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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차 한 잔 마시며<김문환> /9.30사태와 인권회복

7,717 2012.10.0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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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사태와 인권회복

김 문 환 / 논설위원

 

지난 9월 24일 박근혜 후보는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

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

니다.”고 밝혔다. 3개월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당의 대선후보가 서둘러 기자회견을

자청한 데에는 그‘과거사’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지대함을 암시하고 있다.

 

매년 9월 말이면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우울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가

장 큰 전환점이자 비극의 무대였던 9.30 사태가‘역사 속의 오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3일자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KOMNAS HAM) 보고서는 1965년의 9.30 사태와 1980년

대 초 우범자들을 초법적인 방법으로 처단한 행위가 인권유린에 해당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이들

에 대한 명예회복을 권고하였다. 공산당원들을 색출하는 과정에 무고한 시민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희생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번 보고서는 국가기관이 9.30사태 당시의 인권문제에 대해 최초로 말문

을 연 입장표명이었다.

 

이와 같이 양국이 모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과거사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는 이유는 사안

의 중대성에 비춰 그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를 두겠지만, 독재권력과 철권정치라는

암울한 터널을 벗어난 민주화의 개화시대에 걸맞는 시대적인 요청을 반영한 절차일 것이다. 박대

표가 언급한 사과문의 내용도 부친의 통치시대에일어난 인권유린 문제였으며, 인도네시아 인권위

원회가 지적한 과거사 문제도 47년 전 수하르또군부가 쿠데타군을 제압하고 공산당을 축출하는

과정에 자행된 인권유린에 관한 사안이었다. 아직 표면 위로 부상하지는 않고 있지만, 당시 쿠데

타 배후세력인 공산당을 척결하는 진압군의 고위급 지휘관 중에는 현재의 고위층 직계가족도 포

함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고위층 자신도 몇 달 전차기 대선후보 군으로 거론된 적이 있음을 연결

시켜 보면, 인권위의 보고서가 대선정국과 시점상으로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에는 의문부호가 따

라다닌다.

 

1998년 수하르또 정권이 붕괴되자마자 금서로낙인 찍혀 그 동안 잠자고 있던 간행물들이 먼지

를 털고 나오는가 하면, TV 채널을 틀었다 하면온통 9.30사태를 주제로 삼은 토크쇼가 유행을 이

루고 있었다. 이에 편승하여 혼자 애국자인양, 기회주의적인 역사학자와 집필자들은‘역사바로세

우기 운동’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벚꽃의 단명처럼 이러한 풍

조도 이내 수그러들고 말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어떤 저항세력에 의해 서서히 김이 빠지는 듯한

인상을 받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가 최근 다시 점화한 과거사 문제를 놓고 시민단체에서는 이 당시 희생된

최저 5십만에서 2백만까지의 희생자들의 명예를회복시키고 그 후손들에게도 보상을 하여야 한다

며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의 대칭에 서 있었던 나흐들라툴 울라마(NU)라는 회교단체는 위

원회가 권고한 사과문제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 그들(인도네시아 공산당)이 먼저 수많은 이슬

람 지도자들을 희생시키는 인권유린을 자행하였으며, 발리지역 주지사까지 공산당원이 차지할 정

도로 온통 공산화되어 가는 누란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한 역사적 당위성임을 강변한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경구대로 실제로 수하르또 정권 시절엔 이 사건에 대해서 철저한 함구

와 보도통제가 시행되어 역사를 오도한 측면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계기가 정략적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 대한민국이‘친일명단작성’에서부터 시작하며 과거에 드리워졌던 어

두운 조명을 과감히 떨쳐 버리며 선진국으로 향하는 행보에 어깨를 펴고 나아갔듯이, 우리가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과거사를 훌훌털어버리며 밝고 투명한 민주국가의 대열에 합류

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당시 서방측에서 전망하였듯이 중국, 월남에 이어 인도네시아가 공산화되

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던 이 나라를 목숨을 바쳐구원한 당시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현재의

잣대에만 맞춰 재단한 과거사 청산이라는 급류에함께 씻겨 내려가는 우를 범해서도 안될 것이다.

 

<사진> 사르워 에디 위보워 대령과 전국대학생연맹9.30 공산 쿠데타가‘일일천하’로 막을 내린 직후

실권을 잡은 수하르또 군부는 수까르노 대통령과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을 축출하기 위해 전국대학

생연맹(KAMI)의 지원을 받게 된다. 사진은 1966년 3월살렘바(Salemba)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대학(UI)

의과대학 야외교정에서 시국토론을 벌이는 사르워 에디특전사령관과 대학생들. 수하르또 정권이 탄생하

는데지대한 역할을 했던 당시의 전국대학생연맹 간부들은대부분 생존해 있다. 의장이던 꼬스마스 바뚜

바라(전노동부장관), 마리 모하맛(전 재무부장관), 아끄바르딴중(전 골까르당 총재), 그리고 자카르타

부장이며 카톨릭학생회 회장이던 소피안 와난디(현 경총위원장) 등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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