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5월 문화탐방기 <김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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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문화연구원 251회 문화탐방기>
김현미(한국문인협회인도네시아지부회원)
초록은 하나의 풍경이다
초록의
축제가 풍성한 곳. 나무 끝자락에서 금방이라도 초록의 수액이 후두두 떨어질 것만 같은 푸르름은
나로 하여금 그 그늘 아래 내 안의 습기를 내어 놓고 말리고 싶게 한다. 짙푸르 다 못해 농염한 그 초록을
보노라면, 내 안의 가여 운 내가 눈 녹듯 작아지고, 어린 날의 여렸던
연 둣빛도 힘이 입혀져 짙푸름의 박동으로 내게 대 답한다.새벽안개 자욱한 신비한 시간 숲 속에서 나는 자연과
한 호흡으로 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 다. 낮은 풀의 미세한 움직임조차도 전율로 전해 져 왔던 그 순간.
의식의 문을 걷어내고 무의식의 수면 밑으로 들어 가 본 기억이다. 나는‘나’라 는 우주를 경험 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숲의 빛깔과 나무의 향기, 잎새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 다. 햇볕이 칼날같이 내려 꽂이는 시간. 햇빛의 물 결이 나무그림자와 교차를 이루며 만들어 낸 그
림을 보았다. 때때로 답을 알 수 없을 때, 분주함 속에서도 일 진행이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을 때 나는 그 초록의 동굴 안에서 내 안의 진실한 욕망 과 만나고 대화하며 나다운 답을 찾았다. 우박처 럼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가득한 숲에서 내 안 의 울분을 토해내며 빗소리를 방패 삼아 꺼이 꺼 이 소리 내어 울기도 했었다.
이토록 다양한 초록 의 스팩트럼 안에서 나는 마음 한 자락을 우두둑 무너뜨리면, 가지치기를 끝낸 나무가 되어 있었 다. 초록의 숲이 좋아 이렇게 물들여져 가고 결국 은 스스로
초록이 되어 가는 나를 본다. 시인의 구 절처럼 나는 초록 곁에서 초록을 그리워하는 일 을 한다.
오늘도 초록이 만드는 그 그림자. 바람 과 햇빛이 만드는 흉내 낼 수 없는 변주곡을
들으 러 보고르 식물원으로 갔다. 보고르 식물원은 15 세기 총독주변을
영국정원사가 설계하여 만들기 시작했다, 1817년 47헥타르규모의 대지로
개발 되면서 19세기에 이르러 서는 세계에서 가장 완 벽한 열대지방의 식물표본 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17000종 이상의 식물을 갖춘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이다.‘비의 도시’ 보고르.‘걱정이 없는’이 라는 뜻의‘buitenzorg’가 어원인
보고르. 영국 통치 당시 인도네시아의 수도였으며 자바의 첫 흰 두왕국인 보고르. 이번 문화탐방은 35명의 인원 으로 사공경 한*인니 문화원
원장님과 박선이 수 석문화탐방팀장님의 안내로 가는 차 안에서 보고 르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들었다. 탐방 팀을 위해 준비해온 여러 가지 간식들을 먹으며 우리는 보고르 식물원에 도착했 다. 보고르
식물원은 4개의 산책로로 되어있다.
