행복하다. 닭과 대화도 한다. 닭한테 뽀뽀도 한다. 닭 집사 프로필 이름 : 김브래디 (만 6세) 특기 : 써핑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왕 궁의 충신들이 하나 둘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습 니다. 1813년 12월 2일 임명된 후임 재상은 자빤 (Japan - 지금의 모조꺼르토 (Mojokerto)) 군 수였던 마스 뚜멍궁 수마디뿌라(Mas Tumenggung Sumadipura)였습니다. 그는 아직 30대 초 반의 젊은 영주였어요. 대개는 전임 재상의 자식 이나 피붙이 중 한 명을 선택해 다음 재상을 대 물림시켰지만 디포네고로 왕자는 당시 모조꺼르 토를 동부자바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드 는 수완을 발휘한 수마디뿌라를 족자 술탄국 내 정을 관장할 재상으로 직접 발탁한 것입니다. 그 에게는 ‘다누레죠 4세 재상’이라는 칭호가 붙 었습니다. 그러나 일천한 가문과 배경을 가진 그를 왕도의 고위 귀족들이 순순히 재상으로 떠받들었을 리 없 습니다. 기득권 귀족들의 시기를 한몸에 받은 재 상은 한껏 풀이 죽어 처음엔 크고 작은 실수를 저 지르며 대전에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므 로 디포네고로 왕자가 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다누레죠 4세 재 상도 끄라톤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재상의 자리에서 37 년간이나 머물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에측하지 못 했습니다. 그가 디포네고로 왕자와 평생의 원수가 되리란 사실도 말입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은 날로 더욱 악화되 어 갔습니다. 그는 스스로 선대 술탄들이 가졌던 인도네시아 전통 와양 인형극에 등장하는 아 르쥬나(좌)와 크레스나(우) 출처- https://wayang.wordpress. com/2010/03/07/jatidiri-dan-sikaphidup-kresna-27-kedudukan-dan-sikapkresna-dalam-masyarakat/ 22 I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용기와 배포를 전혀 닮지 않았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자식들 대부분이 자신의 유약함을 그 대로 빼어박은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는 일어나지 못할 병상에 눕게 되었을 때 매일 문 안오는 디포네고로를 만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굳은 심지 를 가진 큰 아들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들아 멀어져 가는 미노 바라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집엔 약간 다르게 쓰인다. 남들은 ‘강아지 산책 모쪼록) 무다무다한(mudah-mudahan 뭉낀(mungkin 미노 따라 삼만 리 이름 : 미노 나이 : 2024년 8월 8일경 입양 닭품종 : 수컷 수컷인데 얘가 이래도 되나? 닭 하면 새벽마다 “꼬끼오!” 울어대는 게 국룰인데 미노 본인은 이미 또 출근 완료! “미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병아리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귀여운 미노. 이제는 위풍당당한 수닭이 되었지만 미노는 다르다. 울음 대신 울음 대신 ‘모닝똥’으로 아침을 깨운다. “여긴 내 구역이닭!” 작년 10월 민망 볼수록 신기하네. 그래 부끄러움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소리와 더불어 고유의 이름을 얻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인류와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나름대로 가치를 따져 의미를 부여했기 때 문인지도 모른다. 가치라는 옷을 입혀 사람에게는 이름을 그리고 물건이나 사물은 쓰임새를 따져 값으 로 환산하기 시작했다. 가치 척도(尺度)를 가름하는 의미가 더 크겠지만 딱히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인간 삶의 품격과 고귀 한 가치는 한 시대를 살다간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마도 훌륭한 인품으로 살다간 이름을 자손대대로 후세에 남기게 되는 영광이 아닐까. 한번 주어지는 삶이기에 소중한 가치를 발산하라는 선인들의 교훈인 셈이다. 나는 요즘 인도네시아보다 주로 한국에 더 많이 살고 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여기저기 신체리듬에 고 장이 생겨 자주 병원을 찾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식단도 챙길 겸 아파트 근처 번화가에 있는 대형마트로 자주 장을 보러 간다. 인도네시아 살 때도 한류 붐을 타고 들어온 크고 작은 한국형 마트를 주로 찾았는 데 애국하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 물건의 품질이 세계 어느 상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에 살면서 좋은 점은 언제나 한국 음식이 즐비한 대형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일정한 카드를 꾸준 히 사용하면 누적 포인트가 쌓이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문득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인생을 살면서 이국적인 경험을 체험했던 인도네시아 생활은 어쩌면 특 별하고 값진 혜택이라 여겨진다. 항상 고국을 그리며 살았기에 애국하는 마음이 일상에서 저절로 우러 났으니 말이다. 집 근처 대형마트가 새로 생긴 후 몇 달 전부터 꾸준히 다녔더니 포인트가 상당히 쌓였 었나 보다. 그날도 잔뜩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 다가서니 마트 직원은 포인트용 선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 를 골라가라는 것이다. 내 포인트 점수 중에서 가장 합당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24센티 정도의 전골용 코팅 냄비였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냄비였고 무엇보다도 먼저 든 생각이 공짜로 주는 냄비가 뭐 특별할 까 싶었다. 그래서 포인트용 물건을 받으면서도 무표정한 반응을 보이며 대수롭지 않게 장바구니에 담 아왔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사 온 물건을 정리한 후 새 전골냄비도 꺼냈다. 무심코 그냥 집어넣으려다 아니지 새집으로 이사한 뒤 미노의 세계가 더 넓 어졌다. 사방이 논밭 소중하게 사용할게!” 