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행복에세이 <서미숙> /건망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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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에 대하여...
서 미
숙 / 수필가 gaeunsuh@hanmail.net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건망증이 화제가 되었다.서로 얘기를 듣다보니 웃을 일이 한 두 가지가 아
니었다. 어느덧 이 해가 가고나면 불혹의 나이를지나 갱년기를 눈앞에 둔 친구들이라 경험은 대
략 비슷했다. 그러다 어떤 친구가 어느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 하면서 정작 영화제목이 생각이 나
지 않는다고 하자, 모인 친구들이 모두‘그 제목이 뭐더라’하면서 선뜻 대답하는 친구는 없었다.
다들 머리에서 맴돌지만 막상 생각해 내려니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이야기
를 하다가 바람 빠진 축구공 마냥 모두들 휑한 표정을 짓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로서 불혹을 지나는나이는 그 연륜이나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
니다. 그렇긴 해도 요즘 부쩍 뭔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그 순간 서글프고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
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다가 치매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젊은 사람들도 걸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
다. 좀 겁이 나기도 해서 이런 증세에 관해 알아 봤더니 연륜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건
망증은 그렇다고 하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치매율이 높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호르몬에 관계가 있
다고 한다.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 예방책은 평소에 마음을 편안히 하고 넓
은 마음과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라 하는데 알면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천재도 경험한다는 건
망증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뇌의 구조가 어찌 생겼건, 작은 수박만
한 머릿속에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면그것도 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슬펐던 기억, 마음
아팠던 기억, 괴로웠던 기억들을 모조리 기억하고살아간다면 아마도 모든 사람들은 평온한 표정으
로 현재를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소망을 가져 본다면 살아온 과정에서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싶다. 그것이 모든 인간의 바람이고 건강을 지키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우연찮게 건망증 덕을 보고 웃은 적이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이웃으로부터 썩 대접
을 받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샌님 같은 남편과 산다는 그녀는 남편과는 대조적으로 자기만의 고집
과 주장이 강해 부녀회의 여러 회원들과 큰 소리로싸우기 일쑤고, 말도 가리지 않고 육두문자도 쉽게
사용했다. 얼마 전에도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아파트산책로에서 이웃과 언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자기 의견을 상대방이 수긍하지 않는 모양인데 안보았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은 광경이었다.
그 후론왠지 더욱 그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내 속을 모르는 그녀는 나를 만나면 유난히
반가워하고 반색을 하지만 나는 따라 웃을 수도 없고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기에 바빴다. 한번은 저만치
서 그녀가 걸어오기에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길로 돌아가고 말았다.
몇 번을 그렇게 피했으나 썩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슈퍼에서 그녀를 보는 순
간, 나도 모르게 깜빡 잊고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말았다. 다 웃고 보니 그녀였다.
“아뿔싸” 주워 담을 수 없는 웃음이 되고 말았다. 그녀가 다가와 내손을 덥석 잡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라도 내가 책으로 얼굴을 가린 건을 따지고 든다면 나로서는 적절히 할 말이 없는
입장인데 내 우려와 달리 그녀는 내 안부를 물으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얼른 헤어져 집으로 오면
서 어찌됐든 이제는 그녀를 보고 책으로 얼굴을가리고 돌아갈 일은 없겠구나 싶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의 건망증은 그 후로 내 마음에 단비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까.
언젠가 철학을 하는 지인이 내 손금을 보면서 사람을 가려 사귀는 정갈한 성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뭐 신통한 풀이인가흘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뭐, 정치가라면 모
를까,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과의친교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건망증 덕을 본 후론 가끔 한 줄의 격언을 읽듯 내 손금을 들여다본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양면성을 지닌 풀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금을 봐준 이는 복채를 받는 이도 아니고 가깝게지내는 집안의
지인인데 마음을 넓게 가지고 살라고 내게 그런 말을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누구에게나 주위사람들이 다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행여
나 불편을 주는 사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사람은 서로가 이해의 대상이지 판단의 대상이 아
니라는 생각에 새삼 깨우침을 얻는다. 꽃이 저마다다르듯 사람 사는 일도 그러려니 여기면 될 것이
다. 내가 싫으면 피해가야 했던 내 성격과 그에 따른 건망증은 약방의 감초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도 어느덧 제 앞가림을 하고 있는 이 편안한 나이에 내가 무슨 기밀을 담당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중요한 것을 꼭 기억할 의무가있는 것이 아니라면, 적당히 잊어 버리면서 촉촉
한 마음으로 살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옛날엔 참고 인내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금 시대는 때론, 잊어 주고 잊어버리는 것도 미덕이 된
다. 아침에 일어나 손을 씻으면서 거울속의 나를 보고 인사를 나눈다. 좋은 하루를 위한 자신과의 다짐
이라 할까. 이 말을 들은 아들은“엄마 그러다가 동막골 처녀처럼 꽃도 달겠네” 하면서 웃긴다.
“그것 참 괜찮은 생각이네”난 그렇게 답한다. 동막골처녀면 어떠랴. 나를 잊고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자연을 닮은 사람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늘 바쁘고, 기억하고 메모해야 할 일도 많은 현재
의 시대를 살면서 어쩌면 우리는‘나’라는 주체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
다. 요즘 내 건망증을 짚어보면 뭔가 누군가 이름이 떠오르지 않다가 신통하게도 잠시 시간이 지나
면‘아차 그렇지’하고 생각이 난다. 그럴 때는잊고 있던 그 사물 이라든가 사람의 이름이 잠시
산책 나갔다 돌아온 친구처럼 반갑다.
건망증, 생각해 보면 인생을 살다가 누구에게나마주치게 되는 무심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렇
더라도 윤기를 잃을 수 있는 건조한 마음에 단비같은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
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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