1. 첫 번째 산책로 (가장 오랜 수령의 리찌나무 가 있는 산책로)정문 양쪽 기둥에 가네샤 석상을 두고 영국 부 총독 라펠스의 부인 올리비아의 추모비 가 있는 산책로가 펼 쳐져 있다. 립스틱의 재료가 되는 붉은 잎저 를 가진 lipstick palm, 큰 소시지 처럼 생긴 열 매를 가진 키젤리나 아 프리카나의 열매는 대 부분 코끼리 사료로 사용 된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말로만 듣던 세계에서 가장 큰 꽃 사체화 (titan arum: 백합과 식물)를 보고 싶었으나 3~4 년 만에 죽어서 보지 못했다. 현재는 다시 생육 을 하고 있다고 한다. 꽃에서 죽은 시체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다.조금 지나 면 프랑스풍의 아름다운 정원 과‘신의 손’이라는 청동상 이 있는데 이 다섯 손가락은 인도네시아의 다섯 개의 섬 혹 은 5대 국가 철학(Belief in God, Humanity, National Unity, Democracy, Social Justice)을 의미 한다.정원을 즐기며 걷다 보면 보고르 식 물원에서 가장 오래된 리찌 나무를 볼 수 있다. 이 나무 는 옛날에는 현재의 3배의 굵기까지 되었었다고 하는데 수령이 더해가며 기둥 아래 부분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인간과 마찬 가지로 나이가 들어가며 몸체가 줄어드는 현상으 로 보여지지만, 이치적으로 생각하면 대사소모량 을 줄여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생명체의 순리로 여겨진다. 리찌 나무는 젊음의 화창한 봄날과 쨍 쨍한 여름을 슬기롭게 보내어 다른 나무보다 오 래 견디며 살아온 그윽한 향기이며 아름다운 자 태 그 자체이다. 의식의 확장이 필요한 어려운 시 절이 오게 된다면 이 리찌 나무 아래에서 현자들 의 말을 떠올리며 세상을 헤쳐나갈 묘안을 얻을지 도 모르겠다.
2. 두 번째 산책로(다양한 수생식물)연못이 많은 두 번째 산책로에는 연못의 수생식물인 파피루스 와 영국인이 아마존강에서 처음 발견하여 영국여 왕 이름을 따서 붙인 ‘빅토리아 아마존 연꽃’ 이 있다. 이 가시 연꽃은 동남아에서 제일 크다. 이 연꽃은 그 크기도 엄청나지만 실제 물속의 잎 뒷면이 아주 단단하여 5kg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연 잎의 형태가 우리나라 소반 형태로 단아 한 형태미가 있다. 흰 꽃이 2~3일 핀 후에는 분 홍색으로 변한다고 한다.‘밤의 여왕’이라는 별 명을 가지고 있다. 밤에 꽃이 열리는 순간을 상 상하니 생각만으로도 고혹적인 미에 취하는 것 같다.벨기에 공주가 신혼여행으로 식물원 방문 한 것을 기념하여 벨기에 국기 색상을 상 징하는 칸나꽃과 아가 티스 나무가 식재 된 산 책로도 있었다. 보고르 식물원을 돌다 보면 인 도네시아의 아픈 역사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방 의 통치자를 위해 지어졌을 많은 정원이나 궁들 은 아름다움은 있지만 큰 감흥이 없다. 원래의 야 생의 수목들이 뿜어내는 거대한 초록빛의 에너지 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한 탓이다. 판다누스 나무 종들은 지상의 나무줄기에서 기둥뿌리가 자 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공기 뿌리를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나는 이곳 보르르 식물원 에서 공기뿌리, 요정 수술 꽃(임의로 지었음)들을 보고 아마 아바타의 영화제작자가 이 보고르 식물 원에서 많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짐작 해 본다. 아바타 영화를 보면서 완전한 몰입을 가능하게 했 던 생생하고 기묘한 자연의 묘사. 아열대의 화려 하고도 아름다웠던 나무와 꽃과 덩굴들은 상상이 아니었다. 미지의 정글과 오색찬란한 식물들이 가 득 했던 숲이 상상의 식물이라 여겼음에도 그 아 름다운 자태에 나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내내 탄 성을 자아내게 하였는데, 그 아름다운 요정 수술 꽃이 여기 있다니! 그 원시의 자연이 그대로 여기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3. 세 번째 산책로(용설란 류가 다양한 멕시코정 원)멕시코정원이 있는 산책로에는 라틴아메리 카의 건조한 지역이 원산지인 용설란 류가 많다. 100년만에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얼룩용설란, 데 킬라의 재료로 사용되는 선인장, 사이잘 삼, 애 니깽의 원료 가 되는 선인 장 등은 그 크 기와 다양함에 특별함을 더했 다. 노란 양초 가 주렁주렁 달 린 candle tree, 연인들이 건너면 헤어진다는 붉은 색의 구름다리, 커피나무, 카카오 나무 등도 이 산책 길에서 보았다. 세 계에서 가장 많은 288종의 야자나무가 있는 이 곳 산책로. 그들의 시들어진 잎 한줄기 조차 귀중한 자산으로 여겨졌 다. 이 식물원은 지겨울 일이 전혀 없는 곳이다. 철 철이 피고 지는 많은 것 들, 올 때 마다 달라진다 는 나무들, 찰나의 순간에 피었다가 지는 많은 꽃 들 때문에 말이다.