이렇 게 그 냄비와 사람처럼 얘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마치 그 냄비는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매 일 새로운 능력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문득 생각해 보았다. 과연 이것이 뭘까 싶었다. 나의 관찰력일까. 아니면 사물이나 작은 곤충들에게도 의 미를 부여하는 특이한 습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찮게 보였던 공짜 전골냄비의 가치가 무엇 이기에 이렇듯 몇 날 며칠을 사람도 아닌 물건에 내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값을 치르지 않은 공짜 전골냄비가 비싼 전골냄비의 성능 손 짓하고 신의 뜻대로) 등이 있다. 사실대로 말해서 상대를 언짢게 하는 걸 원치 않거나 말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할 때는 부 모 또는 가족이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실수하거나 무안한 마음이 들 때 아니 스무 배 해내었기에 내 마음이 사물인 냄비와 사람처 럼 대화를 나누게 되는 만족감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저마다 주어진 인생의 몫은 모두가 다르다. 현재의 위치에서 그에 알맞은 도리 를 지키며 자기 이름 석 자에 대한 몫을 제대로 한다면 어디서든 어느 위치에 있든 떳떳하고 보람된 삶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치로 환산되는 물건은 우리가 아는 숫자로만 적용될 수 있지만 그러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에서 얻 는 가치는 숫자가 따라오지 못하는 영원한 무한대(無限大)인 것 같다. 공짜 전골냄비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면서 그로 인해 가늠해 보는 사물의 가치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고귀한 삶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한척도를 지닌 그런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 냄새가 쏠쏠 나는 정겨운 삶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보람 있는 가치를 발산하며 살 고 싶은 소망이 바로 우리 모두의 염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아무리 그들이 원한다 해서 디포네고로가 술탄이 되는 것을 영국이 승인할 리 없다는 사실 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디포 네고로 왕자가 어떤 식으로든 왕국의 미래를 일정 부분 좌우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 멍꾸부워노 3세는 마주 잡은 아들의 손을 꼭 쥐며 엷은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는 두 번째 즉위 후 불과 2년 만 인 1814년 11월 3일 아버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왕국 의 술탄이 아니라 이민족들을 모두 몰아낸 자바땅 전체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 말은 또 다시 족자 술탄국의 왕좌를 거절한다 는 의미였죠. 하지만 그의 말속에 담긴 원대한 포 부에 하멍꾸부워노 3세는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 꼈습니다. 사실 하멍꾸부워노 3세도 아직도 술탄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느냐?” 디포네고로 왕자는 부왕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 었습니다. “네 알쏭달쏭 말 한마디 “뜨리마 까시” 알아서 하세요) 어서 오세요.” 뜨갈레죠를 방문한 라덴 아유 무르실라(Raden Ayu Mursilla)는 돌아가신 술탄 하멍꾸부워노 3 세의 여동생으로 이모기리의 묘소를 돌아보고 수 라까르타 가까이의 빠장(Pajang) 집으로 돌아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녀는 열 살 남짓한 아들과 동행하고 있었어요. 작은 몸집에 초롱초롱한 눈 을 가진 아이의 이름은 무슬림 모하마드 칼리파 (Muslim Mochammad Khalifah)라고 했습니다. “좋은 이름을 가졌구나.” 선지자의 이름을 딴 아이의 이름은 이미 그가 아 주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에 푹 빠져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무슬림이란 알라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모하마드는 선지자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수마디뿌라공(公) 엄마 아빠 심부름 + 미노 지킴이 취미 : 미노 밀착케어 #애지중지키운내꼬꼬들 #미노는내새끼 #수컷인데안울어 #미노탐험기 #닭도반려동물입니다 온갖 풀과 벌레가 가득한 자연 놀이터. 낮에는 동네 탐험가처럼 여기저기 누비다가 밤만 되면 정확하게 집으로 복귀하신다. 그리고 마 당 의자 위에 작고 소중하지 않은 흔적(?)을 남긴 채 또 홀연히 사라진다. 아침이면 의자 위엔 미노표 깜 짝 선물 우리 브래디(만 6세)는 반려꼬꼬 미노를 따라다니기 바쁘다. 논이고 밭이고 뛰어다니며 “미노오오오!” 외치고 웃거나 미소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렇게 맺은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에는 300여 종족이 있으며 이왕이면 오늘 저녁은 새 전골냄비에다 찌개나 끓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동안 싫증 도 났던 예전의 커다란 뚝배기는 무겁기도 해서 그냥 싱크대 구석에 밀어 넣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주부의 일상은 늘 새로움에 목마른 차에 잘 되었다 싶었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그 냄비에 시금치를 데치 고 씻어 놓은 뒤 이번에는 된장찌개를 끓일 심사로 다른 수입 냄비를 꺼내려다 귀찮아져 그 전골냄비에 다 그냥 된장찌개도 끓이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이것이 요술 냄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하여 서미숙(한국문협 인니지부 고문)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45 좀 전에 데쳐둔 시금치는 여태껏 주부 경력으로 데쳐왔던 시금치와는 다르게 파랗게 살아 숨을 쉬고 있 었고 된장찌개 또한 얼마나 깔끔하게 끓여지는지 몰랐다. 그날 공짜로 받아온 냄비는 저녁에 된장찌개를 다른 날보다 한 냄비 가득 끓여대도 넘치지 않는 넘침 방 지 시스템도 장착된 냄비였다. 