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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대사일기 제7화 “교민. 문화, 체육”

2,761 2017.07.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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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의 통상적인 업무는 정치, 경제, 영사교민, 문화. 사회교류 및 행정 등 매우 다양하다. 대사관은 모 든 정부 부처의 압축판이고, 대사의 업무 범위는 과장을 하면 한국 대통령, 국무총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2005.5부터 3년 대사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정치, 경제 분야를 제외하고( 제1-6화), 기억에 남거나 기록에 남기고 싶은 일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1) 영사교민 업무 

나는 대사가 한인회, 교민 및 영사 업무에 깊이 간여하는 것에 반대한다. 오랜 경력과 실무경험을 가진 담당 직원들을 제치고 대사가 직접 나서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대사관 운영 체계를 흐트러트린다. 나는 실제 대부분의 영사/교민 업무를 총영사 겸 공사(대사관 제2인자)에게 맡겼 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 대사가 직접 나섰다. 첫째, 한국인의 사망사건이 발생하거나 반복하여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이다. 한국인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아무리 먼 곳이라도 대사관의 경찰주재관이나 영사를 보냈다. 또한, 조폭 조직의 진출도 신경을 썼다. 동남아 지역의 다른 나라 예를 보면, 한국 관광객이 많은 곳에 술 집이 많고 한국의 조폭 조직들이 진출해 있다. 따라서 한국 조폭 조직이 발리, 자카르타, 반둥 등에 진출 할 가능성을 두고 신경을 많이 섰다. 조폭이 일단 현지 조폭과 연계하여 근거지를 마련하면 척결하기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조폭에 관한 소문이 있으면 즉 시 경찰주재관을 현지에 보내, 한인식당이나 술집을 찾아다니면서 조폭에 관하여 탐문하면서 대사관의 관심을 전하도록 하였다. Banjir di Jakarta, tahun 2007 12 I 한인뉴스 2017년 7월호 관광객이 많은 발리에는 예방차원에서 우리 경찰 청의 조폭 대응 팀을 보내달라고 건의하였다. 이 에 경찰청이 대응 팀을 파견하여 현지경찰과의 유 대 관계를 맺고, 우리 교민 사회에 연락 체계를 조 직하기도 하였다. 둘째, 교민 전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는 대사가 현 장으로 뛰어가서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한국 인이 해외에서 사건사고를 당할 때 대사관이 즉각 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으나 그들이 기댈 언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 을 준다. 또한, 대사관이 중심이 되어 우리 교민들 이 위기를 맞거나 어려울 때 효과적인 관. 민 공동 지원 체제를 만들기도 한다. 내가 근무할 당시 인도네시아 교민은 약 3만으로, 7할 이상이 수도 자카르타 및 자카르타 근교에 거 주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어 서 관광업이 발달한 다른 동남아 지역보다 교민사 회가 안정되어 있다. 재인니 한인회는 오랜 역사 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부의 분규 없이 안정되어 있다. 해외 근무하는 동안 여러 나라에 있는 한인 회 활동을 보아왔지만 재인니 한인회같이 단합된 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승은호 한인회장과 수시로 만나서 주재국과의 주요 현안이 있을 때 마다 자문을 구하거나, 한인회 동향에 관하여 많 은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한인회 및 교민 행사는 총영사로 하여금 참석하도록 하였고 여타 교민 업무도 담당 영사, 경찰주재관 및 총영 사로 하여금 다루게 하였다. 한인회나 교민 사회 도 그러한 나의 생각을 이해하여 주었다. 그 결과 나는 교민 업무에 매달리지 않고 외교업무에 전념 할 수 있었다. 교민 사건사고와 관련,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 이 몇 건 있다. 자카르타 홍수와 발리 신혼여행 부 부의 강도 피습 사건 등이다. 

