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생활 속 심리학) 분위기와 맥락, 그리고 의사결정 < 김경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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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와 맥락 , 그리고 의사결정
판단과 의사결정은 무엇에 영향을 받나?
인간은 어떤 대상에 대해 판단할 때 그 대상에만 집중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이 대상에 대한 느 낌을 결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왼편의 가운데 작은 사각형과 오른편의 가운데 작 은 사각형은 같은 색과 같은 밝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왼편보다는 오른편의 것이 보다 더 어두워 보인다. 눈치가 빠른 독자들께서는 벌써 눈치를 채셨겠지만 주위(즉 맥락)의 밝기가 다르기 때문 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 인간이 색을 지각하는 양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에서도 얼마든지 일 어나는 일이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마트에서A와 B 두 개의 물건 중 고민에 빠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다.
A와 B 두 물건의 비교
A는 품질이 B보다 좋고 B는 A보다 가격경쟁력이 좋기(즉 저렴하기) 때문이다. 도무지 무엇을 골라 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으며 따라서 망설이게 된 다. 그런데 진열대에서 A와 B 곁에 있는 제 3의 브 랜드인 C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C를 구매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C 로 인해 A와 B 간의 우열이 더 쉽게 가려진다. 아 래와 같은 상황이다.
C물건이 추가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와 같은 상황이 되면 먼저 번의 상황에서보다 더 쉽게B를 선택한다. 아마 도 이런 과정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났을 것 이다. A와 C 사이에서는 품질과 가격 이 두 종목 에서 각각 1승1패다. 그런데 C는 B와의 관계에서 가격과 품질 모두에서 진다. 즉, C로 인해 B는 왠 지 보다 더 상대적으로 우월한 종합전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많은 사람들이 B를 선 택하고 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좀 우스운 일이다. 일단 C를 선택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A와 B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 C라는 존재가 영향 을 미친다면? 이는 좀 이상한 일이다. A와 B 간의 비교는C와 무관하게 진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양자대결로 압축시키면 우열의 차 이가 나지 않는데 가장 열등한 제 3의 대안이 추 가되면서 1등이 더 쉽게 가려지는 경우가 우리 일 상생활에서 꽤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심리학자들 의 연구, 조사 혹은 관찰에 의하면 몇몇 기업에서 는 이를 마케팅에 의도적으로 종종 사용하고 있다 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순서만 바뀌어도 맥락이 바뀐다
인간은 어떤 대상에 대해 판단할 때 그 대상에 만 집중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대상 에 대한 느낌을
결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인간은 판단의 대상에 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분위기에도 생 각의 자원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맥락과 분 위기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맥락과 분위기는 아주 사소한 변화로도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차이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안을 제시하는 순서만 바꿔도 맥락은
크게 바뀐다.
두 종류의 백과사전이 있다. 둘 모두 중고이지만 보관상태와 내용의 양에 있어서 상이하다.
- 백과사전 A : 거의 새 것이며10,000개의 내용 을 포함하고 있다.
- 백과사전 B : 표지가 찢어져 있으며, 20,000개 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무언가를 따로 따로 보기 시작하면 상대비교가 어 려워진다. . 하지만 두 대상을 동시에 놓고 보면 이 제 상대비교가 더 용이해 지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전을 따로 따로 즉 하나씩 보 여주고 난 뒤 고르라고 하면 A를 더 많은 사람들 이 선택한다. 순서와 상관없이 A가 더 선호된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오, 이 사 전(A)는 아까 것보다(B) 더 보관상태가 좋은데? 이걸로 사야겠네.” 혹은“중고책 서점에서 이렇 게 깨끗한 책 사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군?” 등이다.
그런데 두 사전을 동시에 보여주고 고르라고 하면 B가 더 많이 선호된다. 이제 사람들의 반응은 이 런 식이다. “어차피 중고니까 낡은 것이야 중요 하지 않지. 중요한 건 내용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겠어?” 재미있는 불일치이다. 어떤 경우에는 보 관상태를 더 우선시 하고 어떤 경우에는 수록된 내용의 양을 더 우선시했으니 말이다. 첫 번째는 주관적이고 따라서 질적인 차이이다. 하지만 두 번째는 양적인 차이이다. 무언가를 따로 따로 보 기 시작하면 상대비교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질적으로 두드러진 무언가가 있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두 대상을 동시에 놓고 보면 이제 상대비 교가 더 용이해 지기 때문에 질적인 차이보다는 양적인 차이에 더 민감해지게 된다. 순서의 형태 에 변화를 주면서 맥락이 바뀌고 이렇게 바뀐 맥 락은 두 대상을 비교할 때 어떤 측면에 더 주의를 기울이냐 하는 근본적인 측면에까지 영향을 미치 는 것이다.
관점의 변화, 생각의 변화
우리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사 전적으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봄’이라는 뜻 이다. 처지란 무엇인가? 관점이다. 따라서 맥락의 변화와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이러한 맥락의 변화 는 생각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필 자가 늘 말씀 드리지만, 무언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인간이라고 해서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 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다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맥락의 변화는 판단 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라는 것을 진심으로 받 아들이고 생각의 변화를 위해 맥락의 변화를 슬 기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문제나 이 슈 자체에만 집중하는 고집스러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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