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좌충우돌 인도네시아 표류기 <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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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도네시아 표류기(4)”
이 준 규(외환은행)
‘아두~’… 어느 날 밤 퇴근길에 갑자기 기사아저씨의 외마디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아두 (ADUH)’라는 단어가 위급한 상황 또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쓰이는 말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날 밤처
럼 가슴에 와 닿기는 이곳 자카르타에 정착한 이후 처음 이었습니다. 차창밖에는 세찬 빗줄기가 그야말로 쏟아 붓고 있
었고, 조금늦은 퇴근길이었습니다. 장소는 집에 거의 다 와서 있는 집 근처 사거리였으며, 우회전을 기다리며 서있던 우
리 차를 상대편 차가 무리하게 앞으로 지나가려다 앞 범퍼를 치고 간 것입니다. 집에가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상황에 벌어질 일이라 귀찮고 난감할 따름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샤워대신 비를 흠뻑 맞았음은 물론이
고, 사고 때문에 상대방이 지급해준 보험료보다 두 달간의 차수리 기간으로 인한 렌터카 비가 더 많이 나오고 말았습니
다.
어찌 생각해 보면 도로가 작고 차가 많은 이곳 자카르타에서 사고가 없이 지낸다는 말 자체가 어불 성설입니다. 또한, 사
고는 아니더라도, 서울 출근길의 시청앞 지하철 1호선역이나 4호선 수유리역 근처에서 내 몸이 나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
었던 것처럼, 자카르타 퇴근길의 우리 차는 우리 소 유가 아닙니다. 커브를 틀던 오토바이가 툭툭 건드리고 가기 일수이
며 신호대기 중일 때는 한참들 기대어 쉬어가시는 곳입니다.
오토바이들이 항상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신호등도 없이 꽉 막힌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기위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오토바이들 이 마치 전장의 선봉
대인 기병대처럼 길을 트고그 뒤를 자동차 보병대가 따라갑니다. 그래야 시간 내에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습니다.
사실 도시전체가 막히는 이곳 자카르타에서 조그만 접촉사고보다는 막히는 도로자체가 더 큰 문제 입니다. 결국, 막히
는 차 안에서 견딜 수 있는 조그마한 재미를 찾는 일이 어찌보면 여기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거슬러 올라가 중
국의 요순시대의 정치가 백성을 위해 물길을 만드는 일이 었다는데, 작금에 자카르타에 위대한 정치가가 나와 도로문제
를 해결하는 신화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서울에서도 주말이면,
경주로, 목포로, 강원도로 우리 애마를 타고 다니는여행은 온 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는 인생의 즐거움 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종종 막히는 길을 감수해야 했구요. 눈 오는 대관령입구에서나 귀경길 경기도 이천 근처 국도에서 끔찍한 상황은
차라리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가족만의 대처법이 있습니다. 우리가족의 차세대 멤버인 아들녀석은 손에 핸드폰만 쥐어주면 그야말
로‘cukup’입니다. 한 시간 정도는 너끈히 정말 쥐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평소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 물건이기에 그 순
간에는말 시키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남은 우리들에게는역시 라디오가 최고였습니다. 항상 졸리던 귀경길에 들었던 개
그맨 컬투의 프로그램은 가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졸음방지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다음 번의 대처법은 끝없는 수다입니다. 각자의삶이 바쁜 우리 세 식구는 그 동안의 이야기 보따 리를 풀어 놓습니다. 목
적지에 도착할 때쯤 되면우리동네에 누구네 집 애가 무슨 과목을 잘 하는지, 윗집에서 누구의 소개로 최근에 아이스크림
스푼을 샀는지 까지 알게 되며, 아이가 하는 오락의 3단계를 깨기 위해서 어느 악당의 어디를 맞추어야 하는지를 알게 됩
니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우리 사이를 더 가깝게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때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이사이에 추임새를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몇
시간 들인 노력이 한 순간에날라가게 되지요^^.
세번째 방법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좋은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비록 지루한 도로 위에서라도 좋은 노래 한 구절
을 만나면 그보다 좋을 수 가 없습니다. 이문세, 이승철의 절절한 노래가사가 너무 잘 들려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럴 때
엔 평소에 흥얼거리는 잘 아는 노래도 마치 다른노래처럼 새롭게 들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적의 노래를너무 좋
아합니다.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 길을 잃을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에는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줘서, 다시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 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어디로향하는 걸까, 누구에
게 물어도모른 채 다시 일어나…’
이런 순간에 센스있게 빗방울이라도 한두 방울 창을 때리면, 조금 전까지 머리 한켠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생의 긴 고민
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다시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게 됩니다.
마지막 노하우는 군것질입니다. 안방마님이 준비하신 김밥이며, 꽁꽁얼린 음료수, 먹기좋게 깍아 놓은과일에, 자잘한 과
자부스러기까지…사정이 이 정도면, 길을 나서는 것 자체가 이미 기분전환입니다.
이런 노하우는 여기 자카르타에서도 정말 유용합니다. 오늘도 비오는 일요일 오후 어김없이 막히는 길에서 김창환씨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립니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 서있던 거지, 달빛
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그래도 역시 제일 좋은 것은 시원하게 뻥 뚫리는길임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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