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좌충우돌 인도네시아<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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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도네시아 표류기”
이 준 규 (외환은행)
오늘도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뜹니다. 5분만 더 자겠다고 침대에 매미 처럼 딱 달라붙어
버티고 있는 아들녀석과 그 5분후면 학교에 지각하게 될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엄마의 서로 양보할수 없는 한판 승부 중입
니다. 모자의 싸움을 서로잘 모르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아들녀석은 학교에 혼나지 않을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 것이며, 엄마 또한 아이가 일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여 미
리 미리 깨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시끌벅적한 하루일과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집 식구들은 짐을 참 잘 쌉니다. 멀쩡한 휴일날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꼭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가장을 둔
덕분이죠. 특히 2박3일, 4박5일의 맞춤형 짐싸기는 아내의 자랑입니다. 그런 우리가족이 작년에는 정말 큰 짐을 싸았습
니다. 아니 사실 많은 짐을 버렸습니다. 신혼때 사서15년이 넘도록 쓰던 정들었던 가구를 이런 저런 이유로 차마 버리
질 못하는 여린(?)마음때문 에 이사때 마다 번번히 들고 다녔는데 이역만리 이곳에 오게 되다 보니 핑계김에 정리를 하
게 된것입니다.
오래되고 정든 것들과 시원섭섭한 이별을 하고 오게 된 이곳 인도네시아는 밤하늘의 별자리마저 북 두칠성 대신에 남십
자성이 보이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신천지였습니다. 2012년은 우리가족에게 인 도네시아에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해로
영원히기록될 것이며, 우리 가족역사의 제2기가 새로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족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역시 각자에게닥친 신변의 변화였습니다. 인도네시아로 해외발 령이 나게 되자, 17년
간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를다니면서 부엌을 멀리하고, 남자보기를 우습게 알던 아내가 남편이라는 한 남자만 믿고, 이
이역만리를 겁도 없이 따라와서 서투른 가정사를 책임지기 시작하였으며, 태생적으로 너무나 자유분방한 아들녀석은 생
각 이란 걸 한 이후 처음으로 엄마와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생긴 대소사들이 넘쳐납니다.
이제는 서로를 파악할 만도 한데 우직스럽게 아직도 둘이 만나면, 자릿싸움을 하는 숫사자들처 럼 서로 으르렁 거리다
가, 코알라 모자처럼 마치 한몸같이 딱 달라붙기를 반복합니다.
아슬아슬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두 모자가지금처럼 서로를 이해한 적이 여태껏 없었으며,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이곳
에 오게 된 제일 큰 보람이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년 한해 크게 아픈 적이 없이 지냈었는데, 해가바뀌면서 심하게 배앓이를 하였습니다. 마침 이곳 인도네시아에 적응
을 무사히 마침을 스스로 안도하고 있는 와중에 무심결에 당한 일이다 보니, 훨씬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인도네시아2년
차 징크스(?) 같은 것 같습니다.
갑자기 몸이 아프니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어머니입니다. 작년 언젠가 어머니께서 집에 없는 사이에 아내에게 전
화를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큰아들 소식이 궁금하다면서요..
사실 여기 인도네시아로 오기 전에는 본가가 걸어서 10분 정도인 지척거리에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말이면 습관적으
로 집에 전화를 하곤 했었습니다. 전화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내용은 별게 없었지요.
아들 가진 부모라면 느끼시겠지만 좀 재미없죠^^
‘어머니, 점심에 같이 식사나 하시죠?’ 이게 전부였는데, 그때는 항상 바쁘다고만 하셨으면서, 갑자기 그 애교없는 식사
하자던 큰아들 목소리가듣고 싶으셨다네요.
원래 아들키우는 어머니답게 저희 어머니도 살갑게 표현하시는 스타일이 아니신데요, 일례로 제가 군대간다고 마지막인
사를 드렸을 때 하신말씀이 ‘잘 다녀와라, 난 괞찮다, 너 말고도 아들이 두명
더 있잖니.’ 이려셨었거든요^^
나이드시면서 외로움을 더 느끼시는 거 같아 가슴이 찡 했었습니다.
사실 어머니 생각을 더 나게한 것은 배앓이가 오래되자 아내가 특단의 조치로 끓여낸 곰탕 때문이 었습니다. 어려서부
터 어머님이 끓여주던 곰탕을 많이 먹었습니다. 특히, 몸이 약해지거나, 날이 추워지면 여지없이 곰탕이 나왔는데요, 지
금 생각하면매 끼니때마다 군대 일개 소대가 다녀간 것 같 았던 엄청난 소화력을 보유한 아들 셋을 키우시면서 식구들에
게 비싼 고기반찬을 양껏 내어놓지 못 하는 어머님의 미안함에서 비롯된 고육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날에는 유난히 곰탕을 싫어하시는 아버지를위해 어머니는 떡국을 따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곤 저에게 조용히 이
렇게 이야기 하셨죠 ‘너네아빠는 곰탕은 안드시면서 떡 몇 개 넣었더니 떡국이라고 잘 드신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떡국, 아니 곰탕은 녹차먹인 삼겹살이나, 센스있는 마블링이 들어간 꽃등심도 따라오기 어려운 우
리가족의 보양식이었습니다.
곰탕의 효력인지, 아니면 나을 시간이 되어서 나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배앓이는 곰탕을 먹은 후 싹 낳았습니다.
역시 곰탕은 끓이는 사람의 정성을 먹는음식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자카르타의 하루는 유난히 금방 저뭅니다. 특히 오늘처
럼 할 일이 많고 찾는 사람이 많아 힘든 날에는, 아내와 아들 코알라처럼, 어머니께 전화를 드립니다. 우리의 대화는 그
들처럼 시끄럽고 직설적이진 않지만요, 행간의 의미로 많은 이야기 있을 거 같습니다.
‘어머니 식사 하셨어요?’, ‘술 많이 먹고 다니지 마라… 더운 나라에서는 많이 먹는게 아니라드
라…’ 이정도 하고 다음 말이 생각이 안나서 한참 있다 보면, ‘할머니!’하면서 아들녀석이 전화기를 확 낚아챕니다.
소망컨데 우리 아들 녀석도 나중에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었던 엄마와의 추억을 많이 이야기 할수 있었으면 좋겠습
니다.
오늘도 일몰의 노을이 아름다운 인도네시아의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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