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6월 특집> 그때 그 시절-한국의 교육변천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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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특집 그때 그시절
그때 그시절 - 한국의 교육변천사
7월호에는 한국의 교육변천사를 특집으로 꾸며봤다. 부모 세대라면 옛날 학생생활의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학생 세대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발전해왔는지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단군의‘홍익이념’ 선포를 첫 기원으로 두어도 무방하
리라 본다. 학자들은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진시기를 삼국시대로 잡고 있다. 백제는 258년(고
이왕 25) 박사 왕인을 일본에 보내어《논어》와《천자문》을 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학술과 교
육을 담당하였던 기관과 교원이 이미 존재했음을알 수 있고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국가최
고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설립했으며 427년(장수왕 15)에는 평민교육기관인 경당을 설립했
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신라는 576년(진흥왕 37)《삼국사기》에 화랑도(花郞道)가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682년(신문왕 2)에 비로소 국가교육기관으로서 국학(國學)이 설립되었고 788년
(원성왕 4)에는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여 관리등용의 기준으로 삼기도 하였다.
신라의 문물을 계승한 고려시대는 958년(광종9)에 과거제를 시행함으로써 교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건국공신들인 호족을대신하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고자 실시했던 과
거제도는 유교적 소양과 학문적 자질을 갖춘 인사가 중앙의 관리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
고 있기 때문이다. 992년(성종 11)에는 최고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이 설치되는 등 성종의
치세기에 교육의 틀을 갖추고 있다. 1127년(인종5)에는 지방에 널리 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쓰라고
하는 조서를 내림으로써, 향교(鄕校) 교육의 시초가 되었다. 향교는 공자에 대한 제사와 교육을 병
행하는 지방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는 창건이념을 바탕으로, 성리학적 정신을 추구하는 교육이념을 중시하였다. 사대부의 자
제들은 경전중심의 인문학에 치중하면서, 관리로나아가기 위한 과거 공부가 교육의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398년(태조 7)에 국립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이 설치되었으며, 지방의 교육
은 서원(書院)과 향교(鄕校)가 중추적인 역할을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1543년(중종 38) 최
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 설립되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정조 때에는 6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매우 활성화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흥선대원군에 의해 47개의 서원을 제외한 전국의
서원이 철폐됨으로써 그 교육적 기능은 매우 약화되었다. 한편 전국의 곳곳에 서당이 마련되어 초
등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이를 마친 후에는 향교나서원으로 나아가 수학하였다. 우수한 동량들은 과
거를 거쳐 중앙의 성균관에 입학하는 것이, 조선시대 양반들의 교육 목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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