그리고 한번 열을 받으면 지열도 강해서 가스 소비도 줄일 수 있고 설거지 할 때도 그다지 무겁지 않으면서 수세미로 한번 쓱 스치기만 해도 얼마나 잘 씻기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일석다조(一石多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냄비였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내 부엌살림 중 그 포인트로 받아온 전골냄비 하나만 존재해 왔던 것처럼 모든 요리를 오직 그 냄비에다 삶고 데치고 지지 고 끓이면서 그 냄비 하나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고구마와 감자를 삶을 때에도 적당한 수분을 머금고 있 어 단내를 솔솔 풍기고 당면을 삶을 때는 당면 가닥이 눌어붙지 않아 오동통한 면의 탄력을 그대로 유지 시켜 주었다. 요리의 다양성을 저 혼자 연출해 내는 공짜 전골냄비가 어느새 온통 내 마음을 빼앗고 있는 거였다. 한 가지 새로움을 발견할 때마다 내 입에선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어머나! 어쩜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이것이 익숙하 지 않은 다른 종족이나 외국인들은 자바사람들을 음흉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상 대화에서 거북하게 느껴지는 단어들도 이해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부정적 인 결과를 우려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로 ‘끼라 끼라(Kira-kira 대략) 인샬라(insya Allah 일상적인 의미로는 “고맙습니다”에 더 가깝다. 또 의견이나 발 표를 마치고 맺음말로 “뜨리마 까시”라고 하면 무난하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를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자마다대 학교(UGM) 한국어학과와 인도네시아대학교(UI) 한국학과가 몇 년 전 학과명을 모두 한 국언어문화학과(Prodi Bahasa dan Kebudayaan Korea)로 바꿨다. 언어와 문화의 밀접 한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자전거 타기 잘 모른다) 전국적으로 흩어져 거주하는 만큼 자바문화가 주 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자바사람들의 신앙이자 생활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끄자웬 (Kejawen)이 이들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들은‘아니다’라는 의미의 띠닥(tidak) 이라는 부정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과의 갈등이나 마찰을 회피한다. 무엇인가 를 사양할 때조차 인도네시아인은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거나 미소를 짓는다. 따라서 자바인들과 대화할 때‘야’(ya 또는 iya)가 진정한 의미의 ‘예’인지 ‘아니오’ 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상황이나 표정을 살펴야 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중국 중동의 상인들과 거 래하려면 이방인과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만큼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적 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는 신중한 태도이며 친절” 또는 “선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사랑(호의)을 받는다”라는 뜻이지만 한편 디포네고로 왕자는 끄라톤에서 술탄 하멍꾸 부워노 3세의 정무고문이자 권한 대리인의 역할 을 했습니다. 그런 디포네고로의 행동을 눈여겨 본 네덜란드의 족자 주지사 존 크로퍼드가 1812 년 말경 디포네고로 왕자가 유능하고 협조적이니 차기 술탄으로 적합할 것 같다는 추천의견을 바타 비아에 보냈고 며칠 후 레플스 총독대행이 직접 디포네고로에게 족자 술탄국의 태자 지위를 제안 해 왔습니다. 엄연히 왕위를 지키고 있는 부왕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태자며 차기 술탄을 거론하 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수 백 년간 자바땅을 좀먹어 들어오던 네덜란드 못지 않게 왕국을 유린하고 술탄 왕가를 그토록 가볍게 여기는 영국을 디포네고로는 괘씸하기 짝이 없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들키지 않 도록 안으로 갈무리하며 그는 총독대행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후궁의 아들입니다. 족자 술탄국은 더 훌 륭한 태자가 필요한 나라고요.” 하지만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 후궁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고민거리도 되지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9 않았습니다. 그는 이민족들이 내미는 선물에는 반 드시 독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고 이 를 완곡히 거절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핑계가 필 요했던 것뿐이었죠. 영국 측은 인품도 있고 왕실 장악력이나 백성들에 대한 영향력에서 손색이 없 는 디포네고로 왕자가 자기들 편이 되어준다면 금 상첨화였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디포네고로는 깊은 이슬람 신앙 위에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직장 상사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인의 미소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말로 만족하거나 수긍할 때와 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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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란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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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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