4. 네 번째 산책로(바오밥나무)보고르 궁전의 앞 부분에 있는 네 번째 산책로에는 바오밥 나무가다소 초라히 서 있다. 건기의 환경이 더 적합한 나 무라 이쪽의 환경과 맞지 않아 형태에서도 우리가 사진으로 보았었던 형태는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알라가 세상을 창조한 후 너무 피곤해서 이 나무를 거꾸로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 진다. 네 번째 산책로에서 우리는 연인들의 사랑 이 이루어진다는 커플 나무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뿌리가 여러 개의 벽을 이룰 만큼 큰 형태에서 든 든함을 보았다. 그래서 사랑을 지켜 내리라는 믿 음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우리 팀원들은 걷기도 하고 미니버스를 나누어 타기도 하면서 이동했다. 다소 더운 날씨였지만 식물들을 관찰하기엔 좋았 다.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다 보여주 고 싶다. 이리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자연의 순리 에 따라 지고 난다.
사슴이 뛰어 노는 대통령궁
이스타나 보고르는 1745년 총독에 의해 세워 졌 고, 1865년 신고전주의의 기품 있는 양식으로 지 어졌다. 사전예약이 필수이며 단체에게만 관람이 허용된 까닭에 쉽게 방문 할 수 없는 특별한 관람 이였다.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동행 했던 조은숙 선생님의 통역으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 궁은 렘브란트 그림, 천 개의 상이 비치는 화려한 대형 거울, 웅장한 돔 천장의 공연 홀 등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나는 단지 군림 하 는 자의 고독만을 보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평화 로워 보이는 사슴도 사실은 사냥용으로 사용되기 위함 이였고, 그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 는 마지막은 결국 자연이었으므로 이 곳 에 이 깊은 초록을 펼쳐 놓은 것이 아닐까 추측 해 본다. 우리는 대통령 궁의 계단에 서 정상들의 사진 포즈를 흉내 내며 마지 막 촬영을 마무리 했다. 작은 규모의 박 제 전시장에서 대형고래의 뼈들과 온갖 곤충들의 채집표본을 보며 어린 시절 숙 제 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었다. 헤어 짐이 아쉬워 보고르 식물원 옆의 노보 텔 호텔에 들려 에어컨도 필요 없는 나무그늘 아 래서 차 한잔을 마셨다. 노보텔 호텔은 현대식이 아닌 인도네시아 양식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추억을 되새기는 장소라고 했 다. 호텔의 석상과 가지런한 나무들이 주변의 자 연과 어울리게 설계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 가는 차 안에서 그날 하루의 단상을 나누며, 시를 나누며 피로를 풀었다.인도네시아에 오신 많은 분 들께 알려 드리고 싶다. 인도네시아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 오시라고 말이다. 주저하지 말고, 낯선 몇 분의 시간이 지나면, 문화탐방 팀이 경험 으로 축척 된 길로 안내해 줄 것이다. 이 나라에서 타인으로 살고 계신 그 나름의 이유들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 는 이런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임을 떠올리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튼 튼한 문화의 근간이 되어 온 한*인니 문화연구원 과 교민사회의 선배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pilogue
초록은 하나의 풍경이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 풍 경화를 그려 본 적이 없지만, 화가의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색은 하나로 완성 되어지는 것 이 아니고 색색의 겹들이 덧입혀 지면서 더 깊은 색감을 창조해 낸다고 한다. 나는 이 열대의 나라 에서 이 초록의 창조성을 실험 하며 하나의 그림 을 그려내고 싶다. 내 명상의 시간에 리찌 나무아 래에서 현자들과 대화하며, 빅토리아 연꽃이 있 는 연못에서 밤의 향기에 취할 것이며 공중뿌리와 요정 수술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박진감 넘치는 상상으로 행복 할 것이다. 내 의식의 흐린 유리창 을 초록으로 닦아 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초록 의 기억은 소멸되지 않고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 는 퇴적층이 되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 임을 기쁘게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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