 

자카르타 대 홍수와 교민 피해 

2007.2 자카르타 홍수는 자카르타 및 주변 지역 7-80%가 물에 잠겼고 대통령 궁마저 발목까지 물에 찰 정도였다. 1월과 2월이면 비가 집중적으 로 오고, 자카르타 주변 산에서 내려오는 하천들 이 자카르타 지역을 경유하여 바다로 빠져 나간 다. 자카르타는 거의 매년 크고, 작은 홍수에 시달 리고 있다. 그러나 그 해는 열흘 동안의 집중 호우 로 기록상 최악의 홍수였다. 대사관저는 1층까지 물이 찰 정도로 홍수의 직격탄을 맞았다 (후술). 최악의 홍수를 맞이하여 자카르타 주변에 살고 있 는 교민과 그들 공장이 큰일이다 하는 생각에 머 리가 지끈하였다. 나는 영사 담당, 한인회 및 주요 교민들을 초치하여 인명 피해와 교민 사업체의 피 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가능한 지 원책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한국인 학교, 지역 한인회 및 교회 등 통하여 파 악한 바로는 큰 인명 피해는 없으나 문제는 한국 기업이 입주한 공장 지대가 워낙 광범위하게 피 해를 입었다. 그래서 직원들을 몇 그룹으로 나누 어 현장을 가보도록 하고, 나도 많은 한국 기업들 이 입주한 근교 공업단지로 갔다. 그 때는 물의 수 위가 다소 낮아져서 차가 공단 안까지 들어 갈 수 있었다. 공장들이 모래주머니로 외벽을 쌓아 피해를 줄 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공장 들의 제품과 기계들이 침수된 공장들이 많았다. 침수된 제품과 기계는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게 보 였으나 한 가지라도 건지겠다고 필사적이었다. 그 중 어느 공장의 여자관리인이 새벽에 물이 닥치자 물건을 높은 데로 올리다가 멘 홀에 빨려 들어가 죽을 뻔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 그 여자 관리인 은 아픈 몸을 이끌고 복구 작업에 정신이 없다. 한 국을 일으킨 우리의 여인상을 보았다. 교민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지대가 물에 고립되 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지역으로 갔다. 승용차 가 들어 갈 수 없었다. 다행히 항만에서 하역운송 업을 하는 교민 한분이 컨테이너 운반 대형 트럭 의 머리 부분(운전석 부분)을 타고 들어가라고 하 면서 빌려준다. 그 차를 타고 들어가면서 보니, 물 이 허리까지 찬 도로위에 먹을 것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단독 주택가는 물 이 더 깊어서 사람들이 완전 고립되어 있다. 아파 트 지역에 있는 한인 교회로 가서 무엇이 필요하 겠느냐고 물으니 먹을 물이 가장 급하며 라면, 빵, 한인뉴스 2017년 7월호 I 13 가스레인지 등 간략한 식사대용이면 좋겠다고 한 다. 대사관으로 돌아와서 한인회와 슈퍼를 운영 하는 교민들과 회의를 하였다. 무궁화 슈퍼마켓 이 선뜻 전량 자기들이 기부하겠다고 하였다. 한 컨테이너 분량의 물과 식료품이 그 지역으로 배달 되었다. LG 전자는 홍수 피해 지역에 길거리 수리 점을 개점하여 물에 잠긴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무료로 수리하여 주었다. 이 보다 한해 앞서 2006.5 족자카르타 대지진 때 에도 한국에서 파견된 의료/구조 팀과 함께 현지 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다행히 교민 인명 피 해는 크지 않았으나 일부 공장들이 큰 피해를 입 었다. 전체 교민사회는 합심하여 한인 기업은 물 론 현지 주민 구호와 피해 복구를 지원하였다. 재 인니 한인회와 족자카르타 한인회가 공동기금을 마련하여 지진으로 부서진 현지 초등학교를 지어 주었다. 한인 사회가 합심하여 피해 복구 지원에 힘을 쏟는 모습은 지금도 인상에 남는다. 족자카 르타 지진 때문에 유도요노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연기되었다는 사실은 앞에서 이야기하였다. 


발리에서 신혼부부 강도 사건

 

