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행복에세이 <서미숙>/추억 속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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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서점
서 미 숙 / 수필가 gaeunsuh@hanmail.net
그리워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다.
아파트를 산책하다 들어오는 길에 우편함에 책이들어있는 소포가 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인터넷
북 회원에 가입해 놓고 정해진 기간 안에 책을 구입하지 않자 운영자가 임의대로 책을 선정하여
보내온 것이다.
나는 책을 훑어보다가 이제 머지않아‘서점’이란 단어도 내 그리움의 목록에 올라가겠구나 그런 생
각을 해본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상거래가 보편화 되면서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웬만해서
는 서점에 가기 힘들다.
그런데 북 회원에 가입하면 책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도 얻고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책은 읽고 싶고 바쁘다 보니 책을 편하게구입해 보자는 생각에 가입을 하였다. 그런데 막
상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려니 체질에 영 맞지않았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온 나는 책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온라인 에서는 그런책과의 교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점에 직
접가면 꽂혀있는 책 중에서 눈에 띄는 책을 골라 제목과 표지를 훑어보고, 갈피갈피
뒤져보기도
하고,작가의 서문이나 발문도 읽으며, 내용의 경중을 가늠하여 책을 선택하는 나로서는 온라인서
점이 오히려 불편했다. 그래서 몇 번 온라인 구매를 시도하고선 그만 두어버렸다. 그리고 잊고 있
었는데 오늘 원하지도 않은 책을 배송 받은 것이다.
나는 독서광까진 아니더라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왔다 하면 모든 일
을제치고 서점부터 들러 책을 사고 내가 거주하는지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하
였다.
오래된 습관처럼 늘 책이 곁에 있어야만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다. 읽은 책의 내용은
대부분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책들은 아주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내 인생의 스승이 되곤 하
였다. 그러한 내 인생의 책들 중심에는 내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나의 독서
편력이 시작된 곳, 불란서시집을 몰래 읽으며 가슴이 요동치는 감동을 받고 언젠가는 시인이 되어
멋진 시를 쓰리라던 그 기억 속의 꿈의 텃밭……
서점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 입구에 자리한 서점, 그곳은 경이로움과
환상이 교차하는 작은 우주였다.
시집이나 소설은 물론이고 사전류에서 잡지,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헌
책까지 온갖 책들로 꽉
들어찬 시각의 공간, 나는 서점 앞 버드나무가 연 초록 잎을 내밀던 초등
5학년 봄날에, 새로 사귄
친구 집에서 그 서점의 책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학교를 파한 오후시간이면 서점을
지키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책 속에 흠뻑 빠져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없는 오직 이야기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 눈
으로 마음으로 활자와 문장을 더듬으며 경험하는 짜릿함으로 세상의 신비를 경험하였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책들은 그들의 오래된 내력을 속삭여주었다. 아주 다정하게…… 그러면
나는 기막힌
피리소리에 이끌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하멜른 마을의 아이처럼, 그 속살거림에 귀를 기울
였다.
그렇게 서점을 하는 친구를 잘 사귄 덕으로 사춘기를지날 때까지 책 한 권 사지 않으면서도
그때의 내수준이 허용되는 범위의 책들은 거의 다 읽었으니나는 참으로 염치없는 문학소녀였다.
어쩌다 내가 그 추억 속의 서점을 떠올릴 때면 친구보다도, 숨죽이며 읽었던 손때 묻은 불란서시
집보다도, 친구 어머니가 가장 먼저 내 눈 속에 들어온다. 친구가 없을 때도 슬쩍 들어와 구석진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알전구에 불이 켜질 때까지 가지 않던 딸의 친구! 내가 민망해 할까 노심초
사 하시며 한 번도 그만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친구의 어머니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고맙
다. 아!내가 어른이 되어 큰 서점을 갖게 된다면, 그리고어떤 꼬맹이가 책방을 들락거리며 소녀가
될 때까지 공짜로 책을 보더라도 절대 쫓아내지 않겠다고어이없는 다짐을 하곤 했었다.
그 추억의 서점, 구석진 자리에서 발 저려가며 문학 책을 읽었던 그 시절, 아마 나도 모르게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지혜를 얻었으리라. 경험하지 못한 것, 가보지 못한 곳, 예측할 수 없는 운명까지
도 책을 통하여 경험하고 이해했으니, 그 시절 부모와의 소통 부재로 심한 좌절감을 겪었던 조숙
했던 사춘기, 삶의 허무가 죽음이라는 강렬한 유혹으로부터, 인생은 아름다우며 살아볼 가치가 있
음을 책은 일깨워 주었다.
그때의 불란서 시인들의 시집 속에서 마리 로랑생의‘잊혀진 여자’를 외우며 나는 누구에겐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리라 철없는
다짐을하게 된 것도 다 책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
보면 욕심이 많아 다독하려는 허영에 사로잡혀올바른 책 읽기를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당
시 읽었던 책들의 깊이를 다 들여다 볼 수 있는지혜가 내게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는 더 값진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추억 속의 서점 이라는 작은 우주 속에서 책들이
내게 펼쳐 보여준 다양한 세계가 있어 나의 십대는 외롭지 않았고 풍요로웠다.
얼마 전 한국에 들어와 그곳을 찾았다. 그 시절의서점은 흔적도 없어졌다. 서점 앞 오래 된 버드나
무도 베어지고 단층 슬리브집은 세월의 변화 속에 고층 빌딩으로 도심 한가운데 묻혀버렸다.
서점
안을 들어설 때면 훅 풍기던 깊은 나무숲 속 같은 정겨운 종이내음도, 나의 손때가 묻었을 그때의
책들도 이제는 영원히 사라지고 없다.
그래도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사람으로 성장시킨 내 마음속 추억의 서점은 늘그
자리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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