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Jalan-Jalan Jakarta / The Mesjid Istiqlal <사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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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최대의 모스크-The Mesjid Istiqlal
사공 경(한*인니문화연구원장/한국문인협회인도네시아지부장)
이슬람교의 공식적인 기도는 하루에 다섯 번 이다. 경전인 코란은 읽어본 적 없지만 하 루 다섯 번의 기도는 이슬람의 율법인 모양이다. 자카르타 시내 곳곳에는 마을마다 이슬람 사원이 있다. 사원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독경 소 리는 종교와 국적이 다른 이들에게도 금세 친숙해 진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답게 인도네시아의 국민은 87%가 이슬람을 믿는다.
인도네시아 인들을 만나면 종종 듣게 되는 질문 이 종교가 무엇이냐는 것인데, 인도네시아 인들 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 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종교관이다. 그렇다고 해 서 이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냐 하면 그 건 아니다. 2002년이나 2005년 10월에 있었던 발리의 폭탄 테러는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이사실을 가지고 그들의 종교적인 배타성을 말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다른 종교를 비교하지 않고 우 열을 논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은 자신들의 율법에 충실할 뿐이다. 인도네시아는 본격적으로 13세기 이후 이슬람화되기 시작했다. 중동의 이슬람이 열 악한 자연환경과 영토 확장을 꾀하는 서구 세력과 의 정치적 투쟁 속에서 발전하였다면,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는 천혜의 환경과 힌두교, 불교, 토착 신 앙 바탕 위에 조화롭게 뿌리내려 융통성과 포용성 이 있다. 만약 이슬람의 발상지가 3대륙이 교차하 는 곳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였다면 불교처럼 조용한 역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을 해본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원인Mesjid Istiqlal (므스짓 이스띠끄랄)은 모나스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립 박물관 가까이에 있고 가톨릭 대성당과 마주 본다. Istiqlal은 독립을 의미하며, 100년 된 대성당과 마주하여 이슬람 사원을 건 설한 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성을 상징적으 로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1955년 건축 위원회 가 형성되었을 때 수카르노 대통령이 전국적으 로 디자인을 공모하여 사원을 건축했다. 그 결과 F. Silaban이라는 수마트라에서 온 건축가의 디 자인이 선택되었는데, 그는 놀랍게도 프로테스탄 트 신자였다. 그러나 건축 위원회는 그의 종교를 문제 삼지 않았다. 건축은 1961년 8월에 시작되 었고, 1967년 9월부터 사용되었다. 공식적으로 는 1978년2월22일에 개관했으므로 17년 만에 완성된 셈이다. 사원은 9.5헥타의 부지에 세워졌 고, 정원과 분수로 둘러싸여 있어 공원같이 꾸며 져 있다. 8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확보 되어 있다. 사원 건물은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서 있다. 큰 테라스가 사원 바깥쪽 에 있는데, 보도로 되어 있어 참배자들이 넘쳐날 때 사용되고, 모나스를 마주보고 있다. 사원은 중 요한 종교 축제를 위하여 오는 수천 명의 참배자 들을 모두 수용하고 남녀를 구분해 참배하기 위하 여 5개의 영역으로 나눠진다. 테라스까지 모두 십 만 명이 한꺼번에 참배할 수 있는데 기본 건축은 벽과 통로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바닥은 동부 자바 주 뚤룽 아궁(Tulung Agung) 지역에서 가 져 온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밖에 있는 뾰족탑과 벽은 구멍 뚫린 격자 구조로 되어 있으며, 첨탑 기 둥은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철근으로 만들었다.