발리 여행 온 신혼부부가 강도의 습격을 받은 건 도 기억에 남는다. 새벽에 대사관의 경찰 주재관( 박화진 당시 총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발리 한인회로부터 강도 피해 사건을 접수하고 공 항으로 나가는 길에 나에게 전화한 것이다. 첫 비 행기 편으로 가서 우선 신혼부부를 안심시켜야겠 다고 한다. 경찰로서 자부심이 대단하고 자기 업 무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여 사건사고만 나면 밤낮 가리지 않고 현장으로 뛰어가는 사람이었다. 그 경찰 주재관은 그 후 서울시 관악 및 종로 경찰서 장을 거쳐 승승장구하였다. 그날 오후 나도 발리로 갔다. 경찰주재관이 가고 대사까지 오고 있다고 하니, 현지 경찰이 그 때서 야 움직였다. 경찰서장이 병원을 찾아오고 병원비 를 부담하겠다고 하였다. 강도 3명이 새벽에 독립 빌라 식 호텔에 있는 신혼부부를 습격하였다. 신 랑이 이들과 격투를 벌리는 사이 신부가 도망하 자 강도 한 명이 쫒아가 신부의 등을 낮으로 찍었 다. 큰 부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한인회가 오고, 대사관 직원, 현 지 경찰서장에, 나까지 나타나니 이제 안심하겠다 고 하면서 기운을 차린다. 나는 결혼 첫 출발의 불 행을 잘 넘겼으니 앞으로 잘 살 것이라고 신혼부 부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발리가 신혼 여행지로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 다. 자연경관, 음식, 볼거리, 문화유산 등이 인도네 시아의 다른 지방과 달리 이색적이다. 그러나 독 립 빌라 식 숙소는 위험하다. 호텔 본관 건물과 멀 리 떨어진 체 바다를 끼고 한 채씩 띄엄띄엄 지어 져 있어서 보기에 좋고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고 가 나면 대응에 문제가 있다. 나는 병원을 나오는 길로 주지사와 경찰서장을 만나 강하게 이야기 하였다. 주지사는 다른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대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서 밤늦게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발리가 우 리나라에 신혼여행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번 사 건에 대하여 주정부나 경찰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하면, 발리를 여행 금지 구역으로 정해줄 것을 본국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협박(?)하였다. 당시 발리는 2002.10 테러사건이후 관광객이 급감하였다가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던 때였다. 발리 테러는 200 여명의 사망자, 200여 명의 부 상자가 생길 정도로 큰 규모였고 사상자의 상당 수가 외국 관광객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겨우 회복 단계에 접어들고, 외국인 중 한국 관 광객의 증가세가 눈에 띄었다. 만약 이번 사건으 로 한국 관광객이 줄어들고 강도 사건이 국제 뉴 스가 되면 발리 경제는 다시 큰 타격을 입을 수밖 에 없다. 한국 대사의 여행 금지 구역 운운하는 경고에 주 지사는 반짝 긴장하면서 사건 처리에 최선을 다하 겠으니 여행금지 조치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 한다. 그 후 경찰은 특별 수사대를 편성하여 범인 검거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 지역의 모든 호텔과 경찰서 사이 hot line을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관광객 안전조치를 강화하였다. 내가 떠날 때까지 한국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추가적 범죄사건은 없었다. 

 

