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별과 달이 비추는 오지의 마을 <김성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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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월 / 수필가,
방송프리렌서
철길에서 테라피하는 사람들
왜? 사람들은 태양이 기울어가는
오후만 되면물병과 신문지와 헝겊쪼가리를 들고 그곳 라와(Rawa)역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을까.
한 중년남자가 있었다. 그는 고혈압으로 손발이마비되어 일도 할 수 없고 움직이는 것조차 너무불편하고
힘들었다. 아무리 좋은 병원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 처방전으로 약을 받아먹어도 효험이없었다.
‘그래,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자’는 각오로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자.....살..... 어떤 방법 몇 가지나 있을까.
강물에 뛰어들자니 깊은 강이 너무 멀고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리자니 빌딩에 올라가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도대체 방법이 없다.
그래 나 같은 서민은 기찻길에 누워 있다가 기차가 지나가면서 죽여주길 바라는 것이 가장 쉬운방법이라
택했다.
그리하여 남자는 철길로 갔다. 그곳이 자카르타시내를 벗어나 한참 가는 라와역이다. 남자는 자살을
위해 철길에 누워있었다. 철로 한쪽에는 두 발목을대고 다른 한쪽은 목을 대고 편안하게 누워 이글거
리는 태양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철길에 누워 있는데 온몸에 전류가 흘러 짜릿짜릿했다. 두발이 덜
덜거리고 팔도 목덜미도 덜덜거렸다. 이제 기차가지나가기만 하면
남자는 미련 없이 죽는다.
얼마나오랫동안 철길에 누워있었을까?
기차는 지나가지 않고 태양만 뜨거웠다. 견딜 수없어 남자는 자살을 포기하고 철로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비가 되었던 손발이 움직일 수있었다. 이 남자의 자살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순식간에
퍼졌다.
그 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병 고침을 받기 원하며 라와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혈압, 당뇨병,
손발 저림, 몸살 심지어는 뚱뚱한 사람은 다이어트까지. 사람들은 철길 상하행선 양쪽으로 수십여명이
드러누웠다. 급기야 철도청에서 지시가 내려졌고 라와역무원들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할까
봐 철길에서 테라피하는 걸 금지시켰고 이를 어길 시‘벌금 아니면 징역’공고문까지 만들어 세라와역에서
사람들이철길테라피하는 걸 보는데 정말 두 발이 덜덜거리며 떨렸다. 손도 마찬가지로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살펴보고있으면 하나같이 손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 철길에 전류가 흐르는데 무섭지 않으세요?”
“무섭긴요. 지금 손발이 저려서 테라피하고 있는데........미쎄스 김도 한 번 해보세요.”
“전기가 흐르는데 감전되면 어떻게요?”
“감전돼 죽은 사람은 없어도 병 고친 사람들은많아요.”
나는 몇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부어 있을 때가 많았다.
촬영하는 이틀 동안 십 분씩 철길테라피를 실험해 보고싶었다.
처음에 나도 그들처럼 철로위에 드러눕기엔 무서워 용기가 나지 않아 양손만 철로위에 갖다 댔다.
약지를 철길에 대어 있으니 손가락마디로 전류가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나도 드러누웠다.
짜릿짜릿한 떨림이 발에서부터 심장을 관통하여 머리까지 전해졌다. 이상한 느낌의 전율이나를 자극했다.
순간순간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같으면서 쾌감을 느낄 그런 전율은 아니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다.
내 손가락을 철길테라피 한 후 지금까지 손가락 붓는 일이 없다. 철길 테라피가 나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다.
전압계로 철로의 전류를 측정해보았다. 전류가 일정하지 않았다.
전문의가 말하길 전기치료는 심장을 관통하지 않아야 하는데 철길 테라피 같은 경우 심장을 관통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람에 따라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건 그렇다. 자동차가 교통수단으로는 참 편리하지만 자칫하면 사고 날 수 있다. 라와지역 사람들도 철길테라피
를 적당히 하여 안 아프게 건강하게잘 살았으면 좋겠다.
한인뉴스 애독자 여러분[별과 달이 비추는 오지의 마을] 글을 연재하던 김성월입니다.
왜 별과 달이냐, 별성(星) 달월(月) 그래서 별과달입니다. 1998년 7월 7일 고국에서 키우던 제 삶의나무를 뽑아 인도네
시아로 옮겨 심었습니다.
왜 대도시자카르타 수라바야를 거치면서 머언 말랑까지 민들레홀씨처럼 날아와 살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왔을 때 말랑은 작고 얌전한 도시였습니다. 낯선 곳에서 어쩌다 도로에 지나가는 한국차(세피아,
엘란트라)만 봐도 너무반가워 시선을 돌릴 수가 없어 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딸아이와 그리고 막내 4살짜리 아들, 날마다 새우깡이 먹고 싶고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 타고
싶다기에 동그란바소를 먹이면서 징징거리던 4살짜리 아들을 달랬는데 그 아들이벌써 고3 되어 졸업하려합니다.
오지로 다녔을 때 일입니다. 깔리만딴 물소 키우는 수상마을에서 하룻밤 민박했다가 빈대와 벼룩에게 물려 군데군데
벌겋게 된 다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 달을 고생했습니다. 고래잡이 마을로 갔다가 스케줄 때문에 목선타고 몇 개 섬으로
이동해 올 때 폭우와 풍랑을 만나 간절히 기도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가족들에게 유서를 쓰기도 했답니다. 파푸아에서는
어제 만났던 사람이 오늘안보이면 말라리아모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주머니속의 약을 꺼낼 때, 수까부미 오지에서
3주간 머물다가 자카르타로 나왔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이 하얀쌀밥과 얼큰한 육개장이었습니다.
제가 한인뉴스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때는 2008년 9월‘소똥으로 만드는 바이오가스’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44편의 글을
적었습니다. 그동안 애독자님들께로부터 글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인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힘들었던 일이 보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분간 글을 연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약 7년 동안 전국 오지로만 돌아다니면서‘사람이 가장귀하고’그 다음이‘교육과 환경’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당분간은 나뭇꾼으로 치다면 무디어진 도끼의 날을가는 시기처럼 제 자신을 새롭게 다듬고 보다 나은 나,
를 찾는 재충전의 기회로 다듬고 싶어서입니다. 오지로향하는 발걸음은 계속될 것이며 더 재미있는 글로 다시
찾아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별과 달이 비추는 오지의마을]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성월.__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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