벽에 사용된 격자 구조는 바람은 통과하고 햇볕 은 차단하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이슬 람 사원들도 모두 이 구조를 사용한다고 한다. 동 남최대의 Istiqlal 이슬람 사원은 인도네시아 국민 들의 자랑이다. 그 외에 이 사원은 인도네시아 독 립 투쟁의 기념하기 위해 아랍어로‘자유’란 뜻 의 Istiqlal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 사원은 현대 인도네시아 건축의 본보기로 디자인 되었다고 한 다. 이슬람 사회의 교육적, 사회적, 종교적 필요를 위해 활용되고 있고, 몇 가지의 세부 영역으로 나 누어져 있다. 중심 빌딩은 5층으로 약1헥타르인 주 바닥과 총 4층을 합하면 4헥타르가 되는 면적 에 약 2만 5천명의 사람을 실내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5층은 하루 5차례의 기도와 이슬람의 5대 의무를 나타낸다. 또한 국가철학 빤짜실라의 5개의 원칙을 상징하기도 한다. 7개의 사원 출입 구는 영광스러운 알라 (Allah)를 뜻한다. 또한 숫 자 7은 하늘과 1주 내7일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 면체인 천장은 지름이 45미터로 45년 독립을 뜻 하며, 세라믹 타일로 덮여 있다. 또 천장은 12개의 스테인리스 기둥으로 받쳐져 있는데 이는 마호메 트의 생일과1년 12달을 나타낸다. 서쪽 벽에는 달필로 세 개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 있 는 메시지는“알라만이 유일한 신이다”중앙에는 “알라의 이름은 동정과 자비로”왼쪽에는“알라 를 찾기 위해 기도하자”고 씌어 있다. 즉 유일신 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 성전에는 조각, 경배 대상 물 및 그림 등이 없었다. 이슬람은 우상 숭배를 금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대신에 사원의 벽에는 아라베스크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상 1층 바닥 의 한 부분에서 청소와 예배(기도) 전후 손발 얼 굴을 씻는 장소가 있다. 반드시 (세 차례씩), 손- 입술-코-얼굴-팔-이마-귀-발 순으로 씻으며, 오른쪽 먼저 그리고 왼쪽 순이다. 600명을 한 번 에 수용할 수 있다. 또한 사원 건축을 보면 중동과 유럽 문화도 발견할 수 있다. 즉 둥근 지붕과 서예 가 적혀있고(중동영향), 튼튼한 기둥과 벽(유럽 문화)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문화가 하나 가 됨으로 다양성 속의 통일을 지향하는 인도네시 아를 알 수 있다. 천정의 불룩한 부분은 스테인리 스 스틸로 만들어진 하늘을 상징하는 큰 구(球)모 양(돔)으로 만들어져 있다. 지름이 3미터이고 무 게가 2.5톤의 무게가 나가는 이곳에 위대한 알라 를 상징하는 달과 별을 보면 비로소 누구나 이곳 이‘이슬람 사원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된다. 2 개의 둥근 지붕은 천지와 생사, 내.외부, 이슬람 교 교훈에 관한 신앙과 인간관계의 이중성을 표 현한다. 찾아오는 기도자를 위해서 매일 7,000개 의 매트가 깔렸다가 접힌다. 이슬람 지도자 이맘 (Imam)은 금요일만 설교단에서 연설한다.
종교적인 기도자를 위해 사용되었던 예비 건물 은 주 건물 뒤에 위치하고, 5층이며 작은 돔 지붕 으로 되어 있다. 테라스는 르바란(Idul Fitri Idul Adha), 읽기 대회 같은 때, 혹은 종교적인 회의로 예배자가 넘쳐날 때 사용한다. 이 테라스는 남녀 구분을 위해2개로 나뉘어져 있다. 테라스에도 메카 방향으로 줄이 그어져 있다. 그 줄에 서서 메 카를 향하여 기도한다. 테라스에 칼리만탄에서 가 져 온300년 된 칼리만탄 홍색의 Meranti나무와 소가죽으로 만든 큰 북 이 있는데 금요일 12시 예 배 시작을 알리는데 사용된다. 이 북은1978년 2 월 22일Soeharto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다. 큰 북은 앞면 반경2m, 뒷면 반경 1.71m, 길 이 3m, 무게 2.30톤이며, 중부 자와의 자띠(jati) 로 만든 받침다리는 높이 2.80m, 길이 3.45m, 폭 3.40m이다. 동물을 희생시키는 종교 제단은 테라 스를 둘러싸고 있는 보도의 바깥 낮은 건물에서 이루어지며 피가 바로 Ciliwung 강으로 흘러 들 어간다. 뾰쪽 탑인 첨탑(The minaret)은 기도 시각을 알리는 스피커로 사용되는데 뾰쪽 탑은 높 이 6666센티미터인데 이는 코란의 6666구절을 의미하며 지름이 5미터이고, 스테인리스 스틸로 건축되었다. 열려져 있는 격자무늬로 디자인되어가능한 한 가늘게 보이도록 세워져 있다. 돔 위에 있는 금속 스파이크는 30미터 높이로 코란의 30 장을 의미한다.