한. 인도네시아 국가대항 축구시합 

2007.7.18 한국과 인도네시아 축구시합이 있었 다. 이 때 한국 관중들의 안전이 크게 걱정되었다. 아시아 컵 축국대회(AFC)에서 인도네시아와 한 국 팀이 16 강전에서 만났다. AFC 대회는 4년마 다 열리는 아시아 최대 축구 시합으로 그해 인도 네시아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은 이미 8강 진출이 확정되었으나 인도네시 아는 한국과의 시합에서 지면 탈락한다. 이 시합 에 대한 축구 팬들의 관심이 대단하였고, 평소 친 하게 지내던 이 나라 정치인들은 나에게 노골적으 로 한국이 져줄 수 없느냐고 말하기도 하였다. 인 도네시아 교민들은 잘 아시겠지만 인도네시아 축 구 팬들도 거의 광적이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 적을 거두지 못하지만 국내 도시 대항 대회에서는 자주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시합을 앞두고 나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하나 는, 축구장에서 한국 관중의 안전 문제였다. 둘째 는, 이 시합이 유도요노 대통령(SBY)의 한국 방 문을 불과 5일 앞두고 열리는 만큼 한국 관중에 대 한 불상사가 발생하여 SBY 방문에 좋지 않은 영 향, 특히 우리 언론에 부정적 기사가 나올까하는 걱정이었다. 결과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나의 바 로 뒤에서 응원하던 대사관 직원이 인도네시아 관 중석으로부터 날아온 물병에 맞아 이마가 찢어진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는 한국 시합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서 VIP 석 에서 관람하였다. VIP 석이 한국 응원단의 맞은편 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한국 응원단의 움직임을 자 세히 살필 수 있었다. 자카르타와 인근에 살고 있 는 교민 수 천 명이 붉은 셔츠를 입고 입장하여“ 붉은 악마”의 괭가리 장단에 맞추어 함성을 올 리며 응원에 열을 올렸다. 한국 응원단이 서울에 서 온 붉은 악마의 구령에 맞추어 벌이는 응원은 가히 볼거리를 제공하였고, 축구장을 압도하였다. 자카르타 한국 교민들의 잔치 날이다. 전문가들 사이 한국 팀이 인도네시아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가 나왔고 한국의 승리가 예견되는 상 황이었다. 실제 한국이 이길 경우 한국“붉은 악 마”와 성난 인도네시아 응원단 사이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대사관에서 연일 대책회의 를 열어 이 나라 경찰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한인 회에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해 주기를 바라지만 돌 발적인 충돌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나는 Dino Djalal 대통령 안보보좌관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는 외교관 출신이 라서 무슨 말인지 즉시 알아들었다. 그는 경찰에 게 즉각 연락하겠다고 하면서 경찰로부터 연락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합 날이 다가오 는 데 현지 경찰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시 합 이틀을 앞두고 안보보좌관에게 다시 연락하였 더니 알겠다고 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달랜다. 그 후 경찰 간부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 를 받았지만, 불안감이 영 가시지 않았다. 시합 당일. 나는 대사 차에 태극기를 달고 다른 시합 때와 달리 VIP석이 아닌, 한국 응원단석으로 갔다. 나는 평소 대사 차의 태극기를 카버에 싸서 눈에 띄지 않게 다닌다. 그러나 그날은 대사 차의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입장을 기다리는 인도네시 아 관중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인도네시아 관중 과 경찰들에게 한국 대사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예상대로 입장하는 관중과 경찰들의 시 선이 나에게 모인다. 응원석으로 들어서니, 나의 예상과 달리 교민 응 원석은 텅텅 비어있고 대사관 직원, 서울에서 온 “붉은 악마” 응원단, 소수의 교민 등 합하여 몇 십 명만 있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대부분의 교민 들이 응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한국 응원단 주 위로 경찰이 벽을 쌓고 둘러싸 앉아 있다.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안도감은 시합의 열기가 더해가 면서 이층 관중석에서 한국 응원단 쪽으로 물병이 한 두 개씩 날아오기 시작한다. 비록 플라스틱 물 병이지만 물이 든 상태에서 던지면 돌덩어리나 마 찬가지이다. 한국이 1:0 으로 이기자 날아오는 물 병이 크게 늘면서 드디어 내 바로 뒷줄에 서있던 대사관 직원이 맞아 피를 흘리며 주저앉는다. 한인뉴스 2017년 7월호 I 15 눈썹에 맞은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있다가는 더욱 험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교민들에게 모두 나가 라고 하고, 서울에서 온“붉은 악마”응원단에게 가서 대사라고 밝히고 나가자고 권유하였다. 그랬 더니“붉은 악마”리더의 답변이“우리는 죽으러 왔다”고 하면서 투사와 같은 모습으로 꿈쩍 안 한다. 그 리더는 몇 사람의 응원단 안위만 걱정하 면 되지만, 대사는 외교 문제까지 걱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무 력감을 느낄 뿐이었다. 다행이 경찰들이 증원되고, 데모 저지할 때 사용 하는 방패를 높이 쳐들어 4-50명으로 줄어든 한 국 관중석을 성벽같이 에워싼다. 우리 주변에 있 던 인도네시아 관중들도 일어나 2층 관중에 대하 여 물병을 던지지 말라고 고함을 지른다. 그 후 큰 사고 없이 경기가 종료되었지만 물병을 맞은 대사 관 직원은 병원에서 눈썹 부위를 몇 바늘 꿰맸다. 나는 귀가 길에 대통령 안보보좌관에게 전화, 경 찰 지원 탓으로 큰 탈 없이 끝났으며 모든 협조 에 고맙다고 하였다. 그도 긴장하고 있었다가 나 의 전화를 받고 안심이 된다는 반응이다. 나는 감 사의 증표로 한국 선수단 전원이 사인하여 나에게 주고 간 축구공을 감사서한과 함께 동 안보보좌관 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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