이슬람은 순종 또는 평화를 뜻하며, 무슬림은 이 슬람 신자를 의미한다. 3대 종교 중 가장 늦은 7 세기에 출발했지만 불과 100년 만에 아라비아 반 도는 물론 중국까지 전파됐다. 그 이유는 이민족 에 대한 관용정책 때문이다. 이슬람은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하는 생활 그 자체다. 또 현세의 삶과 내세를 동일시한다. 대체로 기도 시 간 외에는 어느 때나 들어갈 수 있으며, 정식 입장 료는 없으나 기부금을 내는 게 예의다. 라마단 기 간에 들어가려면 여자들은 얼굴과 손을 빼고는 온 몸을 가려야 한다. 금요일과 이슬람 성일에는 매우 붐비므로 피하는 게 좋다. 수녀님께서 지금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보 고 싶어 하셔서, 금요일 대예배 시간에 이스띠끄 랄 사원을 방문했다. 수녀님 복장을 걱정했는데 머리 손발이 모두 가려져 있으니 이교도 복장이 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필자의 복장 이 문제였다. 그곳에서 주는 이흐롬을 입고 머리 는 수건으로 가리고 가이드와 코란을 가르치는 선 생님(Ustadz(우스닷))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3층에서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1층에 는 남자가, 이층에는 여자가 기도를 드렸다. 자기 의 양팔을 끼고 옆 사람과는 팔꿈치를 맞댄다. 르 바란때는 여자는 남자의 오른쪽 구역에 서서 기도 드린다. 20분간 이슬람 종교 지도자 이맘의 설교 를 듣고 양탄자가 깔린 바닥 위에서, 맨발의 남자 들이 여러 줄로 늘어서서 30분 정도 정성스럽게 예배를 드린다. 45도 각도로 혹은 90도 각도로 절 을 하기도 하고,‘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한다.’ 는‘므스짓’이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납작 엎드 려서 절을 하기도 했다. 때로 두 손을 뒤로하기도 하고 손을 앞으로 모으기도 했다. 기도하고 끝날 때는 두 손을 귀 뒤로 가져가기도 했다.
너무 경건 한 모습에 사진을 찍기가 민망했다. 그 복잡한 동 작을 한사람도 틀리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군사 훈련을 받는 것처럼 일사불란했다. 신을 향해 경 건하게
선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힘이 있어 보였고 이슬람의 뜻처럼‘신에게 자신을 맡긴다.’는 그 자체였다. 예배가 끝난 뒤 선생 님은 무슬림들과 사진 촬영도 허락했는데 그들의 시선은
따뜻했다. 특히 수녀님과는 서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코란선생님은
흰색 모자를 착용 한 것으로 보아 하지를 다녀 온 것 같았다. 선생님 은 수녀님에 관해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가톨릭 수녀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냐고 물었 다. 어디에 성당이 있는지,
오늘 이야기를 더 할 수 없는지,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지.......
몇 달 뒤, 종교 축일에 사원에 다시 갈 기회가 생겼다. 선생 님은 반갑게 맞이하며 대뜸 수녀님은 그동안 어떻 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노라며, 건강은
어떠한 가,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는가, 성당 주소를 가르 쳐 줄
수 있나, 전화번호라도……. 끊임없이 질문 이 쏟아졌다.
이교도이며 수녀님은 독신임을 알지 않는가, 왜 그렇게 생각을 많이 했느냐는 물음에
그녀의 아름답고 착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홀 로 가는 그 모습 또한 눈부신 아름다움이 아닌가 라고 말하며
그리움을 토해내었다. 이교도와의 짧 은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사랑은 짧고 망각은 길다고 했던가. 밖으로 나오 니 병자, 소경, 장애인들이 사원 앞에 많이 모여서 구걸행위를 하고 있었다. 언뜻 마태복음에 나오는것처럼 예수께서 그들의 병과 약함을 고쳤으면 하 는 생각도 해봤다. 그리고
장터도 열려 있었고 평 소와 다르게 활기차고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아무튼 이 거대한 사원은 인도네시아 인들이 종교 적인 자부심을 충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 다. 그들은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에 신앙 고 백을 되뇌이거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알라에 게 절실히 기도한다. 이처럼 그들의 종교는 그들 의 삶에 있어 절대적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도네시 아를 움직이는 힘이 아니겠는가. 종교의 특성과 관련하여 인도네시아는 낮은 자살률을 나타낸다. 이곳에 와 보면 어떤 종교이든 종교는 절실성과 경건성의 토대 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종교가 수많은 이들의 목숨 을 담보로 종속되어 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데, 종교를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판단할 때 생기 는 오류에서 벗어날 때 종교적인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Jl. Veteran and Jl. Perwira, Jl. Kathedral
(021)3847189, 3450772
저녁 시간에도 탐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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